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77화.
딱히 인생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평범한 가정에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부모님.
피를 나눌 정도까진 아니지만 제법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 몇.
그래.
지극하게도 평범하고 별것 없는 삶이었다.
살면서 두어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지방의 대학교에 들어가고, 친구들과 비슷한 시기에 군대를 다녀왔다.
여자도 몇인가 만나봤고, 다른 이들처럼 결국 성격 차이로 이별.
대학교를 졸업하면 아마도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될 거다.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천운이 따라준다면 대기업에 취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대리를 달고, 과장을 달고···.
나이가 들면 비슷한 조건의 여자를 만나서 아이도 낳게 되겠지.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회사에 인생의 절반을 바치고, 운이 좋다면 정년이 되어 퇴직을 하게 되겠지.
그 후에는 어쩌면 공기 좋은 곳으로 내려가 여생을 보내게 될까?
딱히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과연 저 말에 동의할까?
물론 이런 평탄한 인생에 불만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살아있으니 살아가는 인생.
그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최근 각성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며 정부는 오래전 폐지됐던 게이트 관리국의 부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특별한 능력을 각성하는, 일명 각성자들은 게이트 관리국에 필수적으로 등록을 해야 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얼마 전부터 갑자기 들려오기 시작한 말들.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진 게이트나 몬스터들에 대해서야 간혹 듣긴 했지만, 저런 뉴스가 나올 때도 그저 그러려니 했다.
왜냐면 자신이 전 인류의 0.1%도 되지 않는다는 각성자라는 특별한 존재가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저 자신과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몸속에서 조금씩 느껴지는 이질적인 힘.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느낌이 몸속을 돌아다니는 감각은 분명 그 이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생소한 것이었다.
‘···혹시 내가 진짜 각성자라도 된 건가?’
피식.
문득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게 뭔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조금 이러다 말겠거니 했으니까.
전역 후, 복학까지 몇 달의 시간이 붕 떠버린 시간.
그저 기다려도 되긴 하지만 용돈이나 조금 벌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의 구직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편의점, 피시방, 카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평범한 아르바이트를 둘러보던 강덕윤의 눈에 조금 독특한 아르바이트 공고가 들어왔다.
[빌런 멤버를 모집합니다.(장난 사절)]
“빌런? 참나, 별 이상한 아르바이트도 다 있네.”
그때 그냥 지나쳤어야 했다.
아니, 분명히 이전의 자신이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그런 공고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날따라 그 아르바이트 공고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생에 뭔가 자극이 되어 줄 것만 같은 기분.
딸칵-.
지나쳤어야 하는 공고를 누른 건···.
“그게 제 인생 최악의 실수였죠.”
흰색 죄수복.
가슴에는 노란색 견장이 달려있고, ‘3312’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는 강덕윤.
“결국 그 실수의 대가로 지금 여기 있는 거겠죠.”
특수 유리로 제작된 특별 면회실 안에 놓인 테이블.
그 건너편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래서 절 찾은 이유가 대체 뭔가요?”
“강덕윤. 만약 그 실수를 되돌릴 기회가 있다면, 그땐 어떻게 할 텐가.”
“뭐, 시간 회귀라도 시켜주는 겁니까?”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그리고 지나가 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쯤은 안다.
“미안하지만, 내게 그런 능력은 없다.”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설령 진정 그런 말도 안되는 능력을 있다고 한들, 자신에게 그런 일을 해줄 이유는 없으니까.
“절 놀리려고 오신 겁니까?”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나?”
테이블 위에 놓은 작은 명함 한장을 다시 내려다봤다.
게이트 관리국의 대응팀장.
안정민.
“어차피 전 앞으로 적어도 20년은 여기서 못 나가겠죠?”
“그럴지도 모르지.”
여기서도 뉴스는 보니까,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인지 정도는 안다.
그런 사람이 대체 왜 자신을 찾아 온 거지?
