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56화.
사실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보안이 아무리 좋은 건물이라곤 하지만 그거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할 때의 이야기고.
상대가 각성자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각성한 이들 중에서 헌터가 절반밖에 되지 않는 건 다른 이유도 있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한 범죄, 그리고 그들을 잡기 위한 전담 수사팀.
물론 능력이 몬스터 사냥과 어울리지 않아서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긴 하다.
자기 몸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는 건 사실 몬스터와의 전투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눈이 없는 녀석들도 기척이나 냄새만으로 공격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만약 도둑질이라면 어떨까?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각성자도 있다.
“바, 방금 그러셨잖아요. 만약 제가 예지하는 순간에 옆에 있다면 도울 수 있을 거라고.”
“그렇긴 한데···. 너희가 불편하지 않겠어?”
“불편하긴요. 아마 시은이도 삼촌이랑 함께 산다고 하면 좋아할···.”
아무리 가족이라곤 하지만 남자다.
여대생이라면 특히나 그런 부분에서 민감한 시기인데, 괜히 조카들이 불편해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삼촌 같이 사는 거야?! 나는 대찬성!”
가게로 시은이가 들어오면서 외쳤다.
어려서 그런가, 귀도 참 밝지.
하긴, 두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내가 같이 사는 게 확실히 가장 좋은 선택이긴 하다.
“그래. 대신 언제든 불편해지면···.”
“걱정마세요. 그럴 일 없으니까. 히-.”
나는 그냥 어색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향해 웃어줬다.
* * *
대형 마트라 그런가, 정육 코너 한쪽에 그릴을 팔아서 함께 사 왔다.
간단하게 조립을 마치고 테이블에 고기도 잔뜩 올려두니 뭔가 본격적이다.
“와··· 이게 다 뭐야? 오늘은 고기 파티인가?”
“그래. 너도 와서 좀 도와라.”
“오케이!”
이루가 팔을 걷어붙이고 채소들을 씻는 동안, 오기로 한 사람들이 하나둘 가게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와. 오늘은 고기 파티네?”
“어서오세요.”
“이 사장님, 이거 맨입으로 와도 되나 모르겠네요.”
“제가 통장님한테 얼마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데요. 그런 생각은 절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머. 고기 때깔 봐. 제가 뭐 가져올 건 없고, 집에 명이나물이 있어서 그거나 좀 가져왔는데.”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명이나물이 생겼네.
“이게 또 고기에 싸 먹으면 그렇게 맛있죠. 귀환 걸 가져오셨네요.”
“제가 울릉도 출신이거든요. 친정에서 자주 보내줘요. 혹시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울릉도 명이나물이라.
이파리가 둥글둥글한 게 무척이나 맛이 좋아 보였다.
이런 건 직접 담는 것보다 사는 게 확실히 맛이 좋지.
“그럼 다음에 연락처 하나 남겨주세요.”
가끔 고기가 메인일 때 밑반찬으로 내어도 반응이 좋을 것 같고.
“아 참, 예령이도 합격 축하해.”
“감사합니다. 헤- 진짜 경쟁 장난 아니었던 거 알죠?”
“근데 왜 갑자기 게이트 연구학에 관심이 생긴 거야?”
“멋있잖아요.”
시은이를 보면서 느끼긴 했지만, 확실히 아이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거에 대해서 뭔가 대단한 목표 같은 건 별로 없나 보다.
저녁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진이까지 들어오자 마당이 북적거렸다.
이루는 언제 친해진 건지, 예령이 아버지와 둘이 앉아서 벌써 맥주 한 캔을 마시기 시작했고.
숯불에 불이 붙기 시작하고, 우선 삼겹살과 소고기 안심을 올렸다.
인원수가 많다 보니 불판에 가득 고기를 올렸는데도 정말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사람이 많으니 자연히 시끄러울 것 같아서 가게 주위로는 음파 차단막을 깔고, 냄새도 주변으로 퍼지지 않도록 공기 순환을 위쪽으로만 향하게 했다.
테이블이 부족해서 가게 안에서 두 개를 더 내어왔더니 자리가 얼추 맞았다.
