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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73화 (73/153)

귀환자 식당 73화.

“혹시 식당에서 일한다고 너무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여긴 잠깐 머무르는 거니까요.”

“아유,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걱정 전혀 안해요.”

도진이 녀석은 어디 간 건지.

조금 전부터 보이질 않네.

다른 사람들이야 오며 가며 안면을 익힌 사람들도 제법 되지만, 도진이 부모님은 오늘 처음 오신 건데.

당연히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아들 하나일 텐데, 자리를 비우다니.

“아, 도진 총각 어머니시구나. 반가워요. 저는 여기 옆집 살고 있어서 자주 오거든요. 듬직한 아들 두셔서 좋으시겠다.”

“네. 안녕하세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요즘 도진 총각 보러 오는 사람도 많아서 장사 잘되죠?”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는데도 위화감이라곤 느낄 수 없는 이 침투력.

나도 거기에 살짝 맞장구를 쳐주다가 잠시 빠져나왔다.

어느새 시연이나 예령이까지 껴서 도진이 칭찬을 하기 시작하니, 어리둥절하신 것 같지만.

도진이는 사실 칭찬 받아도 충분한 녀석이긴 하지.

직접 가르친 이후도 상당히 소질이 있다고 할 정도다.

다른 건 몰라도 이루의 능력만은 나도 인정하니까.

그런데 이 녀석은 정말 어딜 간 거지?

···혹시 시은이를 데리러 간 건가.

나한테 잔뜩 삐쳐있을 테니, 오려고 하질 않았겠지.

괜히 슬며시 웃음이 났다.

지금까지 두 아이와는 늘 좋게만 지내왔는데, 처음으로 다툰 게 연애 문제 때문이라니.

사실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그저 옆에서 지켜보면 될 일을, 괜히 나선 것 같고.

오면 미안하다고 해두는 편이 좋으려나?

아니지, 그래도 삼촌으로서의 권위가 있는데···.

모르겠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누군가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손님 오는 줄도 모르고.”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굉장히 낯익은 얼굴의.

“···너, 미연이야?”

“헤···. 나 좀 변했나?”

거울을 한 번이라도 보고 나왔으면 얼마나 변했는지야 본인이 더 잘 알 테고.

도진이가 변하는 것도 봤으니 예상했지만, 겨우 며칠 만에?

이렇게 급격히 변화가 일어나면 몸에 무리가 가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오빠 말이 맞았네. 확실히 각성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

“마력이란 건 참 알수록 신기하네.”

수십 년을 연구하고도 아직 제대로 밝혀내지도 못한 신비한 에너지.

사람을 젊게 만드는 건 물론이고, 상상으로만 해오던 힘을 실제로 갖게 해주는 마력.

어딘가에서는 이걸 차크라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이걸 기氣라고 부른다지.

만약 진시황이 이걸 알았다면 무덤을 뚫고 뛰쳐나올 텐데 말이야.

“신기하지. 정말 이러다 오빠보다 어려 보이는 거 아냐?”

“너 원래 나보다 어리거든?”

“하긴, 그건 그렇네.”

“그런데, 그거 자랑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닐 테고···.”

자주 올 거라 으름장을 놓고 가긴 했지만, 채 며칠이 지나지도 않은데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닌가.

결혼하지 않았다곤 하지만, 미연이에게도 가족은 있을 테고.

“아··· 별것이 아니라면 별것 아니긴 한데, 나한테 사람이 왔었어.”

“사람?”

“응. 외국인이었는데, 이미 내 능력에 대해서 다 알고 찾아왔더라.”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역시나 국정원이나 게이트 관리국에 첩자가 있는 게 확실하다.

미연이가 마력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외국에서 사람이 찾아올 정도라면 능력이 확인되자마자 거의 실시간으로 보고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찾아온 이유는?”

“목적은 다 똑같았어. 게이트를 막아 달라는 거지.”

“잠깐만. 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야?”

“세 군데에서 찾아왔어. 마지막으로 온 건 오늘이었고, 찾아온 사람 중에서는 그나마 유일하게 자기가 일본에서 왔다고 밝히더라.”

일본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돈은 많은데, 정작 게이트가 생기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니···.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대마도에 위탁 교육을 대거 보내긴 했지만, 그들이 한 사람의 헌터 역할을 해내기 위해선 적어도 몇 달은 필요하다.

그전까지 어떻게든 막아낼 사람이 필요하지만 전 세계를 둘러봐도 이렇다 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

그 중 두 명은 일본을 증오하며 한국에 자리를 잡았고, 한 사람은 그 나리의 공주니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다.

아예 행적이 드러나지 않는 이도 있는데, 그렇다고 미국이나 러시아를 건드리기는 사실 불가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발만 동동 굴리는 와중에 이미연이라는 마력장 왜곡 능력자의 등장은 그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카드였겠지.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미쳤어? 그때 일본에 간 사람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있었어··· 난 절대 용서 안 해.”

