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81화.
“기자 생활 20년 만에 이렇게 많은 기자가 모인 건 처음이네.”
“선배님이 처음일 정도라면 정말 엄청나긴 한가 보네요.”
“어림잡아도 300명은 될 것 같은데. 당연한 거 아냐?’
“전 세계 언론이란 언론에서는 죄다 보낸 거 같죠?”
오대기는 슬쩍 미소 지으며 턱을 문질렀다.
“당연하겠지. 오늘 도착하는 사람 중에서 몇몇은 분명 몇 년 내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될 게 뻔하니까. 최대한 자료를 많이 확보해둬야지. 나중에는 멀찍이서 사진을 찍는 것도 힘들어질 사람이 될지도 모르잖아? 거기다 만약 인터뷰라도 잘 따봐.”
“두고두고 귀한 자료가 되겠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너도 눈 부릅뜨고 잘 봐. 이럴 때야말로 기자의 감이라는 게 뭔지 보여주는 자리니까. 뭔가 느낌이 온다 싶으면 일단 마이크부터 들이밀고 보란 말이야. 알겠어?”
“네!”
“좋아···. 일단 처음 오는 나라가 어디지?”
“처음은 인도네시아네요. 아무래도 가까워서 금방 오는 모양입니다.”
“가깝기로 따지면 일본이나 북한이 먼저 왔어야지.”
“북한에서는 겨우 3명만 온다고 하던데요. 뭐가 그렇게 비밀스러운지, 새벽에 벌써 판문점 지나서 들어왔다는 말도 있고···. 일본은 올 사람이 많아서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거겠죠.”
겨우 3명이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헌터 아카데미에 교육생을 보내는 국가에서 일 인당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했다고 들었으니까.
가난한 북한으로서는 아마도 그게 한계였을 테지.
같은 한민족이라 좀 사정을 봐줬어도 되지 않냐는 말이 돌기도 했지만 누군가가 반대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누군가란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인물이고.
‘그 사람이 반대했다면 이야긴 끝난 거지 뭐···.’
지금 한국에서 헌터에 관련된 일에서 그가 반대하는 의견을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파바바밧-.
대마도 공항의 출국장 문이 열리자마자 무시무시한 속도로 눌러지는 셔터와 플래시.
그리고 이내 동남아시아 외형의 남녀가 빠져나왔다.
엄청난 취재 열기에 잠시 주춤하는 것 같았지만,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는 포토라인에 섰다.
총 8명.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최대한 당당하게 보이려 애쓰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다.
“와··· 인도네시아 여자들이 저렇게 이쁜 줄 처음 알았네요.”
“여자만 보이냐?”
“그야 전 남자니까요. 뭐··· 남자도 잘생기긴 했네요.”
“각성하면 다들 저렇게 된다더라.”
“진짜요? 뭔가 엄청 부러운데요? 앞으로 돈도 많이 벌 텐데, 외모까지 저렇게 된다니.”
“부러우면 너도 각성하던가.”
그는 선배의 말에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면서도 투덜거렸다.
“어? 비행기 또 내려오네요. 어떻게 하죠? 인터뷰 하실 거예요?”
“···지금 도착한 건 어디래?”
잘 결정해야 한다.
미래에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나라의 인터뷰도 상당히 중요하니까.
한 명을 인터뷰하면 준비하랴 뭣하랴, 필연적으로 한 두 나라는 건너뛸 수밖에 없다.
그중에 만약 재수 없게 일본이나 미국, 독일 같은 곳이 끼어있으면 보도 국장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까.
“비행기에 달린 국기가···. 필리핀이네요!”
“···필리핀? 음···.”
애매하게 되어버렸다.
사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이나, 사람들의 관심과는 조금 먼 곳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어차피 차례는 끝났네요. 8명 다 벌써 다른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 끝났어요.”
혹시 실수한 건가?
미국이나 독일을 기다리는 이유는 혹시나 그곳에 있는 귀환자가 함께 올까 싶어서이긴 하지만, 그들이 인터뷰에 응해줄 거라곤 장담할 수 없다.
이러다가 자칫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한 명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오대기는 결심을 굳혔다.
“안 되겠다. 필리핀 각성자 나오면 아무라도 붙잡고 일단 인터뷰 따고 보자.”
