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74화 (74/153)

귀환자 식당 74화.

치유 능력?

재생 능력?

이건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는 능력이지?

한참을 서서 기다렸다.

시은이는 지금 거의 반쯤 무의식 상태나 다름없었는데.

시연이나 시은이나.

능력을 사용할 때면 왜 다 이렇게 되는지···.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이라도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우우웅-.

계속 이어지는 시은의 마력과 도진이의 공명.

그 울림은 분명 도진이의 라이프 베슬과 화음을 맞추고 있었다.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도진이의 생명력을 회복 중이었다.

“서, 선생님! 역시 와주셨군요!”

내가 이곳에 있는 건 어찌 알았는지, 안정민이 달려왔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인 걸 생각하면 그리 나쁜 대응은 아니었다.

“시은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온 것뿐이야.”

“그, 그렇습니까? 지금 바로 근처에 또 한 녀석이 배회 중인데···.”

“그래서?”

“마, 마력탄만으로 상대하기가 너무 벅찹니다. 공군까지 출동한 상태이긴 하지만 피해가 시시각각 늘어나는 상황이라 혹시 선생님께서···.”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다. 난 지금 여기를 지켜야 하는 게 우선이니까.”

“···시은양이랑 도진군입니까? 대체 저기서 뭘···.”

내 말을 듣고서야 그제야 눈에 두 사람이 들어온 모양이다.

하기야 저렇게 두 사람이 부둥켜안은 채 반쯤 쓰러진 상태니, 뒤에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키스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건물은 멀쩡한 걸 찾기가 더 힘들고, 심지어 군데군데 쓰러져 미동도 없는 사람들의 시체도 있는 곳에서.

미친 인간들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

“저 아이들은 신경쓸 것 없고. 저기, 저거 보이지?”

“아, 역시 선생님이 처리해주신 거군요! 그럼 뒤처리는 저희가 해도 되겠습니까?”

“그야 알아서 하고, 조심해. 저거, 아직 살아있으니까.”

“···예?”

“뭐, 움직이진 못하겠지만···. 놀랄까 봐 말해주는 거야. 일단, 연구용으로 써봐. 살아있는 샘플, 좋아하잖아.”

신주희 박사의 오우거 사건을 빗대어 살짝 비꼰 것인데, 알아들은 모양인지 안정민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겁먹을 필요는 없어. 신경만 살려둔 거니까 움직이진 못해.”

“···알겠습니다.”

그럼 그 겁먹은 표정 좀 어떻게 안 되려나?

볼일은 끝났다.

앞으로 저걸 가지고 뭘 하든지, 몬스터나 게이트 연구에 도움은 되겠지.

“그···. 선생님.”

“왜 또?”

“참 염치없는 말이라는 건 잘 알지만··· 관리국에서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문제라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 번만 더···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건 나도 참 안타깝지만 지금 내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도진이는 물론이고 시은이마저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인데, 자칫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이리 끌고 오면 처리하는 정도는 해주지.”

“몬스터를 이쪽으로 유인하라는 말씀입니까?”

“방법은 알아서 하고.”

미끼를 사용하던, 밧줄로 묶어서 끌고 오던.

방법까지 내가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기척이 느껴지는 걸로 봐 남은 사이클롭스는 7마리.

그래도 어찌어찌 2마리는 처리한 모양이네.

그 정도만 해도 사실 대단하긴 하다.

만약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도시 하나는 박살이 났을지도 모르지.

그나마 이루 녀석 덕분에 마석을 넉넉히 확보한 덕이 크다.

“아, 그리고. 지금 가게에 미연이가 와있는데, 얼른 데리고 와서 게이트 막아달라고 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더 나오면 진짜 골치 아파진다.”

10마리가 나온 걸로 홍대 부근이 완전 초토화돼버렸다.

사이클롭스가 오크처럼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는 아니긴 하지만 여기서 더 나와서 사방으로 퍼지면 진짜 골치 아파 진다.

그 전에 막는 게 좋겠지.

“그렇지 않아도 벌써 모시러 갔습니다. 아마 지금쯤 도착할 때가 됐을 겁니다.”

그런 건 또 빠르네.

확실히 정민이가 다른 건 몰라도 일 처리는 제법 똑소리 나게 한다.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여기저기에서 휘둘려서 그렇지.

···뭐,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진이 오빠!”

미연이였다.

쟤도 양반 출신은 아닌 게 확실하고.

