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72화 (72/153)

귀환자 식당 72화.

“흑···. 삼촌 미워.”

-시은아, 그러지 마. 사장님도 너 걱정해서 그러신 거야. 내가 어떻게든 설득할 거야. 그러니까, 일단 가게로 와. 응?

“싫어! 오늘은 삼촌 보기 싫단 말이야!”

이시은도 알고는 있다.

자신의 삼촌이 왜 반대하는지, 왜 도진이가 안된다고 하는지.

대학교 합격이 결정되고, 시간이 남아서 많은 걸 찾아봤다.

헌터들, 게이트, 몬스터에 대해서.

“오빠, 그냥 그거 안 하면 안돼?”

거리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모두 행복해 보이는데.

왜 자신은 이렇게 우울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 거지.

어쩐지 자꾸만 억울한 마음이 든다.

‘···나 왜 이렇게 철이 없지.’

속상했다.

머리론 다 컸다고, 나도 이제 어른이라고 하는데.

자꾸만 아이같이 칭얼거리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니.

아직은 부모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나이라는 건 안다.

그 역할을 지금 삼촌이 대신해 주고 있다는 것도.

넘치도록 많은 걸 받아 언니와 함께 유복한 삶을 누리는 것도 안다.

‘그래도 미워···.’

엄마, 아빠가 아니니까.

삼촌이니까 오히려 더 이해해줄 거라 믿었는데.

-지금 어디 있어? 내가 갈게.

“···나 여기 홍대 앞에 우리 자주 오는 카페.”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응···.”

전화를 내려놓은 시은이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서히 어둡게 내려앉는 거리, 가족이나 연인과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모여든 번화가 골목.

가게 앞에 삼촌과 함께 열심히 꾸며둔 트리가 있는데.

대강 걸어도 되는 꼬마전구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달아둔 트리에 불을 밝히면 얼마나 예쁠까?

꼭대기에 달린 별에는 이미 소원을 빌었지만, 다시 빌어야 하는데.

그래야 이뤄질 텐데···.

카페에 은은하게 울리는 크리스마스 캐럴.

혼자 이렇게 듣고 있으니 저 즐거운 음악이 우울하게 들릴 지경이다.

서도진이 도착하기까지는 대략 10여 분.

시은이는 스마트폰을 들고 검색을 시작했다.

이왕 분위기가 이렇게 된 이상, 가게에 들어가기보단 차라리 둘이서 데이트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오늘 같은 날이야 어디를 가도 자리를 잡기 어려운데다, 그게 온라인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어렵겠지.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곳을 가고 싶으니까.

귓가에 들려오는 캐럴의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검색하길 얼마.

조금 전과 달라진 거리의 광경에 시은은 고개를 돌렸다.

다급한 표정으로 모두가 한 방향으로 뛰어가는 사람들.

간혹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하는 사람들은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응? 무슨 일이지?’

고개만 옆으로 돌려 창밖을 바라보던 시은이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허리를 틀었다.

사람들을 쫓고 있는 무언가.

“···저게 뭐야?”

눈으로 보고 있는데, 머리로 순간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게 아니라, 왜 여기서 갑자기 저런 것들이 나타나는 건지가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거다.

홍대에 게이트가 있었나?

있었다면 뉴스에 나오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삼촌이 분명 말했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그렇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미 수십 년도 전에 몬스터에 의해 멸종했을 거라고.

‘그런데 왜?’

뒤를 확인하며 달리는 사람들을 바짝 쫓는 무언가.

앉아있어서 그런지, 고개를 한껏 들어야만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생명체가 거기 있었다.

어느새 시은이가 있는 카페 앞까지 다가온 몬스터의 입가에 묻은 피, 흉포함이 느껴지는 송곳니에 끼인 옷자락.

꺄아아아-!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아, 안돼!”

-시은아, 혹시라도 몬스터를 만나면 비명을 지르는 것보단 몸을 숨겨. 몬스터들 중에선 냄새나 기척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녀석들이 더 많으니까. 조용히, 몸을 감추면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시간이 필요하다.

삼촌이 자신을 구하러 올 때까지의 시간.

시은은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입을 가까스로 틀어막고선 테이블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입을 틀어막은 손등 위로 흘러내리는 물 줄기.

턱이 떨리며 부딪히는 잇소리가 나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꺄아악!

으아아악-!

사, 사람 살려.

갖은 비명과 신음이 난무하는 거리.

분명 조금 전까지 캐럴이 울려 퍼지며 모두가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 거리는 지금 지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 * *

“···꽃이라도 한 송이 사갈까?”

한겨울이지만, 꽃은 판다.

이런 대목에 꽃가게가 쉴 리도 없고, 번화가가 가까워져 오니 길거리에서 파는 사람도 종종 보일 정도로 많았다.

