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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63화 (63/153)

귀환자 식당 63화.

이사를 온 뒤로는 아침 일찍부터 가게에 나가질 않는다.

애초에 아침에 나갔던 이유가 조카들이랑 인사하는 게 주목적이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뭐···.

여유롭게 일어나서 간단하게 토스트를 굽고 있으면 아이들이 일어난다.

“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얼굴로 배시시 웃는 시연이.

시은이는 한 번에 잘 일어나질 못한다.

저혈압인가···.

딸캉-.

잘 구워진 빵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르면 따듯할 때 얼른 딸기잼을 바른다.

냉장고에 들어있어서 차갑게 굳어있던 잼이 따끈한 열기에 사르륵 녹고 나면 잘 익힌 베이컨 햄 한 장과 치즈 한 장.

따듯한 빵 사이에서 치즈가 녹기 전에 반으로 잘라주면 끝이다.

우유 한 잔과 함께하는 가벼운 아침.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유를 만끽 중이라는 시은이를 다시 깨워서 토닥이는 사이 벌써 준비를 마친 시연이가 가장 먼저 집을 나섰다.

“삼촌, 저 학교 다녀올게요.”

“그래. 차 조심하고.”

“어차피 자율주행인데···.”

말해놓고 보니 머쓱하다.

“그건 또 그렇네. 그런데 오늘 토요일 아닌가? 오늘도 학교 가?”

“오늘 동아리 모임 있거든요. 아마 늦을 거예요.”

“그래? 그럼 시은이랑 저녁은 가게에서 먹고 들어올게. 걱정하지 마.”

“헤- 삼촌이 집에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그렇게 말하곤 가버렸는데 뒤늦게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저 말 한마디가 뭐라고···.

흐아아암-.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선 이제야 거실로 나오는 시은이.

“오늘 아침은 빵이네요?”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완전 좋죠. 아아- 딸기잼이다. 히히-.”

이제 곧 대학생이 되는 녀석이 아직도 저렇게 아기 같아서야.

학교에 가면 주변에 늑대들이 우글거릴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네.

“오늘 어디 나가?”

“우움-. 아뇽··· 운전 연습하고 오면 약속 없어요.”

“그래, 그럼 오늘 트리나 꾸며볼까?”

입 안에 있던 빵을 얼른 우유와 함께 삼키더니.

“네! 오늘 해요!”

“그래, 그럼 재료는 삼촌이 준비해둘까?”

“아, 아뇨! 저랑 같이 사러 가요. 제가 고를래요!”

하긴, 아저씨 취향보다야 그편이 낫겠지.

“그럼 끝나고 가게로 올래?”

“네-!”

“그럼 삼촌은 먼저 나갈게. 먹고 그릇은 담가두고.”

“설거지는 제가 하고 나갈게요.”

그냥 두라고 할까 하다가, 그 정도는 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럼 부탁할게.”

도토리 먹는 다람쥐마냥 입을 오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시은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집을 나섰다.

“어.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옆집 사람인가.

처음 봤다.

나이가 제법 지긋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얼굴이 조금 낯익은 것도 같고.

“얼마 전에 이사를 오신 건 알았는데, 듣기론 여학생 둘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른이 계셨네요.”

“네. 제가 조카 둘이랑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조금 어색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말을 걸어온다.

“···혹시 실례가 안 되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옆집 사는데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다가도.

이왕이면 잘 지내는 편이 좋지 않겠나 싶어서.

“근처에서 작은 식당 운영하고 있습니다.”

“···식당이요?”

“네.”

뭐지? 표정이 조금 애매한데.

설마 식당을 하는 사람은 이런 건물에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마침 저도 회사가 근처인데, 언제 한 번 직원들이랑 회식할 때 가봐도 되겠네요.”

“저희 가게가 작아서 가능하려나 모르겠네요.”

회식이라.

그런 예약은 받아본 적이 없는데.

정말 소규모 업체가 아닌 이상 회식은 좀 어렵지 않을까?

자리라고 해봐야 겨우 테이블 4개뿐인 식당인데.

