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98화.
쿵쿵쿵쿵-.
쉼 없이 방망이질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점점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평생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붉은색의 페라리를 타고 와서가 아니다.
부모님 가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대못을 박은 불효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만회할 기회가 주어졌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새해의 설날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덕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징역 30년.
고작 ‘강도 미수’에 그친 범죄에 가담한 죄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무거운 형량이었지만, 감히 항소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특별법’이라 이름이 붙은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형을 내리는 경우도 허다했으니까.
그나마 30년이라는 건 우리나라 정도 되니까 내려진 가벼운 형량이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 없다는 게 변호사의 의견일 정도로.
어쩌면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귀휴 제도 적용 역시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
면회조차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곳에 갇히고 나서 깨달았었다.
이걸로 내 인생은 끝장이구나 하고.
한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에선 온통 목을 매달아야 하나, 손목을 그어야 하나로 고민할 시기에 내려온 한 줄기 빛.
그저 광명이었다.
아마 소식은 들으셨겠지.
하지만 한 번도 가게로 찾아오신 적은 없었다.
‘없는 자식이라 생각하신다고 했었지.’
특수 제작된 포승줄에 온몸이 묶여 법정에 섰던 날.
눈물을 흘리던 부모님의 그 가슴 아픈 말 한마디가 아직도 심장에 꽂힌 느낌이다.
진심이 아니었을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으셨을까?
되려 같이 범죄에 가담했던 이들의 부모님들은 자신을 찾아와 행패에 가까운 부탁을 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올곧으신 분들.
아버지는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어머니는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신다.
어쩌면 자신이 저지른 그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두 분에게도 피해가 갔을지 모른다 생각하면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 이곳을 찾아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부모란 절대로 자식을 진심으로 외면하지 못하는 법이다. 설령 네가 전 세계 사람 모두의 비난받을 짓을 저지른다고 해도 아무런 대가없이 네 편에 서주실 분들이 바로 부모님이니까.
덕윤이 이곳에 온 것은 이진의 그 말이 주는 울림이 있어서였다.
자라면서도 늘 자신을 믿고 다독여주신 부모님이 진심으로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는 믿음.
그렇다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결국 이곳까지 자신을 이끈 셈이다.
후웅-.
웅장한 엔진음을 내던 자동차의 시동이 꺼지는 소리와 함께, 어쩐지 마음이 다시 차분해졌다.
요동치던 심장이 잠잠해지길 기다린 덕윤은 자동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섰다.
“···어, 엄마. 아빠?”
‘언제부터 서 계셨던 거지? 아니, 그보다 어떻게 내가 여기 올 거라는 걸 알고 계셨던 거지?’
연락도 드리지 못했었다.
식당에서 일하면서 이진이 휴대전화를 개통해줬지만, 차마 전화를 걸지도 못했었다.
당연히 이곳에 온다는 연락을 드리지 못했으니 알고 계실 방법이 없는데.
“어, 어떻게···.”
애써 근엄한 척 계시는 아버지와 달리, 덕윤의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천천히 다가와 덕윤을 말없이 꼭 껴안았다.
“···이 무심한 놈아. 어찌 연락 한 번을 안 해···.”
가슴 한편이 울컥했다.
오랜만에 안아보는 엄마의 품은 주변의 차가운 공기까지 몰아낼 정도로 따듯했고, 포근했다.
“···저, 없는 자식으로··· 생각하신다면서요.”
마음과 달리 불쑥 튀어나와 버리는 말.
아차 싶긴 했지만, 섭섭했던 것도 사실이었던 건지.
괜히 심통이 나버렸다.
“···한 번 들어가면 죽어야 나오는 곳이라고··· 괜히 가족의 연을 남겨두면 안에 있는 너는 버티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그래서···.”
“누, 누구예요? 누가 엄마한테 그런 말을···!”
“그 사람들이···. 너랑 같이 잡혔던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같은 변호사를 고용했거든···.”
“그럼 나온 뒤에는요? 저 나온 거 알고 계셨잖아요.”
“어차피 곧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괜히 연락하면 너만 더 힘들어진다고 해서···.”
상황이 대강 어떻게 흘러갔는지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그려졌다.
