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58화.
어쩌지? 깨워야 하나?
그냥 주무시게 둘까?
음식 식을 텐데···.
도란도란.
꿈속에서 작은 요정들이 내 주위를 맴돌며 깔깔거린다.
마치 내가 꽃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들끼리 귓가를 간지럽히는 느낌에 자고 있으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어? 언니, 삼촌 봐. 자면서 웃는다.
···좋은 꿈 꾸시나 봐. 조용히 나가자.
히잉-. 삼촌 주려고 잡채 열심히 했는데.
일어나시면 드시라고 하면 되지.
몸이 나른하다.
커다란 목화솜으로만 가득한 세상에 오롯이 혼자 누워있는 편안함.
아주 어릴 때, 잠을 깨우던 엄마에게 칭얼거리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조금 더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돌아갈 텐데.
“···어, 엄마.”
지금 떠나는 누군가가 엄마가 아님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불러본다.
꿈속이라는 걸 알면서도 깨어나기가 싫다.
이대로 좀 더 편안하게 있고 싶다.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문득 또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은 꿈속의 삶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스윽-.
따듯한 손길이 눈가를 어루만졌다.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온기와 향기.
···나 울었던 건가?
스르륵-.
무겁게 짓누르던 눈꺼풀이 조금씩 가벼워지며 눈이 뜨였다.
낯선 천장을 배경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눈 가득 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두 사람.
“···걱정을 끼쳤나 보네.”
“삼촌··· 괜찮으세요? 갑자기 자면서 눈물을 흘리셔서···.”
갑작스러운 모습에 놀랐겠지.
하지만 이건 그런 슬픔에서 나온 눈물이 아니다.
깨어나 보니 알겠다.
내가 지켜야 하는 건 오래전 내 손을 떠나버린 후회스러운 과거에 사로잡힌 꿈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이 아이들이라는 걸.
“···맛있는 냄새가 나네?”
“그쵸? 제가 삼촌 주려고 잡채 했어요!”
“시은이가 잡채를?”
“네!”
요리 초보가 쉬이 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닌데?
느릿느릿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들리던 도마소리가 시은이의 것이었구나.
저 자그마한 손으로 날 위해 손수 음식을 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불 조절을 잘 못했는지, 군데군데 그을린 당근과 양파.
볶으면서 소금이 뭉쳤는지 씹을 때마다 짠맛이 배어 나오는 버섯.
너무 익혀서 물러진 시금치.
“와아··· 너무 맛있는데? 시은이 시집가도 되겠다.”
그 조합들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이게요?”
분명 같은 음식을 먹은 시연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살포시 웃으며 이번엔 시연이가 만들었다는 불고기에 손을 뻗었다.
시연이가 살짝 긴장한 듯하지만, 내면에 깔린 자신감도 보인다.
아무래도 음식을 해본 경험이 있으니 시은이와는 다르겠지.
달큰하게 끓여진 간장이 적당히 스며든 얇게 썰린 소불고기.
확실히 시은이의 것과는 달랐다.
“삼촌, 내 잡채가 더 맛있죠?”
“···얘는, 삼촌 난처하시게.”
“그냥 한 말이다. 뭐.”
그러면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두 사람.
하지만 어느 하나를 정하라면 그건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엄마가 좋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던 어린 시절의 나와는 달리.
이제는 머쓱하게 웃던 아빠도 사실은 내심 서운해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나이니까.
“내가 먹어본 잡채 중에서 최고로 맛있었고, 최고로 맛있는 불고기네.”
엄마와 아빠를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다.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따듯한 엄마이고, 아빠도 최고로 멋진 아빠니까.
달의 은은한 아름다움과 해의 환한 따스함을 비교한 들 무슨 소용이겠나.
“히히-. 많이 드세요!”
“삼촌, 잡채는 맛없으면 억지로 안 드셔도 돼요.”
“왜, 왜 잡채만 콕 집어서 이야기해? 언니 불고기도 엄청 짜거든?!”
“너도 잡채가 짜다는 건 알고 있었구나? 다행이네.”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앞에 두고 함께 식사를 한다.
오늘은 가게가 아니라, 함께 사는 집에서.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런 날이 계속 이어지겠지?
역시나 나···.
돌아오길 잘했다.
* * *
마당에 커다란 장식물이 하나 새로 자리했다.
