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61화.
도착하고 보니, 더 확실히 느껴진다.
마력의 소용돌이.
이건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에 나타나는 일종의 전조 현상인데, 그 소용돌이가 꽤 거세다.
적어도 B급.
어쩌면 그 이상이다.
신주희 박사가 분류한 세 가지 색상을 기준으로 한다면 푸른색에 속하는 거다.
그 말은 이 게이트가 강제로 깨어난다면 그 주변에서 나타나는 노란색의 하위 등급 게이트에도 어떤 식으로 영향이 미칠지 모른다는 거다.
“···끝내 멍청한 짓을 했구나.”
“크큭-. 알겠다. 네가 이진이란 놈이구나?”
날 안다?
하기야 저 녀석도 사진은 봤을 테니.
그거야 그렇다 치고.
“하···.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의 자식을 봤나. 날 안다는 건 내 나이도 안다는 건데, 놈? 놈이구나?!”
“그, 그건···!”
가정 교육이 안 됐나, 아니면 그냥 싸가지가 없는 건가.
“여기 있는 게 게이트 생성 장치겠군.”
“그, 그래!”
“···분명 만들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우, 웃기지 마! 네가 뭔데···. 이건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장치다! 네가 이래라 저래라할···!”
“너, 한 번만 더 반말하면 혀를 뽑아주마. 이게 농담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으면 다시 한번 반말로 지껄여봐도 좋고.”
“···이, 이진님께서 이래라 저래라할 자격은···.”
금세 꼬리를 내려버리네.
차라리 한 번 더 반말을 하길 바랐는데.
못내 아쉽다.
“여기, 내 섬이다. 알고 들어온 거겠지?”
“그, 그 점은 죄송하게 생각···.”
“누가 갑자기 네 녀석의 집에 들어와서는 거실에다 똥을 싸놓으면 넌 기분이 어떨 것 같으냐?”
“···무, 무슨 비교가···.”
“그렇지? 하긴, 기껏해야 치우면 그만인 똥 따위랑 비교도 안 되지. 자그마치 게이트를 열려고 한 건데 말이야.”
“자, 잠시만요.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
뭔가 변명하려고 하는 건 알겠는데, 지금은 그냥 엎드려 있는 게 나았을 거다.
“···닥쳐.”
말과 동시에 녀석 주변의 공간 전체를 짓눌렀다.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버둥거리는 꼴을 봐도 화가 가라앉지를 않는다.
이 자식을 어떻게 처리할까 잠시 고민하는데.
한쪽에 어찌할지 모르고 있던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양인데.
“스로니언 이사님, 저 사람···. 이진입니다.”
“이진? 설마, 한국의 귀환자인 그 이진 말인가?”
“네. 확실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그럼 뭐야, 지금 저자가 좋은 의도로 온 것 같지는 않은데.”
“두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마 이진이 만들지 말라고 경고했던 물건인 듯합니다.”
“···게이트 생성 장치를 만들지 말라고 했단 건가?”
“네, 대화 내용도 그렇고 정황을 봐서도 확실해 보입니다.”
속닥거리지만 다 들린다.
어쩌면 내가 듣는 다는 걸 알고서 저런 대화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고.
“···크흠, 미스터 진.”
“뭐지? 너희들 차례는 아직이니까 기다려.”
“그, 그게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미스터 최의 초청에 응한 것뿐, 이 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만약 미스터 진이 관련된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절대 끼어들지 않았을 겁니다.”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건가.
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의 대화가 사실이라면 이들은 정말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여긴 내 섬이고, 너희들은 이 녀석과 함께 무단으로 침입해서 위험한 짓을 하려고 했다.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책임이 없진 않다는 말이지.”
“무, 물론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충분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
“대가? 돈이라면 나도 많아서 필요 없는데.”
“···다른 어떤 요구 사항이라도 들어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이렇게까지 저 자세로 나온다고?
그렇다면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소리라고 봐야 한다.
내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들었다는거겠지.
꽤 잘나가는 기업인 듯하고, 구두이긴 하지만 백지수표에 가까운 대가 지불을 약속받았으니 이쯤 할까?
“경고하는데, 다시 한번 이와 같은 비슷한 일에 발가락 하나라도 담갔다간 대가를 내는 게 아니라 회사 전체가 사라지는 꼴을 보게 될 거다.”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상대에게 굴욕적인 말이 될 거란 건 알지만, 이 정도 경고는 해둬야 한다.
그래야 경각심이라는 게 좀 생길 테니까.
“이만 가봐. 아, 그리고 가서 하밀 녀석에게 전해.”
“···네? 아, 네! 어떤···.”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와서 하라고. 정치인처럼 뒤에서 여론몰이나 하려고 하지 말라고 말이야.”
연합인지 뭔지를 만들 생각이고, 날 거기 끌어들이고 싶으면 정치질로 어찌해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어차피 그런다고 움직일 나도 아니지만.
