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59화 (59/153)

귀환자 식당 59화.

난 박사나 연구원이 아니다.

당장 뭐라 이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서 알려줄 능력이 나에겐 없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게이트라는 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지만 시간의 흐름이 달라서 보이지 않을 뿐이란 말씀인가요?”

“그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게이트가 열릴 시간이 되기 전까지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조금 더 정확하려나.

이미 어딘가에서는 벌어진 일이, 시간 축의 어긋남을 넘어서 이 세상에 실현되는 것인가.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앉았지만, 아직도 내 머릿속의 생각이 정리되질 않는다.

마음으로는 답을 안 것 같은데, 수백 개의 퍼즐이 안개 속에 흩어져 있는 듯한 답답함.

“하지만 그러면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어떻게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오는 거죠?”

“게이트가 열려있는 건 정확하게 ‘그 시간’이니까요.”

“그럼 시간을 넘어갔다가 돌아온 거라면 왜 하필 마지막 게이트에서만 그 시간의 축이 어긋났을까요?”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마왕이 죽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싶네요.”

이렇다 할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지금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결론이었다.

정식 박사라곤 한 명뿐인데, 이 이상의 답을 내리는 건 무리지.

게다가 아직 이 모든 건 가설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가설에 가설을 더해 하나씩 증명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진실에 닿겠지.

“만약에 말입니다. 정말 모든 게이트가 연결된 거라면···.”

이야기를 듣던 안정민 과장의 표정이 점차 파리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정말 만약에 말입니다만···. 하나의 게이트에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문제라뇨? 그 문제라는 게 뭔데요?”

“예를 들어··· 누군가가 강제로 그 게, 게이트를 나타나게 한다거나···?”

“에이-. 어느 정신 나간 놈이 그런 짓을 하겠어요. 그리고 그런 게 가능하지도···.”

꿀꺽-.

안정민 과장이 거의 울 것 같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서, 설마··· 아니죠?”

사색이던 안정민 과장의 표정이 전염이 된 건지.

신주희 박사도 날 돌아본다.

“선생님. 이게 무슨 소리예요? 아, 아니죠? 그렇죠? 잠깐만요. 그, 그런 게··· 정말, 가능하다고요?”

이제는 그게 가능하고 불가능하고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어떻게든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지.

“어딥니까.”

“확실한 정보는 아닙니다. 지금은 그저 삼영 그룹의 연구 시설 중 하나라는 것만···.”

왜 이리 멍청할까.

어찌 이리 어리석은 인간이 있을까.

깨달았어야 한다.

아니, 이미 깨닫고 있었다.

세상에는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는 인간이 있다는 걸.

자신들이 가진 그 보잘것없는 알량한 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리 진심으로 소리쳐도 듣지 않는 인간이 있다는 걸.

“말로 하는 건 그만하겠습니다.”

위험하다 분명히 알려줬다.

경고도 했고, 권고도 했다.

그런데도 결국 일을 벌이려고 한다.

이전과는 상황이 바뀌었으니, 이젠 그저 경고만 해서는 끝나지 않는다.

그 어떤 생지옥이 펼쳐지더라도 나 혼자라면 상관없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생겼다.

아름다운 것만 보고, 즐거운 추억으로만 가득한 인생을 살게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 지옥의 티끌이라도 보여줄까 보냐.

누가 되더라도 상관없다.

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신이라 한들.

지금 우리의 이 평화로운 삶에 위해가 될 것 같으면 모조리 배제해버릴 작정이다.

말로 해서 듣지 않으면 결국 몽둥이를 들 수밖에.

* * *

전국에 총 4곳.

많기도 하다.

뭐 그리 감추고 싶은 게 많길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연구소만 네 군데나 만들어 뒀을까.

정확한 위치는 안정민 과장도, 장민국 원장도 모른다고 했다.

미국이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소리도 듣긴 했지만.

그래서 뭐?

-선생님, 만약 미국과 국제적인 분쟁이 발생하면 한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걱정마세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어쩌실 생각이세요? 그것만이라도 알려주시면 저희도 미리 준비하겠습니다.

물어보면서 이미 알았던 말투인데.

그래도 답은 해줘야겠지.

이 사람들도 대비는 해야 할 테니.

“알아듣게 만들어야죠.”

