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05화.
그래도 예전에는 식량원조라던가 북한의 핵무기 도발 같은 것들로 간혹 회담을 하곤 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것도 없었나?
“···50년만 이라고?”
폐쇄적인 국가인 만큼 처음으로 게이트가 나타났을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을 거다. 그러니 그때는 도발 같은 걸 할 생각도 못 했겠지.
그 뒤로도 상황은 비슷했을 테고, 하지만 게이트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단절된 상황이 지속됐다니.
인구도 적은 데다 다른 나라의 원조가 없으면 사실상 자급자족하기 힘든 국가가 바로 북한이었는데, 30년 동안 한 차례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니 믿기 힘들다기보단 걱정스러웠다.
비록 사이가 안 좋다곤 하지만 그래도 같은 민족인데.
“전에도 비공식적으로 요청이 있었던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핵무기나 미사일 발사 훈련 같은 것으로 협박을 한 적은 없습니다.”
“몬스터한테 핵무기 시설이 박살 나기라도 한 거 아냐?”
대마도에서 올라온 이루의 말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이미 한 번 만들었던 무기를 다시 만들지 못했을 이유가 없는데.
“어쨌든 조심하셔야 해요. 회담 장소가 평양인만큼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요.”
신주희 박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이 여자까지 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 뒤까지 저희 쪽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할 겁니다. 그리고··· 회담을 진행하는 대신, 저쪽에서 마석을 요구해왔습니다.”
“하, 거기에 요구 조건까지 단다고?”
구걸에 가까운 요구 조건이겠지만 한국 정부에서는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거다. 매번 그랬듯이.
“그럼 지금은 누가 통치하는 거지?”
“김태영이라는 인물인데, 나이가 상당히 젊습니다. 이전과 달리 외국으로 유학을 하러 간 적도 없고 공식 석상에서도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알려진 정보가 별로 없지만···. 여기 사진은 있습니다.”
이전 지도자들의 푸근한 덩치와는 달리 날씬한 몸매를 한 젊은 미남자였다. 그 집안의 핏줄을 물려받았는데, 이런 외모가 나올 수도 있나?
“···각성자일 확률도 있겠네.”
“국정원에서도 그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 사진은 약 세 달 전, 그러니까 이미 게이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후기도 하고요.”
이제는 그만 공산주의를 버릴 때도 됐건만,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더 누려보겠다고 아직도 그 많은 국민을 고통 속에서 살게 하는 건지.
가슴이 답답하네.
* * *
[오늘의 메뉴]
[명태식해 & 간장게장]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반찬으로 판매를 한다는 게 조금 죄송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 많은 양을 혼자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기본 찬으로 내자니 되려 만든 분께 죄송하기도 해서 결정한 게 바로 선택이었다.
호불호가 상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명태식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메뉴를 보고 찾았거나.
“저희는 둘 다 1인분씩 주세요.”
두 사람이 와서 하나씩 시키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명태식해야 이미 살을 다 발라둔 상태지만 간장게장은 손이 많이 간다.
뜨드득-.
게 뚜껑을 따는 소리가 들리고 나면 곧이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탄성.
“와아, 자기야 이것 봐. 알 꽉 찼어!”
정확하게는 알이 아니라 수정되기 전의 암컷이 가진 난소이지만 상관은 없지.
주황빛 알이 흘러내리기 전에 얼른 뜨끈한 흰밥 위에 얹어두고, 두툼한 다리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면 단짠단짠한 간장에 물든 옅은 갈색빛의 살이 봇물 터지듯 튀어나왔다.
쪽파와 고추를 잘 다져서 함께 내어준 것과 비벼 먹는 사람들도 있고, 밥은 뒷전이고 살만 얼른 한 입을 크게 베어 무는 사람도 있었다.
“으으음. 이 성공한 느낌.”
“아하하. 그게 뭐야.”
보기엔 어려 보이는 커플이었는데, 참 잘 먹는다. 뚜껑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지 알까지 젓가락으로 남김없이 긁어먹는 걸 보니 괜히 뿌듯해진다.
“사장님, 여기 혹시 양념게장은 없어요?”
“어쩌죠? 오늘은 간장게장만 준비가 됐는데. 다음에는 꼭 양념게장도 준비해둘게요.”
간혹 양념게장을 찾는 사람도 있었는데, 미처 생각을 못 했다. 하긴, 나도 어렸을 때는 간장게장보다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하게 버무린 양념게장을 더 좋아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입맛이 변했나. 요즘은 양념보단 조금 더 깊은 맛이 나면서 내장의 맛이 살아나는 간장을 더 좋아하게 됐네.
[북한과의 회담 일이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국정원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는 한국의 귀환자이자, 세계 최강의 헌터로 알려진 이진 씨가 참여하는···.]
민망해서 뉴스 채널이 아니라 예능 채널을 틀어뒀었는데, 누가 또 채널을 바꾼 건지.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이 멀다 하고 내 이름이 나오는 게 민망하고 낯부끄러워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사장님 그럼 내일은 가게 안 열겠군요? 저희 엄마가 명태식해를 엄청나게 좋아하셔서 내일 또 오려고 했는데 아쉽다···.”
“아뇨. 내일도 열겁니다.”
“어? 하지만 사장님 저기 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회담은 1시고, 가게는 5시부터 열면 되니까요.”
빨리 다녀오면 된다. 최근에 이런저런 이유로 가게 문을 자주 닫아서 이제는 최대한 정해진 휴일이 아니면 문을 닫고 싶지 않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게에 있는 시간이 나에겐 가장 마음이 편한 시간이라.
