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89화 (89/153)

귀환자 식당 89화.

손님은 별로 없었다.

늘 집에서 먹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메뉴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사전에 고지도 없이 이틀간 문을 닫은 것도 있을 거다.

모처럼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찾아왔는데 문이 닫혔다면 기분 좋을 사람은 없겠지.

그래서 잊지 않고 찾아와준 솔바람 식구들이 더 고마운지도 모르겠다.

뭘 해주면 좋아할까.

잠깐 생각을 해봤지만, 딱히 안주로 내어줄 게 마땅히 떠오르질 않았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따위야 냉동실에 어느 정도는 늘 준비되어 있긴 하지만···.

그러다 문득, 방울토마토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아저씨 모임에 이런 안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 이건 저도 알아요. 헤헤-.”

재료만 보고도 뭘 만들지 알겠는지, 시은이가 자신에게 시켜달라는 듯이 눈을 반짝인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저 재료를 꼬치에 꿰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니까.

“그럼 한번 해볼래?”

“네!”

간단한 준비는 시은이에게 맡기고, 나는 또 다른 걸 준비했다.

하나만 내어주기엔 조금 부족하니까.

닭다리를 물에 담가 녹인 후, 살짝 얼어있는 상태에 칼을 넣어 발골했다.

살만 떼어낸 뒤, 간장과 맛술, 후추를 넣고 잠시 재워뒀다.

김치찌개에 계란말이.

그 외에도 몇 가지 반찬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한 말로 술을 마시기에 적당한 날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손님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나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싱글들이 대부분.

생각보다 손님의 발길은 이른 시간에 끊겼다.

“안주가 마땅치 않네요. 이거라도 좀 드시죠.”

시은이가 만든 토마토 베이컨 말이와 팽이버섯 베이컨 말이.

꼼꼼하게 잘 말기만 하면 사실상 망치기도 힘든 음식 중에 하나다.

그래도 생각보다 제법 잘 말아서 팬에서 익히다 빠지는 일도 없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거 서비스인 거죠?”

“물론이죠. 메뉴에도 없는 걸 돈 받고 팔 순 없잖습니까.”

그렇게 말하고선 진한 자줏빛의 액체가 담긴 병 하나를 테이블에 내려놨다.

“어? 그런데 이건 뭡니까?”

“별건 아니고, 저희 집에서 담근 술입니다. 계약을 따내셨다는데 특별히 드릴 건 없지만 맛이라도 보시라고 드리는 겁니다.”

담금주라는 말에 아저씨들의 눈이 번뜩인다.

그중 몇몇은 이미 저 자줏빛 술의 정체를 알아챈 모양이고.

“이거 혹시 복분자···.”

“네. 맞습니다. 아는 형님이 강원도에서 직접 따서 보내주신 걸로 올해 담았···.”

우와아아아!

···가게에 다른 손님이 안 계셔서 다행이네.

“···마, 맛있게 드세요.”

이미 내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지, 병을 돌려가며 보느라 난리가 났다.

주방에서 가게 쪽을 향해 턱을 괴고 있던 시은이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늘 이루가 저렇게 홀을 바라보곤 했는데, 기분이 묘하다.

* * *

닭다리 살로 만든 닭꼬치까지 내어주고 나선 아이들과 함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아마 이제 더 이상 올 손님도 없을 테고, 솔바람 식구들도 거의 마무리 단계.

“우리도 맥주 한잔할까?”

“네! 좋아요!”

시은이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너 다시는 술 안 마신다며?”

“그거야 뭐···. 매, 맥주 정도는 괜찮아!”

그래. 다들 그렇게 술꾼이 되어가는 거란다.

치익-.

네 사람의 맥주 캔에서 시원한 소리가 들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캔을 가져다 댔다.

“덕윤이는 이제 좀 어때?”

“네? 아··· 네.”

원래 이렇게 소심한 성격인가?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이 이 녀석을 이렇게 만든 건가.

뭐가 됐든, 이건 좋지 않다.