야외 테이블 옆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심어진 3m가량의 구상나무.
“갑자기 웬 나무가···. 아, 혹시 트리용이야?”
“그래.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해둘까 하고.”
“이런 건 주로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데서 하는 거 아닌가?”
“이루야, 고정 관념을 버려.”
“···형이 할 말인가.”
뭐, 상관없다.
어차피 이건 시은이의 요청이었으니까.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사실 별 관심도 없고.
-나 꼭 커다란 나무에 장식해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맨 꼭대기에 별 다는 거. 그거 해볼래요.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와. 이 나무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 하기 딱 좋게 생겼다. 이름이 뭐야?”
“구상나무라고··· 한국 특산종이야.”
“햐아. 이걸로 크리스마스트리 꾸며놓으면 정말 멋지긴 하겠다.”
꾸미는 그 자체를 즐길 사람이 곧 올 거다.
“그나저나 이사하니까 좋아?”
“좋지.”
그걸 말이라고.
이젠 아침에 인사하려고 일부러 나와 있지 않아도 된다.
시은이는 함께 차를 타고 학교에 내려주고 오기까지 했다.
교문으로 들어가면서도 폴짝거리며 손을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수능도 끝난 마당에 굳이 학교를 왜 가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시간만 조금 때우다 돌아오는 게 다라고 하는데.
그놈의 법정 수업일수인지 뭔지를 채워야 한 단 다.
이런 것들을 보면 참으로 융통성이라곤 없는 게 법인가 싶다.
재벌들 대하는 걸 보면 또 그렇게 세상 부드러운 방망이가 없던데 말이지.
마사지를 받아도 시원할 것 같지 않게 말이다.
“뭐, 그래도 내가 떠나기 전에 형이 그리 들어가게 돼서 마음이 좀 덜 불편하겠다.”
“네가 퍽이나.”
“진짜야. 도진이도 없는데 혼자 홀아비처럼 궁상맞게 지낼까 봐 걱정했다고.”
걱정해준 건 고마운데, 어째 단어 선택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걱정은 말고, 가서 너나 잘해. 괜히 꼬투리 잡힐 짓 하지 말고.”
비공식이긴 하지만, 벌써 일본 측에서 명단을 보내왔다.
거의 100명에 달하는 인원.
그래도 한국이 월등히 많긴 하지만, 걱정되는 건 그런 부분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그래도 일본 사람이라고 할 테고, 한국에서는 귀화했으니 한국 사람이라고 할 게 뻔한데.
그 와중에 이루가 자칫 어느 한쪽으로 조금만 편파적인 자세를 취하기만 해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그 균형을 맞추는 게 어쩌면 가장 힘든 일일 수도 있다.
“그건 염려 마셔. 아주 어느 쪽이고 할 것 없이 서로가 먼저 죽여달라는 소리가 나오게 될 테니까. 흐흐-.”
“···훈련생이긴 하지만, 귀한 재원들이야. 그건 명심해.”
“1차로 오는 애들은 전부 신체 강화 계열이라며, 그럼 어지간해서는 안 죽으니까 괜찮아.”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건가?
···뭐, 알아서 잘하겠지.
“나한테 매주 상황 보고 하는 것도 잊지 말고.”
“그냥 형이 한 번씩 와서 보면 안 되나? 서류로 보는 것보다야 직접 보는 게 확실하고.”
“그건 차차 생각해보자.”
1기 졸업생이 나오고, 2기에 이능력 각성자들이 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딱히 그런 하찮은 일에 내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
시연이와 시은이와 함께 하는 시간만으로도 부족한데 말이지.
* * *
저녁 장사를 시작하기 직전.
가게로 안정민 과장이 찾아왔다.
이제는 단짝이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은 신주희 박사와 함께.
“선생님, 삼영 그룹에서 제공하기로 한 장비들 품목입니다.”
입에 무는 것만으로 물속에서 호흡이 가능한 수중 호흡기는 여러모로 유용하다.
마석만 있으면 일정 반경 내의 냄새와 소리, 기척마저 차단하는 장막 생성기 역시 장기간 게이트 안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 조금 더 생존율을 높여줄 수 있다.
무엇보다 신체 강화 능력자의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려 주는 슈트.
“이건 전에 못 봤던 거네요.”
