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96화.
“···생각보다 평범한데요?”
게이트를 처음 들어와 본 도진이의 첫 감상이었다.
물론 그 생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아.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네. 그런데 여긴 어딘 걸까요? 지구일까요? 아니면···.”
외계 행성? 다른 차원의 지구?
그도 아니면 인위적인 가상의 공간?
“인간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수십 년을 싸웠지만 몬스터가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고 있는 거지.”
“하지만 나무도 있고, 풀고 있고···. 지구랑 별로 달라 보이지는 않는데요? 숨 쉬는 것도 별 차이 없고요.”
그래. 얼핏 보면 지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 게이트에 들어간 헌터들 역시 거기에 속아 많은 이들이 초창기에 목숨을 잃곤 했지.
“도진아.”
“네. 학장님.”
“첫 번째 충고다. 이 안에서는 보이는 모든 걸 의심해라.”
“의심이요? 어떤 걸···.”
“말 그대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의심해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조차도 네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곳이 바로 게이트다. 네가 밟는 땅조차 의심하면서 걸음을 디뎌야 한 단 소리다.”
“···명심하겠습니다.”
도진이가 저 말의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해도 결국엔 본인이 몸소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니까.
흔하게 널린 나무나 풀, 심지어 돌멩이 하나까지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해올 수도 있는 곳이 바로 게이트다.
그리고 그건 게이트의 등급이 높으면 높아질 수록, 더욱 심해진다.
게이트가 열리고 바로 몬스터가 튀어나온다기에, 나는 몬스터들이 게이트 앞에서 차례대로 줄지어 기다리고 있기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예전의 게이트와 별반 다르지 않네.
뭔가 찜찜하게 느껴지는 이 공기도 그렇고, 사방에서 느껴지는 잡스러운 마력들까지도.
“어떠냐? 좀 느껴지는 게 있나?”
처음 들어올 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왕 들어온 김에 도진이의 훈련을 겸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처럼 내가 있을 때면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이후에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이런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일단 마력 농도가 엄청 진하다는 것 정도요. 그리고 주변에서 움직이는 것들이 있는 느낌도 듭니다.”
“게이트 안에서 움직이는 건 뭐다?”
“···몬스터겠죠.”
씨익.
그래.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다.
이 농도 진한 마력의 공간 안에서 몬스터의 기척을 감지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시간은 급한 것 없으니, 천천히 가볼까?”
“···네!”
빠르게 처리하고 나가는 것도 좋긴 하겠지만, 이런 기회가 늘 오는 것은 아니니까.
* * *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삼촌이 얼마나 강한지야 익히 알고 있지만, 아무리 슈퍼맨이라도 늘 무적은 아니지 않은가.
“언니, 괜찮겠지?”
누구를 묻는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시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동생에게는 두 사람의 중요성을 저울질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당연하지. 삼촌은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잖아. 알지?”
“···응.”
“금방 나오실 거야. 그동안 우린 할아버지랑 이야기나 조금 더 하고 있자.”
그 안이야 어떻든, 겉으로 보기엔 제법 아름다운 게이트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쳐다보고 있으면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이 들 것 같아서 애써 고개를 돌렸다.
“저기···.”
두 사람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네? 저희요?”
“네. 조금 전에··· 그 두 분이요. 저기로 들어가신 것 맞죠?”
시은이나 시연이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였다.
오늘은 아마도 무궁화 공원에 일 년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날.
굳이 지금 자신들을 찾아온 이 여자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두려운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는 무리는 많았다.
“···네. 맞아요.”
“그럼 혹시, 들어간 분이 누구신지···. 역시 각성자겠죠?”
함께 온 가족들로 보이는 이들도 그 뒤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들어간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려는 생각인 듯.
“한 명은 우리 삼촌이고, 한 명은 제 남자친구예요.”
시은이가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지만, 상대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사, 삼촌이랑··· 남자친구라고요?”