특히나 덕윤이의 능력은 버프.

그 능력이 크면 클수록 전장을 지휘해야 하는 역할이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과 그에 따른 명확한 지휘력까지 겸비해야만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포지션이 바로 버퍼다.

“내가 없는 동안 훈련은 계속했지?”

“네? 네. 그건 분명히···.”

“그런데 왜 이렇게 목소리에 자신이 없어. 혹시 무슨 다른 걱정이라도 있는 거냐?”

그냥 넌지시 물어본 건데, 조용한 것으로 봐선 말 못 할 고민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할 모양이다.

잠시 하늘을 보며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봤다.

시은이는 그 와중에도 도진이와 즐겼던 대마도 데이트를 자랑하기 바빴고, 시연이는 조금은 부럽다는 듯 시은이를 바라봤다.

“사장님. 저희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늘 찾아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괜히 저희 때문에 술이랑 안주도 더 준비해주시고···.”

“맞아요. 꼬치 너무 맛있었습니다. 사장님!”

“아뇨. 복분자가 최고였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뒤에서 신이나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 저들에게는 오늘이 꽤 오래도록 기억될 날이겠지? 회사에서 커다란 계약을 성사시켰으니 말이다.

그 날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날로 기억될 수 있게 됐다면 그걸로 나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보통은 계약을 성사시켜도 사장에게나 좋은 일이겠지만, 아까 얼핏 들으니 강영훈 사장은 직원들에게도 그 수익 중 일부를 나누기로 한 모양이었다.

좋은 사장과 좋은 직원들.

당연히 회사가 잘 나아갈 수밖에 없겠지. 서로 간의 신뢰로 다져진 단체는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그게 영리를 목적으로 한 회사든, 다른 목적을 가진 단체든 말이다.

골목을 나설 때까지도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한참을 들리다가 사라졌다.

“시연이랑 시은이는 이제 그만 들어가 봐. 나머진 우리 둘이 정리해도 되니까.”

“음··· 알겠어요. 삼촌.”

“아까 술 마셨으니까 운전은 안 된다?”

“당연하죠. 피- 제가 어린 앤 줄 아세요? 그럼 먼저가 볼게요.”

어린애 맞는다만···.

왜 아이들은 자기가 아직 어리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그래. 먼저 들어가.”

“네. 덕윤 오빠도 안녕히 주무세요.”

“아, 네···. 시연씨랑 시은씨도 좋은 꿈 꾸세요.”

시연이는 그 말에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시은이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어색한 인사가 오가고, 나는 덕윤이가 정리해서 가져온 그릇들을 한 번씩 헹군 뒤 식기세척기에 차곡차곡 쌓았다.

위이이잉-.

어차피 마지막 남은 테이블이어서, 식기세척기가 돌아가는 동안 나는 덕윤을 불렀다.

“무슨 일인데 그래. 말해봐.”

“네? 아··· 그, 그게요.”

머리를 긁적이면서 끝내 말을 못하는 녀석.

물론 지금 덕윤의 처지는 다른 이들과는 많이 다르다.

좋은 말로 하자면 보호 관찰 중인 셈이고, 정식 법률에 명시된 말로 하자면 각성 범죄 특별법 위반자 대상 임시 보호 조치 중이다.

얼마 전 내 요청으로 급하게 만들어진 법이긴 하지만 아직까진 문제가 없었는데.

“사실··· 사장님이 안 계신 동안 찾아온 사람이 있었는데요.”

“찾아온 사람? 누구.”

“···그, 저랑 같이 들어갔던 친구들의 가족이···.”

거기까지만 말을 하고 입을 닫아버렸는데. 그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는 너무 훤했다.

“뭐라고 했을지 뻔하지만 네가 신경 쓸 것 없다.”

“하지만 왜 저만··· 그 친구들도 함께 하면 안 되는 걸까요?”

“그래. 그건 안 된다.”

“···어째서요? 왜 저는 되고, 그 친구들은 안되는 건가요?”