시연이와 시은이, 예령이가 앉은 테이블.
이루가 예령이 부모님과 도진이까지 한 테이블에 앉았다.
손질하고 남은 자투리 고기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를 테이블에 두 개씩 놓으니 정말 제대로 된 파티 같았다.
그래. 나는 이런 분위기의 식당을 만들고 싶었던 거지.
사람들이 모여 밥도 먹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어쩌면 예전에 혼자서만 겉돌았던 시절이 아쉬워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차? 정말?!”
“응! 삼촌이 입학 선물로 해줬어. 헤헤-.”
“와···. 나는 엄마가 최신형 휴대폰으로 바꿔준다고 해서 자랑하려고 했는데. 이건 뭐··· 차라니. 좋겠다아.”
예령이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나도 저런 삼촌 있었으면 좋겠네. 근데, 무슨 차야? 나 언제 태워줄거야?”
“야, 나 아직 면허도 없거든? 대신 따면 제일 먼저 너 태워줄게.”
“진짜, 약속했다?”
“당연하지. 아, 우리 그거 타고 같이 학교 가면 되겠다.”
“너랑 나랑 같은 한국대긴 하지만 의과대학은 완전 다른 데 있거든?”
“아··· 그렇지.”
사실 주변에서 어떻게 보일지 내심 걱정하긴 했다.
식당을 한다곤 하지만 마포구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에 입학 선물로 자동차까지 떡하니 선물할 수 있는 재력이라면 의심스러울 법도 하니까.
그런데 막상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난 거냐, 언제부터 부자였냐 하는 것들은 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어차피 두 사람에게도 진실을 알렸고, 이젠 딱히 숨길 필요도 없게 됐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편안해졌다고 할까.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자네도 각성자라고?!”
예령이 아버지의 놀란 목소리.
아마 도진이가 자신이 각성자라고 밝힌 모양이다.
“네, 저는 벌써 꽤 됐어요.”
“아니, 각성자가 왜 식당에서 일을 하나? 그··· 헌터라는 걸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네? 그야 당연히 여기서 훈련을···.”
도진이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잠시 멈칫하더니, 이루를 쳐다봤다.
말을 해도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물을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잠깐만 여기 있는 거예요. 이번에 각성자 양성 기관 생기면 아마 그쪽으로 가야겠죠.”
이루가 선수를 쳤다.
거짓말을 한 것도, 진실을 다 말한 것도 아닌 대답.
“아, 그렇구만. 나중에 유명해져도 여기 사람들 모른 척하지 말기네.”
“하하- 물론이죠! 저 그런 놈 아닙니다. 사람은 은혜를 알아야 하는 법이죠.”
그렇네.
이루 말을 들어보니 또 그렇다.
도진이 역시 대마도로 가게 될 거다.
어쩌면 이루도 기관을 운영하다 보면 자연히 식당에 오기도 힘들 테고.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나는구나.
다시 새로운 직원을 뽑아야 하려나.
문득, 마음 한 켠이 쓸쓸해지는 느낌이 든다.
* * *
시연은 주차장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사실 학교가 가까워서 걸어서 가도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차가 있는 편이 경호하기 쉽다고 하더라.
경호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뒤부턴 이제 드러내놓고 그녀의 주변을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저쪽에서도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왔다.
경호원이란 다들 검은 정장이나 입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평범해 보인달까.
나이도 자신과 크게 다를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삼촌의 능력을 탐내는 사람들이 많아서 혹시나 있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는데, 거절할 수도 없다.
삐빅-.
우우우웅-.
시동이 걸리면서 들리는 묵직한 엔진음.
시연이는 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게 상당히 좋은 차라는 것쯤은 보는 것만으로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삼촌이 주신 거니까.”
주차장에 세워만 두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목적지를 학교 주차장으로 설정하자 자동 주행 시스템이 가동되며 미끄러지듯 건물을 빠져나갔다.
바로 뒤로는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색상의, 흔한 모델의 차가 뒤따랐다.
우우웅-! 우웅!-.
홍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
학생들의 눈이 자연히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짙푸른 색의 스포츠카 한 대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학교로 들어선다.