붉은 장미보단, 흰 백합에 눈이 갔다.

“여자친구 주려고요? 한 송이 드릴까?”

추운 날 거리에서 꽃을 파는 사람은 할머니였다.

날이 추워 모두 두꺼운 패딩을 입고 다니는데, 손으로 뜨개질한 것 같은 니트를 몇 겹이나 껴입은.

“···네. 한 송이만 주세요.”

“5천 원만 줘요.”

포장도 뭣도 없는, 정말 달랑 꽃뿐인 한 송이 가격이라고 하기엔 비싸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가격.

하지만 도진이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5만 원 권을 꺼내 들었다.

“···잔돈은 필요 없어요.”

누군가는 값싼 동정심이라 자신을 욕할지도 모른다.

이건 그냥 상대방을 무시하는 거라고.

“···고마워요.”

“할머니, 메리 크리스마스요.”

여자친구와 길을 걷다가 보이는 구세군 자선냄비에 보란 듯 넣는 지폐보다, 직접 마주한 불우한 이웃에게 전달하는 편이 낫다.

적어도 서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작은 백합이 추위에 시들기 전에, 서둘러 건네주고 싶어져서인지.

약간은 발걸음이 빨라졌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아직 전달하진 못했지만, 이진 사장님의 마음도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고.

우리 사이를 몰라서 그랬던 거라고 알려줄 생각에 기분도 좋아지고.

이래저래 설레는 마음으로 카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꺄아아?.

으아아아악!

멀리서 비명이 들리기 전까지는.

“저, 저기요! 무슨 일 있어요?”

달려오는 남자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얼핏보기엔 데이트하러 나온 차림새인데,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혼자 정신없이 달리던 남자.

그는 도진이 팔뚝을 잡자마자 대답도 없이 뿌리치려고 했지만, 힘의 차이가 워낙에 커서 결국 뿌리치질 못했다.

“이, 이거 놔. 이 새끼야!”

“무슨 일이냐고!”

“씨발,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가서 보고 뒈지던가!”

남자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결국 도진을 뿌리치고선 달려갔다.

표정을 봐선 자기가 지금 어디로 달리는 건지도 모를 것 같은 얼굴로 허겁지겁.

툭-.

방금 거금을 주고 산 꽃 한 송이가 바닥에 떨어지고.

도진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비명이 난무하는 곳으로 달리면 달릴수록,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사람의 수가 점차 늘어났다.

맞은편에서 미친 듯이 달려오는 사람들을 헤치며 도착한 카페 앞.

유리로 된 외벽은 이미 모두 깨진 상태고, 안쪽도 난장판인 모습에 도진의 눈이 뒤집혔다.

여기까지 오면서 몬스터를 한 마리도 보지 못한 건 아니다.

하지만 무시하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시은이였기도 하지만, 솔직히 저 괴물을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상대할 자신이 없다 싶으면 도망쳐. 헌터는 살아남은 자가 결국 강해지는 거니까.

-네! 그런데 사부님.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지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이루는 도진이에게 무작정 체력 단련만 시킨 건 아니다.

훈련하면서 틈틈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려고 노력했고, 도진이도 궁금한 게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물었다.

그리고 언젠가 저렇게 물었을 때, 이루는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간단해. 덩치가 크면 강한 거야.

물론 저 답이 백 퍼센트 정답은 아니다.

그 정도는 서도진도 알고 있다.

최후의 게이트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렀던 마왕이란 존재는 실제로 인간의 크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다만 저렇게 말한 이유는 그가 아직 마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때, 몬스터의 외형만으로 강함의 척도를 판단해야 할 미숙한 시기에는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말했다는 걸 안다.

처음 각성하고 힘을 얻은 뒤, 멋모르고 자만감에 가득 차 있던 자신이 처음으로 마주했던 몬스터.

죽음의 공포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던 순간, 이진이 자신을 구해줬었다.

마치 빛의 창이라도 된 것처럼 하늘을 가르고 땅에 꽂히는 순간.

오우거의 목은 처음부터 그저 얹어두었다는 것처럼 떨어져 내렸었지.

‘그때 오우거가 얼만 했더라···.’

서도진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거의 주저앉아서 보았던 데다 당시에는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터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탓도 있겠지.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이건 그 오우거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걸.

‘4미터? 아니··· 5미터는 되는 거 같은데.’

-오우거 성체가 보통 3미터에서 4미터가 된다. 그 정도만 해도 지금의 너 정도라면 세 명은 달라붙어야 이길 수 있어. 만약 5미터가 넘어가는 녀석이라도 만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라. 그런 녀석들이 나타나면 진이 형님이나 내가 반드시 알아차리고 갈 테니까.

