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67화.
이른 아침.
이루가 도진이와 아침 훈련하고 있을 시간에 안정민 과장이 찾아왔다.
“며칠 안 보이더니?”
“···조금 바빴습니다.”
이루는 그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턱밑까지 쳐진 다크서클이 그가 오지 못한 이유를 대변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오늘은 상당히 일찍 왔네? 형은 아직 나오려면 좀 있어야 할 텐데.”
“네···. 그냥 커피 한 잔하면서 기다릴까 해서요.”
“그래? 그럼 기다리고 있어 봐. 내가 한 잔 타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운전할 기운도 없어서 택시를 타고 온 안정민에 대한 배려였다.
“무슨 일인데? 형 오기 전에 나한테 말해봐.”
“기밀이라서 제가 함부로 말할 수가···.”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어차피 알게 될 거라는 거, 너도 알잖아?”
후우-.
“사실, 이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각성 능력자를 찾은 것 같습니다.”
“어떤? 아아, 마력장 왜곡 각성자?”
“네, 그 이름이 맞는 겁니까?”
“내 기억이 맞으면 아마 맞을걸. 특성상 그런 능력자는 대부분 국가에 소속된 공무원 같은 자들이어서 나랑은 거의 마주칠 일이 없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가만··· 아하, 알겠다. 그래서 테스트해 보려고 하는데, 혹시나 위험할까 싶어서 왔구나?”
“···네.”
그 말에 이루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에이, 난 또 뭐라고, 그 정도야 내가 해줄게. 형한테 말해봐야 괜히 귀찮게 한다고 욕밖에 더 먹어?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에 잘됐네. 내가 같이 가줄게.”
“···그래도. 선생님이 계셔야.”
“뭐야? ···너 지금 난 미덥지 못하다는 의미야?”
“그,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이루의 협박 아닌 협박에 안정민 과장은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형한텐 말할 필요도 없어. 아무도 모르게 후딱 해치우면 되는 거지. 그럼 알아서 잘했다고 더 칭찬할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도 요즘 형한테 미움받는 거 같던데, 이참에 점수 좀 따야지?”
당근과 채찍의 교묘한 조합에 안정민 과장은 홀리듯 따라나섰다.
그리고 결국 사달이 난 것이고.
“···그렇게 된 겁니다.”
이루답다면 참 이루다운 일이다.
물론 이루 말에 틀린 건 없다.
마왕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이루를 어찌할 존재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는 세상이니까.
“그럼 섬에는 이제 이루 혼자 남은 건가?”
이루가 말을 편하게 한다는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얼굴을 마주한 지가 오래되어 나름 편해진 걸까.
안정민에게 말이 편하게 나왔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하대였는데도 안정민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네. 혼자서 괜찮을까요?”
피식.
하기야 안정민은 아직 이루의 힘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긴 하지.
아마 오늘은 카메라 같은 게 없다는 점이 오히려 다행일 거다.
내가 몬스터를 먼지처럼 흩어지게 하는 걸 본 사람들의 반응은 경악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루의 능력을 보게 된다면 공포감에 사로잡히고 말 거다.
그 녀석은 신체 강화 능력자.
말 그대로 몬스터를 죽인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갈기갈기 찢는 광경은 어지간한 경험이 있던 헌터들마저도 공포에 잠식되게 했으니까.
광란의 검이 있는 곳에는 다가가선 안 된다.
피와 살의 폭풍에 휘말릴 수 있으니.
“괜찮아. 말했잖아. 오히려 주변에 아무도 없어야 그 녀석도 더 편할 거라고.”
“알겠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그보다, 왜곡 능력자는?”
“아, 일단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차에서?”
“그게··· 나이가 조금.”
많이 어린 건가?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세상이 세상이니 그런 능력을 썩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적어도 난 그런 부분에선 차별하지 않는다.
“많이 어린 건가?”
“아뇨, 그 반대입니다. 연세가 꽤 많으세요.”
도대체 몇 살이나 되었길래.
“으음.”
차 문이 열리고, 다리 대신 지팡이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안정민의 도움을 받아 모습을 드러냈는데.
어딘가 익숙한 얼굴.
주름이 생기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분명히 아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예전의 모습이 마치 기름종이에 인쇄된 사진처럼 겹쳐갔다.
“서, 설마 너··· 미연이니?”
차에서 나온 그녀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슬퍼보이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봤다.
“오랜만이야. 오빠는··· 변한 게 없네. 난 이렇게 늙어버렸는데.”
안정민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도진을 슬쩍 잡아당기며 가게 바깥으로 자리를 피했다.
