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64화 (64/153)

귀환자 식당 64화.

“삼촌-!”

가게 입구로 들어오며 언제나처럼 밝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시연이.

곧 식당으로 들어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어째 조금 늦어진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나가봤더니.

“···도진이 오빠?”

“후우-. 응, 시은이도 안녕?”

도진이가 눈가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시은이 얼굴이 왜 갑자기 붉어지는 건지.

“오빠··· 많이 변한 것 같네요.”

“그런가? 아무래도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가 봐.”

“그게 아니라··· 많이 멋있어진 것 같은···.”

“응? 하하하-! 고마워. 하긴, 예전에는 내가 좀··· 그랬지?”

도진이 녀석, 지금 뭐 하는 거지.

저거 연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끼 부리는 표정인데?

“아,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라, 최근에 부쩍 멋져지시는 거 같아서···.”

“···시은아?”

“아, 삼촌.”

“안 들어오고 거기서 뭐 해?”

“지금 들어가요. 잠깐 오빠한테 인사 좀 하느라···. 그럼 오빠, 열심히 하세요. 화이팅!”

“응, 고마워.”

뭔가 화가 나려고 하는데.

나를 지나쳐서 얼른 가게로 쏙 들어가 버리는 시은이의 등을 잠깐 쳐다보고선 다시 도진이를 바라봤다.

“···사장님. 왜, 왜 그렇게 보세요?”

“내가 왜?”

“아뇨··· 눈빛이 좀.”

하긴, 이 녀석도 각성자였지.

거기다 아마 지금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성장 중일 녀석.

외모가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도진이를 향해 잠시 눈으로 레이저를 쏘아 보내다가 가게로 들어오니, 시은이가 아직도 살짝 상기된 얼굴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크흠. 도진이가··· 잘 생겼나?”

잘 정리된 테이블을 괜히 더 어지럽히면서 슬쩍 물었더니.

시은이가 고개를 돌려 마당을 쳐다본다.

그러더니 배시시 웃는데···.

나한테도 저렇게 웃어준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그렇죠? 처음엔 몰랐는데··· 오늘 보니까 뭔가.”

“운동 중이라 땀까지 범벅인데, 어디가!”

“그야··· 그래서 더 멋진데. 헤헤-.”

안 되겠다.

시은이는 당분간 가게에 오지 못하게···.

아오. 또 곧 있으면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파티하자고 했지, 참.

“자자, 우린 시장 가야지.”

일단 여기서라도 내보내야겠다.

아··· 아빠들이 왜 그리 딸 남자친구를 싫어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 * *

“음, 역시 꼬마전구는 많아야 할 것 같아요. 나무가 크니까! 거기다 가게 입구를 두를 것도 필요하고···. 색은 여러 가지로··· 아, 도진이 오빠는 무슨 색 좋아하려나?”

“도진이는 크리스마스 때 집에 간다고 한 것 같은데.”

“···에? 왜요?!”

아니··· 집에 간다는데, 왜 가냐니.

가족들이랑 보내고 싶은 거겠지.

새해가 되고 봄이 되기 시작하면 아마 대마도로 내려갈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테니까.

헌터 아카데미.

진부한 이름이지만 그냥 그걸로 정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혼자는 힘들 거야. 그래서 말인데 도진이를 교관으로 쓰면 어떨까? 가기 전까지 훈련을 받게되면, 다른 애들이랑 같이 훈련을 시키면 차이도 많이 벌어질 테고 말이야. 어때?

이루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훈련받는 아이들과 달리, 가기 전까지 훈련을 받게되면 도진이의 경우 6개월 이상의 경험이 쌓인 상태니까.

그것도 이루와 일대일 수업으로.

이능력자가 아닌 신체 강화 계열이라면 도진이가 교관을 맞는 건 어쩌면 좋은 선택이다.

“헌터 아카데미가 생긴다는 건 알지?”

“알죠. 요즘 뉴스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데.”

“아마 도진이도 거기에 가서 교육을 담당하게 될 거야. 그 전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겠지.”

“···그렇구나.”

아직 어려서 그런가.

도진이와 지내본 나야 그 녀석이 나쁘지 않다는 건 안다.

그래도 시은이는 그간 도진이와 별다른 접점이 없었는데, 단지 외모만 보고서 마음이 흔들리다니.

그래도 다른 아이들처럼 연예인을 쫓아다니거나 하진 않기에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운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대학을 다니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바뀌겠지만, 아직은 그럴 나이인가.

“아! 그럼 도진이 오빠네도 가게로 오라고 하는 건 어때요?”

“···불편하지 않을까?”

우리가 아니라, 도진이네 가족들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식구가 어떻게 되는지도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괜찮을까?

“그래도 이왕이면 사람이 많은 게 좋잖아요. 네? 삼초온···.”

