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62화.
최도혁은 지금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질 않았다.
갑자기 지하에 있는 연구소가 통째로 뽑히고, 하늘을 날아 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동생은 그야말로 반병신이 됐다.
그리고 그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목격한 증인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난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분명 동생은 큰 잘못을 했다.
하지만 과연 저렇게 될 정도로 큰 잘못을 한 건가?
모르겠다.
이는 물론이고 잇몸까지 완전히 뭉개진 얼굴, 코는 이미 제 자리에 있지도 않고 눈에서는 피가 흘러내린다.
저게 피눈물인지, 그냥 피인지도 모를 정도의 진한 핏물.
앞으로 음식물이나 제대로 씹을 수 있을는지.
급한 대로 배에 준비된 산소호흡기를 끼워두긴 했는데, 살 수는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엉망이 돼버린 동생.
마음이 착잡했다.
분명 경쟁자이고, 평생 자신과 척지며 살아온 녀석이지만.
저런 모습이 된 걸 보니 마음이 안쓰러웠다.
자신은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지만, 얼핏 보아도 저 다리를 고치는 건 어려워 보였다.
완전히 뒤로 꺾였던 것을 그저 펴서 고정한 상태.
인대가 온전히 붙어있을 리가 없을 거다.
으어어··· 으으···.
분명 살아는 있다.
아니··· 그가 그저 살아만 있게 만들었다는 걸 안다.
그걸 알기에 더 무서운 거다.
“김 비서님.”
“네. 상무님.”
“구조 헬기가 곧 도착할 겁니다. 이 녀석 좀 잘 부탁드릴게요.”
“···네. 상무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전 이제··· 회장님한테 보고하러 가야죠.”
이미 하늘을 날아 사라져 버린 남자.
그가 올 것을 대비해야 한다.
* * *
“어? 빨리 왔네? ···옷은 왜 그래?”
이루가 묻기에 슬쩍 내려다봤더니, 그 더러운 피가 상의에까지 조금 튀어버렸다.
“아, 이거··· 누구 교육 좀 하느라.”
“···누구? 혹시 그 둘째인가 하는 그 녀석?”
“응. 나 잠깐 올라가서 옷만 갈아입고 내려올게. 아··· 옷이 없지.”
“괜찮아. 손님도 별로 없고··· 오늘은 그냥 들어가는 게 어때? 형 지금 그 표정으로 가게 있어 봐야 도움도 안 될 거 같거든.”
가게를 비운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화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여기 있어 봐야 이루 말대로 분위기나 흐를 것 같으니까.
“미안하다. 그럼 부탁할게. 도진이도 수고 좀 해줘.”
“네. 사장님. 전 걱정마세요···.”
“여긴 알아서 마무리하고 갈 테니까. 얼른 들어가서 좀··· 쉬는 게 좋겠다.”
안정민 과장과 신주희 박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들도 필사적으로 지금 상황을 파악 중이겠지.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왔다.
더러운 것도 씻을 겸 뜨거운 물을 끼얹고 나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진정될 것 같기도 하고.
치익-.
맥주 한 캔을 가지고서 거실에 앉았는데, 마침 티비에서 그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삼영 그룹 최진우 회장의 차남이자 삼영 그룹의 핵심부서인 전략기획실의 최도혁 실장이 금일 오후 삼영 병원에 긴급 입원했습니다.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심각한 부상이긴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삐빅-.
조금 과했을까? 하지만 분명 본보기는 필요했다.
거기다 그 녀석은 해서는 안 되는 생각까지 했으니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면 정말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르지.
차이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면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감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공포에 질릴 정도로.
어설프게 굴었다간 되려 앙심을 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전화기를 들었다.
“안정민 과장님. 접니다.”
-네. 선생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래도 국정원이라 이건가.
생각보다 정보 수집이 빨랐다.
“제가 과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최우혁 실장에게 왜 그렇게 하셨는지도 들었으니까요. ···가족은 건드리면 안 되죠.
의외다.
안정민 과장이라면 원리원칙을 따지고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화를 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삼영 그룹의 최진우 회장을 만났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그쪽에서도 선생님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쪽에 절대 좋은 이야기는 아닐 텐데.
