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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87화 (87/153)

귀환자 식당 87화.

사실 어느 정도의 반발은 있을 줄 알았다.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물러나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고 해야 하나?

“그야 그 이상 각을 세워봐야 자신들에게 득이 될 게 없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왜 그렇게 열을 낸 거지?”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면 정말 쓸데없는 소모전 아닌가.

“130개가 넘는 국가의 대표들이 모인 자립니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한 중요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각성자들의 관리자. 아마 자국에서 모두 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이 왔을 가능성이 크죠. 서로 간의 기 싸움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정치인들이란···.”

결국 그 자리에서 누가 더 발언권이 큰지, 앞으로 있을지 모를 나라 간의 연계 작전이 있을 때를 대비해 보여주기식이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래도 설마하니 남녀 구분 없이 숙소를 무작위로 배정한다는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는 내 성격에 익숙한 정민이 조차 당황하긴 했었지.

하지만 난 이게 절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녀의 차이? 그딴 게 몬스터 앞에서 무슨 소용이지?

몬스터가 인간을 죽이면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나?

아니면 각성자들의 능력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라도 하나.

그래. 굳이 하나라도 차이를 따지자면 미세한 능력의 컨트롤이 중요한 능력은 여성.

힘이 중요시되거나 체력으로 밀어붙이는 능력이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비율을 따지면 그렇다는 이야기지.

게다가 각성한 뒤에는 그런 비교가 무의미해진다.

신체 강화 능력을 각성한 경우라도 일정 수준 이상이 넘어가면 성별이 아니라 보유한 마력의 수치가 더욱 중요한 요인이 되니까.

“먼저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신뢰가 우선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남녀의 차이는 오히려 걸림돌이지.”

여자라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독이 된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되어서 깨달아야 이미 늦는다.

그러니 그 전에 알려줘야 한다.

각성자는 모두 똑같다고 말이다.

* * *

앞으로 장장 3년이나 이어질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다.

들어가는 비용만 무려 7,000조에 달하는.

인류 역사상 과연 지상에 건축물을 짓는데 이 정도의 비용이 투입된 경우가 있었을까?

거기다 더 놀라운 건 그게 1차 비용이라는 점이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큰 비용이 들어가게 될지 모른다.

작은 도시 하나를 세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크기가 지어진다.

당연히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건설회사들에서 침을 흘릴 수밖에.

심지어 나누어 먹을 파이도 크다.

8개의 대형 건축물의 쇼핑몰이 아니라 쇼핑 타운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데다, 첨단 과학 기술은 물론이고 마법까지 더해진다.

제작 관련 능력을 각성한 이들을 찾아야 하는 건 물론이고, 그런 건물을 3년 안에 짓자고 하니 엄청난 인원이 투입될 수밖에.

대마도는 한국 땅.

당연히 한국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총 42개의 건설회사가 선정됐고, 그중에 무려 절반이 넘는 28개가 한국에 기반을 둔 회사들이었다.

입찰가를 기준으로 공정하게 선정했으니 잡음은 없었다.

자재 운반이나 직원 파견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한국 회사들이 유리한 것이야 너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난 솔직히 한국에 28개나 되는 건설회사가 있는 줄도 몰랐지만, 그 하청의 하청에 하청 업체까지 죄다 한 발 담그려 안달이라는 소리에 조금 황당하긴 했었지.

그래서 생각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강 사장님. 잘 지내시죠?”

-사장님. 혹시 가게에 뭐 수리할 거라도 있습니까? 얼마 전 점검하면서 봤을 때 특별한 이상이 있는 곳은 없었던 것 같았는데.

솔바람 인테리어의 강영훈 사장은 직원들과 가게를 찾을 때면 간혹 가게 건물 이곳저곳을 확인해준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려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게의 단골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오래된 친구같은 느낌의 손님이랄까.

가게를 열기도 전에 가장 먼저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 사람이기도 하지.

나에게는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 건 아니고,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혹시 신규 건축도 해보신 적 있습니까?”

-신규 건축이면··· 사장님. 설마, 건물 올리시게요? 당연히 해봤죠. 제가 지금은 이래도 예전에는 제법 잘 나가는 건설회사 사장이던 적도 있습니다.

