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75화.
병원에 두 분을 모셔다드리고, 잠시 지켜보다가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야 깨어날 때까지 옆에 있고 싶었지만, 지금은 부모님들이 편하게 기다리시는 편이 더 낳을 것 같아서.
“삼촌!”
가게 문을 열기가 무섭게 달려오는 시연이.
“삼촌, 시은이 계속 잠만 자요. 왜 저런 거예요? 어디 다치거나 한 건···.”
걱정으로 가득한 표정.
병원으로 가기 전, 미리 시연이에게 전화해서 가게 위층의 집으로 와달라 부탁했었다.
시은이에게도 특별한 이상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혹시나 깨어났을 때 혼자라면 괜히 불안함을 느낄 것 같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좀 과로했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삼촌은 알고 있는 거죠? 말해주세요. ···혹시 시은이도 저처럼 각성한 거예요?”
눈치가 빠른 건가.
아니면···.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조금 전에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게···.”
뭐랄까, 시연이가 내민 건 지금까지와는 달리 캔버스에 제대로 그린 그림은 아니었다.
줄이 그어져 있는 노트 한 장에 싸구려 볼펜으로 대강 그려진 그림.
그래도 그 실력은 여전해서 알아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기도를 올리는 듯한 시은이의 모습.
그리고 그 앞에는 깨진 구슬이 하나 놓여 있었다.
“···코어?”
“코어? 혹시 이 구슬 말하는 거예요? 코어라는 게 대체 뭔데요?”
코어가 왜 여기 있지?
그보다 이걸 왜 시은이가···.
내가 코어를 시은이에게 맡긴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된다.
시은이가 무슨 능력을 가졌든, 내가 그런 위험한 물건을 시은이에게 맡길 리가···.
“삼촌, 코어가 대체 뭔데 그래요?”
“응? ···아무것도 아냐.”
이런 표정으로 말해봐야 설득력이 없다는 건 알지만, 시연이라면 캐묻지 않을 거다.
말해야 하는 거라면 내가 어련히 알아서 말해줄 거라는 걸···.
“아무것도 아니긴요. 그런 얼굴로 말하는데 아무것도 아닐 리가 없잖아요. 말해주세요.”
동생에 관련된 일이라 그런가.
오늘따라 물러설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말해줄 수는 없다.
“···나중에 때가 되면.”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시연아, 시은이 좀 봐줄래? 삼촌이 잠깐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알겠어요. 대신, 나중에 꼭 다 말씀해주셔야 해요.”
“그래. 약속하마.”
그렇게 말하고선 얼른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
“···라미야. 지금 어디야?”
* * *
코어에 대해 어쩌면 가장 잘 알고 있을 존재.
네스티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뭐라 특정 지을 수가 없긴 하지만 사람이라고 부르는 편이 가장 무난하겠지.
“코어?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확인해야 할 게 있어.”
“무슨 일인데, 혹시 오늘 서울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관련이 없진 않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시은이와 코어.
그 관계에 대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난 지금까지 코어가 일종의 마석이라고 생각했어.”
“그거야 당연한 소리를···. 뭐야, 인제 와서 마석이 아닌 것 같다는 거야?”
“코어는 마석치곤 너무 형태가 둥글어. 좀 이상하지 않아? 다른 몬스터들에게서 나오는 마석은 그냥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모두 제각각인데, 어째서 코어만 둥그런 형태를 하고 있을까?”
“···그야, 마왕의 것이니까 조금 특별한 거 아니야?”
그래.
나도 처음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냥 특별한 녀석의 마석이니 조금 모양이더라도 그러려니.
하지만 조금 전, 시연이가 보여준 그림을 보고 뭔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시은이의 능력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일반적인 힐러는 아니라는 거다.
그건 오랫동안 힐러로 지내왔던 미연이가 한 말이니 확실하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간의 마력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알아챌 수 있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무섭게 왜 이래. 그래서, 네 생각은 뭔데? 코어가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지금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우리 7명은 모두 셀 수 없을 정도의 몬스터를 도륙해왔고, 몬스터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인데.
아니, 어쩌면 그런 자만이 눈을 가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평소 우리가 몬스터의 라이프 베슬 따위를 신경 쓴 적이 거의 없다는 이유도 있겠지.
마왕의 코어.
아직은 장담할 수 없지만 그건 마석이 아니다.
“라이프 베슬.”
“···무슨 소리야? 라이프 베슬이라니, 그건 몬스터를 잡는다고 나오는 게 아니잖아.”
“그래. 그런데··· 마왕도 몬스터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그 녀석만의 특별한 능력이었을지도 모르지.”
나도 안다.
이게 그저 망상으로 끝날 수도 있는 가정이라는 것 정도는.
하지만 떠올린 이상 반드시 확인은 해야 한다.
“생각해봐. 네스티가 날 왜 아빠라고 부를까? 아무리 처음 만난 사람이 나라곤 하지만 아빠라고 느끼는 건 그보다 훨씬 더 상위 차원의 감정이야.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코어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몰라.”
“자, 잠깐만··· 생각을 좀 정리해봐야겠어.”
미안하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건 지금 할 일이 아니다.
지금은 확인을 해야 할 시간.
“라미야. 네스티는 지금 어디 있어? 방에 있나?”
“자고 있어. ···다른 아이들과 똑같단 말이야.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몇 달의 시간.
그동안 라미야는 네스티와 함께 지냈다.
그러니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그녀의 잘못은 아니다.
마왕은 죽었다.
그리고 마석 대신 라이프 베슬을 남겼다.
