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85화 (85/153)

귀환자 식당 85화.

붉은빛이 도는 갈색 머리의 여성.

메를린이 전화를 들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뭐? 쫓겨나?”

애지중지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공을 들여 가르쳤던 녀석이었다.

제멋대로에 다혈질적인 성격이 별로긴 했지만, 운동선수 출신답게 제법 재능이 있었던 녀석.

당연히 이번 아카데미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거둘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퇴출이라니.

심지어 아직 정식으로 수업을 시작하지도 않은 아카데미에서.

“···이진이 직접? 너, 거기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역시 내가 직접 갔어야 했나?’

하지만 아직은 이루를 보기가 조금 껄끄러웠다.

두 사람 사이에 뜨거운 사랑이나 애틋함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연애라는 게 그렇다.

딱히 무언가 특별한 일이 없었던 관계였더라도 만났다가 헤어지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런 경계선.

수화기 너머로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럴 리가 없을 거다.

이진이 간혹 다른 이들에게 본보기를 보일 겸 과한 처우를 내리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이 없는 사람을 고르진 않는다.

“그만 징징거려. 사내새끼가 쪽팔리지도 않아?!”

무슨 짓을 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보나 마나 우월의식에 젖어 자기 잘났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 깔아뭉개려다 혼쭐이 난 거겠지.

“일단 기다려.”

메를린은 고민 끝에 결국 결정을 내렸다.

이 녀석이 확실히 문제이긴 하지만, 재능은 뛰어나다.

그래서 더욱 내칠 수가 없는 거다.

그렇게 내쳤다간 빌런이 되어 돌아올 게 너무 뻔히 보이니까···.

“어쩌긴 뭘 어째. ···어떻게든 거기 붙어있어. 내가 갈테니까.”

‘빌어먹을 이진 녀석.’

아카데미에서 교수가 되달라고 전화가 왔을 때가 떠올랐다.

싫다고 단칼에 거절했지만.

-알았어. 하지만 넌 결국 오게 될 거야.

능글맞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었지.

설마하니 이번 일이 그걸 노리고 벌인 것 같진 않지만, 왠지 녀석의 손바닥 위에 놓인 듯한 기분이 좀처럼 사그라지지를 않았다.

* * *

헌터 아카데미.

한국의 대마도에 만들어진 범국가적인 각성자 교육 전문 기관이자 헌터 양성 기관이다.

아카데미라는 건 딱히 어딘가의 장소나 건물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대마도 전체.

이 넓은 섬 전체가 곧 아카데미였다.

타테라야마라 불리던 산의 정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대마도를 둘러보기엔 적당한 높이.

아무도 없는 산의 정상.

그보다도 한참 위에서 내려다본 대마도는 아름다웠다.

온통 푸르른 산으로 가득한 곳은 제주도의 절반 정도의 크기이지만 인구수는 1/10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게 수십 년도 전, 대마도가 그나마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을 당시의 이야기.

극으로 치달은 양국 감정의 골이 깊어진 뒤, 대마도로 관광을 가는 한국인은 사라졌고 결국 대마도는 버려지다시피 한 섬이 되어버렸다.

끝까지 남아있는 일본인도 있긴 했지만, 그 수는 소수였고, 결국 대마도의 반환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사실 그리 큰 손해를 보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마도 대부분은 산지.

대부분은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마을과 관광지에서 비교적 멀쩡한 것들은 제외하고 대부분 건물은 허물어버렸다.

남아있는 가정집을 숙소로 써도 되겠지만, 그러면 형평성에 어긋나기도 하겠지만 결정적으로 마음이 해이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다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몬스터가 일반 시민을 공격하는데, 그 상황을 눈앞에 두고서도 도주해버린다면 헌터로서의 자격은 없다.

숭고한 희생을 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도덕적으로 생각해서 물러서지 않아야 하는 순간에 물러서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받쳐줄 수 있는 동료들과 굳건한 믿음.

“···이제 시작인가.”

이제부터 여기서 가르칠 것은 두 가지다.

각성자가 가진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목적이라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후웅-.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어?”

라미야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났지만 이미 마력의 공명을 눈치채고 있었으니 놀라진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모습을 드러낼 사람이 여기에 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 그 시절의 우리도 어떻게든 살아남았잖아. 거기다 이번엔 그런 우리들이 미리 교육도 해주는데 뭘. 그때보다야 훨씬 좋은 조건에서 시작하는 거 아냐?”

훗-.

하긴 그것도 그렇다.

어떤 식으로든 적응을 해나가겠지.

설사 우리가 없다 해도 말이다.

“그보다, 이루가 찾아.”

“날?”

“할 말이 있는 눈치던데?”

“···알았어.”

왠지 이 장면을 조금 더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안타깝지만 제대로 된 훈련을 시작하면 평범한 산지는 대부분 사라져버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또 자연을 파괴하는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갑자기 퇴출이라니? 독일 정부 측에서 지금 항의가 장난 아니라고.”

이루가 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든다.

보자고 한 이유가 이거였나?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질 않네.

그런데, 이 녀석이 지금 이렇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게 독일 정부의 항의가 무서워서인가?

“메를린이 온다고 했구나?”

“···진짜, 얄미운 거 알지? 뭐야, 그럼 메를린 오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야?”

그럴 리가 있나.

결정적으로 난 그 녀석이 독일에서 왔다는 이야기 자체를 지금 처음 들었는데.

“그건 아니고. 그런데, 독일 정부에서 항의하다니?”

“그야 당연하지 않겠어? 자기들 딴에 거르고 걸러서 최고라고 생각한 사람을 보냈을 텐데, 훈련 한 번 못 받아보고 쫓겨나게 생겼다고 하면 누구라도 화나지.”

