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66화.
“팀장님. 이번 주 신규 각성자 등록 리스트입니다.”
벽에 걸린 시계의 작은 바늘이 11을 넘어가는 시각.
사무실에 남아있던 안정민은 두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한 번 문지르고선 서류 뭉치를 받아들었다.
“···이번 주에도 이렇게 많다고?”
따지고 보면 많은 수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이들의 자료를 상세하게 조사하다 보니 각각의 서류가 한 장으로 끝나지 않아서 문제지.
보기엔 수북하게 쌓인 서류지만 아마 인원수로 따지면 100명 남짓.
하지만 대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꼼꼼하게 기록해야 하는 게 바로 지금의 게이트 관리국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오늘 방산시장에서 잡혀 온 녀석들은?”
“전산에 등록이 안 된 각성자들이었습니다.”
“하아···. 역시인가.”
사람들의 인식이 좀처럼 바뀌질 않는다.
정부에 자신의 정보를 ‘등록’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민감한 시대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겠다만.
관련 업무를 하는 이들에게는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 그리고 이 사람···.”
“누군데?”
부하 직원이 따로 건네주는 서류.
파일철을 펼치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나 분류 타입이었다.
“C타입? 설마, 찾은 건가?!”
게이트 관리국에서는 각성자의 능력에 따라 여러 가지로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각성자들이 가진 능력의 종류에 따라 타입별로 구분을 지었다.
가장 많은 것이 A타입. 바로 신체 강화 계열이다.
그리고 B타입은 이능력 계열.
이들의 능력은 각기 다르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능력이 바로 ‘마법’이라고 불리는 능력을 사용하는 이들이 속한다.
마지막으로 각성자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능력을 가진 이들.
일반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희귀한 능력자들을 C타입으으로 분류했다.
분류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C타입으로 등록된 한국 각성자의 수는 모두 30명 남짓.
그리고 그중 한 명의 서류가 지금 안정민 과장의 손에 들렸다.
“···마력장 왜곡? 이름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군.”
“네, 본인도 아직 자기 능력을 정확하게 모르는 모양입니다. 여기 나이를 좀 보십시오. 이 번이 처음이 아닌 분이세요.”
“···이런 경우가 있었나?”
“제가 알기론 처음입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이진이 말한 능력자가 맞는 건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얼핏 들어선 비슷한 것 같기도,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후우. 그래도 일단 후보자라도 나온 게 어디야. 한국이 아니라면 외국에서 납치라도 해와야 할 판국이었는데··· 일단 삼영 쪽에 연락하고, 바로 테스트 준비해. ···걱정이 되긴 하지만, 우리가 지금 찬 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테스트는 어디서 할까요?”
“···별수 있나. 이번에도 선생님께 부탁해 봐야지.”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건 안다.
뼈저리게 알고 있지만 지금은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은 가게 문 닫으셨으려나.”
시간을 확인해보니 너무 늦은 밤.
전화는 내일 하기로 마음먹은 뒤, 그는 그대로 책상 위로 쓰러지듯 엎드렸다.
* * *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울렸다.
잠귀가 밝고 예민한 조카들이 깰까 얼른 받았더니, 제주도의 선장님이었다.
오늘은 주문한 게 없는데?
“네, 선장님.”
-이 사장, 요즘 굴이 좋길래 석화 한 박스 올렸네. 양이 그리 많진 않지만, 식구들끼리 먹기엔 괜찮을 거야.
김장을 한 날 이후로는 굴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석화라, 괜찮을 것 같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시계를 보니 이제 막 7시가 지나고 있었다.
아마 새벽 경매장이 끝나고 비행기로 당일 택배를 접수하자마자 전화를 주신 모양.
그러고 보니, 오늘은 또 가게로 찾아오는 귀한 손님이 한 분 더 있는 날이다.
가게에선 벌써 도진이의 훈련이 시작됐을 시간이니 택배를 받는 거야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직접 받는 게 마음이 편하다.
“어, 삼촌? 일찍 일어나셨네요.”
간단하게 씻고 나왔더니, 시연이가 벌써 일어나 아침을 준비 중이다.
상쾌하게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그렇게 됐네. 벌써 학교 갈 준비를 다 한 거야?”
