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65화 (65/153)

귀환자 식당 65화.

장사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간단하게 먼저 식사를 시작했다.

그래서 저녁 메뉴를 처음으로 맛보는 건 늘 나를 포함한 식당 식구들이다.

“오, 갈치가 엄청 큰데요?”

“제주도에서 좋은 물건 골라서 보내주시는 선장님이 계시거든.”

“역시 은갈치···. 어우, 침 넘어가네요.”

날씬한 여성의 손목 두께는 될 정도로 두툼한 갈치의 비늘을 깔끔하게 벗기고, 쌀뜨물과 식초를 섞은 물에 담아뒀다.

회로 먹어도 될 정도로 신선한 갈치라 애초에 비린내라는 게 거의 없지만, 이렇게까지 했는데 냄새가 날 리가 없지.

감자를 바닥에 깔아주고, 깔끔하게 손질한 갈치를 인심 좋게 올린다.

거기에 고춧가루에 고추장 조금에 설탕, 간장, 맛술과 액젓.

마늘과 생강을 다져서 만든 양념장을 갈치 위에 넉넉하게 뿌리고, 마지막으로 된장을 작게 한 스푼.

마지막으로 진하게 우려낸 멸치 다시마 육수를 붓고, 전골냄비에 올렸다.

그 외에는 버섯이나 쑥갓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조절하며 국물이 자작해질 때까지 졸여주면 끝이다.

다 될 즈음 청양고추나 대파를 송송 썰어서 얹으면 금상첨화.

“자아. 가운데 토막은 우리 시은이.”

“아, 아니에요. 삼촌도 계시는데···.”

“나는 꼬리를 더 좋아해.”

“치-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 그런 거 다 어른들이 하는 거짓말이잖아요. 세상에 꼬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난 정말 생선의 꼬리를 좋아하는데.

가운데는 내장이 있던 부위라 잔뼈가 많은데다, 꼬리 부분이 두께가 얇아서 바삭하게 구워진다.

그래서 정말로 난 꼬리를 좋아한다.

네 사람이 먹는 양이라 큼직한 녀석으로 두 마리를 넣었는데, 아마 다른 손님들이 와도 2인분에 한 마리면 적당할 것 같다.

[오늘의 메뉴]

[제주 은갈치 조림(feat. 감자)]

[2인분 - 35,000원]

가격만 봐서는 비싸다 생각될 수도 있지만, 한 번이라도 우리 식당을 찾은 손님은 저 가격이 매우 합리적인 걸 넘어 심지어 굉장히 가성비가 좋다는 걸 안다.

그래서 가격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 마리라곤 하지만 워낙에 튼실하다 보니 먹성이 좋은 사람들이 와도 둘이 한 마리면 충분할 정도다.

“사장님. 오늘 은갈치입니까? 저희가 회식 날짜를 기가 막히게 잡았네요.”

“어서오세요. 솔바람 인테리어는 매주 회식이네요.”

“하하- 현장직이 다 그렇죠. 뭐. 언제나처럼 사 인분 부탁드립니다.”

11월에 잔뜩 기름이 오른 제주산 갈치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먹고 포장을 해가는 사람도 제법 있을 정도로.

“비 조리 상태니까 가서 끓여 드셔야 해요. 넓은 냄비에 감자, 갈치, 양념장, 채소, 육수 순으로 넣으시고, 물이 끓고 나서도 20분은 졸여주세요. 따로 담아둔 파랑 고추는 마지막에 올리셔서 살짝만 익히면 됩니다.”

“어휴, 사장님이 너무 친절하시다. 다음에 또 올게요.”

“네. 감사합니다.”

최근 게이트다 몬스터다, 거기에 재벌이랑 엮이고.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았는데 오랜만에 평범하게 장사를 하고 있으니 마음마저 안정되는 기분이다.

“시은아, 인제 그만 들어가.”

“왜요. 언니도 가끔 도와준다면서요.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수학은 언니보다 제가 더 잘하거든요.”

어차피 계산은 포스기가 알아서 다 하니까, 수학이나 산수같은 건 별 상관없는데.

아무래도 동생이라서 그런가?

시연이가 서 있을 때 느꼈던 안정감과는 달리 자꾸만 쳐다보게 되고, 혹시나 실수하는 건 없는지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

“삼촌, 저 못 믿는 거 아니죠?”

