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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69화 (69/153)

귀환자 식당 69화.

저녁이 될 무렵 가게로 다가오는 차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들어서는 세단에서는 전에 인사를 나눴던 이가 내려섰다.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어서 오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뒷좌석에서 나오는 노년의 신사.

“형님.”

“그래, 오랜만일세. 입구에 있는 메뉴판에 보니 오늘은 소꼬리찜이라고? 제법 보신이 되겠구먼 그래.”

“형님이 오신다고 해서 정한 메뉴인데,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사실은 석웅 형님이 가져오기로 한 산삼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니까.

“이거 믿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구먼. 허허허.”

“안으로 오시죠. 먹음직한 녀석으로 준비해뒀습니다.”

꼬리 수육.

사실 소꼬리에 살이 얼마나 붙어 있겠나.

스지와 사태등을 넣고 함께 고아야 그나마 먹을 게 조금 생긴다.

꼬리를 넣고 푹 우린 국물에, 꼬리 수육과 사태, 스지를 넣고 냄비째로 내어갔다.

부추를 듬뿍 썰어 얹으면 되는 간단한 요리.

그 외에는 고기를 찍어 먹을 수 있도록 마늘, 간장을 기본으로 한 소스와 김치 정도면 충분하다.

삶은 소면을 넣어서 곁들이기에도 좋다.

한 차례 푹 익힌 고기들이라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바로 먹어도 된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간장 소스에 고기를 찍어 고춧가루와 참기름으로 살짝 무쳐둔 부추무침을 함께 먹으면 부드러운 고기와 아삭한 부추가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아주 잘 익혔네. 역시 진이 동생 솜씨는···!”

“넉넉히 준비했으니 얼마든지 드시죠. 자, 제 잔 받으셔야죠.”

“이게 아직도 남아있었나?”

여름에 담았던 복분자주.

넉넉하게 담은 것도 있지만 석웅 형님이 가신 뒤로 누군가에게 이 술을 대접한 적이 없다.

간혹 이루와 한잔을 할 때만 제외한다면.

그러니 아직도 제법 많이 남아있었고.

“다음에 오실 때는 약주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약주?”

일반적으로 술을 점잖게 부르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약藥이 되는 술이다.

복분자처럼 100일만 지나면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 담을수록 더욱 좋아지는 그런 약주.

석웅 형님은 아마 벌써 눈치를 채신 듯.

“허허-. 그걸로 술을 담을 생각이었구먼, 그래?”

“차를 내려 먹을까 했는데, 결국 떠오르는 건 술이어서요.”

“그것참 기대가 되는군. ···내 그때까지 살아있으려나 모르겠네.”

“할아버지도 참···. 아직 이렇게 정정하신데요. 그런 말씀 마세요.”

오늘도 함께 온 손자이자 제자, 함우혁의 말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그에겐 석웅 형님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하기 힘들겠지.

태어나 자라면서 늘 함께했고, 자신에게 산에 대해 알려준 것이 바로 석웅 형님일 테니.

“그 말이 맞습니다. 형님은 아직 그런 걱정 하시기엔 많이 이릅니다.”

“하하-! 자, 잔이나 들지.”

이루는 돌아온 뒤, 잠시 볼일을 보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지금 가게엔 나와 도진이뿐.

“저는 곧 가게를 열 시간이라···.”

“아, 그렇지. 이거 혼자 마시려니 미안하네.”

“맛있게 드셔 주시니 감사하기만 한 걸요.”

함석웅은 너털웃음을 짓고선 시원하게 잔을 들이켰다.

주방으로 들어와 우선 냄비를 준비했다.

부추무침은 미리 만들어두면 수분이 빠져 아삭한 식감이 줄어들어서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기로 하고.

우선 석웅 형님이 건네준 상자를 가지고 들어왔다.

상자를 열자마자 주방 가득 퍼지는 건강한 향기.

“와···. 사장님, 이건 뭡니까? 향이 무슨···. 아!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산삼?!”

도진이도 눈치가 많이 늘었네.

지난번 것보단 못하지만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서는 이번 산삼도 귀하디귀한 것은 분명하다.

남들은 평생 가야 하나를 찾을까 말까 한 것들을.

석웅 형님은 어찌 이리 잘 찾으시는 걸까.

모르긴 해도 아마 재산이 상당할 거다.

“이거 설마, 저를 주시려고···.”

도진이가 감동에 찬 눈으로 날 바라보는데, 살짝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음···. 그건 아니고···.”