최진우 회장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예상이 안 가는 건 아니다.
아마도 지금 병원에 있는 아들의 이야기겠거니.
“그럼 길게 끌 필요 없이.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간다고 전해주시죠.”
-지금 바로 말입니까? 그래도 저와 함께 가시는 편이···.
“아뇨. 이번 일은 제 문제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차를 보내겠습니다.
거절할까 하다가 그러라고 했다.
어쨌든 난 지금 최진우 회장의 연락처를 모르니 어디서 만나야 되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
* * *
차가 도착한 곳은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긴 했고,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과 함께 먹고 싶어서.
식사가 아닌 차와 한과만 준비됐다.
어색한 공기가 잠시 지나고, 최진우 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제 자식 놈이···. 큰 값을 치렀더군요.”
자식이니, 마음이 좋을 리 없겠지.
대단하다.
만약 반대의 입장이었더라면 나도 저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시연이나 시은이가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면···.
누구의 잘못이고 아니고를 상관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힘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생각해버린다면, 이들과 다를 게 없다.
“저도 그 점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뵙자고 청을 드렸습니다.”
“네.”
“우혁이 놈··· 나을 수 있습니까? 병원에서는 한쪽 다리는 물론이고, 앞으로는 음식물도 제대로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정신적인 트라우마 역시···.”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각성자 중에서는 현대 의학으로는 낫지 못할 상처를 낫게 하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희망이 있어서 이렇게 침착한 건가?
당장의 아픔이야 몰라도 평생을 그렇게 사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는 건가.
“만약 제가 제때 도착하지 못했으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명백한 제 아들놈의 실수입니다. 인정합니다.”
“이미 섬 주변의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에는 여러 개가 한 번에 열릴 가능성이 큽니다.”
상급 마석을 2개나 잡아먹은 게이트.
적어도 B급, 정말 재수가 없다면 A급 이상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게 혼자만 열리느냐 아니면 그 주변에 연결된 하위 게이트까지 한 번에 열리느냐 하는 것.
“만약 한 번에 열리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한 번에 몇 개의 게이트가 열릴 것이냐에 대한 답도 현재로선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지옥이 펼쳐지겠죠. 적어도 서해안에는.”
“···선생님이 나서주셔도 말입니까?”
“아무리 저라고 해도, 저 역시 일개 사람일 뿐입니다.”
강함의 척도가 남들과 다르다고 할지언정, 내가 막을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이다.
나는 신이 아니니까.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선 마석이 많이 필요합니다.”
“많이라 하시면···.”
차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달콤하면서도 진한 국화 향이 나는 차.
찻물이 목을 넘어가는 동안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각성자 중에서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게이트의 개방을 강제적으로 늦추는 능력을 가진 이들도 있죠.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게이트의 마력 수치에 비례한 양의 마석이 필요합니다.”
“그럼 게이트를 막을 수 있는 거군요.”
“네, 가능은 합니다.”
최진우 회장이 작게나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착각하지 마시죠. 그건 댁의 아들이 싼 똥을 치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잠시 신문지로 덮어두는 것뿐이니까. 지독한 냄새는 여전히 사방으로 퍼져나갈 거고.”
“말씀이 조금 지나치신 것 같은···.”
“···지나치다고 했나?”
겉으로 어려 보이니 만만해 보이는 건가.
아니면 아직도 나 하나쯤은 어찌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게 무엇이든, 이자는 지금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최진우 회장.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당신 아들이 한 짓을 무마해주려고 하는 게 아니야. 경고를 하기 위해 온 거지.”
“경고···?”
“나는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방법을 알려주는 거다. 내 경고를 무시하고 하지 말라는 짓을 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할 거야. 만약 게이트가 열리고, 그중에 단 하나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경고만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회장 대우를 해주는 것은 끝이다.
삼영 그룹이 한국의 경제를 지탱하는 기업이고 나발이고, 나는 그런 것엔 관심 없다.
“게이트 개방 지연 능력을 가진 각성자를 찾아. 그리고 어떻게든 막아내. 그게 내가 해주는 마지막 조언이다.”