“응? ···그럴 리가.”

“으으으음. 대답이 좀 늦은 거 같은 데에···.”

팔짱을 낀 채로 눈을 흘겨보지만, 그래봐야 귀엽기만 하다는 걸 본인은 알까?

“근데 도진 오빠는 낮엔 운동하고, 밤엔 일하는 거예요? 힘들겠다.”

“···삼촌도 비슷한데.”

난 운동은 아니지만 요즘 여기저기 뒤처리하느라 돌아다녔으니까.

따지고 보면 내가 더 힘든데.

“삼촌은, 음···. 코리아 슈퍼 캡틴이잖아요.”

“캡틴 슈퍼 코리아 아냐?”

시은이의 말에 도진이 정정했고.

“너희 둘 다 틀렸어. 마지막에 진을 붙여야지. 캡틴 슈퍼 코리아 지이이인!”

이루 저 녀석은 이제 한식을 만드는 것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요즘은 틈만 나면 나와서 노닥거린다.

“이루야, 이제 주방 정리해야지?”

“넵! 이 구박데기는 들어가겠습니다!”

언제 한 번 은지랑 이루의 한국어 교육 과정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려나.

도대체 저런 단어는 왜 가르치는 건지.

“마지막 테이블만 남았네. 시은이도 이제 얼른···.”

집에 들어가라고 하려다가 시간을 보니 벌써 9시가 다 되어간다.

이 시간에 택시를 태워 보내느니 차라리 나랑 함께 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잠시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낮의 일이 있어서 그런지, 자꾸만 불안해지네.

시연이는 괜찮겠지?

그래, 괜히 너무 걱정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각성자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히 실력이 좋은 경호원이 있으니,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연락이 오겠지.

괜히 말이라도 꺼내면 정말 씨가 될까 싶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최근 각성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강력 범죄 비율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경찰의 총기 사용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마침 뉴스에서도 우려하던 내용이 나오고 있다.

이전까지도 한국 경찰의 공권력이 약하다는 이야기는 늘 있어왔지만, 이젠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에야 그저 힘없는 경찰이 고생하는 게 안쓰럽고, 범죄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좋겠다는 정도의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자신과 가족의 목숨과 재산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 시작하니까.

그리고 거기서 또 시간이 지나면 점차 강력해지는 각성 범죄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권총이 아닌 기관단총을 들기 시작할 거다.

점차 일반 경찰들이 상대하는 게 힘들어지면서 각성자들로 이뤄진 전담 수사팀이 만들어지겠지.

모두 예전에 한 번 겪었던 일의 수순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당시의 자료를 바탕으로 더 빠르게 대응할 수도 있을 테고.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는 이슈가 있죠. 아마 많은 분이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명 캡틴 코리아라고 불리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화면으로 한 번 보시죠.]

“멋진 별명이네요. 캡틴 코리아··· 음!”

푸훕-.

시은이는 소리 죽여 웃고, 도진이 녀석은 뭐가 멋있다는 건지···.

사뭇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표정을 보면··· 저 녀석 설마, 진심인 건가?

“사장님도 조심하세요. 한적한 곳에 있는 가게들만 털고 다니는 녀석들도 있다네요. 어휴··· 각성자인지 뭔지.”

이것도 문제다.

사람들의 인식에서 각성자가 곧 나쁘다라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는 거.

마지막 남은 테이블의 손님이 화면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곤 술잔을 들이켰다.

처음엔 친구로 보이는 이들로 넷이 왔다가 이젠 혼자만 남아버린 테이블.

“친구분들은 먼저 가셨나 보네요.”

“네. 그 녀석들은 다 와이프가 있어서 이 시간까지 있으면 안 되거든요.”

“혼자만 결혼을 안 하신 건가요?”

“···작년에 먼저 떠났습니다.”

“이런··· 죄송합니다.”

비교적 젊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병이었으려나.

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겨우 작년이라면 아직 상처가 아물기엔 이른 시간이다.

“이런, 이만 가봐야겠네요. 저 때문에 문도 못 닫으시고···.”

“괜찮습니다. 어차피 아직 닫기엔 이른 시간이니까요.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그럼··· 이것까지만 마시고 일어나겠습니다.”