사실 그게 궁금해서 나온 자리기도 하다.
“진짜 시간을 돌려줄 수 있기라도 한 겁니까?”
각성자들이 있는 세상.
세상에는 별의별 희한한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그중에서는 시간을 돌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까?
“물론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힘을 가진 사람은 한 명 알고 있지.”
“···그런 게 진짜 가능하다고요?”
“물론 실제로 강덕윤 씨를 그때로 돌려보내 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건 불가능하죠.”
“이봐요!”
사람 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사람에게 썩은 동아줄을 가지고 장난치는 건 무슨 악취미인가.
“그분이라면 너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 정도는 줄 수있다는 말이다.”
“···그분?”
게이트 관리국이라면 아직은 아니지만, 곧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을 얻을 게 자명한 집단이다.
권력의 집성체가 될 집단의 중심에 있는 남자가 조심스럽게 지칭하는 ‘그분’이라는 건 과연 누굴까.
게이트 관리국의 국장?
아니면 자신의 죄를 사면할 힘을 가진 대통령?
“물론 선택은 너에게 달렸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을 거다.”
그건 상관없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진짜 여기서 나갈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맞은 편에 앉은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인다.
그 미소가 불안하긴 하지만, 분명 느낌이 온다.
이게 자기 인생에 있어 마지막 기회라는 게.
“수락하면 앞으로 강덕윤, 네 처우는 전적으로 그분의 의사에 따르게 된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아마 당분간은 식당에서 일을 좀 해야겠지.”
“······네?”
* * *
이루에게 연락이 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새해는 일본에서 지내고 돌아오겠다는 연락.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이야 나라마다 모두 다르니까.
우리야 음력을 주로 세지만, 일본인들은 신년이 중요하다.
게다가 떡국을 먹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신사라는 곳에 가서 동전을 던지거나 하지 않나.
그래서 이해했다.
도진이까지 빠져서 조금 바쁘긴 하지만 당장은 시연이도 있고.
또 무엇보다 이제 곧 새로운 일꾼 하나가 올 테니까.
“삼촌, 이게 우거지 맞죠?”
“응, 고마워. 거기 물에 담가줄래?
“네! 근데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우거지가 들어가니까··· 우거지갈비탕인가? 아! 아니면 우거지 된장국?”
“둘 다 아니야.”
김장하면서 겉의 푸른 잎을 떼어 삶은 뒤 말려둔 우거지.
겨울 찬 바람에 가게 뒤쪽에 널어둔 우거지들은 무척이나 맛있게 잘 말랐고, 오늘은 그걸 이용한 요리를 할 생각이다.
새해가 3일 남은 시점.
가게 앞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였고, 이제는 바람이 불면 옷깃을 여며야 하는 날씨가 되었다.
이런 날 생각나는 건 역시나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아닐까?
내가 아재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시연이 말처럼 갈비를 듬뿍 넣어 맑은 국물로 끓여낸 갈비탕도 좋고, 구수한 집된장을 풀어 우거지를 넣은 된장국도 좋지만.
그보단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조금 더 든든한 한 끼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생각한 음식이다.
“오늘 메뉴는 소고기국밥.”
“아-! 저, 알아요. 육개장 같은 거죠? 옛날에 할아버지가 가끔 해주셨던 건데.”
“그랬어?”
그게 정답이다.
굳이 말하자면 육개장과 소고기뭇국의 중간쯤 되는 음식.
정확한 레시피도 없는 데다, 지역별로 넣는 재료나 맛이 제각각이라 하는 사람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 음식이기도 하다.
어젯밤부터 핏물을 빼고 있는 소고기들.
피가 빠진 물을 몇 차례나 갈았더니 이제 핏기가 완전히 사라진 고깃덩어리들을 썰면서 시간을 확인해봤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네? 누가 와요?”
시연이도 학원을 끝내고 와서 일손을 돕기 시작한 시간이니 벌써 12시.