여자의 표정이 조금씩 울상으로 변하면서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발걸음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시은이는 저 사람이 왜 저라나 싶었지만, 시연이가 나서서 결국 그 사람들이 원하는 답을 해줬다.
“삼촌 성함이 이진이에요.”
“이진··· 아! 이진이면 혹시··· 그?”
“생각하는 게 맞을 거예요. 그러니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엄마, 엄마! 이, 이진이래요! 지금 저기 들어간 사람!”
산을 깎아 만든 묘원에 그 여성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묘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휴우···. 그런데 정말 두 분이 이진의 조카예요?”
“네. 정확히는 사촌 조카이긴 하지만···.”
삼촌 나이가 몇인데, 이름을 막 부르는 게 조금 거슬렸는데 여자는 쉴 틈을 안주고 말을 걸어왔다.
“와, 정말 좋으시겠어요.”
“···네?”
도대체 뭐가 좋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일단 인사는 하고 봤다.
“아, 그럼 같이 들어간 남자친구라는 분은 혹시 서도진인가요?”
“네? 아··· 네. 근데 어떻게 그걸···.”
그걸 어떻게 알았나 싶었더니.
“와! 맞네요! 어떻게 몰라요. 이번에 아카데미에 교수로 가신 분 맞죠? 그것도 세계 최연소로! 완전 잘생긴 데다가···. 진짜 부럽네요.”
다른 여자의 입에서 남자친구 칭찬이 들리는데도, 시은은 어째선지 그리 기쁜 표정은 아니었다.
여자가 가족들과 안심한 표정으로 돌아간 뒤에, 시연은 조용히 시은에게 다가갔다.
“아까부터 표정이 왜 그래?”
“···모르겠어. 근데 도진 오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유명해졌지?”
“우리야 가까워서 잘 몰랐던 거지. 지금 아카데미가 세계적으로 엄청 이슈인가 봐. 거기다 도진 오빠는 거기서 귀환자 이외의 첫 교수니까.”
“오빠 말로는 자기는 교수 아니고, 교관이라고 하던데?”
“그건··· 아마 군대 있을 때 습관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버린 남자친구.
‘도진 오빠··· 여자들한테 인기 많으려나?’
아카데미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각성자들만 수백 명이 넘게 기숙 생활을 한다.
각성하면 외모적으로도 변화가 생겨서 모두 예쁘고, 잘생겨진다는 것은 시은도 잘 안다.
새하얀 피부의 백인들이며, 건강미 넘치는 탄력적인 몸매의 흑인들, 이목구비가 뚜렷하기로 유명한 아랍 미녀들까지.
‘···설마,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학생이라도 있으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시은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 * *
쉭-.
빠르고 간결한 움직임.
마력이 실린 검은 검고 질긴 피부를 가진 트롤의 목을 그대로 자르며 지나갔다.
살짝 휘어진 검날을 가진 무기가 도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저 검을 도진이가 가지고 있다니, 솔직히 이건 좀 놀랍다.
“이루가 그걸 너한테 맡긴 모양이구나.”
질문 아닌 질문에 도진이는 검을 곧추세워 보더니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제대로 쓰진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지는 느낌입니다. 언젠간 사부님처럼 쓸 날이 오겠죠.”
“···그래도 이루처럼 되진 말아라.”
“아···.”
이루는 강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녀석은 혼자일 때야 비로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주변의 모든 걸 썰어버리는 미친 속도를 본인도 제어하지 못하니, 아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데는 솔직히 어울리지 않는다.
“전 그래도 사부님과 달리 스피드 중시 타입은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본인이 조절하지 못하면 그게 속도든 힘이든 상관없다. 각성자의 능력이란 어디까지 네 자신의 의지 안에서 움직여야 진정한 네 것이 되는 거야.”
요즘 자꾸 고리타분한 말투가 툭툭 튀어나와 버리곤 하는데, 내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전해줄 수가 없으니 결국 이렇게밖에 이야기를 해주질 못하겠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덕윤이나 도진이야 나를 알고 있으니 저렇게 말을 해도 마음에 새기겠다는 자세가 다행이지.
