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84화 (84/153)

귀환자 식당 84화.

집안 전체가 아침부터 분주했다.

하루의 휴식을 마치고, 오늘은 대마도로 가야 하는 날.

-뭐야! 나 혼자 여기 보내고선, 다들 내일 온다고?!

어제 저녁 일본 훈련생들을 데리고 먼저 도착한 이루의 괴성에 가까운 투덜거림이 아니더라도, 오늘은 일찍 출발할 예정이었다.

학장이라는 직함을 받아놓고서 이제야 처음으로 가는 게 사실 잘못이기도 하고.

“라미야, 대마도는 어때? 잘 돼 있어?”

“그래. 짧은 시간이었는데, 준비 잘 해놨더라.”

“다행이네. 혹시나 전 세계적으로 망신당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솔직히 그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무슨 호텔처럼 해놨던데?”

그야 숙소 대부분이 대마도가 관광 산업으로 먹고살던 시절 지어진 호텔들을 보수한 것이니까.

그래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노후가 많이 됐을 텐데.

제법 신경을 쓴 모양이다.

적어도 30년은 지났을 텐데, 설마하니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우웅-.

마침 기다렸다는 듯 울리는 전화.

안정민이었다.

“그래. 그러잖아도 지금 가려던 참인데···.

-그러셨군요. 그럼 공항에 전화해서 비행기를 준비해두라고 할까요?

“아니, 괜찮아. 우린 라미야랑 갈 거니까.”

-아아-. 하긴··· 그리고 선생님.

비행기를 마련해야 하나 싶어서 전화를 한 줄 알았더니, 다른 용무도 있었나 보다.

-바바리안 코퍼레이션이라고 혹시 기억하십니까?

이름이 독특하기도 하고, 불리하다 싶은 상황이 되자 빠르게 손을 떼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기억이 난다.

-갑자기 거긴 왜?

“어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바바리안의 커트 스로니언 이사요.”

다국적 공룡 기업.

그런 회사에서도 실세라 불리는 이사가 직접 움직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야 하겠지만···.

“내가 신경 써야 하나?”

-아닙니다. 이번에는 저희 선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대마도에서 마주치거나 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린 겁니다.

“그자가 대마도에? 어째서?”

-미국에서 각성자 지원하는 공식 후원 기업이 바바리안입니다. 이번에도 미국 교육생들이 지낼 숙소와 훈련장의 상태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명목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그 정도야 다른 사람을 보내도 충분한 일.

이사가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겠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란 이야기네.”

-네. 아무래도 일전의 게이트 생성 장치에 아직 눈독을 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그것 때문은 아닐 거다.”

그 정도로 멍청할 리가 없다.

게다가 미국에서 왔다면 하밀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나와 적대하게 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 그걸 두고 볼 녀석도 아니고.

-혹시 의심스러운 부분이라도···.

“아니. 아직은.”

그전까지 한국과는 이렇다 할 접점이라곤 없던 회사였다.

최근 들어온 이유가 삼영 그룹에서 만든 게이트 생성 장치 때문이었는데, 설마 아직도 그걸 염두에 두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번엔 다른 이유겠지.

마력 슈트나, 수중 호흡기 같은 것들은 제법 유용해 보였으니까.

그런데 대체 누굴까.

그런 엄청난 물건을 만들었던 인물은?

“흠. 나중에 다시 만나면 한 번 물어봐야겠네.”

“응? 무슨 소리야? 뭘 물어봐?”

“아니야. 그런 게 있어. 그나저나··· 이 정도면 갈 준비는 다 된 건가?”

사실 이 정도면 이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다.

커다란 짐가방만 4개에 시은이, 시연이에 네스티와 라미야.

거기에 나까지.

“괜찮겠어?”

솔직히 난 라미야의 능력 한계치가 어디까지인지 잘 모른다.

다른 귀환자들에 비하면 나는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다지 유명한 헌터는 아니었으니까.

이미 당시에 나를 제외한 모두는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 1, 2위에 이름을 올렸던 강자들이었다.

50명이 넘는 헌터들이 들어간 게이트에서 어쩌면 내가 가장 약했을지도 모른다.

나만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아마 난 살아나오지 못했을 거다.

게이트에 들어갈 당시에 나보다 훨씬 강했던 이들이 숱하게 죽어 나갔으니까.

···그래서 내가 강해질 수 있었지만.