“아, 전에 말씀드렸던 슈트와 같은 겁니다. 이게 일반인들이 게이트를 들어가게 하는 기능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각성자가 착용하니 이런 효과가 나온다고 하네요.”
마력을 몸에 두르는 슈트라.
이건 지금처럼 강한 각성자 한 명이 아쉬울 때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긴 하다.
“그럼 이미 테스트를 해봤다는 거군요.”
“그건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쪽에서도 물건의 성능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긴 하니까요.”
음.
하긴 이 부분은 내가 너무 민감했을지도.
어쨌든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 자신이 뭘 파는지는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문제는 만들어도 괜찮은 것들이 아니다.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어떻게 되었느냐지.
“음. 사실 오늘 신주희 박사가 그 때문에 선생님께 의논드릴 게 있다고 해서 함께 온 겁니다.”
“의논이요?”
“전에··· 연구소에 있던 몬스터 말이에요.”
“오우거 말이군요.”
지난 일이기도 하지만 꺼내서 신주희 박사에게 딱히 좋은 이야기는 아닐 텐데, 굳이 왜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거지?
“네. 그게 왜 갑자기 깨어났을까요?”
밑도 끝도 없이.
“···그걸 알아내는 게 신 박사의 할 일 아닙니까?”
“맞아요. 그리고 연구의 기본은 가설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 오우거라는 게 왜 갑자기 깨어났는지에 대해서 가설을 하나 세워봤어요. 그리고 어쩌면 선생님께서 이 가설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걸 여쭤보려고 왔어요.”
“···제가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들어나 보죠.”
내가 잘하는 건 몇 가지 안 된다.
그리고 게이트 연구는 확실히 내가 잘하는 분야는 아니니까.
그저 편하게 들어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나는 모를 테니까.
“게이트가 사라져서 잠들어 있는 거라고 하셨었죠. 그런데, 게이트가 나타나면서 다시 움직인 거라고요.”
단순히 세상에 다시 마력이 나타나서 그런지도 모르고.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이 그걸 연구하는 것 아닌가.
“만약 게이트가 나타나서 움직인 거라면···. 그러니까, 몬스터라는 존재가 게이트에서 나오는 어떤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존재라고 가정한다면요.”
“몬스터도 살아 움직이는 생물입니다. 뼈와 살이 있고, 생식을 통해 번식도 합니다. 로봇 같은 건 아닙니다.”
“로봇이라고 꼭 기계로 이뤄져야 한다는 건 인간의 고정 관념이 아닐까요? 만약 마석이 배터리 같은 거라면 어떤가요? 게이트란 건 일종의 중계기 역할을 하는 거라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 하는 말들이 나열되고 있는데.
“게이트를 누군가가 만든다는 겁니까?”
“네, 제 가설은 바로 거기부터가 시작이에요. 마력이 있어야만 사는 게 바로 몬스터, 그리고 그 몬스터의 몸속에 있는 마석이 곧 배터리겠죠. 이걸 보세요.”
테이블에 펼쳐진 커다란 세계 전도 한 장.
그곳에는 다양한 색상으로 표시된 여러 가지 도형이 무수히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보자마자 이게 뭔지 깨달았다.
“게이트 위치?”
“역시! 선생님이라면 알아보실 줄 알았어요. 붉은색은 A등급 이상, 푸른색은 B에서 C등급, 노란색은 그 이하의 게이트 생성 위치에요. 뭔가 이상한 점 없으세요?”
“···붉은색은 거리가 모두 떨어져 있군요.”
“맞아요. 그리고 이 검은 색이 바로···.”
“최후의 게이트.”
“네. 이게 태평양 한가운데 생겼던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요.”
지도에는 붉은색 표식이 군데군데 표시되어 있었다.
마치 일정 간격을 벌리며 운동장에 서 있는 조회 시간의 아이들처럼.
그리고 푸른색의 표식이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란 색상의 표식이 다시 푸른색을 에워싸는 형태.
순간 소름이 끼쳤다.
지도에 표시된 게이트들은 모두 한 번에 열린 게 아니다.
그래서 전에는 몰랐던 거다.
게이트의 생성에 대한 연관성을.
무려 40년 동안 생겨났다가 사라진 게이트를 모두 한 번에 놓고 보니, 그제야 보인다.
강한 게이트의 주위로, 약한 것들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게이트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거야.”
그저 우리가 보지 못할 뿐.
게이트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