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03화.
조금은 묘한 광경이 연출됐다.
작은 아이가 게이트 앞에서 서서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꼭 내가 나쁜 놈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도 한 번은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굳이 혼자 들여보낼 필요가 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형.”
이루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등급이 너무 낮은 거 아니야?”
미친, 아무리 그래도 저 아기를 혼자 들여보내는 마당에 등급까지 높아야 하겠냐? 이 자식도 참 냉정하네.
그래도 내가 어이없게 쳐다보니 자기도 조금은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아니··· 그래도 신변에 위협을 느낄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형은 잘 모르겠지만, 네스티 저놈 아카데미에서 거의 최강자 수준이라고. E등급 정도는 혼자서 가볍게 클리어해 버릴 수도 있어.”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 정도까지야 될까.
교육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은커녕 보름도 안 지났는데. 아무리 마력 수치가 높다고 하지만···. 그러고 보니 아까 라미야가 슬쩍 한 말도 조금 불안하긴 한데.
‘같이 들어갈까?’
마음만 먹으면 네스티에게서 기척을 감추는 것 정도는 쉽다. 문제는 네스티가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 내가 정말 그걸 지켜만 볼 수 있냐는 건데. ···솔직히 자신이 없다.
고민을 하는 사이, 네스티가 게이트 안쪽으로 사라졌다.
장막이 살짝 출렁거리고 난 뒤 찾아오는 묘한 적막감.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그저 가만히 게이트만 쳐다보고 있었다.
‘들어가긴 했네.’
차라리 들어가지 못하길 바라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는데.
“···삼촌. 저, 좀···.”
시연아? 게이트에 들어간 건 네스티인데, 네가 왜.
휘청거리는 시연이의 몸을 얼른 부축했더니 몸이 뜨겁다. 설마, 감기라도 걸린 건가? 아무리 겨울이라곤 하지만 각성자가 일반 감기라니, 호랑이가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것보다 확률이 낮을 거다.
“시연아. 왜 그래?”
“머리··· 머리가 어지러워요.”
능력관 관련된 건가? 하지만 리안에게는 이런 증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왜 시연이에게··· 그것도 하필이면 네스티가 게이트에 들어간 직후에?
“선생님. 시연 양이 어디 안 좋은 겁니까?”
“모르겠다. 일단 병원···. 아니지.”
대마도니까, 병원보다 훨씬 나은 선택지가 있지.
“이루야. 가서 블랙 좀 데리고 와.”
“···알았어.”
“안 온다고 하면··· 강제로 끌고 와도 된다.”
마음 같아선 직접 가고 싶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나는 이곳을 지켜야 한다. 시연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게이트의 경과를 지켜보는 것도.
여전히 검은 옷으로 칭칭 둘러싼 녀석이 다가왔다. 도대체 저렇게까지 정체를 감추려고 하는 이유는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능력 때문인 것 같다.”
“···맞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았으면서 곧장 알아챈다고? 나도 잘 모르겠는데.
지금 시연이의 상태가 병이나 상처 같은 게 아니라면 오히려 내가 블랙보다 더 나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전혀 모르겠다. 지금 시연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녀석은 안다는 건가?
“측두엽이 엄청난 속도로 재생되고 있어. 이 아이가 어지러운 건 그 때문일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측두엽은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체가 있는 부위야. 저 아이, 리안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
젠장할, 이 놈의 세상 비밀이 없군. 이곳에 있는 이들이라면 알아도 되는 비밀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알려준 것도 아마 하밀 녀석일 테고.
“예지라는 건 결국 부호화를 거쳐야 비로소 재생이 되는 거야. 간단히 말하면 이 아이의 능력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는 게 아니라, 미래에 가지게 될 기억을 미리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이란 소리지.”
···시발. 그 두 가지가 다른 건가? 나도 머리가 나쁘지 않다고 자부하는데, 저 말은 바로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래도 블랙 녀석이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는 게 좀 놀랍기도 하면서 또 고맙다.
나야 마력을 느끼는 데는 세계 최고지만, 시연이 머릿속에서 어디가 재생되고 왜 그러는지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는 쓸모가 없다.
그럼 블랙 녀석은 이전부터 뇌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힐러가 돼서 자연히 알게 된 건가? 아무튼.
