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70화.
세상이 뒤숭숭해지기 전.
이진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 우리도 구경하러 가자. 응?”
“진아, 그게 뭔지도 모르고···. 혹시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데 굳이 왜 보고 싶어 그걸.”
“우리 반 애들 다 보고 왔단 말이야. 나도 가까이서 보고 싶어. 응? 가자, 가자아-!”
조현영은 아들의 계속되는 조름에 결국 반쯤 허가를 해주고 말았다.
“그럼 아빠 오시면 이야기해보자, 알았지?”
“응! 오예!”
철이 없던 이진과 그런 아들을 너무 사랑했던 부모님.
결국 주말에 세 가족은 차를 타고서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앞뒤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 위용을 뽐내고 있는 빛의 장막.
세상 곳곳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신비한 현상에 사람들은 불안과 호기심이라는 두 감정이 한데 뒤섞인 눈으로 그것을 지켜봤다.
“와, 사람들이 정말 많네.”
“그러게. 저게 뭐라고··· 진아, 와보니까 어때? 별 것 없지?”
“아냐, 엄청 신기해! 되게 이뻐!”
아들의 말에 이길문이 어색한 표정으로 웃고선 다시 장막을 바라봤다.
저것의 어디가 아름답다는 말일까.
자신이 보기엔 그저 두렵기만 한 것을.
주변을 보니 구경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 가족, 혹은 연인이었다.
각종 간식거리를 파는 사람들도 보이고,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가 목청을 높이며 돌아다니는 곳.
얼핏 보기엔 관광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주변 100m는 접근금지로 지정되어 군인들이 경계를 서서 다가가지도 못하는데도.
후웅-.
간혹 장막의 안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기묘한 냄새.
역한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도 나는 바람.
이길문은 잠시 아내와 아들을 두고, 푸드트럭으로 향했다.
“잠깐 있어 봐. 가서 간단한 먹을 거라도 좀 사 올게.”
“응. 그럼 난 진이 사진 좀 찍어주고 있을게.”
인증샷을 남겨야 한다나 뭐라나.
아들의 말론 아이들 사이에서는 요즘 이곳을 다녀오지 않으면 이야기에 끼어들 수가 없단다.
아이들이야 신기한 것을 보면 어른과는 달리 두려움보단 호기심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일까.
그나마 오기 전에 알아보니 딱히 방사능이나 유독성 기체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고민 끝에 오긴 했지만, 사실 이길문은 아직도 조금 불안했다.
이런 게 사람 누구에게나 있다는 직감이라는 건지.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누군가는 저게 이계와 연결된 통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연구하는 이들은 아직 아무런 것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할 뿐.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세상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빛의 장막이 생긴 지 벌써 3달.
등장과 함께 갑론을박으로 들끓던 여론도 이제는 차차 잠잠해지고 있었다.
“36번 손님. 피자 나왔습니다.”
“아, 네!”
이길문은 자신이 받아 두었던 쪽지의 번호를 확인하고선 얼른 트럭으로 다가섰다.
아들이 좋아하는 피자.
마침 조각 피자를 파는 트럭을 발견한 것은 운이 좋았지.
따끈한 피자를 양손에 들고, 몸을 돌린 순간.
후우웅-.
이전까지 불어오던 바람과는 사뭇 다른.
비릿하고 역한 피 냄새가 가득 실린 바람이 어딘가에서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길문 뿐이 아니었다.
이렇게 역한 피 냄새를 맞고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적으니까.
“···방금 뭐였죠?”
아마 자신과 비슷한 경우인지.
옆에 피자를 들고 서 있던 남자가 혼자 중얼거리듯 물었다.
이길문에게 물은 게 아니라.
대답해 줄 수 있는 아무라도 찾고 싶은 심정으로.
후웅-.
두근두근두근두근.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을 치고, 이길문은 손에 든 피자를 던져버리고 달렸다.
피해!
머릿속에서 그런 말이 미친 듯이 외치고 있었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최대한 멀리.
“···진아! 현영아!”
전망 좋은 곳에 돗자리까지 펴고 앉아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땅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데도 피가 죄다 머리로 몰리는 느낌.