이제 와 죽은 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만약 내가 그들의 힘을 흡수하지 못했다면 아무도 마왕을 막아내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

내가 되도록 많은 이들을 지키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각성자들의 훈련 기관을 만드는 건.

어쩌면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생각을 또 그렇게 해? 당연히 괜찮지. 거리가 멀면 힘들지 몰라도, 한국 안에서야 어디로 가든 거기서 거기잖아.”

“···크흠.”

“왜? 아, 아니··· 내가 한국이 작다고 무시하는 게 아니고.”

당황하기는.

“시연이랑 시은이도 준비 다 된거지?”

“···네!”

“응응!”

이 두 사람은 과연 알고 있을까?

라미야의 능력보다 두 사람 스스로가 가진 능력이 더 귀하고 독보적이라는 걸.

공간 조작계 각성자도 분명 희귀하긴 하지만, 미래를 보는 능력은 한 명뿐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시연이 혼자일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정도로 귀한 능력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심지어 정확히 어떤 계열인지조차도 모르는 시은이의 능력은 또 어떤가.

아직은 의심 정도의 단계이지만, 아마도 시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언니는 미래, 동생은 과거라.

잘 맞는 듯 하면서도 성격이 정반대인 자매와 너무 잘 어울리는 능력이 아닌가.

하긴, 따지고 보면 나도 결국 유일무이한 능력이지.

일부이긴 하지만 죽은 각성자의 힘을 흡수할 수 있다니···.

만약 훨씬 이전에 다른 누군가가 알기라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만약 그랬다면 절대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지.

이런 찜찜한 능력을 가진 이와 누가 게이트에 들어가는 걸 반길까.

막말로 뒤에서 칼을 꽂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삼촌···. 저 너무 떨려요.”

“저도!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막 빛에 휩싸여서 몸이 분자 단위로 나뉘는 기분이 들고 그래요?”

몸이 분자 단위로 나뉘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아니, 그게 무슨 기분인지는 알고?

“음···. 그냥 잠깐 몸이 떠오르는 것 같다 생각이 드는 순간 장소가 바뀌어 있을 거야.”

빛에 휩싸이긴 하지만···.

솔직히 나도 어떤 방식으로 텔레포트가 이뤄지는지는 모르겠는데.

“하긴. 라미야, 나도 갑자기 궁금해지네. 텔레포트는 대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거야?”

“뭐야. 몇 번이나 경험해봤으면서 그것도 몰랐어?”

뭐,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으니까.

“뭐, 알려준다고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의기양양해진 듯한 표정이 된 라미야.

“텔레포트는 보통 공간 조작 계열 능력자가 이용하지? 물론 그중에서도 상위 몇 퍼센트뿐이고, 이렇게 많은 양을 옮기는 게 가능한 건···.”

크흠.

지금 여기서 네 자랑은 하지 않아도 돼.

나는 웃으며 눈으로 그렇게 말해줬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단하다는 걸 아는데, 말로 꺼내면 오히려 반감되는 느낌이니까.

“쉽게 말하면 순간적으로 공간과 공간을 겹치는 거야.”

“···공간을 겹친다고?”

“그래. 게이트가 차원과 차원 사이에 구멍을 뚫는 개념이라는 건 알지?”

“그래··· 그건 많이 들었으니까.”

어딘가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세상.

게이트는 그런 두 세상에 구멍을 뚫어 이어지는 통로라고 했다.

물론 그저 ‘아, 그렇구나.’라고 이해할 뿐이지 이걸 깊게 들어가서 차원 에너지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지루한 설명까지는 듣지 않는다.

듣는다고 해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

“그래. 게이트는 공간에 구멍이 생긴 거니까 그 구멍을 유지하는 힘이 존재하면 사라지지 않지. 하지만 텔레포트는 유지하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공간을 접었다가 펴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공간이란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른 물체의 이동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편할 거야.”

아니···. 전혀 편하지 않은데.

어쩜 이렇게 설명을 못 하나 싶어서 시연이와 시은이를 돌아봤는데.

“언니 설마 지금 4차원 시공간 연속체가 실재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머, 그걸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 풀어서 말해봤는데. 금방 알아들었네?”

“그거 상대성 이론에 나오는 거 맞죠?”

“정확히 말하면 특수 상대성 이론이지만, 맞지?”

음.

나는 그냥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는 게 속 편할 것 같다.

공간이동이라··· 분명 편할 것 같긴 한데.

내가 배우긴 조금 힘들어 보이네.