야, 저거. 페라리 스파이더 아냐?!
우리 학교에 저걸 타는 사람이 있었나?
와- 색상 진짜 지린다. 누가 타고 있는 거지?
외제 차도 많이 보이는 곳이긴 하지만, 짙푸른 색상의 스포츠카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아···. 다들 나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차에서 내려야 하는데, 어쩐지 사람들이 다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아니야···. 이시연, 겁 먹지 마. 널 보는 거 아니야. 그냥 착각일 거야.’
그래,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는데 괜히 혼자서 이러는 걸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선 차에서 내려섰다.
동시에 주변 남학생들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와-. 미쳤······.
···저거, 누구야?
우리 학교에 저런 여자애가 있었다고?
어쩐지 유독 남학생들의 시선만 느껴지는 것도 자신의 착각이리라.
시연은 달아오르려는 얼굴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수업이 있는 건물로 향하려고 했다.
“저, 저기요!”
“···네? 저요?”
“네! 호, 혹시 미대생이세요?”
“그런데 누구신지···.”
아는 사람인가?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인가 싶어 기억을 더듬어봐도.
“죄송해요. 누구신지 기억이 잘···.”
“아! 저도 미대 다녀요! 전 금조디(금속공예디자인) 3학년인데요. 혹시 그쪽 연락처 좀 알려주실 수 있어요?”
“네? 제 전화번호는 왜···.”
시연이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늘 평범하고, 낡은 옷만 입고 다닌데다 늘 아르바이트 시간에 쫓겨다녔으니까.
“네? 그야 당연히 그쪽이랑 연락하고 싶어서 그렇죠. 이름이 어떻게···.”
한 발 더 다가오려는 그에게 누군가 불쑥 팔을 내밀었다.
“죄송하지만, 그 이상은 접근하지 말아주시죠.”
박수현 경호원이었다.
시연이 처음 겪는 상황에 당혹스러워 하는 것 같기에 나섰다.
예전에야 비밀 경호였으니 어지간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죄송해요. 저 수업이 늦어서···.”
“가보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 그럼 수고하세요.”
시연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얼른 인사를 하고선 건물로 뛰어 올라갔다.
두근두근-.
‘뭐야. 이거 혹시··· 헌팅?’
말로만 들었던 건데, 설마하니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물론 집에도 거울이 있으니 자신이 못생겼다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시연 언니, 이게 무슨 일···. 와, 언니 완전 딴 사람 같아요.”
강의실에 들어가자 나연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래?”
“근데 이 옷··· 어디서 샀어요? 너무 이쁘다!”
학교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던 동생.
나연희는 쉴 세 없이 칭찬을 쏟아냈다.
그만큼 오늘의 시연이는 아름다웠다.
“저기··· 언니, 시연 언니 맞죠? 미자전으로 들어오셨다가 일 년 휴학하셨던.”
“어어··· 맞는데.”
“아, 저 20살인데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응? 으응.”
그간 오며가며 눈 인사만 몇번 하던 사이였다.
이름도 잘 모르는.
“언니, 저 그 가방··· 한 번만 봐도 되요?”
“이거? 어, 자···.”
조심스럽게 가방을 들어보더니.
“맞네! 이거 작년에 별을 닮은 그녀 드라마에서 나왔던 그 가방 맞죠? 이거 알렉스 강 디자이너가 딱 세 개 만들었다는 그건데···. 와, 이걸 어떻게 구하셨어요?”
“아아. 선물로 받은 건데···.”
순식간에 몇몇 사람들이 시연이의 근처로 모여들었다.
“어?! 아까 그 페라리 타고 온 여신님!”
“페라리? 언니, 페라리 타고 다녀요? 그거 언니 차예요?”
“남자친구 있어요? 내일 모레, 한국대 법학과랑 미팅있는데 혹시 안나가실래요?”
“언니, 점심 언제 드세요? 우리 같이 먹어요.”
수업시작 전까지.
교수가 들어와 진정 시킬 때까지도 시연이는 아이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그날.
홍대에는 학교에 미모의 재벌 3세가 다니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