두두두두-.
헬기 두 대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는 걸 가만히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은 뭐야? ···각성자인가?”
각성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니 이놈이나 저놈이나 죄다 각성자를 고용하려는 건가.
“···아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려고 한 모양입니다.”
“아, 정신이 들었나?”
“네. ···우혁이는 얼핏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것 같지만, 굉장히 주도면밀한 아이입니다. 이런 외딴섬을 고른 이유도 분명 있을 겁니다.”
“저 녀석은 여기가 외딴섬이라서 고른 게 아니야.”
“네? 그럼 왜···.”
“이 섬의 주인이 나라서 이곳으로 고른 거지.”
생각해보니, 이 섬을 내가 소유하게 됐다는 것은 어찌 알았을까.
등기부등본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생뚱맞게 갑자기 섬 소유주 확인을 했을 리는 없고.
누군가가 알려줬다는 건데.
설마 국정원 쪽에서 정보를 제공해주는 이가 있는 건가.
하긴,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니.
“설마, 그럼 우혁이 녀석이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이곳으로···?”
“문제가 생기면 내가 나설 거라고 생각했겠지. 가만 보니 생각할수록 괘씸한 녀석이네.”
반쯤 모래에 파묻혀 버둥거리는 녀석을 잠시 바라보고선, 마력을 거둬들였다.
퓃, 퉤퉤!
쿨럭- 쿨럭!
한참을 정신없이 입 안에 남은 모래를 뱉어낸 녀석이 날 돌아봤다.
이제 대화를 좀 해볼까 싶었더니.
“야, 이 병신들아! 뭐 하고 있어! 당장 저 새끼 내 앞으로 끌고 와! 내가 너희들을 왜 고용했는데!”
허허-.
아무래도 동생이란 녀석은 제 형이랑은 다른 것 같다.
제대로 된 교육이 좀 필요하겠네.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 해요. 저 사람··· 아니, 저분이 정말 이진이란 분이 맞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백 명 있어도 상대가 안 돼요.”
“참나, 각성한 지 1년도 안 된 우리가 70년 전에 각성한 사람을 어떻게 이기냐고···.”
“저 양반,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란 걸 모르나.”
각성자들마저 뒤로 물러나자 정말 혼자 남아버렸다.
그런데도 기세가 사그라지지를 않는다.
대체 뭐에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네.
“네 녀석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냐?”
“닥쳐! 너 따위가··· 너 따위가 감히! 돌아가기만 하면 가만 두지 않을거다.”
도대체 얼마나 권위 의식에 찌들어 있으면 저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있는 건지.
“너 자꾸 반말할래? 어린놈의 자식이···.”
“네 놈과 네 놈 가족, 그 주변에 관계된 놈들까지 죄다 내 발아래에서 개처럼 기어 다니게 만들어주마!”
“···뭐?”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사실 조금 가벼운 마음이긴 했다.
마력이 요동치곤 있지만, 아직 게이트가 열리지는 않았다.
어쨌든 최악의 상황은 막은 셈이니까.
저놈이 무리한 건 맞지만, 내가 강하게 제지하지 않은 부분도 있으니.
어느 정도 경각심만 심어주고 경고하는 선에서 멈출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이 바뀌었다.
후우-.
그래, 사람은 고쳐 쓰지 말라고 했다.
옛 어른들이 남긴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그걸 오늘 다시 실감했다.
“최도혁.”
“네, 네! 선생님.”
“내가 널 데리고 온 이유가 뭐라고 했지?”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지금부터 네가 이 모든 상황의 증인이다.”
감히 내 바로 앞에서 내 가족을 협박한 놈.
살려둘 필요가 없겠지.
목숨을 끊을 수야 없지만,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할 수는 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죽여달라 빌 정도로.
극도로 분노하면 오히려 차분해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지금 딱 알 것 같다.
“최우혁이라고 했나? 돌아가서 말고, 지금 여기서 해보지, 그래?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말고, 네손으로 직접 말이다.”
“···각성자와 일반인이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게 문제였나? 좋아, 마력은 일절 사용하지 않으마. 그럼 되겠지? 우리도 마력이 없으면 일반인과 다르지 않으니까. 순수하게 너와 나, 일대 일로 붙지.”
“그걸··· 어떻게 믿지?”
“저기 네가 데리고 온 녀석들에게 물어보면 되겠군. 이봐, 너희들도 그 정도는 알 수 있겠지?”
몇 사람이 서로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쓰는지, 안 쓰는 지 정도라면··· 저희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는군. 됐지?”
“늙은이 주제에···. 너 후회하게 해주마. 내가 이래 봬도 각종 격투기를 프로 수준까지 배운 몸이거든.”
그래. 재벌들은 그런다고 하더라.
만약의 상황에서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호신술이나 격투기 따위를 배우기도 한다고.
근데, 그래서 뭐?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을 하고선 다가오는 녀석.
