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76화.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병실 안.
침대를 둘러싸고 서 있는 사람이 셋, 그리고 그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넷.
쿡쿡-.
옆에서 이루 녀석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날 쳐다본다.
‘두 사람 사이, 결국 허락하는 거야?’
‘···내가 허락하고 말고가 어딨어. 둘이 좋으면 만나는 거지.’
시은이의 성격상 말린다고 들을 애도 아니고.
괜히 미운털만 박히지.
‘흐흐-.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도진이가 시은이 구하려고 한 것 때문에 살짝 감동해서 그런 거 아냐?’
으이그.
···그런데 아니라고도 못 하겠다.
사실 그게 아니었으면 여전히 나는 반대의 뜻을 고수했을지도.
하지만 그건 도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저 녀석 말처럼, 두 사람 사이에 뭔가 벽을 치고 싶은 것은 더욱 아니고.
그저 시은이가 조금 더 세상을 알고 난 뒤에 결정하길 바랐을 뿐이다.
게다가 도진이는 곧 대마도로 내려가야 한다.
장거리 연애라는 게 사실 말이 쉽지, 추천할 만한 것은 절대 아니니까.
이루가 은지를 만나러 올라올 때마다 늘 함께 따라온다고 해도 겨우 주 1회나 될까?
“저···. 다들 여기 계시지 않아도 되는데요. 저 보시다시피 멀쩡하고, 진짜 아픈 데 하나도 없어요.”
“아유-. 그래요. 이렇게 좋은 병실로 해주신 것만도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뭘 이렇게 다들 찾아와 주시고···. 저분은 또 나라의 높으신 양반이라던데.”
도진이 어머니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안정민 과장을 바라봤다.
그 옆에 신주희 박사도.
‘그러게. 쟤들은 왜 여기 와있는 거야?’
‘신주희 박사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나 보다.’
‘도진이한테? 쟤가 뭘 안다고?’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가만히 말없이 기다리는 게 아무래도 민간인들이 있는 곳에서 대놓고 물어볼 이야기가 아니란 것쯤은 알겠다.
그냥 나한테 물어봐도 될 것 같은데.
“크흠. 어머니, 잠시 도진 군과 따로 이야기해도 될까요? 도진 군은 이번 사태의 중요한 참고인이라서요.”
“아이고, 제 정신 좀 봐. 편하게 이야기 하세요. 잠시 나가 있겠습니다.”
도진의 부모님은 다행히 정부를 향한 원망은 없는지, 이해한다며 잠시 나가셨는데.
시은이는 도진이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질 않는다.
“저, 시은 양도 잠시만···.”
“전 있을래요. 그리고 저도 이제 각성자잖아요. 거기다 현장에는 오히려 오빠보다 제가 더 오래 있었는데요?”
안정민이 신주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앞으로 나섰다.
“아시겠지만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기밀입니다.”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평소에도 당찬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였나 싶다.
이제 본인이 각성자라는 사실을 완벽히 자각한 거겠지.
“그럼··· 도진 군. 처음 도착했을 때, 혹시 이상한 점 못 느꼈나요?”
“네? 이상한 거··· 전부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다 이상했죠.”
몬스터를 상대해 본 적이 있는 도진이긴 하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그것도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가는 현장을 본 건 처음인데, 제정신을 유지한 것만도 대단한 거지.
“으음. 제가 너무 두루뭉술하게 물었네요.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요. 몬스터의 행동에서 특이한 점이 없었나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뭔가의 명령을 받는 것처럼 움직인다거나 하는?”
“···죄송하지만,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그냥 어떻게든 눈앞에 있는 녀석의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확실히.
그런 문제라면 뒤늦게 하늘을 날아 도착한 나보단 도진이가 더 잘 알겠구나.
“그런가요···.”
“혹시 질문은 그게 끝인가요? 다른 건 답해드릴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는데.”
“뭔가를 느꼈다면 질문이 더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신주희 박사 뒤에 서 있던 안정민이 나섰다.
“아닙니다. 도진 군. 정신없을 텐데 시간 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이번에 도진 군이 아니었다면 아마 피해 규모는 더욱 컸을 겁니다. 정부를 대신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도 분명 내려질 겁니다.”