“네!”
아마 많은 수는 아닐 거다.
전 세계 각국에서 신청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고 들었지만, 대마도에 지어진 아카데미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는 법.
거기다 필리핀은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한 국가도 아니니 아마 많아야 인도네시아와 비슷하거나, 더 적은 수가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인터뷰를 따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기자들은 많으니 일단 붙잡아서 매달리고 봐야지.
그래도 명색이 한국의 뉴스 전문 채널 간판 기자인데.
‘···나온다.’
다시 연신 터지는 플래시를 뚫고, 오대기 기자는 일단 아무나 붙잡았다.
안에서 나오던 마른 체형의···.
‘이건 뭐야. 뭘 이렇게 꽁꽁 싸맸어.’
겨우 눈만 빼꼼히 보일 정도로 꽁꽁 가린···.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는 인물.
단순히 말라서가 아니라, 어딘가 음침하게까지 느껴지는 분위기는 확실히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뭔가 달랐다.
‘···망했다.’
일단 나오던 이 중에 아무나 붙잡은 것인데, 하필이면 이런 정체도 불분명한 이라니.
눈빛에서부터 귀찮음이 역력히 느껴지는 인물은 정체를 드러낼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이러면 인터뷰를 해도 큰 의미가 없지 않은가.
검은색으로 가려진 복면 사이로, 눈빛만큼이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뭐야.”
“저, 저기. 각성자시죠?! 인터뷰 좀 부탁드립니다!”
이미 필리핀에서 온 각성자들은 모두 다른 기자들에게 붙잡힌 상황.
오대기는 어쩔 수 없이 이 성별도 알기 힘든 각성자에게 매달려야만 했다.
“하아···.”
그리고 블랙은 지금 이 모든 상황이 귀찮았다.
* * *
처음에는 나도 그 녀석이 중증 대인기피증, 뭐 그런 거라 생각했었지.
심지어 게이트 안에서 몇 사람이 살아남지 않았을 때도 녀석은 철저하게 혼자였다.
다른 사람을 두려워한다기보단, 정말 모든 게 귀찮다는 듯한 눈빛.
늘 검은 복면을 쓰고 있고, 밥을 먹을 때만 잠시 내리는 것 같지만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밥도 늘 혼자 먹었으니까.
그나마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이 메를린 정도이려나?
아이러니하게도 탱커였던 메를린이 다치는 경우가 가장 빈번해서 블랙과 이야기를 나누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지.
그나마도 상처 부위에 대한 설명 같은 게 대부분이었지만.
홀로 세상 전체를 따돌리는 녀석.
내가 느낀 블랙은 그런 녀석이었다.
사람들을 피하는 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격리하려고 든다고 해야 할까.
그런 녀석이라 돌아온 직후에도 금세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나마 이야기를 나누던 메를린에게도 알리지 않은 행선지.
하지만 녀석이라면 아마 어디 무인도 같은 곳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만사를 귀찮다고 느끼는 녀석이 혼자서 자급자족할 리는 없다.
무인도긴 하되, 주변에서 물품을 조달할 수 있는 장소.
한 마디로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외딴섬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내가 마력 탐지에 자신이 있긴 하지만, 전 세계를 뒤질 생각은 없다.
그거야말로 무식한 짓이니까.
그래서 후보지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찾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오래 끌 것도 없이, 곧장 날아왔다.
도착했더니 여긴 되려 아직 해가 뜨기 전.
방금 일출을 보고 왔는데, 여기서도 또 보게 생겼네.
“여기 있었냐?”
“···어떻게 찾은 거야.”
“뭐, 처음부터 대강 이 근방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거든.”
7,0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국가.
그중에서 사람이 사는 곳은 1,000개도 되지 않는다.
마음먹고 숨어들면 사실상 찾는 게 불가능한 나라다.
덕분에 전 세계의 각종 범죄자들이 숨어들기로 유명하기도 하지.
물론 블랙 녀석이야 범죄자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고 싶은 곳이라면 이만한 곳이 없긴 하다.
“집은 지었네. 그래도?”
“···난 혼자 있고 싶은 거지, 원시생활을 하고 싶은 건 아니거든?”