“어, 어떻게 네가 여기에.”
답이 뻔한 질문을 해서 뭐 한다고.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나올 말이라곤 그것뿐인 것도 어쩔 수 없다.
“이런 할머니가 오빠라고 부르는 거, 어색하려나?”
“그럴리가. 시간이 지났어도 네가 미연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나한테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미연이야.”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하지만, 어떻게 된 거지?
각성은 젊은 신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나?
나도 그랬고, 대부분 사람이 그랬다.
아니, 내가 알기론 40대 이상에서 각성한 경우는 없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도 각성자 전원이 20대, 아무리 늦어도 30대 초반이다.
더 이른 경우라면 모를까.
“사실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어. 각성자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나이에 다시 각성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그것도 이전 각성 능력과는 상관도 없이 뜬금없는 마력장 왜곡이라니.”
“마력장 왜곡이라는 건 어떻게 안거야?”
“자주는 아니지만 몇 번 보긴 했으니까, 마력의 흐름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떠올렸지. 오늘 확인해보니 역시나 맞는 거 같고.”
어쩐지 생각보다 금방 찾았다 싶었다.
마력장 왜곡이라는 건 능력의 특성상 각성자 본인이 자기 능력을 깨닫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그럼 설마, 게이트를 일부러 연 거야?”
마력장 왜곡 능력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마석을 이용해 게이트의 개방을 강제로 늦추는 것, 그리고 반대로 강제로 개방시키는 것.
내 질문에 미연이는 주름진 눈으로 날 살짝 흘겨봤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녀는 그대로였다.
“오빠, 내가 그럴 사람이야?”
“···그렇지, 미안. 그럼 그게 왜···.”
“마력장 왜곡 능력은 멀리서 보기만 봤지, 실제로 해본 건 처음이잖아. ···그래도 이젠 알것 같아. 오늘 한 거랑 반대로 하면 되는 거겠지?”
그걸 나한테 물어봐도···.
“아마 그렇겠지?”
“그보다. 히로 무야시라니··· 대체 언제부터?”
“아, 이루 말이지···. 돌아오고 바로? 일본에서 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거든, 어쩌다 보니 같이 살게되어서···.”
“같이 살았다고? 오빠가 그 히로 무야시하고?”
하긴, 예전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인가.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
“···상상이 안 가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오빠를 화면으로 봤을 땐 정말이지··· 얼마나 놀랐는지.”
“그런데 왜 진작 연락 안 했어?”
아는 사람이 어딘가 있을 거라 막연하게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막상 찾아볼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없었던 건 사실이다.
솔직히 누군가 날 찾는다고 해도 그리 반가운 사람은 없을 거라 믿었고.
하지만 미연이라면 다르지.
그녀가 날 구해준 게 몇 번인데.
“오빠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고, 난 이제 곧 세상에서 잊힐 사람이니까.”
“넌 무슨 말을···!”
“그나저나 식당이라니··· 뭔가 오빠랑 어울리면서도 낯설다. 하긴, 게이트 안에서도 요리는 늘 오빠가 해줬었지.”
“···어때? 오랜만에 한번 먹어볼래? 이번엔 재료도 냄새나는 몬스터 고기 같은 게 아니야.”
굳이 말을 돌리려는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아서, 나도 조금 편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 말에 미연은 가볍게 웃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다행이네. 그럼··· 오랜만에 한 번 부탁해볼까?”
* * *
“과장님, 저분이 대체 누군데요? 사장님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그보다 각성자는 전부 젊은 거 아니었어요? 얼핏 봐도 환갑은 훌쩍 넘어 보이시던데.”
서도진의 연이은 질문에 안정민 과장은 하나만 답했다.
“아주 예전의 동료. 나도 그 이상은 몰라. 아, 하나 더 있긴 하네. 이미연 선생님. 저분이 예전에는 치유 능력 각성자였다는 것 정도.”
자료가 제법 남아있긴 하지만, 헌터들 사이의 개인적인 친분까지는 알 길이 없다.
그나마 게이트 공략에 몇 번인가 이진과 함께했었다는 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고.
“와··· 진짜 신기하다. 아까 저 할머니가 사장님한테 오빠라고 하는 거 들으셨죠? 기분이 되게 이상하네요.”
“···여기 가게 사람들은 왜 이리 눈치가 없는 건지.”
“네?”
“···아니다. 아무튼, 우린 자리 좀 비켜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저는 그냥 여기 있어도 되는···.”
