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93화.
“삼촌!”
가게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달려와 안기는 시은이.
혹시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는데, 표정을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건 아니고···. 걱정이 돼서요.”
“날?”
“그럼요! 지금 뉴스에서 얼마나 난린데···.”
게이트는 무사히 닫았다.
자칭 ‘결투장’으로 보내졌다는 녀석은 정말 아무런 저항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커다란 선물까지 남기고 갔다.
아무리 몬스터이고, 누군가의 명령으로 왔다곤 하지만 그렇게 순순히 목숨을 내어놓을 줄은 미처 몰랐는데.
이유가 어찌 됐든 우리에겐, 아니면 적어도 나에게는 잘된 일이라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왜 뉴스에서 난리나 났나 싶었더니.
-오늘 오후 북한에서 또다시 대한민국을 도발하는 방송이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영상 공유 사이트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는 해당 영상은 대한민국이 심각한 국제적 관례를 어겼다고 비난하고 있으며···.
“이게 무슨 소리야? 국제적인 관례라니?”
“그게요. 글쎄, 우리나라가 공동경비구역에 나타난 엄청난 가치의 게이트를 혼자서 꿀꺽했다면서···!”
“허허.”
어이가 없는 걸 넘어서 황당하기까지 하다.
이거야말로 물에 빠진 걸 건져줬더니 보따리까지 탐을 내는 심보가 아닌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멍하니 있는데, 마침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역시나 안정민.
“그래. 나도 지금 티비로 보는 중이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쪽이랑은 사전에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니었었나?”
-원래 협의가 이뤄진 사항에 따르면 그랬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급한 것도 있고 해서 먼저 처리하려고 했던 건데···. 오히려 저렇게 나올 줄은 정말이지.
수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분노가 가득한 한숨.
“그래서, 설마 우리가 잘못이라도 했단 말은 아닐 테고.”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우리 딴에는 그나마 생각해서 해준 일이었는데···.
분노 뒤에 가려진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말투다.
같은 말과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수천 년의 역사를 공유하는 한 민족이 헤어진 채로 만날 수도 없는 채로 살아온 지가 벌써 수십 년.
이미 이산가족이라 불릴 사람도 남아있지 않은 두 나라에 남은 것이라곤 이제 그저 오래전 같은 민족이었다는 기록뿐이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아직 이어지는 무언가.
평소에는 가장 증오하며 주적이라고 불리는 국가이면서도, 북한이 국제 경기라도 하는 날이면 너무나 당연하게 북한을 응원하는 게 한국 사람들이다.
“하여튼 나쁜 자식들이야! 도와준 거에 대해 감사하다고는 못할망정, 저딴 식으로 뒤통수를 쳐?!”
“앞으로 혹시라도 도와달라고 하면 절대 도와주면 안 돼요!”
“이번에 대마도 아카데미에도 몇 명인가 왔다면서요? 거기다 그것도 전부 한국에서 무료로 받아줬다고 하던데.”
강영훈 사장의 말에 한미희 통장이 국자를 휘두르면서 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 정말이에요? 은혜를 원수로 갚네요. 아주 그냥!”
“엄마. 그건 좀 내려놓고··· 국물 튀어.”
지금 식당 안에는 두 테이블이 있었는데, 솔바람 인테리어 식구들과 한미희 통장을 포함한 예령이네 식구들이었다.
모두 어느 정도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더 화가 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선생님.
앞에서 열심히 밑밥을 깐다 싶었더니, 역시나 무슨 요구 조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북한이 가난하고 불쌍한 것은 알지만 저런 억지 요구를 과연 들어줄 필요가 있을까?
“뭐, 안에서 나온 걸 반띵이라도 하자던가?”
-···네. 북한 쪽 말은 자신들에게도 절반의 권리가 있는 게 아니냐고···.
정당성을 따지고 들자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게이트는 남한이나 북한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비무장 지대에서 발생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절반씩의 권리를 갖게 되는 셈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게이트를 공략하고 나온 것에서 절반을 내놓으라는 게 억지라는 건 유치원생이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절반을 주장했다 한들, 저들 역시 정확히 절반을 받지 못할 거로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아마도 목적은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것.
“좋아. 이야기는 해볼 수 있겠지.”
-네? 지, 진심이세요?
“그래. 그럼 저쪽에서 요구하는 건 결국 회담을 하자는 거겠지?”
-아무래도, 조건을 조율하려면 그렇게 진행될 겁니다.
“좋아. 빠른 시일 내로 회담을 잡아보자고.”