주차장으로 가자 이미 대기하고 있는 고급 세단이 있었다.

회사라고 하더니, 개인 기사까지 있는 곳의 오너라면 규모가 작진 않을 텐데.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네. 전 차가 저쪽이라···. 그럼 이만.”

느낌이 아리송한 사람이다.

뭔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듯하면서도 아우라가 느껴진달까?

멀어지는 차를 보며 잠시 귀를 기울였더니, 안에서 나누는 대화가 들려온다.

“사장님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런가? 하하, 옆집 사는 사람을 만났는데··· 마음에 들어서.”

“조금 전에 그 청년 말이군요. 젊어 보이던데 사장님의 옆집이라니, 능력이 상당히 대단한가 보네요.”

“식당을 한다는데, 그런 곳에서 썩히기엔 좀 아까운 외모인데···.”

“분위기가 연예인을 할 것 같진 않던데요.”

“그러니까 더 탐이 나는 거지. 그저 잘생기기만 한 게 아니라, 분위기까지 타고나는 사람은 드무니까.”

딱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 그걸로 됐다.

대화 내용으로 봐서 연예계 쪽에서 일하는 사람인 것 같지만, 나야 그쪽으로는 관심도 없고.

열 번이 아니라 천 번을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 나무도 있는 법이다.

가게에 도착하니, 오늘도 도진이는 마당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조그만 마당이 슬슬 답답해질 것도 같은데.

“이루야, 아직 대마도 내려가려면 좀 남았는데. 차라리 근처에 체육관 하나를 알아보는 건 어때?”

“체육관? 흐음, 그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전 지금도 괜찮은데요.”

도진이는 아직 못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체력단련으로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건 거의 막바지다.

이제부터는 전투 감각을 익혀야 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해진다는 말이야말로 헌터들의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

전투 감각을 익히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력을 키울 시기가 찾아오는 셈이다.

“그건 내가 알아볼 테니까, 형은 얼른 가게나 들어가 봐. 정민이가 새벽부터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더라.”

이루도 이사를 한 뒤라, 지금 가게 2층에서는 도진이가 혼자 지내고 있다.

그걸 안정민 과장이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결국 뭔가 급히 찾아와야 할 용무가 있다는 말이다.

“안정민 과장님.”

“선생님!”

“최진우 회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뻔하다.

어떤 식으로든 국정원에 하소연했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변할 것은 없다.

“후우-. 삼영 그룹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손에 꼽힐 정도의 초거대 기업입니다. 타격을 받으면 기업뿐 아니라 한국 경제도 상당히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맞겠습니까. 그런 이들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응징하지 말아야 하는 겁니까? 만약 제가 늦게 도착해서 게이트가 폭주하기라도 했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요? 섬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의 도시들은 폐허가 됐을 테고, 사람들은 떼죽음을 당했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기업이 무너진다고 나라가 무너지냐?

그건 아니다.

힘들어질 수는 있겠지만, 한국은 이제 기업 하나둘이 무너진다고 허둥대는 수준의 국가는 벗어난 지 오래다.

정경유착.

정치인과 기업인의 부도덕한 관계는 지구상에 국가라는 기틀이 생기기 전부터 있어 왔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거다.

모두가 청렴한 사회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악습이 아닌 게 되지는 않는다.

돈이 있으면 유죄도 무죄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에 살고 싶은 이는 돈이 있는 극소수의 자들 뿐이다.

국가는 그런 이들을 비호해서는 안된다.

그건 잘못된 일이니까.

“분명 방법은 알려줬습니다. 돈이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그러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선생님···. 지금 청와대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상황입니다.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이시면 자칫 지금까지의 관계가 틀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관계?”

내가 정부와 무슨 사이였던가.

일방적으로 도움만 주던 호구?

아니면 내 존재 하나만으로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 지금 국제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준 뒷배?

늘 부족해서 허덕이는 국고를 든든하게 채워준 은인?

“몰랐군요. 제가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실언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마도 실언이 아니다.

오랜 세월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날 가장 옆에서 지켜본 사람조차 저렇게 날 저렇게 보고 있다면.