안정민은 한참이나 어린 도진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일개 구청 복지과 과장이 이제는 당당히 정부를 대신하겠다 말할 정도의 자리에 오르다니.
처음부터 봐와서 그런지 느낌이 살짝 묘하다.
“저···.”
적막이 감도는 사이 조용히 운을 땐 사람은 시은이였다.
모든 걸 처음부터 목격한 유일한 각성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 괴물이요.”
“사이클롭스 말이죠? 혹시 뭔가 봤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겁이 나서 테이블 아래로 숨어버려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어요.”
그 말에는 병실 안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니까.
어지간한 각성자라도 그랬을 거다.
“그래서 확실하진 않은데···.”
“아무거라도 좋아요. 뭔가 행동에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과학자라.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간절해 보인다.
“···네. 전 처음엔 몬스터라는 게 무턱대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치고는 도망가는 사람들을 무시해 버리더라고요. 그렇다고 건물을 마구잡이로 부수는 것도 아니고, 마치···.”
“···마치?”
확신할 수 없다는 듯 말을 미루던 시은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뭐를요?”
“그것까진···.”
우웅-.
옆에서 함께 긴장된 표정으로 시은이의 이야기를 듣던 안정민이 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더니.
“이, 이런···.”
곧장 티비 리모컨을 잡아 들었다.
띠딕-.
[···에서 발생한 경우는 수십 년만의 일로, 이는 게이트 관리국의 늦장 대처가 아니냐는 시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면에 촬영된 남성은 얼마 전 서해의 한 무인도에 등장했던 남성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뉴스가 진행되는 도중에 갑자기 전달된 서류.
앵커는 빠르게 서류를 훑어보고선 다시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소, 속보입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하고 있으며···. 헌터 연합의 공식 가입국으로 알려진 미국과 독일, 러시아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서 엄청난 피해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거, 어쩌죠?”
우웅-.
이런 기가 막힌타이밍에 울리는 이루의 전화.
누군지는 왠지 알 것 같다.
“일본이야?”
“···응.”
“받아봐.”
이루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이내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히로 상. 아니, 이루 씨! 제발··· 도와주십시오.
“···피해 규모는?”
-네? 아! 지, 지금 자위대 3개 대대가 괴멸 상황입니다. 최초 발생지는 후쿠오카와 기타큐슈로, 나타난 몬스터들의 외형으로 봤을 때는 오크와 고블린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오크와 고블린이란 소리에 이루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함께 듣던 나도 마찬가지고.
“···고작 오크랑 고블린에 3개 대대가 전멸?”
-그, 그게··· 이 녀석들은 뭔가 다릅니다. 오크인 거 같긴 한데 피부도 붉은 데다···.
“잠깐! ···붉은색 오크라고?”
-네! 피부가 무슨 피칠을 한 것처럼 붉습니다. 거기다 고블린도 머리에 뿔이 난 녀석들인데, 총기가 도무지 통하질 않습니다. 블래스터에 사용할 마석도 부족해서··· 이루 씨가 도와주시지 않으면 규슈 지방은 정말 끝장입니다!
블러디 오크와 홉 고블린.
다른 건 단순히 외형뿐이 아니다.
“게이트가 열린 지 얼마나 됐지?”
-이제 2시간이 조금 넘어가는 중입니다.
“···육상 자위대는 물려, 쓸데없는 피해만 늘어날 뿐이니까. 도로는 장갑차나 탱크를 이용해서 막고, 항공 자위대를 출동시켜서 견제만 해. ···금방 다시 전화하겠다.”
-이, 이루 상! 이루···!
“붉은 피부의 오크. 이거 아무래도···.”
“확실하네. 블러디 오크야.”
붉은 피부를 가진 오크라면 그것뿐이다.
게다가 함께 나타난 홉 고블린 역시 고블린이 한 단계 진화한 형태의 몬스터.
둘 다 일반 화기 따위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네.”
“그렇지?”
“확실히.”
두 사람만 이해하는 대화가 잠깐 이어지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희도 좀 알아듣게 말씀해주세요.”
결국 신주희 박사가 먼저 끼어들었고, 안정민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가 너무 빨리 열린다는 말씀이죠?”
“그래.”
자료를 확인해 봤으니 알거다.
게이트라는 것들이 생성되고 얼마나 지난 후에 개방형이 되는지.