인간의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뛸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당황하자 시야가 좁아졌다.
이미 무언가 불안함을 느낀 사람들 사이로 혼란이 번져나간다.
쫙-!
‘정신 차려! 이길문!’
피자를 던져버린 양손으로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나서야 시야가 다시 넓어졌다.
이곳을 벗어나려는 사람들 사이로.
멍하게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아들과 아내.
“현영아!!!”
아들인 이진은 이제 겨우 12살.
이런 상황에서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건 아내와 자신이다.
반대로 달려오는 사람들을 밀치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몇몇 사람이 자신과 부딪혀 넘어지는 건 알았지만 그들에게 신경 써줄 여유가 지금은 없다.
“현영아! 진아! 정신 차려. 여기서 나가야 해!”
“···아, 아빠?”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아들이 멍한 얼굴로 자신을 돌아봤다.
이상하다.
아들이 조금 이상하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봐온 아들이기에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아들이 뭔가 변했다는 걸.
하지만 지금 한가하게 그걸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이길문은 이진을 안아들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한 뒤로는 이렇게 앉아준 적이 없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버린 건지, 아들을 안아 든 팔에 묵직한 무게감이 내려앉았다.
“여, 여보···.”
“생각하는 건 나중에. 우선은 여길 벗어나는 것만···.”
꺄아아악-!
으, 으아아아!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짙어진 혈향과 동시에 뒤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고개를 돌리기가 두렵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그래도 확인해야 했다.
이길문은 품에 안아 든 아들이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잡은 뒤, 등을 돌렸다.
끼기긱-끼긱!
괴상망측한 웃음소리를 내는 생명체.
초록색 피부에 뾰족한 귀를 하고선, 해괴한 차림새를 한 모습.
없다.
아무리 기억을 뒤지려고 해도, 저런 모습을 한 생명체가 지구상에 있다는 건 들어본 적 없다.
하지만 알 것 같다.
이길문 역시 결혼 전에는 여느 남자와 다름없이 게임이라는 걸 즐겼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고블린.”
분명 처음 보는 생명체인데도,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하던 몬스터라 불리는 괴물.
“도, 도망쳐야 해!”
타다당-!
탕탕!
군인들이 실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만, 아마도 허가가 필요했겠지.
미국같은 곳이었다면 장막에서 괴생명체가 나오자마자 대응 사격을 했을 텐데···.
이 빌어먹을 대한민국의 총기 규제.
“현영아, 내 손 절대 놓치지 마!”
한 손에는 다 커버린 아들의 무게, 다른 한 손에는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랑하는 아내.
이길문은 필사적으로 앞을 향해 달렸다.
공원 가득 있던 인파가 한꺼번에 출구로 모여드니 자연히 생겨난 병목현상.
‘차를 타야 하나? 뛰어? ···어떻게 하지?’
길게 보자면 차를 타고 도망치는 게 맞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지금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갈 수나 있을까?
이를 악물고 다시 달렸다.
차가 있는 곳이 아니라 시내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는 곳으로.
‘사람이 많이 모인 곳으로 가야 해.’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다.
지금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 공격당하는 게 자신과 가족이 살아날 확률이 높다.
내 가족만 지킨다.
이길문은 오직 그 생각 하나만 가지고서 달리고 또 달렸다.
아들을 안아 든 팔에서는 언제부턴가 감각이 사라졌고, 꼭 잡은 아내의 손에도 점차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쓰러져도 좋다.
심장이 터져도 좋다.
그 전에 가족만 안전한 곳에 데려다 줄 수 있다면 말이다.
끼기긱-!
이렇게 열심히 달렸는데···. 따라잡혔다.
고블린이 작고 약하다고 누가 그랬지?
···아무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이 괴물들은 빨랐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느렸던 걸까?
“혀, 현영아. 진이 데리고 뒤로 물러나.”
“오, 오빠.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지?
온갖 생각이 머리를 헤집는데, 옆에 누군가 버려둔 야구 배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천운인가?
마침 이 타이밍에 무기가 될 만한 야구 배트라니.