어디, 내 앞에서도 그따위로 말할 수 있나 궁금해지네.
“···그리고 이번엔 나도 참석하는 걸로 하지.”
* * *
“사장님, 3번 테이블에 새조개 2인분 추가요!”
확실히 활발해졌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질이 변했다고 해야 할까?
가게로 온 뒤로 늘 주눅 들어서 온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던 때와는 달라졌다.
“오빠, 여기도 소고기 하나, 새조개 하나 추가요.”
“오케이!”
젊고 출중한 외모의 세 사람이 홀과 마당을 활보했다.
게다가 아직 날이 추운데도, 굳이 바깥 테이블에서 먹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은 유난히 가게 더 활기차 보였다.
“맛은 어떻게, 괜찮습니까?”
“물론이죠! 너무 맛있습니다. 새조개도 고기도 다 너무 싱싱하네요. 근데 이런 가격에 파셔도 정말 남긴 남습니까?”
“사장님, 그냥 아예 마당에도 테이블을 놓지 그러세요? 어차피 차 가지고 오는 사람도 거의 없고··· 여차하면 그냥 골목에 대도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할 겁니다.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데, 이거 먹고 싶어서 찾아온 사람들은 아쉬워서 어쩝니까.”
잠시 짬이 나서 홀에 있는 손님들을 둘러보는데, 강영훈 사장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일리는 있는 말이지만, 솔직히 야외 테이블까지 하면 너무 바빠진다.
더군다나 간혹 자리를 비우는 일이 생기는 요즘 같아서는 그럴 생각도 별로 없고.
“뭐, 반쯤 취미 삼아 하는 거니까요. 너무 손님이 많아지면 주방도 홀도 정신없어져서··· 오시는 분들이라도 잘 해드려야죠.”
“···하긴.”
솔바람 인테리어 사람들 뿐 아니라, 주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마저 그 이야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 온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한 두 번만 온 사람들도 내가 누군지는 아니까.
사실 이런 골목에 있는 식당에 이렇게 매일 손님이 가득 차는 게 더 신기한 일이지.
어쩌면 몇몇은 나와의 친분을 위해서 일부러 찾아온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아는 일이고.
밖으로 나왔더니 야외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딱 세 명이었는데, 이런 추위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반팔을 입고 있는 젊은 청년들.
각성자네.
보자마자 느껴질 정도로 마력 수치가 제법이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지?
“앗! 아, 안녕하십니까!”
그중 한 명이 날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허리를 숙였다.
그리더니 나머지 두 사람도 덩달아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왜 이러세요. 손님이신데 이러시면···.”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선생님께 정말 커다란 은혜를 입었거든요!”
“저, 저돕니다!”
“저도요! 오늘은 저희 세 사람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자리가 없어서 굳이 바깥에라도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한 명의 얼굴이 그제야 어디서 봤는지 떠올랐다.
“아··· 혹시, 정민욱 학생?”
“···저, 저를 기억해주시는 겁니까?”
누가 봐도 감동에 젖은 표정.
그 옆의 두 사람은 그게 엄청나게 부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권도 실력자라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각성자가 됐구나.”
“네, 네! 여, 영광해서 기억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기억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최우형 실장이 초반에 어렵사리 찾았던 아이였지.
“아버지 수술은 잘 됐다고 들었는데, 이젠 괜찮으신 건가? 한 번 찾아갈까 하다가 바빠서 잊어버렸구나.”
“정말···. 정말로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눈물이 글썽거린다.
덩달아 그 옆의 두 명도 훌쩍이기 시작하고.
“그래. 세 사람 모두 혹시 재단에서 지원해준 사람들인가?”
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렁차게 대답하는 세 사람.
“···아니, 너무 그렇게 소리를 치는 건 좀. 여긴 주택가고 또···.”
너희들 목소리가 좀 크냐.
각성자가 이 밤중에 저렇게 큰 소리를 내는 건 실례다.
“앗, 죄송합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내가 도와준 아이들이 인사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다는데···.
알려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내보낼 수는 없지.
이미 알만한 사람은 죄다 아는 사실이고.
지금 이 정도로 유지되는 것도 국정원 요원들이 가게 주변에서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을 사전에 미리 파악해서 차단해주고 있기 때문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어중이떠중이가 죄다 몰려들어 장사는커녕 주변 주민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있을 거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이왕 온 거니, 맛있게 먹고 가면 좋겠네. 음식값은 걱정하지 말고.”
“아··· 그, 그래도.”