이제 1/3즈음 남은 소주병.

나는 그가 조금 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조용히 자리를 비켜줬다.

“광속의 검이요? 와- 멋지네요.”

“그래? 후후··· 하기야 내가 검을 휘두르면 그 궤적을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 그러니 그런 별명이 붙은 거겠지만.”

“사부님은 그럼 게이트에 들어가시기 전부터 유명했겠네요.”

“그렇지. 내 자랑은 아니지만, 비공식 헌터 랭킹으로 따지면 늘 10위엔 들었으니까.”

충분히 자랑이다. 이놈아.

“아, 사장님. 이루 사부님 별명 알고 계셨어요? 광속의 검··· 듣기만 해도 엄청 멋진 별명같아요.”

“그거, 저 녀석이 직접 지은 거야.”

“···네? 진짜요?”

“무, 무슨···! 아니야, 내가 지은 거.”

갑자기 왜 별명을 가지고 난리인지 모르겠네.

뉴스 화면에서는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자꾸만 내 관련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 또 찍혔는지, 오늘 낮에 시장에서 있었던 일까지.

[해당 영상에서 나온 강도 세 명은 즉시 경찰에 인계되었으며, 검찰은 이들에게 구속 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각성자 특별법의 적용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각성자 특별 관리법이 아직도 있었어?”

각성자가 사라지고, 관련 법규도 모두 폐지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국회의원들이 일하지 않는 게 세상에 도움이 될 때도 있네.

“삼촌, 그럼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감옥에 가겠지? 특히나 각성자 특별 관리법이 적용되면 일반 범죄에 비해 훨씬 가중 처벌이 되니까.”

살상력이 높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만약 여차하면 누군가를 배어버릴 의도가 있었다고 재판부에서 판단한다면 모르긴 해도 20년은 바깥에 나오기 힘들 거다.

“역시 그렇겠죠? 어쩐지 안됐다···.”

난 슬픈 얼굴을 한 시은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잘못했으니 응당한 벌을 받아야지.”

무척이나 똑똑한 아이인데, 이런 당연한 이치를 모르다니.

아무리 착해도 이건 좀 이상하다 싶었더니.

“그거야 저도 알죠. 그래도 아깝잖아요. 세상은 점점 더 위험해지는데, 범죄를 저질렀다고 그렇게 오래 가둬둔다는 건···. 일종의 재능 낭비잖아요.”

“하지만 저런 사람들은 결국 똑같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

“그렇겠죠···. 만약 누군가가 저런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으면 어떨까요? 감옥에 그냥 가둬두기보다는 차라리 사회에 이로운 일을 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 왜, 사회봉사 명령 같은 것도 있잖아요.”

어라? 좋은··· 생각인데?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지.

“그러려면 감독관도 각성자여야 하는 건 당연하고··· 무엇보다 그런 범죄자들이 모여도 감히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어야 가능하겠지.”

“그렇죠.”

“이제 막 각성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당장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찾기 힘들 거야.”

“음··· 저는 그런 사람 몇 명 아는데.”

순간 누구냐고 물어볼 뻔했다.

“이루는 곧 헌터 아카데미로 가야하고, 도진이도 거기에 교관으로 내려가야 해.”

딱히 말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귀찮아서가 아니다.

내가 그런 범죄자들을 맡으면 필연적으로 시연이나 시은이의 존재가 노출될 텐데.

행여라도 그 녀석들이 괜한 마음을 먹으면 두 사람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것만은 절대 사양이다.

“헤헤- 역시 쉽게는 안 되겠네요.”

“그래도 아이디어는 상당히 좋은데?”

“그쵸?”

내 조카가 한 말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괜찮은 생각이다.

그걸 실행하는 데 있어 필요한 조건이 제법 까다롭긴 하지만···.

이루가 좀 열심히 노력해주면 금방 해결될지도?

아무래도 좀 닥달을 해야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흐으···. 뭐지? 갑자기 오한이···.”

주방 안에서 한참 자랑은 아니라며 도진이에게 제 자랑을 늘어놓던 이루가 몸을 부르르 떤다.

그나저나 저 녀석 둘이 다 내려가기 전에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누굴 데려오나.

뉴스에서 나오던 세 사람 중에 제법 아까운 능력을 가진 녀석이 하나.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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