모르긴 몰라도 아마 상상도 하기 힘든 금액을 제시했었을 텐데.

하기야, 미연이도 아마 돈이라면 억 소리가 튀어나오게 많을 테지.

듣는 것만으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그 괴상한 사기에 돈을 가져다 바치지만 않았더라면.

“···미안하구만.”

이루였다.

들어와도 꼭 이런 타이밍에 들어오나.

“···당신 잘못은 아니니까.”

“내가 뭐 일본 대표도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사과하겠다.”

미연이도 이루는 알고 있다.

이루야 최후의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부터도 워낙에 유명하긴 했으니까.

“그러지 마. 저 녀석도 일본에서 뒤통수 제대로 얻어맞고 한국으로 온 거니까.”

“···알겠어. 아무튼, 세 군데 제안을 전부 거절하긴 했어. 사실 나도 아직 내 능력을 정확하게 어떤 건지 모르겠거든.”

“마력장 왜곡인 거 아니었어?”

“처음엔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하나?”

마력장이란 건 게이트 입구만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마력을 펼치는 모든 장막.

내가 자주 사용하는 음파 차단이나 마력 차단 같은 것들도 모두 마력장에 포함된다.

그걸 왜곡할 수 있다는 게 사실 전투에 큰 도움이 되는 능력은 아니지만 정보 수집 같은 곳에선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

추후의 이야기겠지만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일정 반경을 완전 시야에서 가릴 수도 있게 되니까.

한 마디로 스파이 임무에 적격이란 소리다.

“다르다니? 어떻게?”

구체적으로는 아직 모른다고 하지만, 대강이라도 설명해달라는 소리였는데.

정말로 감이 안 온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젓는다.

“난 혹시 오빠라면 뭘 알 수 있을까 해서 온 건데···.”

“너는 내가 무슨 만능이라도···.”

머리털 한 가닥이 삐죽 솟아나는 느낌.

나는 바로 가게 안에서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게이트?”

멀지 않은 거리.

그곳에서 게이트가 열렸다.

어차피 이제 게이트가 열린다는 사실에 일일이 이렇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엔 느낌이 다르다.

“형, 왜 그래?”

“···게이트가 열렸어.”

“그래? 뭐,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잖아. 이제 계속 열릴 텐데···. 표정이 왜 그래?”’

“그게 좀 이상해. 분명 방금 열렸는데, 어째서 바로 개방된 거지?”

이 말에는 미연과 이루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바로?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빠른 경우는 없었는데?”

“확실히 내가 알기에도 이런 적은 없어.”

“···안 가봐도 돼?”

이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매번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제 마석도 제법 구했겠다.

게이트 관리국에서도 마력탄 무기를 대거 준비했으니까.

어느 정도 희생이야 있겠지만 직접 나설 생각은 없다.

“삼촌, 무슨 일 있어요?”

세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게이트가 어쩌고 이야기를 해댔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모였던 모양이다.

시연이도 불안한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근처에 게이트가 생겼는데···. 뭐, 우리가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아, 시연이는 학교 근처라 강제로 휴강이 될지도 모르겠네.”

“···학교 근처요?”

게이트 위치를 보아하니, 방향과 거리가 대강 그쯤.

“그런 것 같네. 아마 학교 부근일 거야.”

“···그래도 바로 몬스터라는 게 나오진 않는다고 했으니까, 사람들··· 괜찮겠죠?”

사람들을 걱정하는 건가?

그런 마음이 기특해서 나는 시연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줬다.

“그게 걱정이었어? ···이번엔 좀 특이해서 몬스터가 나온 것 같지만, 게이트 관리국에서 알아서 잘···. 시, 시연아?”

갑자기 자리에 주저앉아버리는 시연이.

걱정을 하는 거야 그럴 수 있지만, 이건 좀 과한데?

“왜 그래?”

“사, 삼촌···. 지금 홍대에··· 시, 시은이랑 도진이가···.”

“···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엔 흘러오는 마력 파장에 집중했다.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는 대략 10 남짓.

많지는 않다.

하지만··· 쉽지 않은 녀석이다.

더, 더···.

더욱 정신을 집중하자, 익숙하면서도 작은 마력 하나가 기감에 잡혔다.

도진이다.

이동 방향을 봤을 때···.

몬스터에게 곧장 달려가고 있었다.

시은이와 함께 있었다면 분명 대피해야 맞을 텐데, 되려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미친 듯이 달리고 있다?

설마, 아직 만나지 못한 건···.

“···이루야, 파티는 여기까지 하자.”

“알았어! 얼른 가봐!”

콰앙-.