-아침에 이감 절차를 밟아서 데리고 나올 예정입니다. 아마 가게에 도착하면 정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시장에서 난동을 부렸던 세 명의 각성자들 중에서 한 명이 오고 있다.
그중에서 유독 한 녀석에게 시선이 갔었다.
하지만 단지 능력이 조금 귀하다고 해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다른 각성자를 말리던 딱 한 녀석이어서 기억에 남은 것 뿐이다.
심성이 나쁜 녀석은 아니었을 거다.
어쩌다 보니 그런 일에 휘말린, 그저 정말 재수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저 한 번 정도는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달까?
그래서 거의 즉흥적으로 결정했던 건데, 용케 그 요구가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사실 거절 당해도 별로 신경을 쓰진 않았을 거다.
범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두말없이 승인이 떨어졌다.
사실 시은이가 한 말도 생각이 나서 한 번 해볼까 하는 그런 가벼운 마음이 제일 크다.
부우웅-.
마당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
양반은 못되나 싶어 피식 웃고선 칼을 내려두고 행주에 손을 닦으며 주방을 나섰다.
“마침 도착했나 보네.”
“오기로 한 게 대체 누군데요?”
“새 직원.”
마당으로 나서는 내 뒤에 시연이가 쪼르륵 따라붙었다.
새 직원이라는 소리에 궁금증이 일었던 거겠지.
“제가 조금 늦었나요?”
“정확하게 딱 맞춰서 왔으니까 신경 쓸 필요없다. 오기로 한 녀석은?”
“데리고 왔죠. 강덕윤, 이제 내려.”
딸칵-.
승용차의 조수석이 열리고, 흰색의 죄수복을 입은 남자가 쭈뼛거리는 얼굴로 내려섰다.
손에는 여전히 마력 제어를 차단하는 특수 수갑이 채워진 채로.
“···삼촌. 설마 새로 온 다는 직원이 저 사람은 아니죠?”
“맞는데?”
“하, 하지만 저 사람···!”
“그래. 빌런이야.”
이런, 나도 어느샌가 빌런이라는 단어가 입에 붙어버렸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하도 찾아봤더니 이젠 그런 단어들이 익숙해져 버렸다.
각성한 능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
빌런.
흰 죄수복이 바로 그 증거다.
노란색 견장이라는 게 그나마 낫다는 정도?
“대체 왜 그런 사람을.”
시연이의 마음은 잘 안다.
뭘 불안해하는지도 알고 있다.
옛말에도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었지.
녀석과 함께 일을 벌였던 두 명은 애초에 염두도 두지 않았다.
분명 처음일 게 분명함에도 사람들을 공격하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던 녀석들이다.
나는 지금까지 남들과 다른 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그런 성정은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녀석은 조금 달랐다.
내가 잘못봤을 수도 있겠지만, 그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정말 그저 그뿐이었다.
“강덕윤?”
“네? 네!”
“내가 누군지 아나?”
“그···. 호, 혹시 이진··· 님이 아니신지.”
날 쳐다보는 녀석의 눈에서 두려움이 묻어났다.
시장에서 날 경험해 봤고, 아마 특별 수감동에서 다른 빌런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가 누군지 알게 되었을 거다.
오히려 그런 점은 잘 되었다.
감출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 녀석이 알아서 기어(?)준다면 그게 더 편하다.
“너, 요리는 좀 해?”
“요리라면···. 라면 정도는···.”
어느 부분이 우스운지, 안정민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고, 시연이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나는 묘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잘 됐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란 말이 있지. ···넌 앞으로 나한테 배울 게 많을것 같네.”
“모, 목숨을 바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면을 끓이는 데 목숨을 바칠 일은 없겠지만.
“그래. 좋은 자세야.”
어설픈 솜씨를 가진 것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더 낫다.
요리도, 능력도.
아무래도 제법 가르치는 맛이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