그래··· 우린 여기서 죽지 않을 운명이다.
기껏해야 나무 몽둥이 하나일 뿐인데, 손에 쥐니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솟아난다.
고블린은 약하다.
그나마 몬스터들 중에서는 최약체에 속하는 녀석들이니까.
이길 수 있다?
‘아니, 무조건 이겨야 한다!’
국방의 의무가 내 가족을 지키는 일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군대에 가는 남자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실제로 이길문의 손에 가족의 생사가 걸려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남자는 강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더욱더 강하다.
“흐아압!”
이길문의 손에 들린 야구 배트가 횡으로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졌다.
* * *
후우-.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잠에서 깼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시절의 기억, 정말로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옆에서 한참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네스티를 잠시 내려다봤다.
요 녀석이 처음 도착해서는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지.
물론 모두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진 못했다.
이루나 도진이에게는 몰라도, 시연이나 시은이에게 네스티가 게이트 안에서 나온 마왕이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
언젠가는 말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평소보다도 이른 시간이지만, 나는 그대로 욕실로 들어갔다.
겨울이긴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찬물을 뒤집어쓰는 게 좋을 것도 같고.
차가운 물이 머리 위로 쏟아지길 한참.
그제야 평소대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에 거실로 나갔다.
하나 남은 방은 지금 라미야의 차지.
호텔로 가는 편이 피차간에 편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여기서 묵겠다고 한 건지.
달력을 보니, 오늘이 마침 시은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날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교회를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크리스마스를 챙기는 걸까.
의아하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 자신조차도 어린 시절에는 크리스마스를 무척이나 기다리곤 했지.
산타가 없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으면서도 선물을 받는 즐거움은 그 사실을 무시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었으니까.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에도 양말을 문 앞의 걸어두곤 했는데.
문득 또 어린 시절을 추억해버렸다.
확실히 네스티가 온 뒤로 자꾸만 예전 일을 떠올리는 일이 잦아졌네.
즐거운 일만 떠올리면 상관없겠는데.
그 끝은 결국 최악의 장면으로 마무리가 될 수밖에 없으니 문제다.
“···일찍 일어났네?”
“너도. 적응은 잘 되가?”
모습을 보니 지금 막 일어난 것 같지도 않고.
날 기다렸던 건가?
“뭐, 그럭저럭. 그보다 네스티는 중간에 안 깼어?”
그게 걱정되어 잠을 제대로 못 잔 건가?
정말 엄마가 다 됐네.
“응? 원래 중간에 깨고 그러나?”
“···애들은 다 그렇지.”
“애들이라···. 그사이에 특별한 점은 없어?”
“딱히.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냥 평범한 애들이랑 다르지 않아. 마력을 가지고 있다 뿐이지.”
아무래도 게이트를 집이라고 하는 아이가 평범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지.
“참,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 가게에서 파티할 건데.”
“···그래서?”
“응? 아니, 너도 특별히 볼 일 없으면 오라고. 애들이 널 좋아하더라고.”
“진, 내가 어디 사람인지 잊은 거야?”
“···아. 미안.”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권의 국가였지.
게다가 라미야는 그런 나라의 공주 신분이고.
자칫 크리스마스 파티에 어울려 놀다가 누군가에게 들키면 난처한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신경 쓰지 마. 네스티나···. 하긴, 네스티도 좀 그러려나?”
“···모르겠네.”
신과 마왕.
마왕이 실제로 존재하니, 신도 존재한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겠지.
다만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신과 같은지는 모르겠고.
설령 또 같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갑자기 내가 어린 시절의 꿈을 꾼 것은, 어쩌면 네스티의 그런 바람이 나에게 전달된 걸지도 모르겠다.
굳이 익숙한 라미야가 아니라, 내 곁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도.
라미야가 그랬었지.
네스티가 나에게 아빠라고 하는 건, 단어가 가지는 의미 자체보단 네스티의 마음에 그런 식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라고.
“앞으로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아이니까.”
또 모르지.
저 녀석이 어쩌면 인간들에게는 구세주가 되어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