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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07화 (107/153)

귀환자 식당 107화.

“안 됩니다! 이건 절대 안 됩니다!”

말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물리적인 반항은 전혀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공간 이동은 할 수 없지만, 아무도 모르게 옥류관으로 가는 정도는 할 수 있지.

마력으로 빛을 굴절시키면 투명화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렇게 세 사람을 띄워 올랐는데 문제가 생겼다.

“···근데 옥류관이 어디쯤이지?”

“아, 옥류관은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대동강 변에 있으니까요.”

“그래. ···잘 아네?”

그냥 이렇게 대놓고 티를 내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정민이도 듣고선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게 아무래도 국정원 직원쯤 되면 옥류관 위치 정도는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나.

“북한 측에서 선생님이 없어진 사실을 알면 난리가 날 겁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일단 돌아가서 상황을 설명한 뒤에 다시 오는 게···!”

“에이, 냉면 한 그릇 먹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나오는 시간까지 해도 30분이면 넉넉···. 하지가 않으려나.

한강보단 좀 작은 듯한, 평양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의 강변에 청와대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건물.

그리고 건물의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저게··· 다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옥류관은 평양 최고의 음식점으로 유명합니다.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평양 사람들도 자주 찾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또 점심시간이잖습니까.”

말하고 왔어야 하려나? 그랬으면 대기 없이 바로 먹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설마하니 저렇게 대기가 많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북한도 점심을 먹는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정도의 자유는 있다는 말인가? 보고 없이는 함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저기 있는 사람들이 죄다 고위급 간부의 가족은 아닐 테니까.

“평양 사람들도 옥류관을 찾는 건 그리 흔하게 오는 기회가 아니라 대부분 오면 두 그릇은 먹고 갑니다. 아마 저 정도라면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요.”

이 방법은 별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정민아, 너 북한에서 쓰라고 받은 전화기 있지?”

“네? 아, 있죠.”

나도 줄 때 그냥 받아둘 걸 그랬나. 설마 내가 여기서 누군한테 전화할 일이 있겠어 하는 마음에 그냥 거절했었는데.

“그 전화기 좀 잠깐 줘 봐.”

설마하니 냉면 한 그릇 먹어보겠다고 이 번호로 연락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30년이 흐른 사이, 한강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염이 심해졌었다. 강산이라는 자연의 입장에서는 30년이란 정말 짧은 시간일 텐데, 그 짧은 시간 만에 한강처럼 커다란 강이 이렇게까지 더러워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인간은 정말 지구에서 필요하지 않은 존재인가?’

아니, 오히려 지구라는 생물의 기생충, 혹은 독과 같은 존재···. 그 녀석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서 ‘모두’가 인간을 싫어하는 거라고.

하지만 대동강은 조금 달랐다. 아직은 푸른 물결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제법 깨끗한 강물. 한강에서는 기억도 나기 이전에 금지된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간혹 보일 정도로.

“휑하죠?”

“응?”

“이 주변 말입니다. 서울에 비하면 그야말로 초라해 보이니까요.”

운전을 했던 요원, 비록 이름도 모르지만 그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물어보는 건지는 알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좋은걸?”

“···네?”

“한강의 기적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사실 서울처럼 빽빽한 빌딩 숲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자연이란 그 자연만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있는 법인데, 그걸 온통 시멘트로 덮어버린 서울은 황량해. ···차갑고.”

내 말이 의외였는지, 날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의무적이고, 사무적인 것에서 조금은 더 인간적인 것으로.

“···그렇게 부자시면서 왜 그런 곳에서 작은 식당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심지어 그런 능력도 가지고 계시면서요.”

어렵게 꺼낸 질문인 것 같았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아마 묻지 않았을, 묻지 못했을 질문.

“어때, 전보다 차라리 지금이 편하지? 안 그런가?”