“무슨 그런···.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방법은 알아서 찾아. 각성자를 찾는 것도 국정원의 도움을 받든, CIA에게 부탁하든 알아서 하고.”
까득-.
화가 나겠지. 알긴 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을 테니까.
“만약에···. 만약 당신 말대로 한다면, 내 아들은 멀쩡해질 수 있는 거요?”
그래. 억지로 지키던 예의는 집어치우자.
여기까지 온 이상 의미 없는 겉치레는 치워버리는 편이 서로 간에 편하다.
“그런 게 가능한 녀석을 하나 알긴 하지.”
블랙.
그 녀석의 능력이라면 최우혁이 다시 멀쩡하게 돌아다니게 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 녀석에게 그런 부탁을 해줄리가 없지.
“···생각은 해보지.”
그때까지 회사가 멀쩡히 남아있다면 말이지만.
* * *
삐리릭-.
손가락을 대자 열리는 현관문.
그리고 곧장 내 침샘을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가 퍼져나간다.
“어? 삼촌?”
“청국장 했어?”
“네, 그런데 이 시간에··· 오늘 가게 안 열었어요?”
“아아. 오늘은 이루랑 도진이한테 맡기고 일찍 들어왔어.”
“잘하셨어요. 사장님이 맨날 가게에 나와 있고 그러면 직원들이 불편해해요.”
그 두 녀석이?
더 이상 편해지면 안될 것 같은데···.
“딱 맞춰서 오셨네요. 얼른 손 씻고 오세요. 식사 아직이시죠?”
그럼.
비싼 한정식집에서도 일부러 차만 홀짝이다 왔는걸.
“청국장이라. 오랜만인데?”
“헤헤-. 기대하셔도 좋을걸요? 언니가 다른 건 몰라도, 청국장 하나만큼은 끝내주거든요!”
젊은 여자들은 청국장을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다.
하긴, 두 사람의 입맛은 굉장히 한식에 맞춰져 있긴 하지.
“어디···.”
식탁 가운데 놓인 뚝배기에서는 아직도 보글보글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국자로 앞 접시에 덜어 입에 가져가는데.
구수한 향기 때문에 코에서부터 맛이 느껴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후룩-.
“···와-아.”
잘 발효돼 부드러운 대두는 푸욱 익은 김치와 함께 어우러지고, 작게 썰린 소고기가 맛을 더했다.
진하게 끓여낸 멸치 육수에서 나오는 감칠맛과 표고 버섯의 향기까지.
“이야, 오늘은 정말 맛있는데?”
“···오늘은요?”
아차 싶었지만.
“응? 아, 오늘도! 오늘도 맛있다고. 시연이가 잘못 들은 거야. 나 분명히 오늘도라고···.”
킥킥-.
시은이가 작게 웃었고, 시연이는 그런 시은이를 또 째려본다.
“왜, 왜 나한테 그러냐. 말한 건 삼촌인데···.”
“···그런데 오늘 무슨 일 있으셨어요? 표정이 안 좋아 보이세요.”
“응? 내가···? 아닌데···.”
티가 날 리가 없는데.
어떻게 알아챈 거지?
“그러고 보니까, 삼촌 분위기가 평소랑 좀 다른 거 같긴 하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저희한테도 말씀해주세요. 할아버지가 가족끼리는 비밀 없어야 하는 거라고 했어요.”
“응··· 그럴게. 그런데 정말 아무 일도 없어.”
“···정말이죠?”
이것도 여자의 직감이라는 건가?
“그럼. 걱정하지 마. 그냥 오늘 좀 피곤해서 그런가 봐.”
“아, 맞다! 삼촌. 나무는 어떻게 됐어요?”
“가게에 아주 멋진 녀석으로 심어놨어. 시간 될 때 오면 같이 꾸미자.”
“앗싸-!”
“시은아, 밥 먹을 땐 좀 얌전히···!”
“치, 언니는 맨날 나한테만 그래.”
오늘도 여전히 투닥거리는 두 사람.
하지만 시연이는 그러면서도 계속 날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마치 뭔가를 아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