건설회사 사장에서 인테리어 업체 사장이 된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과거 이야기에서 좋은 기억이 나오는 경우는 아직 못 봤으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네. 뭐··· 나중에 건물이라도 짓게 될까 싶어서요.

수화기 너머로 허탈한 듯한 너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든 연락만 주십시오. 제가 아주 튼튼하게 지어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는 조금 씁쓸한 마음이 올라왔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게 결국 청탁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왜 그런 표정이세요? 뭐,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학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안정민이 물었다.

“아니, 그냥···. 마침 잘 왔네. 솔바람 인테리어라고 알지?”

“아, 선생님 식당에 자주 오는 그 업체 사람들이요? 알죠. 자주 봤으니까요. ···혹시 이번 프로젝트에 자리가 있는지 좀 알아볼까요?”

확실히 눈치가 빠르다.

저렇게 말한다는 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거겠지.

“그럼 좀 부탁할게. 나한테는 고마운 사람들이라. 그래도 비밀로 처리해줘. 이런 식으로 청탁했다는 걸 알면 기분 나빠할 수도 있으니까.”

“청탁이라뇨. 선생님께서 무슨 공무원도 아니시고···.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는 선생님이 아니셨으면 애초에 시작도 못 하는 거였잖습니까. 그 정도로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다른 업체 사람들이 일하는 걸 본 적은 없지만, 솔바람 강영훈 사장의 실력이 좋다는 건 안다.

막힘없이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던 모습도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잊지 않고 점검을 와주는 꼼꼼한 성격.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특히나 안전에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꼼꼼함이 필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 선생님. 솔바람 인테리어가 강영훈 사장님 맞죠?”

“그렇지? 왜 그러는데.”

어리둥절한 물음에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안정민은 대답 대신 서류 태블릿을 내밀었다.

“솔바람 인테리어. 벌써 낙찰됐는데요? 건설이 아니라 인테리어 쪽이지만요.”

“···그래?”

“이야. 심지어 귀빈관 담당이네요. 이거 경쟁이 어마어마했을 텐데··· 대단한데요?”

‘제법인데···.’ 라며 중얼거린 안정민은 고개를 살짝 흔들고선, 다시 태블릿을 만지더니 다른 화면을 띄웠다.

그래.

솔직히 제법이다.

괜한 짓을 해버려서 되려 미안해졌다.

내가 누군지는 이제 충분히 알고 있을 테고, 이번 일에 내가 상당히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강영훈은 얼마 전 가게에 직원들과 찾아왔을 때도 전혀 그런 내색은 비치지 않았으니까.

정당하게 자기 능력으로 입찰 경쟁에 뛰어들어도 자신 있었던 거다.

그런 사람에게 배려랍시고 이런 일을 벌이려고 했다니, 나중에 오히려 사과라도 해야 할 것 같네.

“지금은 다른 게 아니라··· 이것 때문에 왔습니다. 제 1 숙소 건물 앞 영상입니다.”

조금 전까지 흐뭇하던 기분이 한순간에 확 일그러졌다.

“이게 설마 지금 실시간 화면이라는 건가?”

“네. 아무래도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이건 내 불찰이라고 해야겠다.

위에 있는 사람들만 이해시키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당사자들을 신경 쓰지 못했다.

제 1 숙소.

이곳은 한국 각성자들이 머무는 숙소다.

정작 북미나 유럽에서 온 이들은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는데, 한국인들이 문제가 되는 거다.

이 빌어먹게도 뿌리가 깊은 유교 사상이라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그 깊숙한 곳 어딘가에 박혀있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늘 구분되어 온 남녀 간의 차이.

‘남자’라면 다녀와야 한다는 군대부터, ‘가장’이라 불리며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

‘여자’라면 가져야 한다는 조신함, 아내로서의 도리, 내조.

대한민국뿐이 아니지만, 언제인가 유난히도 두 집단의 싸움이 커진 때가 있었다.

‘차별’과 ‘차이’의 해석에 따라, 남녀가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한 적이 있었지.

지금 저 앞에서 반대 시위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는 셈이다.