“그, 그렇죠? 농담입니다. 농담. 하하···.”

도진이도 최근 상당히 무리하고 있으니 먹으면 물론 좋겠지만.

오늘 산삼은 시연이를 위해 공수한 거다.

능력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데다 그 순간의 기억을 하지 못하니, 불안하기도 할 테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되기라도 하면 문제가 커질지도 모른다.

산삼 하나 먹는다고 당장에 좋아질지는 알 수 없지만 해볼 수 있는 건 해보는 게 좋겠지.

살짝 젖은 키친 타월로 조심스럽게 산삼을 닦아나갔다.

닦는다고 해봐야 결국 흙을 깨끗하게 털어내는 것뿐이라 마력을 이용하면 되겠지만 이런 건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법.

큰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게, 나도 어쩔 수 없는 아재인가 보다.

옆에서 침을 꼴딱꼴딱 삼키면서 지켜보는 도진이가 조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하아. 넌 다음에 줄게!”

“지, 진짜요?”

“그래. 이 녀석아. 그러니까 가서 대파나 좀 썰어놔라. 곧 손님들 오실 시간이니까.”

흐흐흐-.

실소를 흘리며 그제야 벗어나는 녀석.

남자란 동물은 하여튼 몸보신이라면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어찌들 이리 눈이 뒤집히는 건지.

깨끗하게 닦은 삼은 잠시 보관.

이제 시연이가 오면 조심스럽게 먹이기만 하면 된다.

“삼촌-!”

밝고 경쾌한 목소리는 시은이.

“언니가 저녁 여기서 먹는다고 먼저 가 있으랬어요. 앗,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지난번에 잠깐 스치듯 인사를 시켰는데, 잊지 않았나 보다.

“흘. 저번의 그 조카구먼. 진 아우가 세상에서 제일 아낀다고 했던.”

“헤헤-. 할아버지 기억력 되게 좋으시네요.”

칭찬인가? 좀 예의가 없었던 건 아닌가 싶었는데.

“하하하-. 젊은 처자가 아주 싹싹하구먼. 오늘도 저녁 먹으러 왔는가?”

“네. 언니도 곧 올 거예요.”

석웅 형님이 날 스윽 바라보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거, 정말로 좋은 삼촌을 뒀구먼.”

“그쵸? 헤헤- 난 삼촌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언니가 들으면 섭섭할 텐데?”

“그야 언니 앞에선 언니가 제일 좋다고 해야죠.”

시은이의 말에 석웅 형님은 얼굴 한가득 정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 * *

“삼촌, 저 왔어요.”

“그래. 시은이는 위에 있는데···. 이루야, 나 잠깐 위층에 있을게.”

“오케이! 걱정 말고 다녀오셔!”

어딜 다녀왔는지, 헬기를 타고 뒤늦게 와서 잔뜩 뿔이 났던 오전과 달리 기분이 한껏 좋아진 녀석.

아마도 은지를 만나고 온 모양인데, 뭘 했는지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다만 얼굴이 반질반질 거리는 게, 분명 어딘가에서 깨끗하게 씻은 것 같기도 하고.

사태와 꼬리, 스지 수육을 냄비에 넣고.

푹 우려낸 국물을 넉넉히 부어서 가지고 시연이와 함께 위층으로 향했다.

시은이는 분명 티비를 보고 있을 거라며 올라갔는데.

정작 티비는 전원도 켜지 않은 채였고, 시은이는 집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시은아, 뭐하고 있어?”

“응? 그, 그냥 뭐··· 집구경.”

내가 살던 당시에 왔을 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쩐지 살짝 서운하려고 그러네.

“얘는, 집주인도 없는데, 그러면 못 써.”

“치··· 어차피 바로 밑에 있는데 뭘.”

“이시은!”

“아, 알았어···. 앞으론 안 그럴게.”

도진이야 그런 걸로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화를 낼 것 같진 않지만, 이건 확실히 시은이가 잘못한 일이 맞다.

비록 소유주가 나이긴 하지만, 나도 미리 사전에 도진이에게 여기서 식사하겠노라 허락받고 온 것인데.

“가기 전에 도진이한테 꼭 사과해.”

“제, 제가 직접이요? 그건 좀 부끄러운데···. 힝.”

아무리 그런 표정을 지어도 이번엔 그냥 넘기지 않았다.

“으차차-. 어? 아직 식사 안 하셨어요?”

마침 위층으로 올라오는 도진이.