아마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한 건 그 하나뿐이 아니다.
“거기다 지금 나오는 게이트는 등급이 너무 높아.”
블러디 오크라니.
게이트 안에서 그 녀석이 등장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게이트 등급을 상향시켜야 할 정도였다.
홉 고블린은 그에 비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블러디 오크에 비해 그렇다는 거지 절대 상대하기 쉽다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둘 다 진화 판이네?”
게이트가 처음 열렸던 시절.
각성자가 채 자신의 힘에 눈을 뜨기 전 나왔던 몬스터들의 수준은 지금에 비교하면 거의 날 벌레라고 평가해도 무방할 정도다.
만약 지금 나오는 게이트가 최하위라고 하면?
수백 마리의 리자드맨 변종이 쏟아지고, 10여 마리의 사이클롭스.
3마리의 와이번···.
정확한 숫자는 확인을 해야 정확하겠지만.
만약 비슷한 마력 수준의 게이트라고 생각한다면 블러디 오크는 대략 20~30마리.
만약 최하위 등급의 게이트가 이런 수준이라면 서둘러야 한다.
대마도에 준비 중인 헌터 아카데미를.
날이 풀릴 봄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다간 너무 늦어버릴 지도 모른다.
* * *
늦은 점심 식사.
겨우 시은이 한 사람이 빠졌을 뿐인데, 거실 식탁이 뭔가 초라한 느낌이 든다.
지금 시은이는 씻고 옷을 갈아입는 시간을 제외하면 병원에서 사는 중이다.
그저 만약을 대비한 정밀 검사가 진행되는 며칠만 병원에서 지내는 것뿐인데···.
유난스러운 거라고 해도 듣질 않는다.
그나마 최근에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시연이의 능력에 관련된 정도랄까.
느껴지는 마력만 보더라도 이전과는 달리 상당히 안정됐다.
“참, 삼촌. 저 최근에는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오래간만에 좋은 소식이네.”
산삼을 먹은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건지.
“그리고 또 다른 것도 있어요.”
“···다른 거라니?”
사람 불안하게.
“어쩌면 저는 제가 보고 싶은 사람의 미래를 골라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응?”
탁-.
밥 먹던 수저를 내려놓는 걸 보니,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것 같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까지 제가 그린 그림들은 전부 삼촌이나 시은이 뿐이었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능력이 발현된 건 이제 겨우 한 손에 꼽힐 정도뿐.
아직 객관적인 분석을 하기엔 자료가 너무 부족한데 섣부른 판단이 아닐까.
“예전에 그 리안 네필스라는 예지 능력자분은 이것저것 다 보셨다면서요. 그중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것들도 많았고.”
“확실히 그렇긴 했는데···.”
나야 직접 본 게 아니라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니까.
그 길은 시연이가 직접 가봐야 알 수 있을 거다.
이번에는 어떨지 몰라도, 전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능력이었으니까.
“그래서 저, 결심했어요!”
“···뭘?”
“앞으론 삼촌만 집중적으로 파기로요!”
그건 좀 무서운데.
약간 스토커 같은 느낌도 들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앗, 늦겠다. 삼촌, 저 학원 갔다가 가게로 갈게요. 저녁에 가게에서 봬요!”
“어? 어··· 그래.”
이루도 없고, 도진이도 없는 가게가 멀쩡히 돌아가는 건 사실 시연이 덕이 크다.
하지만 시연이에게 언제까지 가게 일을 돕게 할 수는 없다.
지금이야 방학이라곤 하지만 얼마 뒤면 학교를 가야 하는 아이니까.
그래서 전부터 생각하던 걸 잠시 고민을 해봤다.
과연 이래도 되는 걸까, 하고.
하지만 고민은 짧았고, 곧장 안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정민아. 내가 누굴 좀 데려오고 싶은데···. 괜찮을까?”
-네? 누구를요? 각성자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말만 꺼내도 줄이 부산까지는···.
전 세계 각성자를 전부 세워도 그 정돈 안될텐데?
그리고 이건 생각보다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뭐, 일단은··· 범죄자라서 말이야.”
능력이 제법 아깝던 녀석.
게다가 이루도 도진이를 잘 가르쳤으니, 나는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거기다 그 녀석은 범죄자니까, 말 안들으면 두들겨 패도 합법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