자세를 보니 제법 배운 티가 나긴 한다.
나도 몸에 있는 마력을 모두 차단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무력감이지만, 이런 애송이 하나쯤 상대하는 거야.
팡-.
짧고 빠른 잽이 날아들었다.
팔을 뒤로 당기지도 않고, 끊어치는 걸 보니 확실히 복싱 계열을 배우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우습기 그지없는 수준이다.
프로? 안전한 규칙의 보호를 받으며 싸우는 걸 과연 전투라 부를 수 있나?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곳이 바로 게이트다.
그런 게이트에서 자그마치 40년을 살아온 내가 아무리 마력이 없다 한들, 이따위 애송이의 주먹에 맞을 일은 없다.
주먹과 발이 교차로 계속해서 날아든다.
하지만 느려.
녀석의 오른 주먹이 날아오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전투라는 이름. 전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건.
그저 배운다고 써먹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실전을 겪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생존의 몸부림에 가깝다.
마력이 미천하던 시절, 나 역시 신체 강화 능력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몬스터의 주먹을 피하고, 칼을 찔러넣고.
죽이지 못하면 죽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피비린내를 뒤집어서 써 가며 살아남았다.
함께 들어간 동료의 시체 밑으로 기어들어 가 목숨을 부지한 적도 있다.
바로 옆에서 인간을 뜯어먹는 녀석에게 기어가 목을 물어뜯은 적도 있었다.
역한 냄새를 풍기는 그 피 맛을 아직도 난 잊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아 지금 이 세상을 만들었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토대로 지금의 평화를 이뤄냈는데···.
감히 그걸 부수려는 것도 모자라서 내 가족을 협박해?
끓어오른 감정이 사그라들고, 냉정함이 온몸을 감쌌다.
마음속에 남아있던 일말의 온기가 사라져간다.
휘익-.
귓가로 녀석의 오른 주먹을 흘려내고, 주먹을 반쯤 말아쥐었다.
그렇게 손가락만 구부린 상태로 녀석의 갈비뼈 아래쪽을 밀어내듯 쳐올렸다.
간장 치기. 일명 리버플로우라 불리는 기술이다.
근육이 없이 말랑말랑한 간장을 정통으로 맞으면 일반인은 파열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약한 부위기도 하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버티지 못한다.
지금 이 녀석처럼.
“끄어-. 크어어어억-.”
“어때? 숨쉬기가 힘들지?”
손을 들고선 뒷걸음질을 치는 녀석.
그래, 아마 격투기를 배울 때는 그렇게 물러나면 괜찮았겠지.
실전이 아닌데다 귀빈 대접받으며 배웠을 때는 그랬을 거다.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물러나는 녀석의 머리채를 잡았다.
“끄어어어어···. 자, 자, 잠깐···.”
피식-.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난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가?
“웃기는 놈이네. 잠깐?”
퍼억-.
이번엔 왼쪽.
간장의 반대쪽에 있는 위.
쿠웨에엑-.
뭘 처먹었는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내용물을 토해내는 녀석.
“커어어···! 이, 이 새끼가아···. 기, 기다리라고···!”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머리채를 잡은 채로 들어 올리니, 온 얼굴에 토사물과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녀석이 날 올려다본다.
이 와중에도 아직 눈이 붉게 충혈된 게 상당히 열받은 모양인데, 과연 나보다 더 화가 날까?
콰직-.
이번엔 아주 단단하게 말아쥔 주먹으로 안면부를 강타했다.
주먹에 더러운 피가 조금 묻긴 하겠지만, 상관없다.
퍽퍽-.
무념무상의 주먹질이 여러 차례 내려쳐지고.
이젠 말할 힘도 없어 보이게 축 늘어진 녀석의 몸이 움찔거린다.
“···그, 그만···. 이제···. 그마안···. 끄어어···. 제, 제가···. 잘··· 못···.”
“서, 선생님···.”
“응?”
최도혁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가 경악에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아마 여기서 제일 평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나일 것 같다.
“그··· 녀, 녀석도 그쯤이면 알아들었을 겁니다. 그 이상하시면···.”
“하면 뭐? 걱정할 거 없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으니까. 사람은 말이야, 생각보다 꽤 생명력이 질기거든.”
사실 죽어도 상관없지만.
최도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다가.
“죽진 않더라도···. 잘못하면 평생을···.”
“그래, 맞아. 내가 원하는 게 딱 그 정도거든.”
병신 만드는 거.
콰직-.
녀석의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길래.
좀 깨우기도 할 겸.
다리 하나를 반대쪽으로 접어줬다.
아마 지금쯤 머릿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거다.
감정을 배제하고 그저 고통만 안겨주는 작업.
당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공포가 따로 없다.
끄아아-!! 끄으으···.
제, 제바알···.
고통에 몸부림치는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왔지만, 그 누구도 다가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녀석의 귓가에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이 걸로 전부 끝이란 생각은 하지 마라.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