대답은 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을 한 나를 보며 살짝 웃은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자신의 정체가 들통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살아왔을까? 아마도 그렇진 않을 거다. 첩자가 되어서 그 정도의 정신력이야 차고 넘쳤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편했을 리는 없다. 늘 가슴 한켠에 돌멩이 하나를 얹어둔, 그런 기분으로 살아왔던 삶이었겠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압박을 견디며 살 수 있는 시간은 모두가 정해져 있는 셈이지. 자네도 한국에 돌아가면 심문이 있겠지? 어쩌면 고문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마음은 한결 편해지겠지.”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해가 빨라서 좋네.”

훗-.

잠시 대동강을 바라보며 강변에 서 있는데, 누군가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저기, 혹시 이진 선생님 일행이십니까?”

“네. 제가 이진입니다만.”

“여, 연락받았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셋과 평상복 차림의 나.

그리고 진땀을 흘리며 우리를 안내하는 중년 남성의 복장은 옥류관이라는 식당에서도 지위가 제법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줄을 지어 대기하던 사람들도 잠시 눈길을 주고선 얼른 시선을 거둬들인다. 괜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좋을 게 없다는 식의 시선 회피.

이런 식으로 새치기를 하게 된 점은 미안하긴 하지만, 괜히 일을 더 크게 벌였다면 오늘 옥류관은 임시 휴점에 돌입했을 테니 어렵게 찾아온 이들에게는 이편이 더 낫겠지.

“대체··· 누구한테 전화하신 겁니까? 북한에 아는 사람이 있으셨어요? 어떻게요?”

“···정민아.”

“네.”

내 작은 목소리에 안정민이 얼른 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나도 조용히 알려줬다.

“알면 다쳐.”

“······.”

실망한 표정 짓지 마라. 알면 진짜 다친다, 너.

쪼르륵-.

새콤한 향이 나는 식초를 젓가락으로 들어 올린 면에 뿌린다. 국물에 양념장을 좀 풀고···. 응? 평양냉면에 양념장을 넣는다고?!

“잠깐, 이렇게 먹는 게 맞아요?”

“네? 무, 물론입니다. 이게 제일 맛있는 게 먹는 방법입니다.”

조금 충격적인데? 나도 서울에서 몇 번이나 평양냉면을 먹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뒤로 가보진 않았지만, 예전에는 맛있기로 소문난 곳은 직접 찾아가 먹어본 적도 있다.

진한 육향이 나는 고기 육수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섞은 곳도 있고, 북한 전통 방식이라며 꿩고기를 넣어 살짝 독특한 향이 나는 육수가 인상적인 곳도 있었지.

중요한 건 이런 방식으로 먹어본 적은 없다는 점이다. 양념장에 심지어 겨자를 듬뿍 넣은 평양냉면이라니.

“한국에서는 먹는 방식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렇게 드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니 한 번 드셔보시죠.”

꼭 먹어본 사람처럼 말하네. 자기도 옥류관은 처음이라고 했으면서 말이지.

음. 생소하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수십 년을 일했다는 종업원이 추천한 방식이니까.

후룩-.

···완전히 다른 음식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메밀면은 서울에서 먹던 전문점과 달리 함흥냉면의 면발처럼 쫄깃하고, 새콤한 식초가 스며들어서 면발이 더 탱탱해진 느낌.

게다가 무엇보다 겨자의 알싸함에 양념장을 푼 매콤함은 꼭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동시에 먹는 듯한 맛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쫄깃한 면발을 오물거리다가 국물을 한 번 들이켰다. 역시나 진한 육향은 변함이 없지만, 그 안에서 독특한 향을 느꼈다.

꿩고기 특유의 비릿한 맛을 양념장과 겨자가 어우러진다.

“···맛있네요.”

한 젓갈과 한 모금을 모두 맛보고 느낀 생각을 미소와 함께 말하자 그제야 안심한 듯 미소 짓는 종업원이 나가고, 본격적으로 냉면을 흡입했다.

정민이도 나도, 그리고 북한 출신의 요원 두 사람도.

“와··· 정말 맛있네요. 이거 혼자 먹어서 어쩐지 미안하기까지 한데요?”

“오찬에는 맛있는 게 더 많이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고려호텔에도 평양냉면은 있었는데요. 아마 거기도 평양냉면 나왔을 겁니다. 고려호텔 평양냉면도 엄청 유명하니까요.”