내 대답은 그걸로 끝이다.

그리고··· 국정원의 원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무슨 말인지 단박에 알아들었겠지.

그런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들어야만 한다.

전화를 끊은 뒤, 가장 처음으로 도착한 곳을 내려다봤다.

서울 외곽에 있는 창고 건물이었는데, 이곳이 바로 연구소라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잡동사니나 모아둘 창고로나 쓰이면 다행일 정도로 허름해 보였는데 이 안에는 최첨단 연구 시설이 있단 말이지.

용의주도한 건지, 구린 게 많은 건지.

뭐가 됐든, 나는 오늘 이곳을 지울 생각이다.

우지직-.

꽈드드드득-.

가벼운 손짓 한 번에 건물 입구로 보이던 부분이 그대로 뜯겨 나왔다.

철판이 찢어지며 건물 한쪽이 함께 뜯겨 나오자 그제야 제대로 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도 일에 딱히 권능을 쓸 필요도 없다.

그저 가볍게 마력을 움직이면 될 일.

게이트 연구를 위해 지은 최첨단 건물이라 그런지, 종잇장처럼 뜯긴 조금 전의 입구와는 달리 제법 버텼다.

하지만 그저 그뿐.

콰지직-.

이내 바닥과 함께 통째로 뜯겨 나온다.

그리고 그제야 어딘가에서 우르르 몰려드는 경비 인원들.

“다, 당신 뭐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건가?

공중에 떠 있는 사람을 보면서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그만큼 많은 돈을 받으니 목숨이라도 바쳐서 지키려 하는 것인가.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꺼져라.”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하면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 정도 버티는 것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각성자라고 해도 내 마력을 버텨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상당한 훈련을 받은 자들이라는 이야기다.

일개 공장의 경비원 노릇이나 할 사람들은 아니란 이야기.

“···네 놈들 혹시 각성자들이냐?”

“그, 그래! 보아하니 이능력 각성자인 모양인데··· 넌 지금 수적으로 불리하다! 이 이상 일 키우지 말고 내려와. 지금 물러나면 지금까지의 일은 무, 묻지 않겠다.”

기가 막히는 제안이네.

부들부들 떨면서 협박하는 꼴이라니.

“하나만 묻자. 네 놈들, 지금 저 안에서 뭘 하는지는 알고 있냐?”

“···그, 그건 몰라. 그저 여기를 지키라는 것만···.”

“생각보다 더 한심한 놈들이군.”

이익-!

분한 표정을 짓지만, 섣불리 공격하지도 못했다.

애송이들.

딱 그 한마디로 모든 게 정리되는 놈들만 모은 거다.

이제 막 각성해서 뭔가 자신이 특별한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아직 이렇다 할 일을 해본 적도 없는 애송이들이다.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디디려는 순간, 각성자가 되어 헛된 꿈에 사로잡힌 아이들.

나이로 따지면 이제 겨우 시연이나 시은이와 비슷할 나이다.

몬스터는 구경도 못 해본 녀석들.

그래도 각성자랍시고 만약을 위해 데려다 놓은 건가.

큰돈을 준다는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고 온 거겠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불쌍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심하기도 하다.

난 겨우 12살에 각성을 한 뒤로 온 힘을 다해 세상에 부딪혔다.

20살이 넘었음에도 아직도 자기가 뭘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의 손에 이끌려 끌려다니는 모습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지.

“너희들에겐 설명조차 사치다. 꺼져라.”

마력을 조금 더 개방했다.

이 정도 되면 이제 저런 애송이들의 정신력으로는 버틸 수 없다.

그나마 도망이라도 치는 녀석들은 좀 낫다.

아예 혼절해 버린 녀석도 있으니.

“···의리도 없는 것들.”

비록 서로 안 지 얼마 안됐다곤 해도, 이렇게 버리고 가버리다니.

장담하는데 저런 녀석들은 헌터가 된다 한들, 게이트 몇 번 돌고 나면 포기해버릴 녀석들이다.

끈기는커녕 뭔가를 열심히 해볼 생각도 없이 살아왔을 녀석들.

휙-.

쓰러진 몇몇 녀석들을 손짓으로 날려버렸다.

날아가서 땅바닥을 좀 구르긴 하겠지.

