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91화.
저녁이 되기 전.
즐거운 마음으로 가게 앞으로 나갔다.
[오늘의 메뉴]
[새조개&소고기 샤브샤브]
[2인 30,000원]
어쩐지 자랑스럽게 메뉴를 쓰는 건 상당히 오랜만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어제는 정말 부끄러웠지.
육수도, 채소도, 모두 준비가 끝났다.
이제 손님만 기다리면 될 일.
시간을 보니 5시가 되어간다.
솔바람 인테리어 식구들은 6시로 예약을 해둬서 마음이 편하고.
퇴근을 일찍 한 이들이 지나가며 메뉴판을 보고선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집에 가서 이야기하다가 가족들과 함께 찾아오게 될지도.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노을이 지는 하늘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삼촌! 삼촌!”
시은이가 다급하게 날 찾는다.
“왜 그래?”
“뉴스! 뉴스랑··· 일단 여기 저, 전화부터 받아보세요!”
어떤 내용이 나오고 있는지, 누구의 전화인지는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도 게이트가 계속 나타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었는데.
“그래.”
시은이가 가지고 나온 전화기를 넘겨받고 가볍게 답했다.
피차간 할 말은 뻔하고, 나 역시 어지간하면 거절하지 않을 테니까.
-···선생님, 혹시 뉴스는.
“아직, 이제 막 보려던 참이야.”
-이런 부탁, 늘 죄송스럽지만.
“위치는?”
말을 끊는 건 아랫사람이라도 예의가 아니지만, 시간을 끌 필요가 있나.
이러고 있는 와중에도 실시간으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을 텐데.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게 이번엔 위치가 정말 애매합니다. 그래서 더 진압이 어렵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접근할 수 있는 인원수가 제한이 되다 보니···.
“무슨 소리야? 위치가 애매하다니.”
게이트가 나왔는데, 위치가 애매해서 접근을 못 하는 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머리를 스치듯이 어떤 곳이 번뜩 떠올랐다.
한국이되 한국이 아닌 곳,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장소.
-그게, 안쪽에서 발생했습니다.
“안쪽이면···. 혹시 비무장 지대?”
-네. 맞습니다.
비무장 지대라.
그렇다면 많은 인원이 들어가는 것도 무리가 있겠네. 아무래도 북한과 서로 눈치를 봐야 할 테니.
그렇다면 더 문제다.
게이트에서 풀려난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면 전선이 너무 길어지게 될 텐데, 모든 군인이 마력탄 무기를 가지고 있을 리도 없으니까.
“북한에서는 연락이 없나?”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이 없습니다. 설마 아직 모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 망할 놈의 자존심.
곧 죽어도 대한민국에 도움을 청하기는 싫단 말인가?
지금 대마도에 있는 각성자들은 뭔데 그럼.
아니면 정말 안정민의 말처럼 모르고 있는 건가? 설마, 그 정도 기술력도 없을까 싶지만··· 진짜 그럴지도.
가만히 기다리면 몬스터들이 통일을 시켜줄지도 모르겠다.
“그쪽이야 알아서 하게 두고, 우리 쪽의 피해 상황은?”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비무장 지대.
안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와 사방으로 퍼지면 진짜 골치가 아파 진다.
-그게 조금 이상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분명 게이트가 생성된 것은 확인했는데, 이상하게 몬스터 반응이 없습니다.
게이트는 열렸는데, 몬스터는 나오지 않는다?
이번에는 항상 개방형으로 생성되는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또 아니었나?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
“···가서 확인해 보면 알겠지.”
-앗, 지금 바로 가주실 수 있는 겁니까?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쪽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만약 지금 일을 뒤로 미뤘다가 새벽에 터져버리면 정말···.
애꿎은 군인 수천 명의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철책 안쪽에서 농사를 짓는 일부 시민들은 살아남기 힘들게 될 거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라곤 하지만 알면서도 죽게 둘 수는 없다.
수화기를 잠시 막고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긴 할 텐데··· 시은이랑 덕윤이 둘이 잠깐 볼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습니다.”
“···응. 저도요!”
