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86화 (86/153)

귀환자 식당 86화.

대마도 공항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총 130개국.

미리 와있던 일본과 한국의 각성자들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곤 하지만, 중국이나 미국 역시 막강한 재력을 동원해 최대한 많은 수의 각성자를 보내왔다.

영토가 넓은 만큼 당연히 각성자도 많아야 한다는 의견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도 사실이고.

영토로 따지자면 러시아도 한 마디 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되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들에게는 유리코프가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겠지.

미국에도 하밀이 있긴 하지만, 지금의 하밀은 어째선지 각성자나 헌터라기보단 되려 정치가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더 컸다.

야망이 있는 녀석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요즘 하는 모습을 보면 완전히 마음을 굳힌 것 같기도 하다.

나름 잘 꾸며진 방.

책상에는 내 이름까지 새겨진 명패가 놓여 있었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남아공 훈련생들만 도착하면 전원 소집 완료입니다.”

안정민은 마치 상관에게 보고라도 하듯이 말했다.

굳이 저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이제 엄연한 헌터 아카데미의 학장이신데요. 그럴 순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이들이 보는 눈도 있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라 딱히 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생각보다 빠르네. 앞으로 적어도 하루는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다들 다급하다는 이야기겠죠.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지금 마음 편한 곳이 없으니까요.”

“···그런가.”

“한국은 일전에 마석을 많이 확보해서 그나마 이 정도인 거지, 지금 외국은 정말 난리 그 자쳅니다. 일단 게이트가 열리면 그 일대는 거의 초토화 되니까요. 그나마 요즘은 외국에서도 마석을 확보하기 시작해서··· 아무튼, 한국은 정말 운이 좋았죠.”

그렇게 생각하면 또 이루 덕분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리자드맨 변종이 나타났을 때 소멸시키는 게 아니었는데···.

뭐, 이미 지난 간 일이니 이제 와 생각하는 것도 소용없지만.

“아, 여기는 마음에 드십니까?”

“꽤 큰 호텔이었던 모양인데, 이런 건물을 아카데미 중앙 센터로 사용해도 숙소 수급에 차질은 없나?”

“네, 아직도 충분합니다. 대마도가 관광지다 보니 호텔이 제법 많았습니다. 좀 오래돼서 노후화하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보수도 했으니 그 점은 염려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새로 짓기 시작했다는 건?”

“그렇지 않아도 이걸 보여드리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촤륵-.

테이블 위로 펼쳐진 건 대마도 전체 지도였다.

다만 종이에 그려진 게 아니라 홀로그램처럼 공중에 떠오른 입체 영상.

“환영 능력자를 용케 찾았나 보네.”

“하하···. 역시 한 번에 알아보시는군요. 이제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상태라 아직 정식으로 채용은 하지 않았지만,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을 돕고 있습니다.”

“설마 어려서 아직 모를 거라고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으면···.”

“어휴. 그럴 리가요. 그리고 선생님이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요즘 애들이 그런 면에서는 더 똑소리 납니다. 관리국에서 연락하자마자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니까요?”

“···그렇군.”

환영 제작 능력.

탐색과 행정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계열로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이다.

단점이라면 능력의 향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지만 그들에게는 큰 차이가 없겠지.

어차피 헌터가 되어도 결국엔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중요한 건 당연하니까.

그저, 너무 어려서부터 돈의 맛에 취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무슨 걱정 하시는지 압니다. 저희도 이미 관련 자료를 다 찾아봤으니까요···. 전문 상담사와 매주 만나게 할 예정이고, 일단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계약 금액의 5%만 지급하기로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5%라.

사실 그것도 너무 많은 금액이긴 하지만, 그 이하가 되면 그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쪽은 알아서 하겠지. 이거나 보지.”

“네.”

안정민 과장이 허공에 떠오른 홀로그램에 손을 뻗자 지도가 사방으로 퍼지듯 확대되더니 이내 우리를 다른 장소로 옮겨놨다.

알지 못했다면 텔레포트를 당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정교함.

