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83화 (83/153)

귀환자 식당 83화.

다급한 발걸음.

안정민은 게이트 관리국장실로 향해 달렸다.

손에는 지금 막 전달받은 기밀 서류가 들린 채로.

벌컥-!

노크도 없이 열어젖힌 문.

“···가지고 왔나?”

“네! 국장님.”

국정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

전 게이트 관리국장이자 현재는 국정원장인 장민국의 신임을 한 몸에 받던 3차장이었던 인물이자 안정민 과장의 직속 상사였던 박시훈 국장.

그는 안정민이 넘겨준 서류를 손에 들자마자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봉인을 뜯었다.

얼마 전까지는 자신과 차기 국정원장의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1차장에게 부탁하면서까지 얻은 기밀자료.

“역시 들어왔군. 당연히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진 않았지만···. 무슨 자신감이지? 이건 우리나라를 완전 호구로 보고 있기라도 한 건가?”

“어떻게 할까요? ···선생님께 알려야 할까요?”

박시훈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안경을 벗고선 콧잔등을 주물렀다.

역시나 알려야 할까?

분명 그게 가장 편하고 안전한 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에게 기댈 수는 없는 일.

“안 차장, 이번은 우리끼리 해보자. 어때?”

“좋습니다. 사실 저도 이제 부탁만 드리는 것도 민망해지려던 참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제가 더 기다렸던 말입니다.”

박시훈과 안정민이 마주 보고선 서로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 * *

후우···.

푸후우우-.

모처럼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시연은 결국 작업실로 꾸며둔 방의 문을 박차고 거실로 나왔다.

“도대체 뭔데, 차라리 그냥 속시원하게 말을 해.”

“···언니.”

“그래! 뭔데?”

“···후우. 아냐.”

시연은 결국 여기저기 물감이 묻은 작은 주먹을 꼭 쥐고선 소리를 질렀다.

“이시으으은!”

“아,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너 빨리 말 안 해?! 도대체 뭐가 고민인데 종일 한숨만 푹푹 내쉬는 거냐고. 이러다 빌딩 무너지겠다. 기집애야!”

“내가··· 한숨 쉬었어?

시연이가 기가 막힌다는 듯 웃고는, 시은이의 옆에 앉았다.

“자, 무슨 일인데···. 말 해봐.”

“언니. ···나 대학교 꼭 가야 하는 걸까?”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어려서부터 의사 되는 게 꿈이었잖아. 그 어려운 학교에 합격도 해놓고 가야 하냐니. 당연히 가야지.”

“아니. 그래도 그렇잖아. 이제 대학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 게 꼭 답인 세상은 아니잖아. 이왕 이런 힘도 생겼으니까, 차라리···.”

딱-.

“아야! 왜 때려.”

“···이 바보야. 삼촌이 대체 뭐 때문에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시은이는 이마에 한 손을 데고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 시연이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않으니까, 그녀 역시 이미 어른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지 않나.

모른다고 말하면 어른이 되었다고 할 자격도 없는 셈이다.

“···알아. 나도 안다. 뭐! 하지만 그래서 더 그런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알고 있다면서 왜 그런 생각을 왜 해.”

“나도 삼촌한테 도움이 되고 싶단 말이야. 솔직히 언니랑 나 아니었으면 삼촌은 훨씬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 거 아냐···.”

시연은 동생의 말에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저 삼촌이니까, 그래서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건가.

설마, 지금 우리의 존재가 삼촌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건가?

“두 사람이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너무 섭섭한데.”

“삼촌?!”

“러, 러시아에 계신 거 아니었어요? 아까 삼촌이 지금 러시아에 가셨다고 막 뉴스에 나오고 그러던데···.”

“급한 일 처리할 게 있어서 좀 서둘러서 돌아왔어.”

“···아.”

빨리 돌아오고 싶다고 해서 돌아올 수 있는 곳인가?

다른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삼촌이 하는 말이라 어째선지 그냥 납득이 되어버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요즘 내가 너희 둘 때문에 얼마나 행복한데.”

“하지만 삼촌은 맨날 일만하고···. 우리 아니면 그럴 필요도 없을 텐데.”

시은이의 말에 이진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순간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일만 한다? 정말 그렇게 보이는 건가?