“···하. 기가 막히는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라고 생각한다더니, 그 말이 정확하네.

애초에 난 다른 나라의 각성자들까지 떠맡을 생각은 없었다.

처음엔 그저 도진이처럼 한두 명이나 가르쳐볼까 생각을···.

아니,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가르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없었지.

다만 흘러가는 상황이 조금 위급해 보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대비책이 필요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그저 한국인 각성자 몇만 가르쳤어도 충분한 일이었다.

그게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고, 그럼 이왕 아카데미를 시작하는 데다 일본 훈련생을 받게 되었으니 겸사겸사해서 베푼다는 생각으로 한 것인데.

떡잎이 썩은 녀석이 있길래 퇴출하라 했더니, 화를 내?

물론 독일에서도 상당히 큰 비용을 냈을 거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면 돌아가면 그만이다.

“자, 잠깐만! 지금 뭐 하려고?”

내가 전화기를 꺼내자 이루가 불안한 듯 물어왔다.

“독일 애들 전부 다 쫓아내려고.”

벌컥-!

“잠깐!”

“···메, 메를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설마, 라미야?”

“이럴 것 같아서 내가 부탁 좀 했지. 진, 지금 그게 무슨 소리지? 우리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보낸 애들이야. 이렇게 마음대로 돌려보내겠다고 하는 건 아니지.”

“대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뭐?”

우리는 돌아온 뒤에 어떤 식으로든 정부와 엮였다.

가진 능력의 대단함을 넘어,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30년 만에 살아 돌아왔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래, 충분히 이해한다.

나야 그저 식당이나 하나 차려서 남은 인생은 취미로 요리나 하면서 살 생각이었다.

그러다 내게 조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잘해주고 싶었다.

아마 세상에 진정으로 홀로 된 사람만이 알 거다.

아는 사람조차 없는 낯선 이세계에 떨어졌는데 그곳에서 가족을 만난 기분이랄까?

뭐든 해줄 수 있었다.

아이들이 힘들게 살아왔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그래서 더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하고 싶어도 못 했던 것들, 참고 인내하며 살아온 아이들이 이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모든 걸 하게 해주고 싶었다.

몬스터? 게이트?

아무리 튀어나와도 사실 별 상관없다.

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 한 몸 지킬 자신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연이와 시은이는?

내가 항상 붙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라 불안했다.

아카데미를 만들어 각성자들을 훈련시키려는 이유는 다른 거창한 게 아니다.

지구 평화? 인류 보호?

그까짓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래도 이왕 하는 김에.

그래, 어차피 하는 거 다른 나라 애들도 좀 안전하면 좋겠지.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시작한 거다.

난 그저 내가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러고 있지만, 다른 녀석들은 어떨까?

하밀은 아예 미국 권력의 중심에 다가갔다.

헌터 연합인지를 만들고 독일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각성자들을 규합하려고 한다.

헌터 연합이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왕? 비교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을 정도의 권력을 쥐게 될 거다.

헌터들은 연합의 허가가 있어야 게이트를 들어갈 수 있게 될 거고, 나라에서는 게이트 공략을 연합에 의뢰하게 된다.

국가를 아득히 초월하는 막강한 권력 집단이 태어나는 셈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최후의 게이트에서 마왕과의 일전을 앞두고 거의 꿈처럼 내뱉던 희망 사항이었다.

그래··· 그 안에 들어갔던 우리는 정말로 인류를 위해 희생할 각오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당시에는 말이다.

“권력이 그렇게 달콤하던가?”

“···그런 거 아냐. 넘겨짚지 마.”

“아니라고? 하밀 녀석이 왜 날 헌터 연합 의장으로 내세웠는지, 내 생각을 말해 줄까?”

나를 포함한 7명.

전 세계에서 오직 7명만 알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은 바로 내 능력이다.

정확하게는 내가 가진 권능의 힘.

아마 하밀은 생각했겠지.

내가 있는 한, 세계 최강의 자리는 빼앗을 수 없을 거라고.

그래서 만들어낸 게 바로 연합이다.

힘으로 최강의 자리에 앉지 못할 바엔, 권력으로라도 최강자가 되겠다?

하지만 연합을 만들어도 결국 내가 있는 한 모래사장에 쌓은 성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했을 거다.

누군가가 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단체를 만들기라도 한다면 대세는 금방 기울어질 것을 본인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날 연합의 의장으로 세우려고 한 거겠지.

“난 어차피 그런 일에 나설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밀의 성격으로 그 정도 앞을 예상하는 건 일도 아니지.

내 분석에 메를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너무 정확하게 짚어서 할 말이 없는 건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운영 자체는 이루가 전부 맡아서 하기로 했거든.”

“···근데 왜 이번 일에는 간섭하는 건데? 그럼 이것도 이루의 판단에 맡기면 되잖아. 안 그래?”

“맞아. 정말 그럴 생각이었어. 그런데 방금 그 생각이 좀 변했어.”

“···변하다니?”

그래. 아무래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분명 그런 마음만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의 행태를 보고, 지금 이 상황까지 되니 내가 뭘 잘못 생각했는지 알 것 같다.

“그 헌터 연합 의장이라는 거, 한 번 해보려고.”

“···갑자기 왜?”

난 시연이와 시은이가 제대로 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해외여행도 다니고,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언젠가는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기회가 된다면 아이도 낳으면 좋겠지.

그리고 그 아이 역시도 자라나 행복한 세상에서 살길 바란다.

그러자면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지금 세상에서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 시작은 바로 아카데미다.

“왜냐면 인성이 삐뚤어진 녀석이 힘을 갖게 두지 않아야 제대로 된 세상이 올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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