“···어떻게 할까요?”

“가봐야지.”

한두 명도 아니고, 얼핏 봐도 한국인 각성자 대부분이 나와 있는 상황이다.

과연 저들 중에서 정말로 이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아마도 저 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몇 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거기에 따르지 않으면 마치 자신이 도태된다고 느끼게 만든 이가 있겠지.

그 몇 사람을 잡아내면 된다.

“오히려 잘 됐어. 썩은 달걀이 있다면 빨리 골라내는 편이 낫지.”

* * *

“이건 말도 안 돼요! 어떻게 남자들이랑 같은 층을 쓰라는 거죠?! 무슨 짓을 당할지 알고요.”

오래 끌 일도 아니고 해서 곧바로 대표로 나선 아이들을 사무실로 불렀다.

전원을 다 부를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그 앞에서 계속 농성을 벌이게 할 수도 없었다.

지금쯤 다른 나라에서 온 대표단들이 한국을 얼마나 비웃고 있을까.

나야 솔직히 상관없지만, 이건 그야말로 나라 망신인 셈이다.

들어오자마자 대뜸 소리치는 걸 보자마자 알아챘다.

저 아이가 바로 여성 대표이자 이 선동질의 주범이라는 걸.

“죄, 죄송합니다. 도무지 통제되질 않아서···.”

“괜찮습니다. 여긴 제가 있으니, 우선 나가서 다른 학생들은 숙소에서 대기하도록 해주시죠.”

한국에도 관리자가 있긴 하지만, 다른 나라와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어차피 대마도는 이제 한국 영토이고, 아카데미는 굳이 따지고 들자면 한국에 있는 일종의 공립 학교인 셈이다.

다른 나라들처럼 굳이 차기 정치권의 유망주를 보내거나 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말 그대로 한국 각성자들의 지원과 보조 역할을 하기 위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저 아이도 관리자를 무시한 채 행동할 수 있는 거겠지.

영악하네.

자기가 나중에 어떤 위치에 오르게 될 거라는 걸 이미 파악한 거다.

아니면 누군가가 알려줬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래. 무슨 짓을 당할지 어떻게 아냐고 했던가?”

“네! 물론이죠. 학생들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고려해주시는 것도 아카데미 학장님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요?”

제법 그럴싸한 말을 지껄이는데?

“넌 여기 왜 왔지?”

“···당연히 헌터가 되게 위해섭니다.”

“헌터가 되면 뭘 하는지는 알고?”

“그야 당연히··· 몬스터를 사냥해야죠.”

조금 엉뚱해 보이는 질문 같았는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면서도 대답은 곧잘 한다.

잘 아네.

“몬스터와 싸우기 위해서 왔는데, 남자는 무서운가?”

“···그, 그거랑 이건 다릅니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서.

“그래. 네 말이 맞다. 분명 다르지. 그래서 내가 찾는 건 ‘헌터’가 될 사람이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단 소리다.”

“하지만 공동 공간을 이용할 때도 불편할 수 있고···!”

계속되는 헛소리에 결국 나도 언성을 높여 버렸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서도 남자와 따로 이동하겠다고 할 테냐?!”

“···네?”

“안에 들어가면 길게는 수십 일을 함께 보내야 하기도 한다. 온몸에는 역겹고 냄새나는 몬스터의 피를 묻히고 잠이 들어야 하고, 역한 냄새가 풍기는 고기를 생으로 씹어먹으면서 버텨야 하는 순간도 있다. 어쩌다 냇가라도 만나면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함께 씻어야 하기도 한다. 넌 그때도 남탕이니 여탕이니 같은 개 소리를 할 거냐고 묻는 거다.”

“···그, 그건···.”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곳에 여자와 남자의 구분은 없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이곳에 온 것 자체가 실수다. ···넌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

화가 나서 내린 결정이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을 떠올리는 순간, 아마도 자신이 사라졌겠지.

지금 내 앞에서 멍해진 눈빛으로 몸을 떨고 있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나는 이 아이를 위해서 돌려보내려는 거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앞으로 일주일.

엄청난 수의 탈락자가 발생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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