이건 반칙인데, 이렇게 부탁하면 안 들어줄 수가 없잖니.

“가서 도진이한테 물어보고, 대신 조금이라도 곤란한 기색이 보이면 그 이상은 조르지 않기다?”

“당연하죠! 제가 무슨 애인 줄 아세요?”

아이들은 늘 자기가 다 컸다고 생각하지.

환갑이 넘은 아들이 외출하는데 부모님이 차 조심하라고 말한다는 게 허튼소리가 아니다.

꼬마전구만 해도 한가득.

거기에 붉은 양말이나 지팡이, 별 따위의 장식용 소품까지 사고 나니 큰 비닐봉지가 두 개나 되어버렸다.

나무에 이걸 다 매달면 애가 힘들어하지 않으려나 걱정이 될 정도로.

“삼촌, 저거 먹을까요?”

시은이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 건 다름 아닌 크레페였다.

밀가루 전병같은 것에 크림, 초콜릿에 과일까지 듬뿍 넣어서 맛이 없으려야 맛이 없을 수 없는 달달함의 끝판왕 같은 녀석.

나름 유명세를 탄 곳인지, 푸드 트럭임에도 제법 줄이 길었다.

군것질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시은이 눈을 보면 거절할 수가 없다.

“그럼 줄 좀 서 있을래? 삼촌은 이거 얼른 트렁크에 넣고 올게.”

“네!”

아무래도 줄을 보아하니 10여 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무거운 것은 아니지만 부피가 크다 보니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얼른 차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텅-.

차 문을 닫고 돌아가려는데, 공용 주차장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서둘러 다시 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막 들어오던 사람들이 갑자기 볼 일이야 생길 수 있지만, 저렇게 단체로?

뭔가 의아함을 느껴지는 순간, 주차장으로 몇몇 무리가 달리듯 들어오는 게 눈에 띄었다.

“저기,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댁도 빨리 여기서 나가요. 지금 시장에 이상한 사람들이··· 아, 아무튼 빨리 나가요!”

날 밀어버리고선 다시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

순간, 무언가 일이 터졌다는 걸 직감했다.

시은이.

차에서 푸드 트럭까지는 걸어서 5분 남짓한 거리.

하지만 느긋하게 갈 상황이 아니다.

땅을 박차고 사람들 사이를 바람처럼 뚫고 트럭이 있던 곳에 도착했더니 이미 근방이 전부 난장판이었다.

어디서 난 건지, 손에 일본도 비슷한 진검을 쥔 사람들이 셋.

그리고 그 부근에 쓰러진 경찰들이 보였다.

상황을 보니 딱 감이 온다.

각성자들.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 중인데.

사람들이 잔뜩 웅크려 있는 무리에서 대뜸 시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저씨들. 이러다 진짜 혼나요!”

“하, 나··· 이건 또 뭐 하는 년이야? 어? 이거 제법 반반하네? 흐흐-.”

“오, 오, 오지 마! 우리 삼촌 곧 올 거야···. 다, 당신들 진짜 큰일 난다고!”

“네 삼촌이 오면 뭐? 삼촌이 이진이라도 되냐?”

으하하-.

하긴, 이진이 오면 안 되지.

“그, 그래! 우리 삼촌이 이진이다!”

“이게 진짜-!”

꺄악-.

번뜩이는 칼을 들고 있는 능력자들.

신체 강화 계열인지, 아니면 다른 쪽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두고 볼 수는 없게 돼버렸다.

“너희들, 각성자냐?”

요즘 이 질문을 많이 하네.

예나 지금이나, 갓 각성한 이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이런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는 건지.

“···이건 뭐야? 넌 뭐 하는 새낀데···!”

펑-.

일일이 상대해주기도 귀찮아.

그냥 마력 덩어리를 가볍게 날리자 저만치 날아가 땅을 뒹구는 녀석.

그리곤 쓰러진 채로 미동도 없었다.

순식간에 적막이 찾아온 시장 거리.

이 녀석들은 상도덕(?)도 없나.

“이 자식들아. 강도질을 하고 싶었으면 차라리 부자들 집이나 가서 털 일이지, 가뜩이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시장 상인들을 건드리냐?”

“뭐야···! 너 이 새끼 지금 무슨 짓을 한···!”

“야···. 하, 하지 마···”

둘 중 한 놈은 그나마 눈이 장식은 아닌가.

아니, 이 경우에는 그나마 마력 탐지 능력이 다른 놈에 비해 뛰어나다고 해야겠지.

“놔 봐! 이 새낀 또 왜 이래?”

“저 사람··· 우리 상대가 아니야. 도, 도망쳐야 해.”

“도망은 시발! 넌 닥치고 빨리 버프나 걸어, 내가 오늘 저 새끼 모가지 따 버린다. ···뭐해!”