“이야기는 들었지? 이번엔 가능하겠어?”

“그럼. 한 번 해봤으니까 이번에야 제대로 해야지. 근데··· 뒤에 저 애들은 누구야?”

아, 미연이는 아직 시은이를 본 적이 없지.

도진이는 알 텐데 시은이의 몸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 좀 살펴봐.”

“응? ···뭐야, 쟤는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라이프 베슬이 완전히 엉망이···.”

말을 하다 멈춰선 미연의 눈이 점차 커져간다.

믿을 수 없는 일을 눈앞에서 목도한 이처럼.

“···이, 이게 어떻게···!”

그리곤 범은 마치 너뿐이라는 표정으로 날 돌아보지만.

나도 모르니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

“말도··· 말도 안 돼. 이런 게 가능할 리가···.”

“너도 모르겠어?”

미연이는 지금은 다르지만, 예전에는 힐러였다.

그것도 꽤 유능한.

그래서 작은 기대를 했는데, 그녀조차 이런 일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모르냐고? 저런 거, 들어본 적도 없어. 깨진 베슬을 고친다니···. 애초에 그런 게 가능했으면···.”

라이프 베슬.

생명력의 그릇을 말하는 거다.

아름다운 한글이 있는데 굳이 영어를 쓰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만.

“···그래?”

시은이의 마력이 조금 독특하긴 했다.

마력 같으면서도 그 느낌이 조금 달라서, 나조차도 긴가민가했었는데.

이로써 확실해졌다.

시은이도 각성자라는 걸.

* * *

나머지는 어찌어찌 처리한 모양인지.

군인들이 끌고 온 몬스터는 총 3마리.

그 녀석들 모두의 신경만 살려두고, 온몸의 근육이란 근육은 죄다 끊어놨다.

일부러 고치지 않는 이상 움직일 일은 없다는 소리다.

“휴우···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피해가 말도 못할 정도로 더 커졌을 겁니다.”

“미연이는?”

“그쪽도 잘 해결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혹시나 저번처럼 문제가 되면 어쩌나 했는데···.”

엉뚱한 능력으로 각성하긴 했지만, 그래도 헌터로 활동한 짬바가 있어서 두 번의 실패는 없었나 보다.

“피해가 크지?”

“네···. 아무래도 하필 날이 이런 날이었다 보니, 거기로 나온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이브가 지옥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게이트가 바로 개방된 부분은 조사를 해보는 게 좋을거야.”

“역시 선생님도 그 부분을 이상하게 생각하셨군요. 저도 나름 게이트 연구학과를 나와 알지만, 이렇게 생성되자마자 열린 경우는 아무래도 누군가가 개입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조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누군가가 일부러 열었다?”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신 박사가 조사하고 있으니 조만간 알아낼 수 있길 바라야겠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얼마 되지도 않는 마력장 왜곡 능력자가 귀한 능력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인간들끼리 뭉쳐도 부족할 판국에 서로를 헐뜯는 데 혈안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릴지, 한심하다.

“그런데, 시은 양도 각성자였습니까? 보기엔 도진 군을 치료 중인 것 같은데, 혹시 힐러인겁니까?”

눈빛에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다.

힐러는 굳이 게이트에 들어가 몬스터 사냥을 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만으로 큰 힘이 되는 능력이니, 그럴 만도.

“아뇨. 제가 확실히 장담하건대, 힐러는 아니에요.”

대답은 미연이가 대신했다.

그리고 그 점은 나도 동의한다.

시은이가 정신을 차리면 알 수 있을까?

지금 상태로 봐선 아마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한 건지도 기억을 못 할 것 같은데.

뭐··· 급할 건 없겠지.

시은이가 도진이를 치료하기 시작한 게 거의 한 시간이 넘어간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능력이었다.

힐러의 경우 부러진 뼈를 다시 붙게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5분 내외.

마력 수치에 따라 개인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저렇게 오래 걸려서야 게이트 안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에 가깝다.

물론 일반적인 힐러라면 깨져버린 라이프 베슬을 고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긴 하지만.

혹시라도 게이트에 들어갈 일은 없겠네.

우선은 그거면 됐다.

“으음···.”

작은 신음에 얼른 확인해보니 완전히 깨져버렸던 도진이의 라이프 베슬이 거의 복구가 끝났다.

다시 봐도 놀라운 능력.