아마 그 위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더 할 테지.

“···이만 돌아가세요. 그리고 만약 제 섬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일이 발생하면 저도 가만히 있진 않을 겁니다.”

“선생님···!”

지금까지의 관계라는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걸.

변한 게 아니라, 늘 그래왔었는데.

전에는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몬스터를 죽여야 살 수 있었고, 마석을 얻어야 먹고살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게이트가 나오길 바라지도 않았고, 몬스터가 나오는 건 더욱 원치 않는다.

그래서 막고자 했던 것인데, 이들은 날 이용하려고만 들고 있다.

그걸 이제 알았다.

안정민 과장이 지금 어떤 마음일지, 얼마나 무거운 짐을 떠안았는지는 알겠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끌려가게 된다.

한 번이 어렵고, 두 번은 쉽다.

그리고 세 번의 호의가 이어지면 상대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고, 설령 하고 싶다고 해도 지금은 멈춰야 하는 시점이었다.

안정민 과장이 나가자, 이루와 도진이가 들어왔다.

“···정말 그냥 두고만 볼 거야?”

“들었어?”

“딱히 들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들리더라. 일부러 귀를 막을 순 없잖아.”

도진이도 걱정이 되는지 우물쭈물하며 이루 옆에 서 있었다.

오전 훈련은 끝난 모양인데···.

“아무렴 내가 그냥 두고만 보겠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지? 형이 또 그럴 사람은 아니긴 하지.”

“하지만 최후의 최후까지 움직이지 않을 생각은 맞아. 이대로 가다간 정말 내가 무슨 대한민국 수호신이라도 된다고 착각할 것 같으니까.”

“뭘 새삼스레.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잖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 질문에 이루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냐니. 형 별명이 캡틴 슈퍼 코리아 진이야.”

뭐지, 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섞인 별명은.

* * *

[한국 각성자의 클라스]

라는 제목의 영상.

-캡틴 코리아 굿즈는 안 나오나요?

-영화로 만들어도 꿀잼일 듯.

-영웅은 미국에만 있지 않다고!

이루가 보여준 영상은 다름 아닌, 리자드맨 변종들을 정리하던 당시의 화면이었다.

뉴스에 나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영상이 박제될 줄은 몰랐는데.

업로드를 한 곳이 뉴스 채널의 공식 너튜브 계정인데, 요청하면 지워주겠지?

“사장님, 여기 조회수 보세요.”

숫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통장에 찍혔던 돈 말고 이렇게 긴 숫자는 처음이라 조금 헷갈렸다.

“···1억이 넘었다고?”

이게 대체 뭐라고.

약 2분 가량의 짧은 영상이다.

그나마도 앞의 1분 30초는 도진이가 활약하는 장면이었고, 내가 나오는 건 20초도 채 되지 않는다.

-와, 나 진짜 이거 실시간으로 보다 지렸었는데. 다시 봐도 개 소름이다.

-속임수 오지죠. 이걸 또 속니, 이 개돼지 국민들아.

-이거 생방송이었다. 우길 걸 우겨라 좀.

-제 할아버지가 예전에 각성자셨습니다. 질문받습니다.

-그럼 할아버지를 모셔 와.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 중국어에 알아보기 힘든 아랍어나 러시아어로 남긴 댓글도 많았다.

“형 인터넷에선 완전 한국을 지키는 수호신이야. 몰랐어?”

“···몰랐는데.”

최근 들어서 뉴스는 좀 챙겨보고 있지만, 아직 인터넷은 좀 적응이 안 돼서.

그나마 식자재 주문할 때나 간간이 들어가 보는 정도?

“아마 진짜 게이트 터져도 형이 있어서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 한둘이 아닐걸?”

허어.

이루가 보여준 의도는 알겠는데, 이걸 보고 나니 더욱 확신이 섰다.

이제는 사람들의 눈앞에 진실을 들이밀어야 한다.

더는 물고기를 잡아 줘서는 안 된다고.

이제 물에 직접 들어가서 잡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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