“그럼··· 어떻게 해야 괜찮아지는 거야?”
이제 설명은 됐으니까, 해결법을 알려달란 소리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냥 기다려야지. 최종적인 기억이 결정되면 자연히 괜찮아 질 거야.”
“···최종적인 기억?”
“내가 말했잖아. 이 아이의 능력은 미래에 가지게 될 기억을 먼저 재생할 수 있는 거라고. 한 마디로 지금 이 순간에 미래가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말이야.”
미래가 바뀌고 있다? 하필 지금 이 순간에? 이유야 하나뿐이겠네.
자연히 고개가 게이트로 향했다.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잔잔한 호숫가처럼 일렁이는 게이트.
지금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혹시나 누가 내 뒤를 따라 들어오려나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긴, 고작 E급 게이트에 내가 들어왔으니 마력 한계치를 단숨에 넘어버렸겠지.
한 마디로 지금 저쪽에는 게이트가 사라진 셈이다.
나와 네스티가 죽어서 게이트가 다시 나타나거나, 아니면 게이트 공략을 끝내거나. 둘 중 한 가지 선택만 남은 셈이다.
“···던전형?”
E급이라 당연히 필드형 게이트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던전형이다.
그것도 동굴형이 아니라 미로형.
자연스럽게 기감을 펼치자 미로형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중간중간 느껴지는 작은 마력들. 몬스터다.
‘네스티는 어디 있지?’
느껴지는 몬스터는 자이언트 뱃과 다크 웜.
일반적으로 던전형에서 자주 등장하는 몬스터지만 E급 답게 마력은 상당히 약했다.
도진이 정도라면 정말 혼자서도 공략이 가능할 수준. 그런데 이상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몬스터도 멀쩡한데, 네스티는 어디로 간 거지?
이미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움직이고 있는 마력이 잡혔다. 네스티다.
마력으로 몸을 감싸고 네스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E급 게이트라 그리 크지도 않아서 빠르게 도착하고 봤더니, 가만히 서 있는 꼬마 아이가 하나 보였다.
‘뭘 하는 거지?’
미동도 없는 움직임. 다만 네스티의 마력이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게 게이트 키퍼는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는 키퍼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차라리 네스티가 들어온 이후 곧장 게이트를 닫아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네스트의 존재 가치는 더욱 중요했을 테니까. 처음 만났던 게이트를 닫았던 건 우연이었나? 아니면 게이트 안에 다른 마력체가 없어야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고. 모르겠네.
그런데 대체 지금은 뭘하는 거지? 우두커니 서서···.
‘마력을 흡수하고 있어?’
네스티와 연결된 무언가가 왜 느껴지지 않나 싶었더니, 느껴지지 않은 게 아니라 느낄 수가 없었던 거다.
말 그대로 이 ‘게이트’ 전체와 연결된 거다.
그리고 게이트의 마력이 서서히 네스티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결정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결정을 할 수가 없다.
게이트에 있던 몬스터들의 마력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하는 게 느껴진다. 마력을 모두 흡수당하면 몬스터들은 아마도 사라지겠지?
···처음 만난 게이트에서 저 녀석 혼자 있었던 게 설마 그 때문이었던 건가. 그럼 지금까지가 모두 연기? 대체 뭘 위해서?
‘아니지. 우선은 사실 확인이 먼저다.’
“네스티.”
마력을 흡수하는 도중이니 위험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지금 해야 한다.
만약 지금까지의 모든 게 연기였다면 네스티가 안정된 상태보단 불안정한 상태가 더 본 모습을 드러나게 하기 쉬울 테니까.
“아빠?!”
···나란 놈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내 목소리에 즉각 반응하며 두 팔을 벌리고 뛰어오는 네스티를 보자 쥐어졌던 주먹에 힘이 빠져나갔다. 주먹은 또 언제 이렇게 불끈 쥐고 있었던 거냐.
“꺄하하-.”
두 팔로 번쩍 안아 들었더니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는 아이.
“네스티, 뭐 하고 있었어?”
“마력 충전!”
평범한 아이처럼 키우고 싶어 했던 라미야가 마력의 개념에 대해 가르쳐 줬을 리는 없다.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건가? 아니면 아카데미에서 지내면서 배운 건가? 하지만 뭐가 됐든 상관없다.
