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71화.
조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전 세계인의 축제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날.
모두 입으론 가족과 함께! 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애인이 있는 이들은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경우가 굉장히 높은 날이기도 하다.
번화가 근처뿐 아니라, 외진 곳에 지어진 허름한 숙소에도 방을 찾기가 힘든 날.
도진이가 부모님과 함께 가게를 찾았다.
“엄마, 여기 우리 가게 사장님.”
“아이고, 선생님. 우리 아들 좀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 도진이야 워낙 알아서 잘하는데요. 제가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말씀이라도 그렇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집이 제법 멀리 있어서 올라오는데 힘드셨을 텐데도 오자마자 도진이가 사는 2층을 둘러보셨다.
양손에 들린 반찬통들과 함께.
“이거, 밑반찬 좀 해왔어요.”
“엄마는. 여기가 식당인데 무슨 반찬을 싸 왔어···.”
“가게에서 만드는 건 장사해서 돈 벌어야지! 아유··· 얘가 이렇게 철이 없어요.”
“아닙니다. 그보다 오늘은 이렇게 먼 길 올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려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는 건데.”
“아들 녀석 맡겨놓고 이제야 찾아와서 저희가 죄송하죠.”
시간이 지나도 편해질 수 없는 관계가 바로 이런 거겠지.
아버지는 집을 둘러보며 튼튼은 한지, 어디 고장이라도 난 곳은 없는지 살폈고.
그 사이 어머니는 아들 방을 정리했다.
이렇게 만나 뵈니 도진이가 어떻게 살아왔을지가 눈에 선하다.
가부장적인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아들 걱정하는 아버지나, 매일매일 가족들 식사나 잠자리를 챙겨주실 것 같은 어머니.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나에게도 이에 못지않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생겼지만, 어린 시절이 지나버린 것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
“도진이 넌 위에서 부모님이랑 이야기 좀 하다가 천천히 내려와. 아래는 신경 쓰지 말고.”
“네? 그래도 이것저것 음식 준비도 해야 하는데···.”
“어차피 출장 업체에서 다 해줄 건데 무슨.”
“그래도···.”
불편한 마음이 들기야 하겠지.
혼자 살고 있다곤 하지만 가게 위층에 있는 집이고, 도진이는 그저 잠시 몸을 의탁한 상태니까.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멀리 내려가게 될 거고.
“도진아, 이야기할 기회가 왔을 때 많이 해둬.”
몬스터가 다시 등장한 세계.
각성자가 아닌 이상 몬스터 한두 마리만 나타나도 일반인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는 세상이 됐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는 다르다.
언제나 당연하게 옆에 계실 것 같지만, 이제는 당장 내일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이상하지 않다.
품속에 유서를 품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하루하루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기뻐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다시 만남이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낄 날은 반드시 오게 될 거다.
“···네.”
내 말뜻을 어디까지 이해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도진이 역시 지금 세상에서 우리 몇몇을 제외하면 몬스터를 겪어본 거의 유일한 인간이다.
조금은 알아차렸겠지.
나는 도진이의 어깨를 잡아준 뒤 계단을 향했다.
“저, 사장님!”
“응?”
“···감사합니다.”
가라앉은 목소리에서 도진이의 진심이 느껴진다.
단순히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겠다.
오우거로부터 도진이를 구해내고, 이곳에 데려와 훈련을 시키고.
아마도 처음 만난 이후로 그가 겪은 모든 것에 대한 감사 인사일 거다.
“···알면 됐다.”
다시 등을 돌린 내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처음 만났을 당시의 그 혈기만 넘치던 철부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이제는 어엿한 각성자가 된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마력도.
어쩌면 이제는 한국 각성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
그 모든 생각의 이어짐이 내 가슴을 조금이나마 충족시켜갔다.
* * *
크리스마스트리에 불도 밝히기 전.
가게로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시은이였다.
“시은아, 일찍 왔네?”
“삼촌! 도진이 오빠는요? 아직 안 왔어요? 이상하다. 저녁 전에는 올라온다고 했는데.”
“도진이라면 지금 위층에, 부모님이 오셔서 이야기 중이야.”
“부, 부모님 오셨어요? 아··· 어쩌지?”
뭘 어쩐다는 거지?
“삼촌, 저 오늘 어때요? 안 이상해요?”
이상하긴커녕, 다른 날보다 유난히 더 귀엽고 이쁘기만 한데.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을 주긴 했다.
옅기는 하지만 거의 하지 않던 화장까지 했고.
그런데 이걸 준비한 이유가 도진이랑 그 부모님이라는 사실에 뭔가 서운함이 밀려오네.
시은이 나이대에 가장 중요한 게 연애라고는 들어봤지만, 겪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사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물론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건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본능 같은 감정이니까.
그래. 분명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음··· 많이 이상한데?”
“지, 진짜요? 왜요?! 어디가요?”
“이상하잖아. 요즘 왜 갑자기 그렇게 도진이를 신경 써?”
이게 너무 뻔한 질문이라는 건 알겠는데.
조금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도진이는 각성자다.
그것도 게이트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하는 단계인 상황에서는 어쩌면 상당한 수준의.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만이 아니다.
본인이 강해지면 아이러니하게도 주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세상이 위험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각성자가 강하길 바라고.
강한 각성자를 데려오는 것이 국가적인 수준의 프로젝트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간혹 그런 국가 중에서는 강제력을 동원하려는 경우도 있다.
하필이면 대한민국 주변에는 그런 나라들이 우글거린다.
국제적인 체면 따위는 신경 쓸 생각하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진 중국.
그저 무시해버려도 대책이 없는 북한.
욕을 먹더라도 자신들의 안위만 무사하면 된다는 사상을 가진 일본까지.