내가 있던 곳이 고려호텔이었나? 근데 그 이야기를 왜 이제···.

“그, 그래도 평양냉면은 역시 옥류관이죠.”

“···그렇지?”

“그럼요! 그리고 오찬에서 냉면을 마음 편하게 먹었을 수나 있었겠습니까?”

하긴, 처음부터 그래서 따로 먹으려고 했던 거니까. 뭐, 온 보람은 있다.

이 맛있는 냉면을 시연이나 시은이에게도 맛보고 해주고 싶을 뿐이지.

“평양냉면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 와보는 게 소원이겠네요.”

“예전에 보니까 어떤 설문조사에서 북한에서 가보고 싶은 곳에 금강산 다음으로 옥류관이 2위던데요?”

“먹어보니 정말 그럴 만 하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맛보게 해주고 싶어졌다.

“그래. 통일하면 되겠네.”

내 말에 세 사람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들 그러지? 내가 뭐 이상한 말 한 건 아니잖아. 언젠가는 해야지. 안 그래?

* * *

지루하다. 서로 간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면 좋겠지만, 누군가가 얻는 게 있으면 누군가는 내어줘야 하는 게 조율이니까.

기자들도 기다리느라 지루하겠지만, 이 안은 뉴스에서 보던 것처럼 그리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는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리 우리가 늦었다곤 하지만, 그쪽에서도 결국 5명의 인원밖에 투입되지 않았잖소!”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 이진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각성자라면 고작 그 숫자로 게이트 공략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까요?”

“지금 우리 공화국을 무시하는 거요?!”

“무시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전력을 따져보자는 겁니다. 북한에서 이진 선생님과 대적할만한 각성자가 있습니까?”

이익-!

정곡을 찔렸는지, 북한 관계자의 얼굴이 달아오르긴 하지만 정작 대꾸는 하지 못했다. 없는 건 사실이니까.

통일부 차관이라는 자, 꽤 직설적이네. 여기 있는 내 얼굴이 다 달아오르려고 한다. 물론 없는 말을 지어낸 게 아니라 사실이긴 하지만, 바로 앞에 대고 저렇게 금칠을 해대니 원.

“게다가 말씀드렸듯이 게이트에서는 마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걸 지금 믿으란 말이오?!”

못 믿겠지. 당연히.

아니, 설사 믿는다고 해도 저들 입장에서는 믿지 못한다고 우겨서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야 하는 상황일 거다.

“그럼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단 소린가?”

가만히 있던 내가 나서자, 저쪽에서도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이가 나섰다. 그래, 어떻게 나오는지 구경이나 좀 해볼까?

“중국은 이진 선생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뭐?

“하지만 공동구역에서 대한민국이 사전의 상의 없이 독단적인 행동을 했으니, 국제적인 관례에 따라 주시면 좋겠습니다.”

“관례라,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꽌시인지 뭔지, 중국은 그게 없으면 비지니스가 안된다지? 결국 뇌물을 달라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간단합니다. 안에서 마석이 아닌 게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것에 대한 공동 소유권을 인정해주시면 됩니다.”

마석이 아닌 물건에 대해 공동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관례 같은 게 있었어? 애초에 우리나라처럼 특수한 경우가 얼마나 된다고 관례래. 한 마디로 그냥 지껄이는 거지.

결투장 녀석이 남기고 간 물건을 용케 알아냈네. 나밖에 모르는 일이었고, 당연히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당연히 그걸 누구와 공유할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럴 수도 없는 물건이다. ···어쩌면 애초부터 내 것이고.

북한에서 나온 천리안 능력자를 중국에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김태영에게 미리 듣지 못했다면 괜히 엉뚱한 곳을 의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애초부터 중국이 노렸던 건 이거였을 것 같은데, 내가 내걸 왜 다른 사람이랑 나눠야 하지?

국제적인 외교 협상 자리인 만큼 조심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근데, 중국 놈이 하는 행태에 배알이 꼴려서 그런가? 괜히 엇나가고 싶어지네?

“싫은데?”

이제 어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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