-왜 너만 나와! 우리 아들은! 네 놈이 꼬드긴 거면서! 우리 애 못 나오면 너도 곧 다시 들어가게 만들 거야. 내가!
이진이 없을 때 식당으로 찾아온 이들이 악을 질렀던 때가 떠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급히 달려온 검은 정장의 사람들에게 끌려간 뒤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이제야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된 셈이다.
“그 사람들이 혹시 내가 주범이라고 한 거예요?”
“······.”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눈물을 흘리며 시선을 회피하는 게 곧 답이 되었다.
너무 올곧은 분들.
남을 의심하면서 살아온 적이 없어서, 그 말을 그대로 믿었던 거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얼마나 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셨을까.
까드득-.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이 쥐어졌다.
지금 당장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대로 갚아주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다.
“엄마··· 그런 거 아니에요. 그 사람들 말 다 거짓말이야.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그리고 저 이제 다시 들어갈 일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뒤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 정말이니? 정말로 다시··· 안 들어가도 되는 거야?”
아들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예 들리지도 않는 듯, 그저 다시 갇히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 되뇌는 엄마를 보며.
덕윤은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다시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두 번 다신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지 않겠다고.
‘그 인간들···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 * *
하악···. 하악···.
숨이 턱 끝까지 밀려 올라오는 듯 몰아 내쉰다.
무겁고 짙은 마력으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이 다시금 푸른 숲에 청명하고 차가운 공기가 대신하자 그제야 살 것 같은지.
도진이 녀석은 아직 차가운 이슬 결정이 내려앉은 듯한 잔디에 대자로 뻗어 승리감을 만끽했다.
“오빠! 오빠!”
빛무리에 휩싸여 게이트를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연이와 시은이가 달려왔다.
그 뒤로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두 사람을 따라오고 있고.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시은이가 곧장 누워있는 도진이에게 달려갔는데, 뭔가 좀 섭섭하네.
“삼촌, 괜찮으시죠?”
“그럼.”
그나마 시연이가 다가와 물어주니 기분이 풀렸다.
내가 저런 게이트에서 다칠 일은 만에 하나라도 있을 리가 없겠지만, 시연이는 그래도 걱정했는지.
커다란 눈망울이 조금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그나저나, 저 뒤에 사람들은···.”
“아, 저분들이요. 감사 인사를 하고 싶으시다고···.”
“감사 인사?”
“삼촌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요.”
아아.
하긴, 오늘 내가 없었다면 저 사람들은 지금쯤 명을 달리했겠지.
그래도 이렇게 인사를 받는 건 여전히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아저씨! 아저씨!”
네스티랑 비슷한 나이 정도나 되어 보이는 아이가 다가와 내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앙증맞은 손에 들린 거 사탕 한 알.
“이거 줄게요.”
“어? 그래··· 고맙다.”
무척이나 선심 쓰듯 내민 사탕을 거절할 수는 없어서. 아이에게 사탕 한 알을 건네받는데.
찰칵-.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아마 아이의 부모겠지.
나에겐 별것 아닌 일이. 저들에게는 인생의 운명을 바꾼 하루가 될 테니까.
사진 찍히는 게 달갑진 않지만, 매몰차게 굴기는 싫었다.
오늘은 설날이니까.
아이에게 사탕을 받았으니 나도 뭐라도 하나 줄까 싶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작은 돌멩이 몇 개가 잡혔다.
방금 아이언 트롤들을 잡으면서 얻은 마석 총 3개.
사각.
하나를 꺼내어 작은 조각으로 잘라 깔끔하게 다듬었다.
얼핏 보면 멋지게 세공된 사파이어처럼 보이는 마석.
지금 이대로 줘도 큰 선물이 되겠지만, 아 귀여운 아이에게는 좀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고 싶었는지.
나도 모르게 마력을 움직였다.
그런 뒤 아이에게 내민 푸른색의 보석 겉면에는 기하학적인 무늬가 가득 새겨져서 정말 보석으로 보였다.
“으응? 이것도 사탕이에요?”
“먹는 사탕은 아니지만, 아저씨가 너 귀여워서 주는 거야.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큰 도움이 될 거야. 품에 꼭 지니고 다니기로 약속?”