“어른 말 들어. 시은아, 여기 고기랑 조개 좀 넉넉히 가져다줄래.”
“네. 삼촌!”
시은이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자 세 사람이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동시에 시선을 가게 안으로 돌렸다.
입이 헤- 벌어진 것이 무슨 생각하는지는 뻔히 알겠는데.
안됐지만, 이미 임자가 있단다.
···뭐. 사람 일이야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법이긴 하지만.
* * *
으으으···.
머리가 지끈지끈하는 통에 이가 절로 갈린다.
부학장실에서 전화를 내려놓은 이루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문을 박차고 나섰다.
“앗, 부학장님. 어디 가십니까?”
“라이야ㄴ··· 선생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아, 라미야 사우드 교수님이라면 아마 지금쯤 B반 학생들에게 ‘마력의 단련과 흡수’ 수업 중이실 겁니다. 강의실은···.”
“아아, 됐습니다. 혼자 가도 되니까 일 보세요. 강의실은 저도 아니까.”
일어나려는 국정원 파견 직원 비서에게 손을 저은 뒤, 이루는 바로 땅을 박찼다.
사실 이렇게 혼자 움직이는 게 더 빠르고 편하기도 하고.
“앗! 부학장님, 아카데미 내에서는 그렇게 뛰시면···!”
뒤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지면서, 어느새 몸은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직 아카데미 정식 건물은 공사도 들어가기 전, 아카데미 수업은 대마도 이곳저곳에 마련된 공터나 운동장 같은 곳을 돌아다니거나.
이론 수업의 경우는 남아있던 옛 학교의 강당 같은 곳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라미야가 마력의 단련과 흡수 수업을 진행하는 곳은 예전의 초등학교 건물.
순식간에 도착한 이루가 강당 문을 거의 부실 듯 열어젖혔다.
“···또 뭐야? 아무리 네가 부학장이라곤 해도 수업에 관여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걸?”
“걱정 마라. 나도 네 수업에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또 왜 온 건데?”
“너 진짜!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학생들이 보는 앞.
이루는 부학장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겨우겨우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물었다.
물론 눈빛에서 살기가 흘러내리고 있다는 걸 여기서 모를 사람은 없지만.
“어머. 혹시 네스티 때문이야?”
뿌득-.
저거 다 알고 있는 거지?
이루는 헛웃음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아내고서 겨우겨우 말을 이었다.
“그래··· 네 아들놈이 또···!”
화가 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다른 학생들을 골탕 먹이는 통에 아주 환장할 노릇이다.
골탕 먹인다는 것도 엄청나게 순화한 것이지, 만약 대상이 일반인이었다면 아마 몇 명 정도는 이미 병원에 실려 가거나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를 장난이다.
“어쩌겠어. 내 아들이 천재인걸.”
“너,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자, 여러분.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까요? 자, 다들 다음 시간까지 대기 중에 퍼져있는 마력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자기만의 의견을 레포트로 제출하는 것 잊지마세요.”
아아-.
어디를 가나 학생들은 다 똑같다.
레포트 제출이란 말에 절로 야유가 나오지만 결국 피할 수 없다는 걸 자신들도 잘 안다.
“아유, 헌터 아카데미라고 해서 훈련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건 뭐 공부까지 해야 하네.”
“하아- 나도 이런 수업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차라리 엄마 말대로 그냥 대학이나 갈 걸 그랬나 봐.”
투덜거리며 자신을 지나치는 학생들이 모두 나가고 난 뒤.
이루는 라미야에게 다시 걸어갔다.
“제발 부탁이니까. 네 아들 녀석 좀 어떻게 해봐라. 차라리 도진이한테 개인 교습시키자니까?”
“그건 절대 안 돼!”
“그러니까 대체 왜?!”
“···네스티한테는 처음으로 생긴 친구들이란 말이야. 아직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런 거야.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져. 내가 잘 가르칠게.”
슬픈 듯한 표정으로 저리 말하니 매몰차게 거절도 못 하겠다.
“···뭐가 됐든, 빨리 좀 해결해라. 오늘 A반에서 세 명이나 블랙한테 실려 갔다. 너 블랙 녀석 알지? 이 이상 귀찮게 하면 또 확 잠적할지도 몰라. 그럼 진이 형이 가만 있을 거 같아? 너도 진이 형한테 미움받는 건 싫을 거 아냐.”
“그건 나도···.”
“그러니까··· 대련 시간에는 제발 마력 조절 좀 하라고 하자··· 응?”
그렇지 않으면 이러다 정말 다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