나는 지금 안정민과 함께, 대마도의 위.

즉, 허공에 떠 있었다.

“저쪽 아래 보이시죠?”

저 발아래로 보이는 제법 큰 도시.

“아마 저기가 쓰시마 시였던 곳인가 보네.”

“네. 사실 호텔도 저곳에 가장 많이 몰려 있어서 고민했습니다만, 역시나 지형이나 도로를 생각한다면 저곳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안정민 과장이 다시 손을 젓자, 이번에는 도시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고.

마치 시간을 빨리 감기라도 한 것처럼,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총 8개의 거대한 건물이 팔각형의 모습으로 지어진.

일종의 요새 같은 모습.

“3년 뒤 완공 예정인 헌터 아카데미의 모습입니다.”

“가운데 있는 공터는 운동장인가?”

8개의 건물이 빙 둘러 있는 곳의 가운데.

운동장이라고 하기에는 폭이 10km도 넘어 보이긴 하지만···.

“네. 저곳 역시 총 8곳의 구역으로 나뉠 예정이고, 특히나 그 중에서도 가장 가운데에 지어질 체육관은 그야말로 현대 과학의 집약체가 될 겁니다. 완공까지 총 예상 비용만 무려 7,000조가 넘어갑니다. 아마 제가 알기로 이정도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는 처음일 겁니다.”

“생각보다··· 일이 커졌네.”

“네? 하하. 애초에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이런 계획 같은 건 불가능했겠죠. 미국이나 중국이 있는데 한국에서 이런 게 생길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마도 반환이 아니었다면 장소도 그렇지만, 투입되는 비용도 한 국가에서 감당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8개의 거대한 건축물을 단순히 건물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관이 생긴다는 건 환영할 일이다.

인종, 국가, 나이, 성별.

심지어는 음식 취향 때문에 벌어지는 싸움에서도 사망자가 나오기도 하는 곳이 게이트니까.

늘 답답했었다.

인간들이 뭉치고 단합해도 부족한 판국에, 서로 마석 하나를 더 가지겠다고 싸우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싸우고.

그나마 나중에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처음엔 가관이었지.

게이트의 등급이나 안에 어떤 몬스터가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팀을 만들어서 공략하겠다고 나섰다가 전멸하는 경우도 몇 번이나 봐왔다.

이번에야 이전의 자료들이 있으니 조금 낫겠지만, 인간들끼리 분란이 생기고 파벌이 나뉘어서야 같은 일이 또 반복될 게 뻔하지.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하나 있다.

“아, 숙소 말인데. 어떻게 배정됐지?”

“우선 일인실이 기본입니다. 아무래도 다들 성인인데다 나름 귀한 인재들이라···.”

말을 하면서 혹시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면 어쩌나 하고 눈치를 살피는데, 보지 않아도 된다.

나도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니까.

일단 나부터도 누군가와 같이 잔다는 건 매우 불편한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그걸 강요할 마음은 없다.

물론 네스티는 조금 예외지만.

“크흠. 그리고 미국이나 일본, 중국 같은 경우는 아예 작은 호텔이나 펜션을 따로 배정했습니다.”

“···일본은 좋아했겠군.”

“네. 그렇지 않아도 일본에서는 처음부터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을 콕 집어서 말해주더군요.”

“흐음.”

뭔가 쓸데없는 짓을 하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라고 믿긴 하지만, 워낙에 뒤통수치는 게 특기인 곳이라.

“그리고, 대부분 국가는 인원수에 따라 아예 호텔의 한 층을 배정하거나, 그게 되지 않는다면 구역을 나누어서···.”

“정민아.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이거···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

“···네? 다시 하라뇨?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물으면서도 얼굴에 떠오른 건, 설마 하는 표정이었다.

미안하지만 그 설마가 맞다.

“숙소 인원 배정, 전부 다 다시 해야겠다.”

“···네? 이미 대부분 짐도 풀었을 텐데···.”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 건 미안하지만, 조금 늦어지더라도 바꿔야겠다.