바로 이래서다.

“반대로 네가 안에 있고, 그 녀석들이 나왔다면. 널 꺼내달라고 부탁했을 것 같냐?”

“그건···.”

확신이 없어서 대답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을지 뻔히 예상되기 때문에 답을 못하는 거다.

“그래. 그 녀석들은 가르쳐봐야 의미가 없다. 어차피 빌런이 될 녀석들이니까.”

인간의 성향을 결정짓는 것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누군가는 성악설을, 누군가는 성선설을 믿겠지만 확실한 게 하나가 있다.

타고난 성품부터 자라온 환경.

무엇이 인간의 성향을 결정짓는지는 몰라도, 한번 결정되어 버린 그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다시 태어나는 정도의 큰 사건을 겪지 않는다면 그 성향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덕윤아, 그 녀석들은 이미 망가졌어. 그리고 사람은 고쳐서 쓸 수 없는 법이다.”

각성한 지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은 녀석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게 바로 일반 시민들을 갈취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 꼬임에 넘어가 버린 덕윤이도 결코 잘못이 없다 할 수는 없지만.

국정원은 괜히 국정원이 아니다.

구인 사이트에서 주고받은 메시지부터 세 사람이 개인적으로 나눈 대화까지 모두 복원해냈다.

그리고 그 대화 내용을 대강 읽어본 안정민은 딱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했었다.

-선생님, 그 두 놈은 그냥··· 개새끼들이에요. 개선의 여지요? 제가 국정원 인생 30년을 걸고 장담하는데, 절대 안 될 겁니다! 내기하셔도 좋습니다?

정민이를 만난 뒤로 내 앞에서 그렇게까지 확신에 찬 발언을 한 적은 그게 처음이었지.

그에 비해 덕윤이는 그냥 너무··· 순진했다.

돈이 필요해서, 남들에게 무시 받는 게 지겨워서 어쩌다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 버린 우유부단한 녀석.

“능력을 일반인들에게 사용하는 걸 전혀 주저하지 않았지. 아마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분명 사망자가 나왔을 거다. 그건 너도 느꼈을 텐데?”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힘.

그런 녀석들은 그 능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점차 자신의 힘에 도취 되어 가고, 결국 최악의 빌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나는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다.

몬스터와 싸우기도 힘든 세상, 그런 세상에 살면서 다른 이들을 더욱 지옥으로 몰아가는 끔찍한 인간들.

난 내 손으로 그런 괴물을 가르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헌터는··· 선해야 한다.”

누가 각성자가 되는지, 그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다.

게이트가 나타난 이후로 그 긴 세월을 연구했지만, 그 누구도 그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다.

심지어 나조차도 각성하기 전의 사람에게는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한다.

만약 인간 위의 존재라는 게 있다면, 어쩌면 그런 존재가 선택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그럼 대체 왜?

이 모든 게 단순히 신들의 유희, 혹은 재미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각성자의 힘은 몬스터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안배인 셈이다.

결국엔 인간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힘.

“나는 각성자란 결국 다른 이들을 지켜야 하는 자들이라고 믿는다.”

덕윤이의 눈에 남아있던 망설임과 두려움이 조금 옅어졌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힘이 들어간 걸 보면, 내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깨달았다는 게 느껴진다.

“무슨 말씀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늦긴 했지만, 아직 너무 늦은 건 아니었던 셈이다.

띵-!

식기세척기가 끝나는 알람이 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가세요. 제가 정리할게요.”

“···그럴까?”

이미 가게 정리는 다 끝났다.

남은 건 식기세척기에 담긴 그릇을 정리하고, 문을 잠그는 것뿐.

시간을 보니 10시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시간.

아마도 오늘 덕윤이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거고, 그 결과는 내일 아침에 만났을 때 알게 될 거다.

지금은 저 녀석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방해받지 않는 공간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거다.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

“···네! 사장님.”

내일 만나게 될 새로운 덕윤이가 조금은 기대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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