“네. 잠이 안 와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말꼬리를 흐리며 날 쳐다보는 걸 보면 뭔가 상담하고 싶은 건가.
“혹시··· 네 능력에 관련된 일이야?”
“···네. 자, 잠시만요.”
시연이는 잠시 망설이고선 작업실에 들어가 작은 종이 두루마리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뻔하다.
촤륵-.
식탁 위에 펼쳐진 그림.
“며칠 전에 갑자기 이런 걸 그려서···.”
그림에는 제법 커다란 크기의 게이트가 그려져 있고, 그 앞에 서 있는 몇 사람의 모습.
시연이의 뛰어난 그림 실력 덕분인지, 보는 순간 알았다.
그중 한 명이 나라는 걸.
“여기, 이 아이는···.”
그리고 그 옆에는 머리에 뿔이 딸린 꼬마 아이.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이건 네스티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어야 할 아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리고 머리에 뿔이라니.
이건 또 언제 생긴 거고.
나중에 생기는 건가? 아니면 벌써 생겼나?
“시연아, 이 그림의 내용. 혹시 언제인지는 모르니?”
“네··· 그것까진. 죄송해요.”
아니지. 그건 시연이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이게 당장 닥칠 일은 아닐 것 같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왜냐면 지금 겨우 4~5살 정도로 보이는 네스티가 그림에선 적어도 10살은 되어 보이니까.
그림에서도 확실히 아이의 모습이긴 하지만 지금같은 꼬맹이는 아니다.
성장 속도가 인간과 같은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지진 않는다는 거겠지.
그야 라미야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고.
“걱정할 것 없어. 삼촌이 강한 건 알지?”
“···네.”
“시은이는 오늘도 늦잠 잘 생각인가 보네. 차는 학교에 두고 왔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삼촌에 데려다줄까?”
“가게 안 가보셔도 돼요?”
“가까운데 뭘.”
가볍게 아침을 마치고, 함께 집을 나섰다.
“아, 또 뵙네요.”
그리고 마침 옆집의 문도 함께 열리고 있기에 먼저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
이 양반 표정이 또 왜 이러나 싶었는데.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보니 시연이가 있었다.
“그··· 이쪽 여성분이 혹시.”
“네. 함께 살고 있는 제 조카예요.”
“···하, 하하···. 집안의 유전자 힘이 굉장한 모양이네요.”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나가는 걸 보면, 학생이신가 봐요?”
“네. 대학생이에요.”
시연이의 답에 남자는 잠시 시연이가 어깨에 메고 있는 화구통을 보고선 살짝 눈에 이채를 띄었다.
“아, 미대생 이세요? 그것도 이 시간에 나가는 걸 보면 혹시··· 홍대?”
“네? 아, 네.”
대답을 듣더니 미소와 함께 눈을 반짝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시연이도 연예계에는 관심이 없을 것 같은데.
“삼촌. 아까 그 옆집 사람··· 잘 아세요?”
“아니, 전에 우연히 마주쳐서 인사 한번 한 게 다인데···. 왜?”
차에 타서 학교로 가는 길.
“역시, 삼촌은 모르실 것 같았어요. 그 사람, 되게 유명한 사람이거든요. 한국 연예계에서는 아마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람일 거에요.”
“그래?”
확실히 전의 대화 내용으로 봐서 그럴 거로 생각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더 유명한 모양이네.
연예인에는 별 관심이 없는 시연이도 알 정도라면.
가까워서 그런지, 이야기를 얼마 나누지도 못했는데 벌써 도착했다.
“시연이 차가··· 저기 있나 보네.”
짙푸른 색이라 그런가, 눈에 잘 띈다.
한국은 유난히 무채색의 차가 대부분인 나라라 일부러 그런 색으로 고른 것도 있지만.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오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대학생들은 뭔가 낭만도 즐기고 여유가 넘치는 캠퍼스 생활을 할 줄 알았는데.
모두 얼굴에 그런 여유보단 다급함이 더 많다.
“그건 옛날 말이죠. 요즘은 1학년부터 취업 준비하느라 다들 정신없어요. 특히나 미대 출신은 더 힘들거든요.”