그래, 차라리 몰랐으면.

처음 생각처럼 그냥 훈련만 시켜서 돌려보낼 예정이었다면 이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젠 내 생각이 바뀌지 않았나.

들어올 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수료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갈 때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모든 게 바뀌어야 한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게이트들은 지난 시절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게이트가 만들어지자마자 개방된다.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피해가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르는 상황인데, 심지어 나오는 몬스터의 등급이 다르다.

일반인이라도 체격이 좋거나, 운동을 한 사람이 목숨 걸고 달려들면 이길 가능성이 있던 고블린과는 차원이 다르다.

리자드맨 변종도 그렇지만, 일본에서 나타났다는 블러디 오크는 그런 고블린들 100마리가 달려들어도 어쩌지 못하는 상위 등급 몬스터다.

만약 이루가 가지 않았다면 규슈지방은 아마 사람이 살지 못하게 변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높은 확률로 그렇게 됐을 정도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로.

이전 시절에 남겨진 모든 자료를 보더라도 한 가지는 아마 분명할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에 마력이 더 충만하면 충만해질수록.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더욱 강해질 거라고.

그러니 우리도 더 강해져야 한다.

예전의 헌터들과는 달리, 강해지고, 더욱 강력하게 단합해야 한다.

“국적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무작위 추첨으로 숙소를 다시 배정해야겠어.”

“네? 하지만, 선생님. 저들이 과연 그런 걸 받아들이겠습니까?”

충분히 예상은 된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나오겠지.

그래도 이쪽에서 계속 강경하게 나가면 결국 조금은 물러설 거다.

그 뒤에는 적어도 성별이라도 구분하게 하자고 할 테고.

물론, 나는 그 어느 조건도 들어줄 생각이 없다.

* * *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처음엔 국가별로 나누는 게 당연히 맞는다고 우기다가 결국엔 한발 물러섰다.

“다른 건 다 그렇다고 하시죠. 학장님이 말씀하시는 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성별도 관계없이라뇨. 그건 안될 말 아닙니까. 남자와 여자가 한 숙소를 쓰면 그 다음에는 분명히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마련된 대회의실.

이곳에는 지금 2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있었다.

각성자.

그중에서도 지금 이곳에 온 이들은 말 그대로 정말 나라의 명운을 짊어지고 온 이들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혹시라도 이곳에서 다른 나라의 꼬임에 넘어가 국적을 옮기기라도 하면 정말 낭패가 될 테니까.

지원 및 보조라는 명목하에 관리자 한둘은 모두 추가로 따라온 셈이다.

그리고 그 모든 국가의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당연히 자기가 대표라도 된 양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곳이 바로 미국이었다.

“지금 당신이 걱정하는 게 뭡니까? 서로 간의 연애입니까? 아니면 연애하다가 혹시 애인따라서 다른 나라로 갈까 봐서 입니까.”

“그, 그거야···.”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미국은 개방적인 국가 아닙니까? 대학교 기숙사에서도 남녀가 한 건물을 함께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건···!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녀를 구분하는 게 차별이라고 외치는 게 미국 아니었나?

신기한 건 되려 유교 문화권에 속해서 남녀 간의 차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거로 생각했던 한국이나 일본의 대표였다.

한국 대표야 어차피 내가 있으니 할 말이 없다고 해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하면 더한 곳이 아니었나?

“그리고 연애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모든 교육생은 이 아카데미를 나서는 순간까지 연애 금지이니까요. 이에 대한 자세한 규정은 추후 따로 공지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규정을 어기는 순간, 절대 예외는 없을 겁니다.”

“잠깐···. 설마! 데이트 좀 했다고 퇴출한단 말입니까?!”

잘 아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진짜 뭘 착각하나 본데.

“당연히. 그리고 내가 지금 당신들을 불러서 이 안건에 대해 회의하자는 걸로 보입니까?”

이왕이면 좋게 이해시키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난 지금 새로 생긴 규정을 통보하는 겁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가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걱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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