안정민 과장이 주변을 살짝 둘러보더니 조금 떨어진 길가에 있는 작은 커피숍 하나를 발견하고선 도진을 끌고 갔다.
* * *
안정민 과장이 오기 바로 전, 제주도 선장님이 보내주신 택배가 도착했다.
석화와 함께, 갯바위에서 딴 자연산 돌굴이 조금.
마침 미연이도 굴을 좋아한다기에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무를 곱게 갈아 돌굴을 넣고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굴에 붙은 이물질이 무에 달라붙어 깨끗해질 즈음, 찬물에 불려둔 미역을 잘게 자르고.
달군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미역을 볶았다.
들기름에 미역이 코팅되듯 볶아진 위로 국간장을 넣고 미역에 간이 배도록 볶아주면 절반은 완성.
치르르···.
들기름이 남아있는 뜨거운 냄비 위로 멸치 다시 육수가 부어지자 요란한 소리가 들리다가 금세 잠잠해진다.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괜찮아. 나는 잠깐 가게 구경하고 있을게. 천천히 해도 돼.”
어디가 불편한 걸까.
지팡이를 짚는 모양새가 단순히 기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닌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내가 없는 사이, 미연이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질문은 천천히.
이렇게 다시 만난 이상 급한 것은 없다.
미역국이 푹 익는 사이, 얼마 전 갈치조림을 하고 남아서 냉동실에 넣어둔 갈치도 큰 것으로 한 조각 꺼냈다.
만들어둔 밑반찬도 가지런히 그릇에 담아 준비하면서 사이사이 갈치를 뒤집어 줬다.
더 맛있는 걸 대접하고 싶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데다, 기회는 지금만이 아니니까.
미역국이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푸욱 익어가기에 깨끗하게 씻어둔 돌굴을 넣었다.
양식이 아니라 갯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이라 크기는 작지만, 알맹이가 조금 더 단단하고 맛이 좋은 녀석이다.
굴미역국을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다.
무도 넣을까 했지만 그러면 굴국밥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국물을 조금 넉넉하게 잡았다.
두툼한 갈치구이 한 조각에 굴 미역국.
어떤 메뉴를 시켜도 늘 빠지지 않는 오징어젓갈과 마늘장아지까지.
거기에 얼마 전 김장을 해서 장독에 넣어 묻어두었던 아삭한 김치가 놓였다.
소박하면서 푸짐한 듯한, 먹음직스러운 밥상.
“오랜만이네 오빠가 해주는 밥. ···잘 먹을게.”
두근두근.
맛을 평가받는 거야 식당을 하는 사람으로서 늘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긴장되기는 또 처음인 것 같다.
시연이나 시은이에게 밥을 차려주는 것과는 또 다른 설레임.
살짝 주름진 입술에 발린 연한 색의 립스틱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미역과 굴이 담긴 수저가 미연의 입가로 사라지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할머니라고 불러야 하는 외모가 되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곱게만 보이는 미연이.
“역시, 맛있다.”
“···고마워.”
내가 각성하고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기 전.
나는 무척이나 약했다.
마력이 부족해서 권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고, 그에 반해 몬스터는 강했다.
“네가 날 몇 번이나 구해줬는지, 이젠 기억도 잘 안 나네.”
“가벼운 상처를 치료해 준 건 317번, 어디 한 군데가 부러진 정도의 중상은 62번, 거의 죽기 직전에 살려낸 게 6번이었어.”
“···그, 그랬구나.”
밥을 먹은 뒤, 커피를 내려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밀린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 두 사람에게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감히 가늠도 되지 않는다.
“···그간 어떻게 지냈어?”
무슨 말로 시작할지 모르겠어서, 그저 으레들 시작하는 단어를 골랐다.
“나야··· 그저 그렇게 지냈지. 오빠는?”
“나? 나는 이제 돌아온 지 겨우 반년이라 딱히 별일은.”
“그렇네. 오빠에겐 겨우 반년인데···. 어때, 나는 그사이에 많이 늙어버렸지?”
사실이다.
미연이에게는 3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외모는 그 이상으로 변했다.
20대 초반의 모습만 보아왔던 내 기억의 미연이와는 많이 달랐다.
날개 없는 천사라고 불리던 미연이였는데.
“누가 그래? 여전히 이렇게 아름답기만 한데.”
괜한 빈말이 아니다.
나는 양손으로 컵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감쌌다.
미연이는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고 주름이 진 손도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앉아 있던 미연이는 할머니가 아니었다.
어설프게 발린 립스틱, 소녀의 그것처럼 살짝 수줍게 달아오른 볼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주 살며시.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그녀에게 마력을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