하기야, 미대를 나와 일반 회사에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나중에 현실에 부딪혀 미술을 포기하기 전까진, 모두 원하는 꿈이 있겠지.
“시연이는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벌써 취직 준비에 허덕이느라 이 좋은 대학 생활을 못 즐기다니.
다른 아이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시연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시은이도 그렇지만, 시은이는 의대다.
즐거운 대학 생활보단 오히려 고등학교 시절보다 더한 공부의 늪에 묻혀 살아야 할 테지.
그것까진 내가 어찌해줄 수가 없다.
“헤-. 저야 삼촌 잘 둔 덕에 이미 충분히 그러고 있는걸요.”
“녀석도···. 참, 저녁에 꼭 가게로 와.”
“네-!”
차에 내려 건물로 향하는 시연을 잠시 지켜보다 차를 돌렸다.
오늘은 석웅 형님이 오시는 날.
그리고 형님의 손에는 시연이가 먹을 산삼이 들려 있을 날이다.
* * *
가게에 도착했는데, 평소와 조금 다르다.
마당에 당연하게 땀을 흘리고 있어야 할 도진이가 없었다.
그 옆에서 닦달을 하고 있을 이루도.
“···뭐지?”
분명 아직 가게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긴 하지만, 이 시간까지 도진이가 늦잠을 자게 둘 이루가 아닌데.
무엇보다 위층에 살고 있는 도진이의 기척이 없다.
그 말인즉, 아침부터 두 사람이 어딜 갔다는 소린데.
뭐··· 애들도 아니고 내가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지금은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뭐지?
조금 당황스럽다.
신호가 울리지도 않고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는 게 묘한 느낌이 들고.
이루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도진이에게 전화했는데.
도진이도 연결이 되질 않는다.
두 사람 모두가 그래서 그런가, 기분이 심하게 찜찜해진다.
어디가서 맞고 다닐 사람들이 아닌 건 당연하지만 굳이 나를 피하는 것 같은 기분도 조금 들고.
우우웅-.
이제야 부재중 전화를 본 건가 싶어서 전화를 들었는데.
기대한 사람이 아니네.
그렇다고 또 예상에서 완전히 빗나간 사람인 것도 아니고.
“네, 과장님.”
-···서, 선생님!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알겠다.
대형 사고를 쳐놓고, 난처하면서 동시에 울상인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안정민 과장의 얼굴이 눈앞에 선하다.
“···뭡니까.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어, 억울합니다. 이번엔 정말 제가 아닙니다!
그럼 그동안에 친 사고들은 인정한다는 건가?
아니, 그럼 대체 누가···.
아.
“이루, 지금 거기에 같이 있는 거죠?”
-···네.
아침부터 어딜 가느라 자리를 비웠나 했더니.
-야, 안정민!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가 다 해결한다고! 이까짓 놈들쯤이야···. 서도진, 임마! 넌 좀 뒤로 빠져 있고!
-저도 한두 마리쯤은 문제없습니다! 돕게 해주세요! 실전을 겪어야 한다고 한 건 사부님이잖습니까.
-이 자식아, 누가 그걸 지금 당장 목숨 걸고 하랬냐?!
수화기 너머로 멀찍이 들려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저, 저는 정말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도 알겠고, 어디인지도 알겠다.
하지만 딱히 걱정은 안 된다.
“거긴 그냥 이루 녀석한테 맡겨두고, 이쪽으로 오시죠.”
-···네? 그냥 이대로 둡니까? 그래도···.
“됐으니까 그냥 오세요. 그게 그 녀석한테도 더 나을 테니까요. ···제 말 믿으세요. 오실 때, 도진이 녀석도 꼭 데려오시고요.”
괜히 다른 사람이 있으면 신경만 쓰이지.
어차피 거기 있어 봐야 도움이 될 사람도 없을 것 같고.
도진이는 배움의 일환으로 봐두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루 말대로 그걸 지금 하필 이 순간에 목숨까지 걸면서 할 필요는 없다.
“이루는 혼자 날뛸 때 제 실력을 발휘하는 타입이니까요.”
광속의 검.
이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오랜 시간을 들여 사람들을 세뇌(?)시켜서 바꾼 별명이다.
하지만 본래는 다른 별명으로 불렸었다.
광란의 검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