물론 어지간해서는 가게를 닫지 않으려고 하긴 하지만,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95%정도는 취미로 시작한 가게.

음식이라곤 게이트 안에서 몬스터를 재료로 해본 게 거의 전부라 사실 아직도 무슨 음식을 하려면 인터넷을 뒤져야 한다.

여러 사람의 레시피를 비교해보고,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조합을 해본 뒤에서야 겨우 조리를 하는 게 과연 자신의 실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 레시피를 올린 사람들이 직접 하는 요리보다 맛있다곤 감히 장담하기 어렵다.

그저 하고 싶어서.

재미로 운영하는 가게라 큰 수익을 생각하진 않기 때문에 그나마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써서야 겨우 사람들에게 맛이 있다는 평을 듣는 정도.

그런데 설마하니 두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보일 줄이야.

이진은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소파에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고 앉았다.

“시은이도 시연이도,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삼촌은 지금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면서 살고 있거든.”

“···식당하는 게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시은이가 울먹거리면서 툴툴거렸다.

그래, 아직은 이해할 수 없겠지.

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건 그저 재미있게 놀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거라고 생각될 테니까.

하지만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란 의미는 간혹 다르게 다가간다.

가족을 지키는 일.

사랑하는 사람을 웃음 짓게 하는 일 같은 것들.

스스로가 느끼는 즐거움이라는 감정보단, 주변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일이 행복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거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알기에 아직 시은이나 시연이는 어리다.

굳이 벌써 그런 걸 알 필요도 없고, 알게 하고 싶지 않다.

난 지금 두 사람 오롯이 스스로의 즐거움만 찾길 바란다.

이기적일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걸 보고.

“삼촌이 식당을 좋아하는 건 그곳이 너희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 좋은 거야.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마. 삼촌은 정말로 세상에서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이 없었으니까. 알겠지?”

시은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시연이는 가만히 날 바라봤다.

뭔가 애절한 눈빛을 가득 담아.

“고마워요. 삼촌···.”

“고맙긴. 가족끼리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치-.”

난 일어나서 울먹이는 시은이의 엉덩이를 걷어차 줬다.

“의사가 된다는 녀석이 대학교 합격했다고 이렇게 마냥 놀고만 있으면 어떡해. 이래서 나중에 환자들이 믿고 진찰해달라고 하겠어?”

“저 밤마다 맨날맨날 공부하거든요?! 치- 언니는요!”

“시연이는···. 뭐, 알아서 잘하니까.”

“와-! 치사해! 삼촌은 맨날 언니만 이뻐하고!”

약간 과장된 시은이의 행동 덕에 어색한 분위기가 살짝 풀어지자, 방에서 라미야가 나왔다.

이미 짐을 정리한 모습으로, 손에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들려있었다.

“···진, 좋아 보이네.”

“그래? 고마워.”

라미야의 표정은 어딘가 오묘했다.

부러운 듯 하면서도 조금은 안쓰럽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진은 언제 내려올 거야? ···오긴 올 거지?”

“가야지. 그래도 명색이 아카데미 학장인데.”

억지로 떠맡긴 했지만, 이왕 결정된 이상에야 기본적인 의무는 할 생각이다.

이미 이루나, 라미야, 거기에 유리코프까지 합류한다는 뉴스가 전 세계로 퍼지고 있을 테니 굳이 내 이름까지 보태지 않아도 되겠지만.

하밀 녀석이 의장국을 굳이 한국에 맡기려 했다는 사실 이후로 이미 대부분 사람들은 이진이라는 이름을 7명의 귀환자 중에서 가장 위에 올려놓길 주저하지 않았다.

거기다 거의 범국가적인 기관이 되어버린 아카데미의 학장까지 되었으니 이제는 나서지 않으려야 그럴 수가 없게 돼버렸다.

“근데 이루가 부학장이면··· 나는?”

“···응?”

학장과 부학장.

그 외의 직책도 만들어야 하는 건가, 설마?

“그런 게 굳이 필요해? 어차피 너희들이 내 말을 들을 사람들도 아니고···. 하지만 이거 하나는 반드시 지켜야 해. 수업은 공평하게. 너희들 마음에 든다고, 혹은 재능이 있어 보인다고 편애하거나 따로 몰래 교육하거나 하면 안 된다는 말이야.”

“······당연하지.”

거짓말.