“으응··· 네!”
손톱만 하게 다듬은 마석을 들고 자랑하듯 엄마에게 달려가 아이를 안아 든 엄마가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나는 그저 작게 웃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 뭘 주신 거예요?”
“그냥··· 건강 기원 부적 같은 거.”
물론 이 경우에는 그저 미신이 아니라, 실제로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게 조금 다르겠지만.
“이제··· 갈까?”
“네!”
내가 도진이와 함께 게이트에 다녀오는 동안, 불안한 마음에 청주를 한 병이나 마셨다는 핑계를 대는 시은이 대신.
이번엔 시연이가 운전석에 앉았다.
백미러로 비추던 무궁화 공원이 멀어지는 걸 보면서, 조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 아버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신 두 분이지만, 묘비 정도는 세워 드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전까지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문득 말이다.
* * *
이른 시간에 성묘를 다녀온 덕에 집에 도착한 뒤에도 시간이 그리 늦진 않았다.
물론 아침을 먹기엔 조금 애매한 시간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아침을 건너뛸 수 없는 날이니까.
“음··· 어떻게 할까?”
“뭐를요?”
“사골국물로 하는 떡국, 맑은 멸치육수로 하는 떡국. 뭐가···.”
“사골이요! 난 무조건 사골!”
그럼 강력하게 주장하는 시은이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오늘은 사골 국물로 만들어볼까?
사골도 직접 끓이면 좋겠지만 미처 준비를 못 해뒀으니 어쩔 수 없이 시판 사골 육수를 이용하기로 했다.
떡국떡은 찬물에 넣어두고, 얼려둔 사골 육수가 녹는 사이.
달걀을 흰자와 노른자로 나뉘어 지단을 만들고, 대파를 썰었다.
국물을 끓이고, 간만 해주면 사실상 요리는 거의 끝.
떡이 반쯤 익었을 때 냉동 만두 몇 알을 넣고, 다진 마늘과 국간장을 조금.
“자- 이제 시은이는 21살, 시은이는 23살이 된 건가?”
“그리고 오빠는 25살···. 뭐야! 아저씨 같아!”
24살과 25살의 간극.
어떻게든 우기면 20대 초반이 되기도 하는 24살과는 달리, 이제는 어떤 핑계를 가져다 대도 부정할 수 없는 20대 중반이 되는 셈이다.
“삼촌은 그럼··· 여든셋이···.”
시은이가 말을 하다가 잠시 주춤했다.
보여지는 외모와 나이가 워낙에 차이가 심하니 현실감이 따라오질 못해서 그런지.
“그, 그래요. 나이가 뭐가 중요해. 그치?”
“그럼! 나이는 숫자일 뿐!”
사실 내가 체감하는 나이는 이제 겨우 53살인데.
그것도 적은 나이가 아니긴 하지만 솔직히 여든이 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말 나이라는 게 의미가 사라진 기분도 들고.
어느새 그냥 ‘가족’같이 되어버린 도진이와 함께 넷이 모여앉아 떡국을 비워가는데, 분위기가 조금 묘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마치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는 듯한?
물론 여기서 그럴 사람은 시은이 하나고.
“···그런데, 시은이는 아까부터 자꾸 뭘 그렇게 눈치를 보는 거야?”
“내, 내가요? 아닌데? 진짜 아닌데?”
저 정도면 그냥 사실대로 말하는 편이 덜 어색하지 않을까 싶은데.
결국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시은이 대신 도진이가 나섰다.
“학장님. 사실··· 오후엔 부모님한테 인사드리러 저희 집에 가볼까 해서요.”
“그럼 당연히 가봐야지. 명절인데.”
“그게··· 시은이도 함께 가면 어떨까 해서요.”
그 말에 수저를 뜨던 손이 잠시 멈췄다.
와. 이 녀석.
아까 내가 정식으로 교제를 허락한다고 했을 때 한계를 넘어설 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너무 이른 게 아닌가 싶긴 한데, 또 한 입으로 두말 할 수도 없고.
그나마 내가 해줄 말은 하나뿐이었다.
“도진아, 가서 시은이 눈칫밥 먹게 하면···.”
수저를 내려놓은 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흔쾌히(?) 허락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