들은 적이 있다.

두 발로 걸으면서 인간을 한 손에 쥐고 뜯어먹는 존재들.

얼핏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눈이 하나밖에 없는 거인.

‘사이클롭스···.’

-아, 맞다. 혹시라도 눈깔이 하나인 놈을 만나면 진짜 조심해야 한다. 그놈은 레이저도 쏘거든.

콰과과광-!

끄아아아-!

손에 들린 거대한 몽둥이가 휘둘러지자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그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

족히 십수 명은 죽었을지도.

“시, 시은이···.”

하나밖에 없는 눈동자는 아직 자신을 보지 못했다.

그 전에 시은이를 찾아 보호해야 했다.

가능할까?

찾는다고 한들, 내가 저 녀석으로부터 시은이를 지킬 수 있나?

아직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보잘 것 없는 헌터 지망생 주제에···.

‘가능하고 말고는 나중에. 우선···.’

“이. 시. 은-!”

얼마 되지도 않는 마력을 짜내서 소리를 질렀다.

도망치던 사람들까지 돌아볼 정도로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와오고.

거대한 얼굴에 하나밖에 없어서 기괴한 느낌이 드는 녀석도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냈다.

크르르르-.

-눈깔에서 레이저를 쏴대서 그런지 몰라도, 사이클롭스는 생각보다 눈이 안 좋아. 본다기보단 오히려 소리에 예민한 놈이거든. 그러니까, 절대 큰 소리를 내지마.

그렇게 열심히 배웠는데, 배운 걸 되려 거꾸로 써먹고 있네.

서도진이 자조적인 웃음을 띠는데, 옆에서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오빠?”

“시은아!”

“흐앙-!”

반쯤 무너져 내린 건물 더미 아래 테이블에서 고개를 든 건 시은이였다.

그리고 도진을 보자 결국 안도감에 터져버린 눈물.

크르륵.

거대한 눈알이 또다시 돌아간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아, 안돼.”

찾기만 하면 데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는데···.

그게 정답인데.

어딘가에 달려있던 간판의 조각.

도진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쇠간판 조각을 손에 말아쥐었다.

손잡이 같은 게 없어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아픔은 느껴지질 않았다.

쿵쿵-.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마력이 몸을 휘젓기 시작했다.

아직은 이루처럼 단시간에 끌어올리는 게 어려운 서도진은 마지막 한 방울도 남지 않을 때까지 마력을 쇳조각에 밀어 넣었다.

-이 녀석아. 너한테 검은 아직 일러.

-그래도 하나만요. 필살기 같은 거 하나만 알려주세요. 네?

-흐음···. 가르쳐주긴 하지만,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너는 아직 마력 조절이 어려우니까 자칫하면 생명력까지 빨려 들어갈지도 몰라. 그럼 헌터고 뭐고, 평생 침대에서 기저귀 차고 사는 거야. 알았어?

-네! 걱정마세요. 그래서, 이거 이름이 뭐예요?

-이름이랄 것도 없다. 그저··· 발도술이야. 모아둔 마력을 뿌려내는 초속의 발도술.

이루의 속도에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지만.

‘···저 눈알 괴물의 시선을 끄는 정도는 되겠지.’

마력의 조절? 어차피 그런 것은 할 줄도 모른다.

생명력이고 나발이고.

서도진은 이를 악물고 모든 힘을 밀어 넣었다.

검도 아닌 쇳조각.

생명력까지 죄 끌어모아도 과연 저 녀석에게 어느 정도나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 장담을 못 하는데, 여유 따위는 사치다.

“끄아아아아압!”

서걱-.

온 힘을 다한, 단 한 번의 휘두름.

꾸에에엑!

분명 효과는 있었다.

괴물의 눈가를 스치고 지나며 튀는 초록색의 핏방울이 그 증거다.

“오, 오빠아-! 도진 오빠아-!”

“위··· 위험하니까···.”

피해! 위험하니까 오지 말고, 빨리 피하라고.

나는 괜찮다고··· 그러니까 울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줘야 하는데··· 목소리가 더이상 이어지질 않는다.

조금 전까지도 분명 시은이 마음 아프게 하지 않을 자신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나왔는데.

손가락 하나를 까닥하기도 힘들었다.

이루가 말한 것처럼 생명력까지 몽땅 빨려나가버린 건지.

말할 기력도 남지 않아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점차 흐려져가는 시야.

서서히 어둠이 앞을 가리고. 결국 도진은 정신을 잃어버렸다.

지옥이 되어가는 거리 한 복판에서 정신을 잃어가는 그 와중에 서도진은 작게 웃었다.

어둠이 눈을 가리는 사이로, 분명히 보았으니까.

하늘에서 내리 꽂히는 하얀 빛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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