저 녀석 분명히 그럴 생각이었다.

내가 너희들을 모를까 봐?

물론 그렇게 둘 생각은 없다.

“라미야, 너도 표면적으론 헌터 아카데미의 교수야. 선은 분명히 지켜야 해. 만약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가.”

“···나한테 너무 냉정한 거 아냐? 섭섭하게.”

“조금만 고생하란 소리야. 어쨌든 다음 달은 좀 무리겠지만, 세 달 안에는 네 조수로 쓸만한 녀석 하나 보낼 수 있을 테니까.”

“조수, 누구? 지금 네가 가르치고 있는 꼬맹이?”

교육받아야 하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정작 교육을 할 사람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

그나마 도진이나 덕윤이가 이루와 라미야의 뒤를 받쳐줘야 한다.

아마 한동안은 정말 정신없이 바빠질 거다.

이미 일본에서 대마도로 곧장 출발한 이루도 곧 도착할 시간이고.

오늘 당장은 아니더라도 한 번은 가야 하는 게 맞다.

* * *

아침부터 워낙 바쁘게 움직였더니 허기가 진다.

필리핀부터 러시아까지, 거의 지구 반 바퀴를 돌았으니 마력 소모도 제법 되고.

“시연아, 거기 간장 좀.”

“여기요.”

쪼륵-.

닭가슴살과 감자가 간장 양념에 조려지고 있는데, 라미야가 슬쩍 다가오더니 어깨 너머로 팬을 힐끔 쳐다봤다.

“우리나라에도 이거랑 비슷한 음식 있는데, 사람 먹고사는 게 다 비슷비슷한가 봐. 그치?”

“···근데, 넌 언제 가려고?”

“응? 밥 먹고 갈 거야. 어차피 다 모이려면 아직 시간 좀 남았잖아. 먼저 가서 뭐 해. 거기 있는 것도 없다며.”

하기야, 급하게 불러 모으긴 하긴 했지만 거리가 먼 곳도 있다.

미국 같은 곳은 아무리 서둘러도 내일이나 돼야 도착할 정도고, 아르헨티나 같은 곳은 더 멀다.

조금 길게 생각한다면 3일은 있어야 약속된 인원이 전부 모일까.

라미야의 말처럼 대마도에는 아무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숙소와 훈련을 위한 연무장.

그 외에 여가생활을 위한 일체의 것은 준비해두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나름 중요한 인재들을 모아 훈련을 시키는 곳인데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곳에 도착한 이후 분명 그런 반발이 있을 거라는 것도 예상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정도의 훈련을 버텨야 한다는 말과 똑같다.

사회와 완벽하게 차단되는 생활.

조금 잔인하다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오로지 훈련과 전투만 떠올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다.

물론 여유가 있었다면 나도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당장 하루가 멀다고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수백, 수천 단위로 죽어 나가는 마당에 그런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그나마 몇몇 국가는 괜찮을지도 모르지.

직접 확인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녀석들이 아무런 대비도 해두지 않고서 여길 올 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대마도에 세워진 헌터 아카데미처럼 본격적은 아니었겠지만, 분명 재능이 있는 각성자 몇 명은 훈련을 시켰을 거다.

라미야가 사우디에 잠깐 다녀온 뒤로 제법 평온하게 변한 것도 그런 맥락일테고.

“삼촌, 내일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대마도에?”

“네!”

궁금한 마음은 이해하는데, 굳이?

“근데 거기 진짜 아무것도 없는···. 아, 도진이때문에?”

“그게 아니라···.”

“그럼 왜?”

“그···. 테, 텔레포트라는 거 한 번 타보고 싶어서···.”

너무 시은이 나이대에 맞는 소망이라서 그런지.

왠지 더 웃음이 났다.

“라미야?”

“충분히 가능해. 거리도 가깝고··· 네 옆에 있으면 마력 회복도 빠르니까. 그동안 여기서 지낸 방값이라고 해두지 뭐.”

나는 시은이를 돌아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시은이도 들었고.

“뭐, 그렇다네?”

꺄아-!

텔레포트라.

확실히 일반적으론 평생을 살아가도 경험하기 힘든 일이긴 하지.

“···시연이도 갈래?”

시은이를 살짝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길래 넌지시 물었더니, 얼굴이 달아오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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