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92화.
들어오자마자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이 이질적인 감각과 함께 느껴지는 몸을 감싸는 이 농도 짙은 마력.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마력이 하나.
“···딱 한 마리네.”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인가?
가끔 이런 게이트가 있긴 있다.
다른 녀석들은 없이, 오직 한 마리만 지키고 있는 그런 게이트.
물론 위험성으로 따지면 이런 곳이 압도적으로 높다.
“서, 선생님···. 이거 대체 뭐, 뭡니까······.”
마지막에 들어왔더니 먼저 들어온 중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건 좀 놀라운데?
이루에게 직접 훈련을 받은 도진이도 아직 마력을 이 정도까지 잘 느끼지는 못하는데.
이 녀석은 들어오자마자 마력을 느끼고 있다.
그것도 꽤나 정확하게.
“뭐긴 뭐겠어. 게이트에 들어온 이상 답은 하나 뿐이지?”
“···이, 이게 진짜 몬스터란 말입니까?”
설마,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처음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지.
이미 한국에서도 수십 번이나 게이트가 열렸고, 이 정도 능력자를 꽁꽁 감춰만 뒀다면 진짜 수뇌부들은 병신 중에서도 상병신이라는 소리니까.
“생각보다 감이 좋은 녀석이구나, 너?”
“···네?”
뜬금없는 칭찬에 김정훈 중위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우스운 건 이 중에서 지금 가장 공포를 느끼는 건 김정훈 중위 한 사람이라는 거다.
일반병사들이야 마력 슈트를 입어서 게이트를 통과할 수는 있지만, 슈트가 마력을 느끼는 감각까지 제공하지는 못하니까.
그렇다고 내가 이 정도 녀석에게 공포를 느낄 리도 없으니 남은 건 한 사람뿐이다.
“아, 혹시 여기가 게이트 안이라서 그런가?”
게이트 안쪽과 바깥은 확연히 다르다.
생태계 자체가 지구와는 전혀 다른 이세계異世界 인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마력의 농도.
습기가 가득 찬 실내 공간에 있다가 물속에 들어왔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진동이나 초음파같이 물속에서 더 잘 느끼게 되는 감각들이 있는 것처럼.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입니다. 마치 용암을 토해내는 활화산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감각이라···.”
“지금까지 상대해본 몬스터 중에서 가장 강한 녀석은?”
“네? 아···! 가장 일단 기억에 남는 건 오우거랑 트롤 정도입니다. 그 외에는 그리 어렵다고 느낀 건··· 아, 스펙터요! 그건 도무지 제가 어찌할 수가 없어서 기억이 납니다.”
스펙터는 형체가 없는 몬스터.
무투 계열이 공략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녀석이라면 오히려 여기 있는 마력탄 무기를 가진 일반 병사들이 더 낫지.
“그 정도면 됐다.”
딱히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버틸 수 있으면 된다.
“저긴 네 부하들이겠지?”
“네! 모두 몬헌 부대 소속 최정예 부대원들입니다.”
“몬헌 부대?”
“아··· 정식 명칭은 아닌데, 일단 저희끼리는 몬스터 헌터 부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피식-.
몬스터 헌터 부대라.
“느껴지는 마력 수치로 봐서 그리 강한 개체는 아니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오면 위험할 수 있으니 적당히 거리 유지하고 지켜보는 게 좋겠어.”
“···저게 강한 개체가 아니란 말입니까?”
“김정훈 중위?”
“예! 중위 김정훈!”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굳은 자세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뭔가 번뜩 생각이라도 난 사람처럼 허리를 꼿꼿이 폈다.
덩달아 그 뒤에 있던 병사들까지.
“아니··· 관등성명을 댈 필욘 없다. 내가 군인도 아니고···.”
“죄송하지만 사령관님과 동급으로 대하라는 지시가 있어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뭐, 상관없나.
“그럼 그건 알아서 하도록 하고···. 일단 자네와 자네 부하들 목숨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말이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나?”
재수가 없었다고 표현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게이트를 내가 통과한 이상, 다른 각성자가 들어올 수 있는 확률은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나 혼자만의 마력으로 이미 게이트가 통과시킬 수 있는 마력 한계치는 아득히 넘어섰을 테니까.
하지만 오히려 다행인 셈이기도 하다.
어중간한 각성자들이 떼로 들어와 봐야 그야말로 떼죽음을 당할 뿐이니까.
“뭐, 본다고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어차피 들어온 이상 나갈 수도 없으니까.”
김정훈 중위야 모르겠지만, 다른 병사들은 들어올 필요도 없었던 건데.
어쩐지 조금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하네.
“그럼, 갈까?”
* * *
오랜만에 들어오는 게이트이긴 하지만,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 기분 나쁜 찜찜함은 변하질 않네.
그러고 보면, 돌아온 뒤로 두 번째 게이트인가?
처음은 어이없게도 라미야의 실수로 생긴 사우디아라비아의 게이트.
그곳에서 만난 아이가 네스티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마왕의 라이프 베슬로 인해 만들어진 게이트이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것 역시 그리 정확한 것은 아니다.
모두가 가정과 예측으로 한 가설들일 뿐.
“흐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비슷한데?”
문득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뒷산을 오르는 늙은이의 발걸음처럼 여유로운 나와는 달리 잔뜩 긴장한 병사와 김정훈 중위가 내 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네? 뭐가 비슷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네스티가 있던 곳.
그곳과 비슷하다.
주변의 환경이 비슷하다는 게 아니라, 딱 꼬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 감각적인 부분에서.
“···선생님. 혹시, 저거 아닐까요?”