꼭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맞아떨어진 타이밍.

“이시은?”

시연이가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었고.

“아, 알았다. 뭐···. 저기, 오빠.”

“응?”

“저··· 죄송해요. 오빠 허락도 없이 집 안 여기저기 둘러봤어요.”

“집을? 뭐, 괜찮아. 볼 것도 없는···. 아! 호, 혹시··· 저 방에도 들어갔어?”

도진이가 이루가 쓰던 작은 방을 가리켰고.

질문을 받은 시은이의 얼굴이 정말 잘 익은 홍시처럼 달아올랐다.

그게 대답이 된 건지, 마주 선 도진이의 얼굴도 달아오르고.

하아.

지금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얘들아?

“흠흠! 도진이는 너는 뭐 볼 일 있어서 올라온 거 아냐?”

“아, 맞다!”

그리고선 이제 제 차지가 된 안방으로 휙 들어갔다가 금세 나왔는데.

들어가기 전과는 달리 양 손목과 발목에 검은색의 밴드가 채워져 있었다.

“사부님이 매일 차고 있으라고 했는데, 아직 익숙하질 않아서 자꾸만 까먹네요.”

“괜찮겠어? 무게가 꽤 나가 보이는데?”

“에이-. 저도 이제 이 정도는 거뜬하죠.”

표정을 보면 그래 보이진 않는데.

뭐, 본인이 괜찮다고 하면야.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도진이를 잠깐 불렀다.

도무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도진아, 그런데 아까 그 방에 뭐가 있었길래 그렇게 놀란 거야?”

“그··· 빨래를 널어놨거든요.”

“빨래? 그게 뭐가 어쨌···. 설마, 속옷 때문에?”

난 또 뭐라고.

혹시나 방 안을 시은이 사진으로 도배라도 해놔서 그런가 싶었더니.

별것도 아니구만, 요즘 애들은 이해할 수 있으려다가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개방적인 것처럼 굴면서, 정작 이성에게 속옷 조금 보였다고 부끄러워하다니.

아직 애들은 애들이네.

좋을 때다.

* * *

“이번엔 언니한테 양보할게. 자.”

수육 위에 가지런히 놓인 산삼.

물론 이번에도 산삼이라고 말은 하지 않았다.

아래층에 자리를 잡으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음에도 굳이 위층에서 먹으려고 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테이블에는 없는 인삼이 왜 굳이 두 사람의 수육에만 얹어졌는지.

일반 인삼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 의심을 살까 싶어서.

“그래. 이번엔 시연이가 먹으면 되겠다. 자.”

얼른 시연이의 그릇 위에 산삼을 얹어줬다.

잠깐이라곤 하지만, 국물 안에서 잠시 익혔으니 쓴맛은 많이 사라졌을 거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지난번의 일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엔 의심이 없었다.

인삼과는 달리 그리 크지 않은 산삼이라 한입에 사라지는 걸 보니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이제 얼른 수육을 먹고 마력을 순환시켜주면 이전보다 훨씬 좋아지겠지.

당장이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산삼 같은 영물은 섭취한 것만으로 이후에도 꾸준히 도움이 될 테니까.

시연이가 오물거리는 걸 보며 수저를 들려고 하는데, 밑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사장님, 잠깐 내려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나? 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어지간한 일이라면 이루가 처리해도 별 상관이 없을 텐데.

“먹고 있어. 잠깐 내려가 볼게.”

“무슨 일 있는 거예요?”

“별일 아닐 거야. 걱정 말고 밥 먹어.”

사실 별일이 아니면 도진이가 굳이 날 부르러 왔을 리도 없겠지만.

도진이를 따라 식당으로 내려가니 익숙한 사람이 와 있었다.

“···너 여길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내가 못 올 곳 온 것도 아니고.”

라미야와 작은 꼬마, 네스티가 가게 앞에 서 있었다.

나 지금 떨고 있나?

저 꼬마 마왕의 입에서 자칫 엉뚱한 소리라도 나왔다간.

“네스티? 인사해야지?”

라미야가 살짝 짓는 저 미소가 두렵다.

그리고 네스티가 날 바라보더니, 활짝 웃었다.

“아빠, 안녕?”

그러니까, 난 네 아빠가 아니라고.

라미야는 대체 그동안 이 녀석에게 뭘 가르친 거야.

심지어 육아도우미까지 한국에서 보내줬는데.

“···아, 아빠?”

시연이와 시은이가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서서 날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배신감에 가득한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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