어차피 영원히 감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력 충전은 왜?”
“우웅. 네스티도 싸워야 하니까?”
“···누구랑?”
그래. 어쩌면 이게 바로 가장 중요한 말이다.
이 조그만 아이가 싸우겠다고 하는 것도 놀랍긴 하지만, 태생을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어중간한 생각은 집어치우고, 적으로 생각하는 게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아내면 그걸로 될 일이다.
몬스터냐, 인간이냐.
* * *
실내 체육관 하나를 개조해 만든 공간.
관중석 같은 것을 없애고, 더욱 넓힌 널찍한 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형이 뛰쳐 들어간 지 얼마나 됐지?”
“너 그거 5분 전에도 물어봤다. 5분 전에 30분 지났으니까 이제 35분 됐겠지.”
“···아씨, 도대체 왜 안 나오는 거야!”
겨우 E급 게이트.
이진이라면 10분도 걸리지 않을 하급 게이트다. 그런데 벌써 30분이 넘도록 나타나질 않으니 답답했다.
대상이 다름 아닌 그 이진, 평소라면 이렇게 초조하게 기다릴 이유도 없겠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니까.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블랙이 강제로 재워버린 시연이도 이제는 괜찮은지 얼굴이 평안해졌다. 그 말은 안에서 벌어지던 일도 마무리가 됐다는 뜻인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건지.
“야, 가만히 좀 있어. 정신 사나우니까.”
“멜, 넌 걱정도 안 돼?!”
“걱정? 들어간 사람이 이진이야. 걱정을 해야 해?”
이루와 메를린이 투닥거리는 사이, 인터뷰를 마친 하밀이 체육관으로 들어왔다.
“결국 이진이 들어갔나?”
“뭐야, 하밀. 넌 꼭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단 말투네?”
“그 녀석의 마력이 갑자기 사라지길래. 들어간 것 같았거든. 나라고 설마 이진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할 줄은 미처 몰랐어.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오지 못하게 할 걸 그랬지.”
그 말에 이루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네스티의 정체가 왜 그리 중요한 거냐? 이유라도 좀 알자.”
“···지금까지 그것도 모르고 여기 있었던 네가 존경스럽다.”
“이 자식이 진짜!”
“흥분하지마. 어차피 지금부터 알려줄 생각이었으니까.”
애초에 자세한 설명은 한 적이 없었다. 말을 꺼낸 건 이루였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 채였다.
“리안 네필스의 예언에 8개의 구슬 조각이 나온다.”
깨어진 8개의 구슬 조각이 합쳐지는 날 거대한 호수에서 빛의 기둥이 솟아나고, 구슬을 삼킨 자가 곧 기둥의 주인이 되리라.
“잠깐, 여기서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코어 조각은 모두 7개잖아. 그래서 다들 처음부터 틀린 예언이라고 생각한 거고.”
“유리. 너는 리안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고 있나?”
“···글쎄? 미국 국적이었나?”
“그래? 난 스위스라고 알고 있었는데.”
결국 정확하게 아는 이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즈음, 하밀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우리도 지금 모두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대화가 통하지.”
“그야···.”
“그래. 통역 마법이라는 아주 편리한 기능이 있으니까. 하지만 알다시피 통역 마법에는 아주 큰 단점이 있다.”
하밀의 말에 모두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어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가 느끼는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역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것.
“잠깐. 네 말은 지금 리안의 예언이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르단 소리야?”
“그래. 리안은 이탈리아 사람이었고,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이탈리아인이 아닌, 그의 영국인 아내가 들었다. 그게 마지막 예언이라는 걸 깨닫고 곧장 받아 적었지만···. 처음부터 리안의 말을 잘못 이해했거나 정신이 없어 잘못 기억했을 가능성이 크겠지.”
“그럼 너는 어떻게 안 거고?”
“나도 얼마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과거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각성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나 역시 그저 엇나간 예언이라고 믿었으니까.”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모두 지금 하밀이 지금부터 해줄 이야기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인지하기 시작한 거다.
“그럼······.”
“실제 리안이 남긴 말은 이거다.”
안경을 다시 한번 고쳐 쓴 하밀이 말을 이었다.
“8개의 거대한 푸른 물결이 부서지는 날, 생명의 힘을 담은 구슬의 주인이 나타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