김정훈 중위가 붉은색 장갑을 낀 채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
그곳에는 분명 몬스터가 있었다.
“생긴 게 뭔가 독특하네요. ···역시 보스급이라서 그럴까요?”
이건 정말 이상하다.
몬스터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
대부분의 몬스터는 기괴한 모습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나마 가장 평범하게 생긴 게 오크나 고블린 정도고, 키메라 계열의 몬스터를 보면 정말 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날 정도다.
그런 부분에서 저기 앉아 있는 녀석은 확연히 다르다.
머리에 날 뿔을 제외하면···.
이상한 피부에 좀 거대한 덩치를 가진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다.
지금까지 수백, 수천 종류가 넘는 몬스터를 상대해봤다고 자부하지만 절대 저런 외형을 가진 몬스터는 본 적이 없다.
아니, 딱 한 번.
비슷한 녀석을 본 적이 있긴 하네.
최후의 게이트에 있던 마왕.
“너희들, 아무래도 한참 더 뒤로 물러나야 할 것 같다.”
이왕이면 게이트에서 내쫓아버리면 좋겠는데, 아무리 나라도 그건 안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해본 적이 없다.
지금의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건, 사실 최후의 게이트에 들어간 이후.
그전에는 힘이 약했고, 그 이후에는 써볼 이유가 없었지.
게이트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생전 처음 써보는 기술을.
그것도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펼쳐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하는 수밖에.
“네, 네! 알겠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느꼈겠지.
지금 이 안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쯤은.
그리고 저 눈앞에 있는 몬스터가 범상치 않다는 것도.
부대 내에서야 나름 최종 병기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지 몰라도, 아직은 한참이나 햇병아리다.
실전 경험이라고 해봐야 고작 십여 회나 될까?
제아무리 목숨을 걸 수 있다 다짐해도, 정작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고 의연함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저렇게 도망치듯 멀어지는 건 너무 당연한 본능이다.
군인들이 거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저 정도 거리라면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
홀가분한 마음이 되고 나서야 다시 눈앞에 있는 녀석을 쳐다봤다.
마치 기다려주겠다는 듯.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정말 마왕의 그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말이 되나?
그 당시에 태평양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초대형 게이트가 생겼을 때는 누구나가 예상했었다.
저게 마지막이구나. 라고.
하지만 오늘 들어온 게이트는 다른 것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적당한 크기에 적당한 마력 수치.
실제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저 녀석의 마력은 그리 대단할 게 없다.
물론 내 기준에서라곤 하지만, 마왕이라는 걸 겪어본 나로선 감히 비교한다는 생각 자체도 들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너, 몬스터냐?”
내 질문에도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화가 될 리가 없나?
하긴, 심지어 우리가 마왕이라 불리던 존재조차도 대화가 통하지는···.
“몬스터라···. 너희들의 눈에는 우리가 괴물로 보인다는 건가?”
대답이 들려왔다.
근데, 내가 왜 질문을 했을까?
확신은 없었지만, 어렴풋이 느꼈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 녀석이 대화가 가능한 존재라는 걸.
그리고 그게 바로 마왕에게서 얻은 라이프 베슬을 가지고 있어서라는 것도 말이다.
피식-.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다.
“역시 내 말을 알아듣네?”
이유는 모르겠는데, 뭔가 기쁘다.
단순히 저 녀석이 말을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네 녀석인가?”
“나? 꼭 날 아는 것처럼 말하네?”
“물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아는지를 이어서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크흠, 네 녀석에게서··· 느껴진다.”
짧은 문장임에도, 뭘 말하는지는 곧바로 깨달았다.
아마도 인벤토리에 있는 코어.
즉, 마왕의 라이프 베슬을 말하는 거겠지.
굳이 왜 저런 식의 말투를 사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흠. 그래서··· 그 녀석의 복수라도 하려고 온 건가?”
“복수? 크하하하!”
겉모습이 저래서 그런가.
대충 웃는 것 같은데도 뭔가 멋있다.
“우스운 소리구나. 나는 그저 경고하기 위해 보내진 것뿐이다.”
“무슨 초딩도 아니고···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네가 그 결투장이라 그 말인가?”
“···그, 그렇다!”
그래도 쪽팔린 건 아는 모양이지?
“그래서, 그 경고를 한 녀석은 언제 온다는 건데?”
“···너는 이미 왕의 자리에 앉은 이가 아닌가? 어째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구는 거지?”
왕의 자리?
지금까지 이어진 대화 중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단어가 튀어나왔네.
나는 분명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이 힘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한 적도.
누군가의 위에 올라서려 한 적도 없다.
“왕의 자리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역시나 어리석은 인간. 누구나가 바라는 힘을 가졌음에도 정작 어떻게 쓰는 줄도 모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늘 너희 인간뿐이었지.”
슬슬 이 지루한 대화가 지겨워진다.
더군다나 시은이랑 덕윤이에게도 최대한 빨리 간다고 했는데, 쓸데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널 죽이면 게이트는 사라지겠지?”
“···그렇다. 하나 두렵지는 않다. 어차피 나는 제물이 될 운명을 타고난···.”
“됐고, 이것 하나만 물어보자.”
예전부터 무척이나 궁금했던 게 있다.
대체 왜 몬스터들은 인간을 공격하는지,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이 자리에 신주희 박사가 있었다면 좀 더 그럴듯한 질문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물을 수 있는 건 그저 1차원적인 질문뿐이다.
답변을 듣고 전해주면 그녀가 또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야 너무나도 당연한 것 아닌가?”
녀석은 내 질문이 되레 황당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마치 모르고 있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처럼.
“우리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