자신은 없는 표정이지만 두 사람도 아는 거겠지.
지금 내가 가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쯤은.
“어려울 건 없어, 손님 오면 전골냄비에 육수 부어서 내고. 고기랑 새조개는 2인분씩 나눠놨으니까 인원수에 맞춰서 내주면 돼. 채소는 많이 있으니까, 더 달라고 하면 알아서 주면 되고···. 밑반찬은 냉장고에···.”
“삼촌.”
“···응?”
“괜찮아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사실 이게 그다지 어려울 건 없다.
해 먹는 거야 알아서 해 먹는 음식이고, 준비만 해주면 되는 일이니까.
포스기는 덕윤이나 시은이 둘 다 사용할 줄 알고···.
“진짜 괜찮아요. 사장님.”
“그래. 그럼 다녀올게.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나한테 전화를 하는 게 제일 좋은데, 비무장 지대에서도 휴대전화가 터지려나? 나를 제외하니 떠오르는 게 딱 한 사람.
“시연이한테 전화해. 알았지?”
“피. 맨날 언니만···. 걱정마요. 전화할 일 없을 테니까!”
괜스레 토라진 척하는 시은이지만 아마도 결국엔 하게 될 거다.
시연이도 어차피 학원을 마치고 온다고 했으니 손님이 몰리기 전에는 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두 사람에게 맡겨 두기엔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걱정해봐야 지금은 별수가 없다.
마당에 서서 하늘을 박차자, 땅이 패려 들어 가며 몸이 쏘아졌다.
이거 아무래도 마당에 발사대(?)라도 하나 만들어둬야 하려나.
* * *
이곳에 들어와 본 적은 나도 처음이다.
예전에도 이 사이에서 게이트가 열린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당시에는 군대 내에서도 헌터 부대가 운영되고 있었으니 올 일이 없었지.
지금이야 급하니 그렇지만 군대에서도 곧 각성자로만 이뤄진 부대를 편성하게 될 거다.
사실상 그 이전에 존재했던 특수부대는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스파이, 특수부대. 나쁜 쪽으론 당연하게도 테러 조직이나 빌런들까지.
이제 무력을 행사하는 단체라면 각성자의 능력이 곧 그들의 힘이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셈이다.
빼애액-.
굉장히 날카로우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새의 울음 소리가 비무장 지대 숲 안쪽에 울려퍼졌다.
“매네요. 군인들이라면 잘 아는 소리죠.”
“···그런가.”
설마 지금 내가 군대를 안 다녀 왔다고 무시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는 없겠지.
내가 12살부터 몬스터 사냥을 다녔다는 이야기는 이미 온라인에서도 어느 정도 퍼진 이야기인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뭘 또 영광씩이나···.”
“아! 저도 각성자입니다.”
“알고 있다.”
중위 계급의 각성자.
이건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게다가 나이라던지 분위기를 봐서는 중위라는 계급이 무척이나 안 어울린다는 사실이다.
“하하. 이거요? 아직도 적응이 안 되네요. 사실 전 지난달까지만 해도 상병이었는데···.”
상병에서 갑자기 일 순간 간부로.
그것도 중사도 아니고, 중위라니.
파격적이 다 못해 혁신이라고 해도 될법한 특진이다.
물론 이 각성자를 잡기 위한 군의 노력은 알겠지만, 과연 언제까지고 남으려 할까?
중위 한 명과 그 뒤를 따르는 4명의 부대원.
잔뜩 긴장한 그들의 손에는 얼마 전 삼영 그룹에서 새롭게 개발된 마력탄 무기가 들려 있었다.
총이 아닌, 단창같은 형태의 무기였는데 사용법은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해서 모르겠다.
거기다 마력 슈트까지 착용한 상태.
수색 중대라곤 하지만 확실히 일반적인 군인들과는 복장이나 무장 상태가 다르다.
벌써 각성자 부대 병설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번에 비해 확연하게 빠르다.
두 번째 일어난 게이트 사태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 다 와 갑니다.”
이야기하던 중위가 손에 들린 태블릿을 뒤의 병사에게 넘긴 후, 장갑을 착용했다.