어떻게 주변 모든 나라가 이 지경인지.
확실히 단군 할아버지가 부동산을 보는 안목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
난 지금 오래전 드라마에나 나왔을 법한 꼰대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도진이를 아끼지만, 시은이와 엮이는 건 반대다.
시은이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도진이는 헌터가 될 아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난 시은이가 마음 아파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절대로.
“그야···.”
“도진이는 안 된다.”
“···삼촌.”
어쩌면 월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내가 무슨 아빠도 아니고.
사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간섭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도진이는 이제 곧 멀리 떠날 사람이야. 괜히 너만 힘들어져.”
“그, 그런 건···.”
“삼촌이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울먹거리는 표정.
무슨 말을 하고 싶으면서도 참고 있는 게 보인다.
말이란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
사과를 한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에 남은 상처란 그 기억을 절대 놓아주지 않으니까.
시은이가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가게를 뛰쳐나가버렸다.
그리고 난 굳이 그런 시은이를 잡지 않았다.
* * *
저녁이 되고, 늘 가게를 찾아오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간혹 안정민 과장과 찾아와 안면을 익힌 구청 사람들도, 예령이네 식구나 신주희 박사와 몇몇 연구원까지도.
“과장님 오셨네요. 이번에 게이트 관리국으로 가셨다면서요?”
“아, 통장님. 안녕하셨어요? 제가 원래 그쪽에서 구청으로 파견을 나왔던 거니까요. 이제야 겨우 제자리로 돌아간 셈이죠.”
“어쩐지, 그냥 공무원이라고 하기엔 포스가···. 어휴, 아무튼 축하드려요.”
어쩌면 평생 모르고 지냈을 사람들이 이 가게를 통해 인연을 만들고, 추억을 쌓아간다.
그런데 오늘을 가장 기다렸던 시은이가 보이질 않는다.
“시연아, 시은이가···. 아직 연락 안 되니?”
“···네.”
정말 안되는 건지, 되면서도 나에겐 말하지 못하는 건지.
어느 쪽이든 이유는 같다.
지금 시은이가 날 보고 싶지 않은 거겠지.
시연이와 시은이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나는 오늘 파티가 열린 가게의 주인.
가게를 찾은 모든 사람을 챙겨야 한다.
“시은이 연락되면 알려줄래?”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응?”
시연이의 이야기를 들었고, 난 내가 뭘 잘못한 건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저 잠깐의 치기로 마음이 흔들렸다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이미 데이트를 하고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니.
대체 언제부터?
아니, 그보다 도진이가 그럴 시간이 있었나?
“사실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시은이가 저한테도 다 말한 건 아니라서··· 그냥 두 사람이 주말마다 만났었다는 것 정도밖엔···.”
“주말마다?”
생각보다 더 가까웠다.
하지만 시은이가 아직 미성년자에 학생인데.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잣대인가.
“···사장님.”
시연이와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도진이가 찾아왔다.
표정을 보니 이미 시은이에게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을 거란 확신도 들고.
“죄송합니다.”
대뜸 이어지는 사과.
“···너희들이 무슨 잘못이냐. 내가 잘못 생각한 거지.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
접근 방식이 잘못되었다.
두 사람이 벌써 그렇게 가까운 사이까지 발전했다면 이런 식의 접근은 오히려 애틋함만 키울 뿐이다.
“아닙니다. 거둬주신 은혜도 모르고 제가 감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 녀석 설마 내가 그런 이유로 두 사람 사이를 반대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도진아. 난 그저 시은이가 행복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지금의 네 처지같은 것과는 상관없다. ···예전의 헌터들 사이에서 왜 독신이 많았는지 알고 있니?”
“어렴풋이 예상은 됩니다. 위험하니까, 아닌가요?”
“맞다. 한 번 들어가면 길게는 며칠, 짧아도 하루를 게이트 안에서 보내야 하는 일이 바로 헌터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연락도 되지 않는 다른 차원의 공간.
손톱만으로 인간을 찢어 죽일 수 있는 괴물들이 사는 세상에 들어가서 전투를 벌여야 하는 일.
발생 가능한.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온갖 대비란 대비는 다 하고 들어서지만, 그럼에도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매일같이 뉴스를 장식하던 시절.
덕분에 헌터들은 일반인들과 어울리질 못했다.
쉬이 지워지지도 않는 피를 온몸에 칠하고 돌아온 이들이, 평범한 가족들과 웃으며 지낼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벌어들인 돈으로 술을 마시며 마음을 달랬고, 어떤 이들은 도박을.
심한 경우 마약에까지 손을 뻗었다.
평범한 가정? 헌터들에게는 쉽지 않다.
물론 걔중에도 있기는 했다.
배우자가 있고, 자식이 있고.
하지만 끝이 좋은 경우를 그리 많이 보진 못했다.
“저는 다릅니다. 전 시은이 마음 안 아프게 할 자신 있어요!”
“알아. 너는 그럴 수도 있다는 걸.”
“그럼 왜···. 왜 반대하시는 건데요?”
도진이의 성품은 나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한때는 자만심에 빠진 적도 있지만, 이곳에 온 뒤로 도진이는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
이제 겨우 20살이 되는 시은이.
사실 이대로 놔둬도 얼마 가지 못하고 헤어질 수도 있을 일이다.
제대로 연애도 즐겨보기 전에 장거리 연애라니, 그게 길게 유지되기 힘들다는 건 이미 본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모두 가정이다.
두 사람이 곧 헤어질 수도, 오래 만남을 유지할지도 모른다.
정말 행복한 연애를 이어갈지도 모른다.
그래, 도진이는 예전의 그 헌터들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시은이가··· 힘들어할지도 모르니까.”
단 1%라도 패배할 가능성이 있는 도박은 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