내 정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 사람들 몇몇이 조금 놀라겠지만, 눈을 피할 시간도 아까우니 어쩔 수 없다.

가게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공기를 박찼다.

뻐엉!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도진이가 달리고 있는 방향으로 곧장 몸을 쏘아냈다.

도진이가 멈춰섰다.

바로 근처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

이건···. 도진이가 상대할 수 없다.

어렵고 말고의 수준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수준.

왜 하필이면 그곳일까.

답은 하나.

···시은이가 근처에 있어!

뻐어어억-!

그 어느 때보다도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컸고, 그 대가로 공기를 가르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리고 금세 도진이 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몬스터를 향해 등을 보일 정도로 한쪽으로 허리를 한껏 튼 자세.

평소 도진이의 마력으론 불가능할 수준으로 모여든 마력.

뭘 하려는지는 알겠다. 왜 그런지도.

몬스터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느껴지는 작은 기척 하나.

···시은이였다.

저걸 쓰면 도진이는 죽는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힐러가 늦지 않게 온다 한들 살리지 못한다.

설령 블랙이 온다고 해도 이미 소모돼버린 생명력을 채우진 못한다.

힐러는 신체의 재생력을 극한까지 올리는 능력일 뿐이지, 나이가 들어 죽는 노인을 살려내진 못하니까.

“도진아, 멈춰!”

내가 왔으니 이제 멈춰도 시은이가 다칠 일은 없는데.

움직이는 속도가 음속을 뛰어넘어버린 상태가 목소리가 도진에게 닿질 않는다.

그 전에 내가 내려서겠지.

빌어먹을.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출발했다면···.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바로 이곳으로 왔다면.

빌어먹을!

도진의 손에 들린 쇳조각에서 마력이 흩뿌려지고, 정확하게 사이클롭스의 눈을 가르고 지나갔다.

···저 녀석, 지금 자기의 힘으론 무슨 짓을 해도 치명상을 입힐 수 없다는 걸 알고선 가장 약한 눈을 노린 거다.

저 녀석의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시은이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시은이가 도망칠 수 있도록.

꾸우웅-.

잘 정돈되어있던 거리가 내가 내려선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움푹 패여 들어 가며 굉음을 낸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지금 감히 누구를···.”

까드득.

손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

시은이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울먹이며 도진이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감은 채 안도하는 표정으로 쓰러지는 도진이.

울음을 터트리며 그걸 받아드는 시은이.

둘 중에 뭐 때문에 화가 나는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이 자식들···.

“···쉽게 죽을 생각은 마라.”

몬스터의 가공할 생명력이 도움이 되는 날도 있구나.

아주 오래오래 인간들에게 연구 당하고, 헌터 지망생들의 실습 교보재가 되어 고통받게 할 테니까.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쿠웅-.

쓰러진 사이클롭스를 뒤로하고, 조심스럽게 시은이에게 다가갔다.

“···삼촌이 늦어서 미안.”

쿨쩍. 흐아앙-.

“오빠아··· 오빠 왜 이래요? 삼촌··· 오빠가···.”

“시은아···.”

“삼촌, 오빠 괜찮은 거죠? 오빠, 안 죽는 거죠?”

“···.”

모르겠다.

이 녀석이 생명력을 어디까지 끌어 썼는지를 모르니 뭐라 답해줄 수가 없다.

으아아아앙!

내 무언이 부정적인 대답이 되었던 건지, 시은이가 결국 쓰러진 도진을 부둥켜안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차마 쉽사리 위로의 말을 건넬 수가 없어서 그저 멍하니 바보처럼 뒤에 서 있기만 했다.

몰랐을 리가 없다.

아직 마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런 마력 방출기를 사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이루가 말해주지 않았을리가 없지.

그런데도 이 녀석은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온 힘을 쏟아냈다.

마치··· 시은이만 사릴 수 있다면 자신은 어찌 되어도 좋다는 것처럼.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이곳에 조금 더 일찍 도착하는 거였는데.

10분 전의 자신이 원망스럽긴 처음이다.

후웅-.

그 순간, 아주 가까이서 느껴지는 기묘한 마력.

어디서 나오는 건지 바로 알아챘다.

그동안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시은이의 몸 속에 잠들어 있던 마력.

그게 지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일이 내 눈 앞에서 벌어졌다.

생명력이란 곧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기운이다.

무협에서는 선천진기先天眞氣라 불리는 것.

일단 사용해버리면 다시 채우는 게 불가능한 기운.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걸 사용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게 당연하다.

무의식적으로 보호되는 생명의 근원이니까.

간혹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 순간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낼수 있는 건, 바로 그 힘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 번 써버리면 다시는 채울 수 없는 것.

도진이는 그걸 거의 소진해버렸다.

그렇게 비어지고 깨졌던 그릇이 지금 내 눈 앞에서 다시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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