재수가 없으면 팔, 다리 정도 부러지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죽는 것보단 낫잖아?

그렇다고 내가 고이고이 안아 들고서 침대에 눕혀줄 생각도 없고.

“···안에서 상황을 보고 있을 텐데.”

누군가는 경보를 울렸을 거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 정도의 소란인데 모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안에 있을 누군가가 지금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 텐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설마 내가 어떻게 하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이 알량한 첨단 보안 장비가 자신을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가?

뿌드드득-.

땅이 진동하더니,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뻐거걱-!

시멘트를 부어 만든 땅바닥이 쪼개지면서 바닥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거의 빌딩 크기에 버금가는 거대한 구조물.

그게 통째로 땅 위로 뽑혀 나왔다.

“어디, 이래도 안 나올래?”

그래? 그럼 언제까지 그 안에서 버티나 한 번 볼까?

손바닥을 들어 정면을 향해 펼친 뒤, 살짝 움켜쥐어본다.

우지직-. 끼이이익-.

거대한 무언가가 우그러드는 굉음이 조금씩 조금씩 울린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공장으로 들어오는 도로와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산속.

누군가가 도우러 올 거라고 믿는 건가.

하지만 누가 온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일 텐데.

콰지직-!

아주 천천히 조금씩 더 우그러드는 거대한 쇳덩어리.

쾅- 쾅-.

드디어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이미 우그러져 버린 문이 열리지 않으니 다급하게 내려치는 소리.

콰직-.

문이 있던 벽면을 통째로 뜯어내자, 안에서 사색이 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겁을 먹은 상태.

“여기 책임자는 어디 있지?”

내가 만나고 싶었던 건 연구하는 이들이 아니다.

이들에게 그런 연구를 시킨, 그 빌어먹을 재벌 새끼지.

“···저, 접니다.”

“네 놈이냐? 삼영 그룹의 둘째라는 놈이.”

“아, 아닙니다. 저는 최도혁입니다. 삼영 그룹의 최진우 회장의 첫째 아들이죠. ···대체 우리한테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몰라서 묻는 거냐? 여기서 연구하고 있는 거, 멈추게 하러 왔지.”

“대체 왜···. 잠시만요. 혹시 여기서 연구하는 게 뭔지 알고 이러시는 겁니까?”

분위기가 이상한데.

나 지금 뭔가 실수한 건가?

“···게이트 생성 장치?”

“아, 아닙니다!”

“그럼··· 여기선 대체 뭘 만들고 있었던 건데.”

어째 눈에 억울함이 가득한 얼굴을 한 채로.

날 보며 거의 울듯이 소리쳤다.

“우, 우린 마석을 이용한 치매 치료제 개발 중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왜 각성자들은 고용해서···.”

“지금 마석 하나 가격이 얼만지 아십니까? 각성자는 각성자가 아니면 막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경비 병력을 강화하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머쓱해져서 나도 모르게 턱을 슬쩍 긁었다.

“일단 물어보시라도 했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왜 다짜고짜···.”

“이거 참··· 미안하게 됐네.”

“이제 드디어 실마리를 잡았던 참인데···.”

내 촉이 빗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하지만 나도 사람인 이상 간혹 실수를 하긴 한다.

“혹시 동생이 운영하는 연구소 위치는 아나?”

“···알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 있었던 일은 정말 미안하게 됐어. 근데, 일단 급한 것부터 해결해야 하니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고. 미안하지만 사과는 그때 다시 정식으로 할 테니까.”

“이, 이진 선생님! 잠시만요.”

“날 알아?”

“네? 아, 네. 사진으로 본 적이 있어서···. 게다가 지금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한국에 선생님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재벌들 사이에서 사진이 꽤 돌았다고 했지.

하긴, 이 상황을 봤으니 사진이 없어도 알아채는 건 당연한가?

“그래서 왜? 내가 지금 좀 급한데.”

“게이트 생성 장치를 찾으시는 거라면 이미 연구소에는 없습니다.”

“뭐? 그럼 어디 있는데?”

“그건··· 저도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다만 시연을 위해 어떤 섬으로 간다고만 들었습니다.”

어떤 섬?

이거 왠지 느낌이 확 오네.

이 새끼 봐라? 감히 날 엿먹이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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