“흠··· 그렇긴 하네. 근데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혼자 여기서 종일 혼자서 뭐해? 심심하지 않아?”
“전혀. 수영도 하고, 낚시도 하고, 하늘도 보고, 별도 보고. 중간중간 밥도 해 먹어야지, 할 게 얼마나 많은데.”
“하긴, 하루 세끼만 챙겨 먹어도 시간이 금방 가긴 하지.”
“그래서··· 여기는 대체 왜 온 건데?”
모르진 않을 텐데.
저렇게 멀쩡하게 집도 지어놨고, 보아하니 안테나 같은 것도 달려 있다.
저 녀석 말대로 그저 혼자 있는 게 좋을 뿐이지, 원시생활을 하는 건 아니니까.
“뻔하지. 네 도움이 필요해서 왔어.”
“···난 딱히 도와줄 게 없는데?”
“밖에서는 게이트가 다시 나타났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 상황이 이런데도 네가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해?”
말 몇 마디에 대뜸 나서지 않을 거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차라리 대인기피증 같은 거라면 낫겠는데.
이 녀석은 중증 귀차니즘이다.
만약 전문적인 병명이라도 있었다면 분명 불치병 수준의 중증.
“나랑 상관없잖아. 거기다 지난번 일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기도 하고. 이젠 그냥 쉬고 싶어.”
“···너, 그전에도 딱히 엄청 바쁘게 산 건 아니지 않아?”
“꼭 바쁘게 살았어야 쉬고 싶은 건 아니잖아.”
반박을 해야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네.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으니 결국 우기는 게 최선인가.
“그래도 가자.”
“···싫어.”
“거기에 너 지낼 곳도 마련해놨어. 장담하는데 여기보다 좋을 거야. 무인도지만 인터넷도 전화도 다 연결해놨고, 필요한 물건은 전화만 하면 언제든 가져다줄 거야.”
“······.”
옳지.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지만, 지금 저 표정은 분명 흥미가 생긴 거다.
“근데 여기서 나갈 땐 어떻게 하는 거지? 저기 있는 배 타고 가나?”
바닷가 한쪽에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는 보트 한 척.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동 보트는 그리 빨라 보이진 않는다.
“당연하지.”
“저거 타고 민다나오섬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나? 거긴 헬기 착륙장도 있어. 네가 부르기만 하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아마 1시간이면 서울에 데려다 줄 수 있을걸?”
“······.”
미끼는 확실히 물었다.
이제 당기기만 하면 된다.
“참, 이루랑 메를린이 헤어진 건 알지?”
“···들었어.”
“사실 뭐 두 사람이 제대로 연애를 한 건 아니니까, 당연한 결과였지. 안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못 속이지.
이 녀석이 메를린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 진즉에 눈치챘다.
그게 게이트를 들어가기 전부터인지, 들어간 뒤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루도 지금 한국에 와 있어. 알아?”
“들었어.”
“메를린한테?”
“···응.”
거의 끝나간다.
“아마 곧 메를린도 한국으로 올 거야.”
“메를린이? 하지만 독일은 어쩌고?”
낚시 릴을 감는 기분이 이런 건가.
짜릿한 손맛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메를린은 이루와 함께 아카데미에서 훈련생 교육을 담당하게 될 거야. 우선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 대부분이라, 교사진이 부족하거든. 거기에 하반기부터는 하밀이나 라미야도 이능력 각성자들 교육 담담할 거고. 아, 이루는 히로의 새 이름이야.”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푸드덕거리지 마.
이제 뜰채 안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이루랑 메를린이 다시 만나면··· 어찌 되려나.”
은지가 있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블랙 녀석이 은지의 존재를 알 린 없지?
“···헬기는 확실히 준비된 거지?”
“물론.”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여러 사람 가르칠 생각은 없어.”
“당연하지.”
힐러가 그렇게 넘쳐나는 줄 아냐.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데려오고 싶어도 당장은 올 사람이 없다.
그래도 점차 구색은 갖춰지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의 빠른 대응으로 필리핀 각성자 사이에 싫다는 블랙 녀석을 욱여넣었다.
실력 좋은 양호 선생님(?) 영입은 완료.
이제 학생주임 역할을 맡아줄 사람도 필요하겠지.
러시아로 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