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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01화 (101/153)

귀환자 식당 101화.

게이트에 들어온 지 3개월을 버티고 버틴 끝에 겨우 찾아낸 게이트 키퍼는 그들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이게 정말 게이트는 맞는 건지, 그냥 몬스터들이 사는 다른 세상으로 온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솟아날 무렵 드디어 찾아낸 보스.

심지어 실제로 마주한 것도 아니고 그저 멀리서 느껴지는 마력만 감지했을 뿐인데 몸이 떨려왔다.

산전수전에 공중전, 지하전까지 겪은 이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저런 괴물을 어떻게···.”

절망에 가득 찬, 희망을 잃어버린 떨리는 목소리. 그건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소리였다.

차마 어떻게든 상대해보겠다는 의지조차 완전히 꺾어버릴 정도의 강력한 마력은 모두의 발걸음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버렸다.

“···저런 거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신은 인간을 버렸다고 생각한 이들이 하나둘 자리에 주저앉았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최강의 헌터가 17명이나 되는 무리치고는 너무 쉬운 포기였다.

“···이진.”

다만 모두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단 두 사람만은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작은 기대를 걸었다.

설마설마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그런 작은 희망.

게이트에 처음 들어온 52명의 결사대 중 살아남은 건 단 17명.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공략의 마지막 지점에 도달했지만 대적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남은 유일한 희망.

“너라면··· 너라면 가능한가?”

세계 최정상급의 헌터들이 고작 게이트 하나를 공략하면서 무려 35명이 죽어 나갔다.

52명이 모두 살아남았다고 한들, 저 괴물을 잡을 수 있을까?

과장 조금 보태서 드래곤 정도는 파리 잡듯 후려쳐 잡을 수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마력을 가진 괴물을?

그런데 이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곧장 고개를 저어주었으면 깔끔하게 포기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는 고민했다.

“···하지만 혼자는 어려워.”

“하, 하하··· 말도 안 된다! 저런 거, 저런 걸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발작하듯 누군가 외쳤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정말, 정말로 가능하다고?”

“다시 말하지만··· 혼자는 어려워.”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었다.

가까이 가지도 않았음에도 흘러나오는 마력에 소름이 끼칠 정도의 괴물.

꿀벌은 만 마리가 있어도 말벌 한 마리를 당해내지 못한다.

52명이 그대로 모두 살아남아 있었다고 해도 과연 상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아무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진 못할 괴물.

평생 이 게이트 안에서 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결국엔 부딪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시 또 다른 헌터들이 희생될 거다.

‘그리고··· 난 그들의 마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 * *

하밀은 침대에서 일어나 걸터앉았다. 낯선 곳이라 잠이 잘 오지 않았다는 건 핑계.

“···드디어 오늘인가?”

커튼을 젖히자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섬.

멀리서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면 섬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로 커다란 섬이었다.

똑똑-.

일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이루였다.

“네가 아침부터 날 찾아올 줄은 몰랐네.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없으면 네가 널 찾아올 리가 없잖아?”

“그렇게 날 세울 것 없어. 이건 향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건 나도 동의해.”

이루의 말에 하밀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평소의 이루라면 자신이 하는 말에는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 성격이었으니까.

부학장이라는 직함을 달더니 그새 철이라도 들은 걸까?

“하지만 굳이 혼자여야 할까?”

네스티를 들여보내는 것까진 동의하지만, 혼자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보호 본능이라고 알겠지?”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어 하는 마음?”

“그래. 하지만 그건 비단 보호자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야. 피보호자 역시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곁에 있다면 무의식적으로 의지하게 만든다.”

짧은 설명이었지만 이루 역시 하밀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금세 깨달았다.

“···좋아. 하지만 게이트 생성 장치의 구동은 반드시 이진형이 참관할 때만 해야 해. 이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야.”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다. 아무리 나라도 갑자기 수십 개의 게이트가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건 원하지 않거든.”

하밀 역시 게이트 생성 장치의 위험성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바바리안 코퍼레이션에서 이야기를 들은 이상 그런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 * *

도진이와 시은이가 커플 한복을 입고 도진이 집으로 향한 뒤, 나는 안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치가 완성됐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문자가 와있었으니까. 정민이는 도대체 언제 쉬는 거지? 공무원 월급이야 뻔할 텐데, 이렇게 부려 먹어도 되는 건가.

-네. 선생님. 안 그래도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지?”

귀찮다는 소리다. 물론 정민이라면 알아들었을 테고.

-하하···. 가장 빠른 헬기로 준비하겠습니다.

안된다고도 못하고, 중간에서 고생이 많다. 하지만 그거야 내 잘못이 아니라 널 부려 먹는 정부가 잘못된 거니 날 원망하진 말자.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잖아? 사실 던전이 생기는 거야 오전에 봐서 별다른 감흥도 없는데···. 심지어 그건 오리지날(?)이고, 이건 야매(?)잖아.

씁-.

“빨리 처리하고 오자.”

굳이 내가 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게이트 생성 장치가 전에는 비록 말썽이 없었다곤 하지만 만에 하나, 괜히 주변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게이트를 자극해서 폭주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괜히 주변에 아직 잠자는 게이트를 건드리는 것도 문제지만, 정말 재수 없게 중심부의 게이트가 열리기라도 하면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차라리 대마도에서 열리면 그나마 낫겠지. 지금 거기 있는 인원들의 능력만 따지면 마왕이 아니고서야 순식간에 정리될 정도니까.

되려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불쌍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지.

하지만 괜히 부산 쪽에서 열리기라도 하면? 수만 단위의 희생자가 나오게 되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냥 일본에서 열리면 그나마 신경이 조금 덜 쓰일 텐데, 확실한 게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직접 가야 한다.