왜? 뭘 위해서?
이유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하나.
아마도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방으로 들어갔더니 내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
그래, 분명 이렇게 보면 아이와 다를 게 없다.
심지어 성격이 난폭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고롱- 고로롱-.
작은 코로 숨을 쉬며 쌔근거리며 자는 저 아이를 누가 마왕이라고 볼 수 있을까.
“네스티. 네스티?”
“왜 이래. 지금 깨워서 뭘 어쩌려고? 지금 깨우면 새벽까지 못 재운단 말이야. 너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하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
으음-.
내가 살살 깨우자 눈을 비비적거리면서 일어나는 아이.
어딜 봐서도 위험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심지어 마력 수치도 그다지 높지 않고.
“···아빠?”
“네스티. 아빠가 좋아?”
“응!”
“그럼 왜 좋은지 혹시 말해줄 수 있어?”
“우웅?”
고개를 갸웃거린 네스티가 자그마한 손을 들고선 내 가슴 아림을 가리켰다.
당연한 걸 묻는 내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여기? 여기에서 뭐가 느껴져?”
“···네스티랑 똑같아.”
“네스티랑··· 같은 느낌이 여기서 나?”
웅!
정답을 맞힌 아이처럼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래. 말해줘서 고마워. 자는 거 깨워서 미안. 다시 잘래?”
“웅! 네스티 졸려···.”
“라미야?”
“···알았어. 내가 재우고 나갈게.”
뒤를 부탁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아이를 재우는 일은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감이 오질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거실로 나온 나는 라미야가 나오길 기다렸고, 자고 있다가 깬 탓인지 네스티를 금세 다시 재운 라미야가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왔다.
“···만약 네스티가 진짜 마왕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
“어떡하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어. 너도 알잖아.”
“그건··· 그렇지.”
정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법이다.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잠깐만. 어차피 코어는 네가 깨뜨렸잖아. 만약 그게 진짜 라이프 베슬이라고 하더라도 이젠 괜찮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지만.
“만약 깨진 라이프 베슬도 복구가 가능하다면?”
“그건 불가능···. 뭐야? 그 질문은··· 설마 그게 가능하다고?”
“···어쩌면.”
“그럼 정말로···.”
라미야의 고개가 네스티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래. 어쩌면 이지만, 정말로 그래야겠지.”
“···그럼 차라리 내 손으로 직접 하겠어.”
“무리할 필요 없어. 너는 그래도 네스티와 제법 가깝게 지냈는데···.”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런데 오히려 라미야가 더 단호하게 나왔다.
“아니,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러니 약속해줘, 만약에 그런 상황이 온다면 꼭 내게 맡긴다고.”
“···그런 일이 안 생기길 바라지.”
“나 역시.”
* * *
그가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심장이 둘로 나뉘는 듯한 느낌이었다.
‘죽으면 안 돼! 죽지 마!’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알 수 있었다.
그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내서 그렇다는 것도.
그의 몸이 쓰러져 닿기 전, 아슬아슬하게 받아낼 수 있었다.
심장에 있는 무언가가 망가져 버렸다.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그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싫고,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
그저 목 놓아 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멈췄다.
동시에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괘종시계.
이건, 환상일까?
째깍 거리며 움직이던 거대한 시계추가 아주 천천히 멈춰서기 시작했다.
주변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 단순한 착각인가.
시은은 홀린 듯, 시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오직 한 가지의 염원을 담아.
-오빠를 돌려줘.
겨우 한 달 남짓.
만난 시간은 고작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
대체 왜 이렇게까지 좋아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갑자기 다가온 운명처럼.
그저 어느 순간 마음속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버린 사람.
사라지면 마음이 텅 비워진 채로 살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냥 빌었다.
괘종시계가 뭘 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돌려달라고.
드드드-.
어느새 멈춰있던 시계추가 천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박자에 맞춰 함께 움직이는 시곗바늘.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바늘이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 * *
“오빠아-!”
시은이의 비명소리에 다급하게 방으로 들어온 시연.
“시은아, 괜찮아?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언니? ···나 삼촌이 데려온 거 맞지?”
마지막 순간에 분명 삼촌을 봤다.
그 뒤로 기억이 선명하질 않아서 어디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별이 잘 되질 않긴 하지만.
“그래. 여기 있는 편이 좋을 거라고 여기에 눕혀놓고 가셨어.”
“오빠도 괜찮고?”
“그래. 조금 전에 도진 오빠 부모님이 병원으로 가셨어.”
“나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겠어.”
“왜? 어디 아파?”
“아니, 그게 아니라··· 오빠한테.”
시연은 동생의 말에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잠깐만 기다려, 죽 만들었으니까.”
“언니, 나 병원!”
“···죽 다 먹으면, 내가 데려다줄게.”
“언니.”
“죽부터!”
언니의 표정을 보고 알았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있는 거라고.
만약 나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삼촌이랑 의견 다툼이 있었다고 해도 그냥 참고 넘겼으면.
그랬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겠지?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그리고 도진 오빠 역시 다칠 일이 없었을 텐데.
마치 모든 게 자기 잘못 같이 느껴졌다.
스윽-.
그저 말없이 내밀어진 쟁반에 놓인 죽 한 그릇과 장조림.
“치-. 흰죽은 맛 없는데.”
시은의 말에 시연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대단하기도 싶고.
“얼른 먹어. 도진 오빠 보러 가야지.”
“으응···.”
따듯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죽 한 그릇.
시은이가 수저를 들어올리자 시연은 아무 말 없이 그 위로 장조림 한 조각을 얹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