호오, 한 명은 버프 능력자인가?

흔치 않은 능력인데.

하필 다녀도 저런 보잘 것 없는 놈들이랑 일을 도모하다니.

자기 능력이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대우받는지 모르는 건가.

요즘 인터넷에서도 예전 각성자들이 방송에 나와 했던 말들이나 책의 내용이 퍼지니 찾아보면 다 나올 텐데.

안타깝게 됐다.

“거기 둘. 그냥 얌전히 경찰서로 가라.”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솔직히 가든 말든 상관없다.

그냥 오랜만에 시은이와 나온 외출이 번거로운 일이 벌어진 게 귀찮을 뿐.

그냥 이 자리에서 사라지면 그만이다.

물론 돈은 돌려주고.

“이 미친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퉁- 퉁-.

더 듣기도 귀찮아서 그냥 손가락을 튕겼다.

또다시 적막에 휩싸이는 시장 거리.

이번엔 텀이 좀 짧았다.

“삼초온!”

“시은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응···.”

울먹이는 얼굴로 끄덕이는 게, 상당히 무서웠던 모양인지.

어깨를 잡은 내 손까지 떨림이 전해진다.

막상 시은이가 떠는 게 전해져서 그런가, 갑자기 또 화가 나네.

바닥에 쓰러진 두 녀석을 쳐다봤더니 시은이 내 소매를 잡아당긴다.

“삼촌, 저 괜찮아요.”

“···정말이지?”

“그럼요. 좀 놀라서 그렇지, 어차피 삼촌이 올 거라고 알고 있어서 사실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잠시 자리를 비웠더니 이런 일이 생기다니.

게다가 저런 녀석들이 시장까지 왔다는 건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건데···.

지금은 초기이니 이 정도 수준이겠지만, 제대로 된 각성자들이 빌런으로 돌아서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총기 사용이 가능한 미국에서도 각성 범죄자들은 전담 수사팀이 아니면 애초에 상대조차 할 수 없어지게 되니.

사실 지금은 이들도 총기를 상대할 수는 없는데, 문제는 대한민국 경찰의 공권력이 너무 처참한 수준이라는 것.

물론 곧 바뀌겠지만.

* * *

“참, 시연이는 오늘 늦는다고 하니까. 가게에서 저녁 먹고 가.”

“네. 오늘은 반찬 뭐예요?”

“오늘은 갈치조림.”

“전 무보다 감자가 더 좋은데.”

“···그래? 신기하네. 삼촌도 감자를 넣는데.”

가끔 신기할 정도로 입맛이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갈치조림에 무 대신 감자를 쓰는 식당이 그리 흔하진 않은데, 어쩜 이리도 비슷한지.

“할아버지도 맨날 감자 넣어서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이젠 무를 넣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니까요?”

“그렇기도 하겠다. 거기, 케이블 타이 하나만.”

“여기요. 삼촌 양말은 이렇게 걸면 되겠죠?”

“그래. 그쯤이면 딱 어울리겠다. 그런데 그사이에 비가 안 와야 할 텐데.”

“음··· 이제 오면 눈 아닐까요? 이번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는데.”

문득, 작년 크리스마스엔 뭐 하고 지냈을까 궁금해졌다.

“작년에요? 음··· 언니는 아르바이트, 저는 공부?”

“크리스마스에도?”

“사실 지금까진 크리스마스라고 딱히 뭘 한 적이 별로 없어요. 할아버지가 집에 계시니까 어디 나갈 수도 없었고··· 해도 둘이 조용히 케이크 자르는 정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동안에도 얼마나 이런 걸 해보고 싶었을까.

올해는 꼭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만들어줘야겠네.

“삼촌, 삼촌! 별은 제가 달래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하는 높이라 위쪽은 대부분 내가 장식하기로 했는데, 끝내 꼭대기의 별은 자신이 달아야 한단다.

내려와 별을 건네주고 사다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잡아줬더니.

“이거 달면서 소원 빌면 이뤄진 데요.”

“무슨 소원 빌고 싶은데?”

“음···.”

잠시 고민하던 시은이는 아래 있는 날 보며 환하게 웃었다.

“히힛. 비-밀.”

혹시라도 산타가 있는데 오지 않는 거라면 납치라도 해오고 싶은 미소였다.

설령 산타가 없더라도 그게 무슨 소원인지,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뭐든 이뤄줄 텐데 말이야.

“삼촌밖에 못 이뤄주는 소원이니까, 꼭 들어주셔야 돼요. 약속!”

계약 조건도 모르는 채 도장을 찍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지만.

난 그래도 새끼 손가락을 뻗어 시은이의 새끼 손가락을 꼭 감아쥐었다.

“···약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