다른 각성자들에게 이야기하면 아마 인상을 찡그릴지도.
그런 이유로도 난 교육자완 맞지 않는다.
땅에 떨어져 구르던 트롤의 머리를 발로 툭 차봤다.
이 녀석들은 목이 떨어져도 가져다 붙이면 다시 붙을 정도로 미친 재생력을 가진 몬스터.
물론 일반적인 트롤이었다면 그 정도까진 불가능하지만, 지금 도진이가 목을 쳐낸 건 일반적인 트롤이 아니었다.
“···하, 아이언 트롤이라니.”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이전 세대에서 아이언 트롤이 처음 등장했던 건 처음으로 게이트가 열린 뒤로 30년은 지난 뒤였다.
당시 처음 나타난 녀석에 전 세계 헌터들이 얼마나 경악했었는지 분명히 기억한다.
잘린 목이 다시 붙는 몬스터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지.
“···제법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멀었네요. 학장님의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절대 혼자선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씁쓸하게 말하는 도진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사실 도진이의 검이 목을 치기 전에 이미 내가 반쯤 갈라놨다는 걸 이미 본인이 눈치챈 모양이기도 하고.
아이언 트롤은 30대의 나조차도 단신으로는 꽤 애를 먹었던 몬스터다.
따지고 보면 도진이는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 녀석은 과연 그걸 알고 있는 걸까?
그 사실을 말해주면 자신감을 되찾을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자만에 빠지게 될까 싶어 말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이 속도라면 몇 년도 지나기 전에 S급 게이트가 생겨날지도 모르는 상황.
게다가 난 이미 ‘결투장’ 녀석이 해준 말을 들었으니까.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슥-.
트롤의 시체가 사라지고, 바닥에 작은 마석이 하나 남겨졌다.
“이제 남은 게 8마리네.”
“네. 저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중에 한 마리는···.”
“그래. 게이트 키퍼다.”
게이트가 유지되는 마력을 공급하는 일종의 보스.
매 게이트마다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몬스터들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몬스터.
“역시··· 엄청나게 강하겠죠?”
물어봐야 입만 아픈 질문이지.
아마 지금의 도진이 정도라면 세 명 정도는 있어야 어찌해볼 엄두가 날 정도의 몬스터.
“그래. 그러니 너는 마지막을 위해 힘을 좀 아껴둬라. 나머진 내가 처리하마.”
“···네?”
게이트 안에 있는 몬스터는 모두 9마리니 이제 처리한 몬스터는 겨우 한 마리.
여기서 내가 말하는 ‘마지막’이란 단어가 뭘 지칭하는지는 너무 명확하다.
도진이는 내 말에 넋이 나갈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놀란 표정 할 것까진 없어. 설마 내가 너 혼자 어떻게 하라고 할 것 같아서 그러냐?”
“하하··· 그렇죠?”
시은이가 무서워서라도 도진이가 다치는 걸 두고 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경험은 해봐야지.
내가 헌터에게 바라는 것은 굳건한 마음이다.
그리고 그 굳건한 마음에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정도의 용기도, 분노가 폭발할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상황을 볼 수 있는 냉정함도 포함된다.
뭐, 도진이의 경우야 이미 그것은 증명한 바가 있지만 그때는 특수한 상황이었으니까.
조금 전까지 함께 싸우던 동료가 죽었다고 분노에 휩싸여 돌격하는 건 용기도, 만용도 아니다.
그저 자살행위일 뿐이지.
헌터로 사는 이상 언젠가는 자신보다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몬스터를 상대하게 될 순간이 반드시 오게 된다.
나는 이 녀석이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보고 분석해서 살길을 찾아갈 수 있는 헌터가 되길 바란다.
마침 함께 있을 때 이 녀석을 데리고 게이트에 들어올 기회가 생기다니.
참으로 운이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