“아마, 진이라면 텔레포트를 하는 것도 가능할걸? 물론 배워야겠지만.”

“···나중에.”

아주 예전에, 안정민 과장과 이야기하면서 비슷한 단어가 나왔던 것 같은데.

“음··· 사건의 지평선?”

“뭐야. 진, 그런 것도 알고 있었어? 조금 다시 봤는데?”

“···그것도 시공간과 관련이 있는 건가?”

“맞아. 사실 공간이라는 건 시간과 따로 놓고 볼 수가 없는 개념이거든. 결국 시간과 공간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된 거니까.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건 그 경계를 나타내는 말이고.”

모르겠다.

어쩌면 게이트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처음부터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닐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얽혀버린 시간과 공간.

그 안을 넘나드는 각성자들과 몬스터들.

“···일단 가자.”

더 이상 생각했다간 머리가 아파질 것 같다.

오오오-!

꺄아!

몸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비명이 가볍게 울렸다.

* * *

안전을 위해서 조금 널찍한 공터로 고른 건데, 하필이면 여기 모여있을 줄이야.

이미 도착한 각국의 각성자들이 모인 곳 한가운데.

하늘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뚝 떨어졌으니 놀랄 법도 한데, 그래도 각성자들이라고 크게 놀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그러게. 꼭 싸움이라도 하려고 모인 것 같네?”

나도, 라미야도.

인상이 절로 찡그려지는 분위기.

훈련장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흰색 피부를 가진 백인들.

그리고 한쪽에는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시아인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정도.

여기에 그들까지 껴서 3파전이라도 되었으면 정말 화가 치밀었을 것 같으니까.

“···뭐 하는 짓들이지? 이러자고 모인 게 아닐 텐데?”

내 서늘한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서는 인물이 하나.

딱 보아하니 백인들 사이에서 제법 지지를 얻고 있는 인물인 듯 보였다.

덩치와 골격으로 봤을 때는 분명 유럽인이다.

“이봐, 당신은 뭐야!”

머리가 좋은 것 같지도 않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누군지를 굳이 들어야 알 정도로 눈치가 없는 거라면.

“이, 이봐. 잠깐···.”

옆에 있던 이들이 얼른 말리려고 나서보지만.

“넌 퇴출이다. 당장 짐 싸서 돌아가.”

“무, 무슨 개 소리야! 내가 여길 어떻게 왔는데!”

어떻게 왔을까.

아마 어느 정도의 선발 시험은 치렀을 거다.

어쨌든 나라의 대표로 오는 것도 있지만, 어디나 그렇듯 ‘1기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은 제법 탐이 나는 것이니까.

제법 많은 각성자가 지원했을 테고, 나라별로 각자의 기준에 맞춰 선발 시험을 치르고 왔겠지.

지금 여기서 자기가 마치 유럽의 대표라도 되는 것처럼 으스대는 녀석은 그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을 테고.

“나머진 지금 즉시 해산한다. 10초 후에도 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면 역시 이 녀석과 함께 집으로 가야 할 거야.”

명령을 듣지 않아서 남아있든.

10초 내로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남아있든.

전자라면 괘씸죄, 후자라면 능력 부족으로 퇴출이다.

“···자, 잠깐···!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억울한가?

그래, 표정을 보니 억울하네.

상황상 억울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이 녀석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여기가 ‘아카데미’라고 해서 무슨 학교나 수련장 같은 곳으로 생각하고 온 모양인데.

여기는 ‘헌터 아카데미’.

인간을 한 손으로 찢어 죽일 수 있는 괴물들과 맞서서 싸우며 인류를 지켜야 할 이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너, 헌터에게 있어서 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그야 물론, 몬스터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강한···!”

“틀렸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이 녀석을 여기서 쫓아내는 이유다.

“헌터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협동심이다. 너는 이곳에 온 지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파벌을 만들고, 인종과 국가 간의 분쟁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몬스터와 싸우는데, 인간 사이의 불화가 도움이 될 리 없다.

서로 돕지는 못할망정, 서로 간에 아주 작은 불씨라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뭉쳐봐야 소용없다.

나는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고, 이제 다시는 그런 꼴을 볼 마음이 없다.

“지금 네가 머릿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

원망, 억울함, 분노, 간절함까지.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에게 다시 말했다.

“그 모든 걸 뿌리째 바꾸지 않으면 너는 앞으로의 세상에서 절대 살아남지 못할 거야. 지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거든, 다음에도 너에겐 기회가 없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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