‘어쩌면 라미야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할 일은 하나, 그냥 게이트 생성 장치 주변의 모든 마력을 차단시키는 거다. 만에 하나라도 다른 게이트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공간을 다루는 라미야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아, 그럼 거꾸로 나도 라미야의 능력을 쓸 수도 있겠고? 이참에 정말 확 배워버려?

그런 고민을 하는데, 건물로 다가오는 헬기 소리가 들려온다.

펜트하우스라서 헬기 착륙장이 가까운 건 좋네. 근데 보통 아파트 건물에 헬기 착륙장이 있나?

···뭐, 이유가 있겠지.

“삼촌, 대마도 가시죠?”

“···응.”

문을 나서는데 시연이가 기다렸다는 듯 묻는다. 복장은 이미 외출 준비를 마친 상태고, 살짝 혀를 빼물고선 귀엽게 날 쳐다보는 이유야 뻔하지.

“···같이 갈래?”

“네!”

안 물어봤으면 속으로 욕했을 거야. 그렇지?

시연이와 함께 현관을 나서는데, 마침 옆집 남자도 집을 나서고 있었다.

어색하게 서로 고개를 작게 까닥이며 인사를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서도 동시에 옥상을 눌렀다.

“···옥상에 가세요?”

“네. 급하게 지방에 갈 일이 생겨서···.”

순간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설마 저 헬기 정민이가 보낸 게 아닌가?

올라가서 확인해보면 알겠지.

투두두두-.

옥상에 올랐더니 힘차게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는 헬기가 서 있었다.

···민간 헬기네. 나와 시연이가 타고 가야 하는 건 군용헬기니 저건 이 옆집 남자가 타고 갈 헬기가 맞다.

어쩐지 평소보다 너무 빠르다 싶었어.

“혹시 대마도로 가시는 겁니까?”

뭐, 이제는 놀랄 일도 아니다.

얼굴이 팔린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옆집 남자도 나름 정재계에서 이름 꽤나 알린 사람 같던데 날 알아보는 것도 당연하겠지.

나야 모르지만 헬기 로터음 때문에 옆집 남자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할까 싶어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잘 다녀오시라는 말을 남기고 민간 헬기가 자리를 뜨자, 그제야 군용헬기가 내려섰다.

“선생님! 방금 그건 누굽니까?”

“옆집 남자. 무슨 사장이라더군.”

“아··· 가시죠. 대마도 측에서도 준비를 해두라고 연락했습니다.”

굳이 내려서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국정원이야 사실 성격이 군대랑 비슷하니 그러려니 했다.

시연이와 함께 헬기에 올라탔는데, 낯익으면서도 그리 반갑지 않은 얼굴이 하나 보였다.

“몸은 이제 괜찮은가 보네.”

“네. 선생님 덕분에요. 아주 비싼 교육료를 냈잖습니까.”

“뭐, 좋은 가르침은 비싼 법이지.”

아마 한국, 아니 전 세계에서 날 앞에 두고 가장 건방진 녀석은 이 녀석이 아닐까 싶다.

한번 신나게 주먹으로 다지고 났더니, 솔직히 이젠 더 이상 화고 안 난다. 오히려 이렇게 날 막 대하는 게 신선하기까지 하고.

“장치는 제대로 만들었나?”

“지난번보다 더 개량했으니까 기대하시죠.”

“그런데 굳이 같이 갈 필요 있나? 사용법만 대강 알려주면 되는 걸, 어차피 이거 네가 만든 것도 아니잖아?”

눈빛에 살짝 독기가 서리는 게, 놀리는 맛이 있는 녀석이야.

그런데 그 독기라는 것도 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날 향해 순수하게 적의를 드러냈던 당시와는 달리 뭐랄까, 일종의 투기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이 녀석 전에 병원에 누워서 날 뛰어넘을 거라고 하더니, 설마 그거 진심이었나? 심지어 이 녀석 각성자도 아니잖아.

“저도 아카데미에 들어갈 거니까요.”

“···네가?”

마력 슈트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고, 내 생각보다 성능이 괜찮다는 거야 경험해봐서 알고 있지만.

솔직히 그 정도의 능력으로 헌터가 된다는 건 너무 허황된 꿈이다.

마력 슈트를 입고서 게이트를 들어가는 것 정도면 모를까, 그 안에서 몬스터와 전투를 한다?

“너 그냥 장비 개발이나 하는 게 어떠냐? 그쪽으로는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은데.”

“어차피 제가 개발하는 것도 아니라고 방금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저야 돈이나 잘 투자하면 그만이죠.”

최우혁과 내 대화에 바짝 긴장한 건 안정민이었다. 시연이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몰라서 어리둥절하지만, 눈치가 빠른 아이라 끼어들지는 않는 것 같고.

안정민은 혹시라도 또 내가 폭발해서 저놈을 쥐어패면 어쩌나 걱정인 것 같은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

내가 뭐 기분 좀 거슬린다고 갑자기 사람 패고 그러는 미친놈도 아니고···.

“나도 그 슈트라는 걸 보긴 했다. 뭐, 적응 훈련만 잘하면 E급 몬스터까지는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휴대용 마력탄 무기도 견제용 이상의 위력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이고. 네 마음은 잘 알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너무 매달리는 것도 볼썽사납다.”

이죽거리는 게 아니라, 이건 진심이다.

괜히 되지도 않을 일에 매달리다가 인생 허비하는 것보다,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했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게 녀석에게도 좋으니까.

“걱정마시죠. 자신 없었으면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의 근원지가 그 옆에 있는 케이스인가? 안에 마석이 들은 것 같긴 한데, 느낌이 묘하다.

다만 이번에는 쓸데없는 짓거리하는 게 아니길 바라마,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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