“와··· 대단하세요. 대마도 아카데미에서 학장도 하시면서··· 어떻게 이걸 다 하세요?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거 같은데.”
가끔 가게를 찾는 젊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를 힐끔힐끔 보거나 사진, 사인 같은 것들을 요구해서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이 두 사람은 그런 게 없이 순수하게 음식을 즐겨줘서 고맙네. 뭐, 서비스라도 내어줄까?
시간이 더 늦어지면 반주를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그 전에 얼른 내어주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주방에 들어가서 디저트로 내어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싶어서 뒤적거리고 있는데, 시연이가 왔다.
“삼촌···.”
어딘가 조금은 불안한 모습.
“몸도 안 좋은 애가 여긴 왜 왔어. 집에서 쉬지 않고.”
바쁜 것도 없고, 얼마 전 심상찮은 일이 있어서 걱정되는데. 지금 표정을 보니 또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네.
“···저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이야 거의 매일 그리는 시연이가 대뜸 찾아와서 그 말을 하는 이유는 그 그림이 특별하기 때문이겠지.
“그래? 뭔가··· 안 좋은 거야?”
“잘··· 모르겠어요.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가지고 온 화구통을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바쁘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쁜 거였다면 저렇게 말할 이유는 없겠지. 그러니 직접 봐야겠다.
“덕윤아, 잠깐 가게 좀 보고 있을래? 나 위층에 좀.”
“네? 네!”
여기저기 온통 물바다인 주방에서 그림을 펼쳐보기도, 그렇다고 손님이 계신 홀에서 보기엔 더 말이 안 되고. 결국 안전하게 확인할 수 있는 2층으로 향했다.
덕윤이도 이야기를 들어서 내용이 궁금한지 아쉬운 표정을 짓지만, 너는 아직 이런 일에 끼어들기엔 조금 이르단다.
으음. 이건 진짜 애매한데? 거실에서 커다란 그림을 내려놓고 나와 시연이가 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하게 나는 그림을, 시연이는 내 얼굴을 보고 있었지만.
“뭐,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글쎄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는데.”
얼핏 보면 별것 아닌 그림이다. 시연이가 날 그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저 옷을 입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인 내 모습이 그려져 있었으니까. 문제는 딱 하나. 입고 있는 옷, 그리고 뒤에 굳이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있는 배경 정도. 그게 좀 크지만.
“설마 진짜 이런 일이 생기진 않겠죠? ···그렇죠, 삼촌?”
시연이의 말에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사진 속의 나는 지금 뒤에 위아래로 파란 줄에 굵은 붉은색 안에 다시 붉은색의 별이 그려진 국기를 배경으로 두고, 마치 자랑스럽다는 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
옷은··· 상상도 하기 싫은 똥색에 금색 단추가 달려 있었고, 머리엔 접시를 얹은 듯한 커다란 모자까지 쓴 채다.
어떻게 봐도 북한군 장교로 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저걸 입을 리는 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설마?
* * *
긴장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조금 기대된다는 느낌이 맞을까? 아무리 나라도 북한에 가는 건 처음이니까. 평양냉면도 조금 기대되고. 역시 점심은 평양냉면이겠지?
아니면 굉장히 실망할 것 같은데.
“선생님, 이제 출발하셔야 합니다.”
“아. 그래···. 오늘 가는 사람이 누구누구라고 했지?”
“우선 통일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 게이트 관리국장,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사무처장이 동행할 예정입니다.”
정상회담이 아니니 통일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이라면 정부에서도 현 상황을 상당히 중요한 기점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워낙 오랫동안 단절된 이후 첫 회담인 만큼 이번 사안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계기를 맞이할 테니까.
“아, 그리고 이례적으로 중국 측에서 대사가 회담에 참관인으로 참석할 예정입니다.”
“중국 대사가 왜?”
“···이 부분은 가면서 설명을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설마 내 집에서 도청을 염려하는 건 아닐 테니, 할 이야기가 많다는 거겠지.
세단을 타고 가는 길에 정민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중국의 소수민족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뭐, 오래전부터 독립을 선언한 자치구들은 제법 있었지만 워낙에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탄압해서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었죠.”
“그래··· 기억이 난다. 위구르나 티베트였나?”
“예전에는 그랬습니다만 요즘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지금은 한족을 제외하고는 가장 인구가 많은 좡족, 회족, 묘족은 물론 티베트나 위구르나 만주와 심지어 조선족들까지 독립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이니까요.”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고, 사실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일이 한국과 북한의 회담에 끼어들 이유가 있나, 싶었는데 정민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중국은 각성자의 숫자가 기이할 정도로 적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성자가? ···인구가 그렇게 많은데도?”
“네. 인구 대비로 따지면 한국의 30%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덕분에 피해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크죠. 물론 중국 정부에서는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요.”
“그래도 그것만으론 오늘 회담에 참석하겠단 이유가 되진 않는 것 같은데?”
“네. 물론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 쪽에서 대북 라인을 총동원해 확인해본 결과, 중국이 최근에 북한의 각성자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습니다.”
말로는 영입이라고 하지만 그건 그저 강탈해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북한에서 나오는 각성자들의 숫자로 그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솟아나는 게이트를 막기는 역부족일 텐데?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짓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 북한에서 엉뚱한 말을 할까 감시하기 위해 참여하는 거라고밖에는···.”
그런 이유일까? 회담에 나오는 북한 지도부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이야기를 한국에게 해봤자 득보단 실이 많다는 걸 알 텐데.
아마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왠지 그 이유라는 게 나를 북한으로 불러들이려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도 같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