“시은아. 정신이 들어?”

“···삼촌?”

잠에서 이제 막 깬 듯한 눈으로 힘없이 날 올려다보더니 문득 생각이 떠올랐는지.

“삼촌, 오빠는! 도진 오빠는요?!”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기억은 하지 못하는구나.

시연이도, 시은이도 왜···.

“걱정 마. 여기 멀쩡히 있잖아.”

“···오빠···. 이 바보가···.”

다시 눈물을 쏟으려는 시은이를 얼른 안아줬다.

“이제 괜찮아. 도진이도, 너도.”

“···진짜요? 진짜로 오빠 괜찮은 거 맞죠?”

그래, 네가 살렸다.

서로가 서로를 살린 셈이다.

그렇게 말해줄까 하다가 우선 말을 아꼈다.

아직 혼란스러울 텐데, 굳이 나까지 더해줄 필요까진 없으니까.

“우선 도진이는 병원으로 보낼 거야.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 같고, 그저 힘을 과하게 써서 탈진한 것 같으니까 괜찮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응.”

내 품속에서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은이.

그래··· 너희 둘이 서로에게 이렇게 소중하다면 내가 반대해서야 소용없겠지.

“선생님. 그럼 이제 도진 군은 병원으로···.”

“그래. 부탁하지. 나도 정리가 되는 데로 찾아갈 테니까.”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시은아. 일어날 수 있겠어?”

“···아뇨. 다리에 힘이 없어요. 왜 이렇게 지치지···.”

심적인 충격인가, 아니면 능력을 사용한 후유증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마력을 움직여 시은이를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낯선 감각에 잠시 흠칫하는 게 놀란 것 같으면서도 시은이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조금 전과 같은 무의식 상태가 아닌, 진짜 잠에.

* * *

가게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리가 끝난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고, 화려하게 꾸며둔 전구도 밝히지 않은 어두운 마당.

불과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모여 행복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었는데.

행복이 잔상처럼 남은 남은 야외 테이블 하나에 이루가 앉아 있다가 날 보더니 얼른 달려왔다.

“갔던 일은? 시은이는 왜 이래? 도진이는 또 어디가고? ···역시 내가 따라갔어야 하는 건데!”

“호들갑 떨 것 없어. 시은이는 피곤해서 잠든 거고, 도진이도 무사히 병원으로 갔으니까.”

“병원에? 왜?! 혹시 어디 다친 거야?!”

조금 낯설다.

이루가 원래부터 이렇게 다른 사람을 걱정하던 성격이었나?

“그런 거 아니야. 멀쩡한데, 그냥 혹시나 해서 검사나 몇 가지 하라고 보낸 거야.”

“···진짜지?”

“내가 너한테 거짓말해서 뭐 한다고.”

“하긴···.”

“도진이 부모님은?”

“조금 전까지 계시다가 지금 막 위층으로 모셔다드리고 내려온 참이야. 따로 숙소를 알아보시진 않은 것 같아서. ···아, 가서 뭐라고 하지?”

이제 막 각성해서 헌터가 될 준비를 하는 아들이다.

하나뿐인 자식이 몬스터와 싸우다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릴 들으면 충격이 크실 텐데.

게다가 앞으로 그런 일을 계속 하겠다고 하면 아마도 엄청나게 반대하시진 않을까.

“다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조금 무리를 한 것 같아 검사를 한 번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단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렇습니까?”

사실 그대로 말씀드렸다.

반대를 하신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응이 너무 담담해서 내가 더 놀랐다.

“···그래도 그 녀석이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니 자랑스럽습니다.”

“네. 정말 도진이가 아니었다면 피해는 더욱 심각했을 겁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분명 시은이를 구하려 뛰어든 건 맞지만, 거기서 도진이가 막아내지 않았다면 분명 피해는 더욱 커졌을 테니까.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10명의 목숨은 구했다고 봐도 좋다.

“···그, 병원은 어딥니까?”

애써 담담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걱정되지 않을 리가 없지.

도진이 어머니는 결국 등을 보이셨고, 아버님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저와 함께 가시죠.”

시은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가려다 그냥 도진이가 쓰던 방의 침대에 눕혀놨다.

어디선가 얼핏 들은 적이 있지.

연인의 체취를 맡으면 마음이 안정된다는···.

분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의 시은이에게는 내가 곁에 있어 주는 것보다 도진이의 침대가 더 도움이 될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