검붉은색에 가까운 가죽에 핏빛으로 빛나는 비늘이 붙어 있는 장갑.
예전에 이와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다.
“그거 혹시 블러디 오크의 가죽으로 만든 건가?”
“아, 네! 역시, 한 번에 알아보시는군요.”
이루 녀석이 일본에서 가져다준 건가?
안정민의 부탁이었을 수도 있고, 이루가 알아서 가져온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저건 꽤 구하기가 어려운 건데.
몬스터가 죽으면 마석을 남기지만, 마석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시체가 먼지처럼 사라져버리는 와중에서도 부산물을 남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저런 가죽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부산물이라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같은 몬스터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100마리를 잡아서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것과 1,000마리, 혹은 1만 마리 이상을 잡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의 가치는 분명 다를 테니까.
그리고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몰라도 블러디 오크는 출현 횟수도 적을뿐더러, 특히나 비늘이 붙은 가죽은 그중에서도 귀한 축에 속했다.
그 말인 즉슨, 내 앞에 있는 이 중위가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단 이야기다.
“격투기를 배운 적이 있나보네?”
신체 강화 능력을 가지고서 굳이 주먹을 사용하는 건, 어느 정도 그런 분야에서 단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리코프가 그랬듯이.
“아···. 대단한 건 아니고, 어릴 때부터 권투를 좀 했습니다.”
겸손하게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냥 조금 했다면 군부에서 굳이 저런 물건까지 주면서 잡아두려 했을 리가 없지.
게다가 그렇다면 오히려 대마도에 보냈어야 하는 게 맞다.
제아무리 무술을 배웠다고 한들, 그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과는 분명 다를 테니까.
게다가 지금 대마도에는 유 리코프까지 와있지 않았나.
신체 강화 계열에서도 격투술이라면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녀석.
물론 어릴 때는 제외하고서지만.
이 남자를 다른 이들로부터 감춰두고 싶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럼 굳이 여길 보낸 이유는 뭘까?
“가서 보고 오라던?”
“···네?”
“어리석은 사람들 같으니, 각성자라고 다 같은 각성자가 아닌 걸 왜 모를까. 그래, 요즘 기준으로 말하자면 난 C타입이다. A타입인 네가 본다고 해도 도움이 되진 않는단 말이다.”
가르치긴 해야겠고, 남들 눈에 안 띄게는 해야 하니.
이런 것도 기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체 강화 능력자가 내 전투를 백날 본다 한들,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전 군인이니까요.”
명령에는 따른다 이건가? 우직하다고 표현하면 좋겠지만, 이건 그냥 멍청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명령을 내린 윗놈들은 왜 아무것도 배워오지 못 했냐고 다그칠 테니까.
쯧-.
가볍게 혀를 차고선, 앞을 바라봤다.
푸른빛의 투명한 커튼이 살랑거리듯 일렁거리는 장막.
게이트였다.
개방형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아직까지 몬스터가 나오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개방형이 아닐 수도 있고, 진짜 극악의 확률이긴 하지만 몬스터가 없는 게이트일 수도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형일 확률도 있겠지.
한 마디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속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고, 다시 말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한 단 말이기도 하다.
“들어가지.”
“···네, 네?!”
뭘 저렇게 놀라.
“그러면 여기까지 와서 아무 확인도 안 하고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어?”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건 조금···.”
조금 뭐. 위험하다고?
내가 어릴 적, 게이트라는 게 생겨나기도 전에 어른들에게 간혹 듣던 말이 있다.
-요즘 애들은 너무 편하게 자랐어.
그래. 이게 지금 내가 딱 하고 싶은 말이다.
혼자 들어가도 상관은 없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요즘 부쩍 외로움을 타는 것 같거든.
“···당장 안 들어가면 직접 집어던져 주지.”
“으으으으···.”
다행하게도, 모두 특수 제작된 마력 슈트를 입고 있었다.
최우혁 녀석이 도움이 될 때도 있네.
덜덜 떠는 마지막 녀석이 들어가고, 나는 고개를 흔들고선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