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54화 (54/153)

귀환자 식당 54화.

삼영 그룹 회장실.

최진우 회장의 앞에는 그의 둘째 아들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실 겁니까? 굳이 한국이 아니더라도 괜찮지 않아요? 차라리 미국 정부와 거래하는 게 더 이익이라니까요.”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이건 단순히 지금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야. 앞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아직 경험이 적긴 하다.

하지만 자신도 그저 그런 수준의 교육을 받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무시당하면 솔직히 울컥했다.

“대체 그 사람이 뭐라고요! 설마, 진짜 그 헛소문을 믿으시는 겁니까?”

“멍청한 녀석. 내가 늘 말하지 않더냐.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는 오르지 않는 법이야.”

“아무리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죠. 일본 정부가 고작 각성자 하나 때문에 그 모든 걸 포기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거기다 그 각성자조차도 그 이진인지 뭔지 하는 작자의 수하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믿을 만한 곳에서 나온 정보야.”

“어디요? 국정원이요?”

최진우 회장은 대답하지 않은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머리도 좋고, 추진력도 상당하다.

우유부단한 첫째보다 둘째를 후계로 생각하고 있는 건 그 때문이었는데.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자신감이 너무 과하다.

어려서부터 거의 왕자 같은 대접을 받으며 자란 탓인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깔보는 경향이 있다.

우유부단하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잘 듣고 경청할 줄 아는 첫째와는 너무 달랐다.

그룹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최근에는 최진우 회장 자신의 의견마저 무시하려고 한다.

‘두 녀석의 성격이 조금씩만 합쳐졌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극과 극.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신경 쓰지 말아.”

“아버지!”

“시끄럽다. 이만 나가 봐.”

잠시 자리를 지키더니, 이내 쿵쾅거리며 나가버리는 녀석.

“쯔쯔-. 내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문을 닫고 나온 최우혁 실장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오는 수행 비서.

“실장님. ···어떻게 할까요?”

“그쪽에서 연락은?”

“이미 국내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약속만 잡으면 바로 만날 수 있습니다.”

“···내일 저녁으로 약속 잡아. 일단 간은 봐야지.”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만약 회장님이 아시기라도 하는 날엔···.”

“아버지도 이제 늙은 거지. 그리고 어차피 내가 물려받을 회사야, 내가 앞가림은 내가 해야지 않겠어? 한국에만 목을 매서야···.”

“알겠습니다.”

최우혁은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이미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고, 오래전 사라졌던 게이트 관리국이 부활했다.

오래전 개발에 성공했지만, 쓸모가 없어진 물건이었지만 다시 빛을 볼 기회가 생겼다.

획기적이라는 단어로도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가지고서도 한다는 게 겨우 허락을 기다리는 일이라니.

상대가 무슨 세계적인 기구나 되면 이해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고작 개인이다.

각성자라곤 하지만 그래봐야 고작 개인에게 먼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모른다.

늙으면 겁이 많아진다는 말에 이렇게 공감하는 날이 올 줄이야.

아버지는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어차피 내게 될 건데. 조금 일찍 쓴다고 문제가 될 건 없잖아?’

게이트가 열린다는 말은 곧, 마석이 다시금 세상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마석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물건들 가치가 재평가 되는 셈이다.

마력을 몸에 둘러서 일반인도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게 해주는 슈트.

적당한 게이트 하나를 구해서 관광 사업을 하면 어떨까?

헌터라 불리는 이들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여주는 거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들어가지 못하던 게이트를 관광지처럼 오갈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그뿐인가?

마석만 있으면 공간이동을 시켜주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엄청난 양의 마석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세상에는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면 돈이야 얼마나 들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니까.

중력을 거스를 수 있게 해주는 장치.

산소통이 없이도 물속에서 숨을 쉬게 하는 호흡기 등등.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장비들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젠장! 그런 걸 대체 왜 꼭 이진이란 인간에게 먼저 알려야 하는 건데?!”

“아마 그것 때문 아닐까요?”

“그거? 아아, 게이트 생성기?”

“네. 아직 시험 가동도 해보지 않아서 만약 실험하다가 문제라도 생긴다면···.”

“이제 각성자들이 나온다며, 몇 명 대기 시켜두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정 없으면 우리가 개발한 무기들도 있고, 그걸로 몬스터 잡을 수 있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합니다.”

의자에 몸을 묻은 최우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운 좋게 각성 좀 한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말이야. 제까짓 게 아무렴 혼자서 우리 삼영을 어찌할 수 있을까?”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봐야 겨우 개인이니까요.”

어지간한 그룹도 아니고, 삼영이다.

혼자서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상대가 될 리가 없지.

-몬스터라는 건 네 녀석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다!

아버지는 늙었다.

그래서 겁이 많아지신 거다.

예전에야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상대할 수 있는 무기도 있고 심지어 게이트를 강제로 열 수 있는 기술력까지 가지고 있다.

“마석 좀 구해봐. 될 수 있으면 상등품上等品으로.”

“네. 실장님.”

팔아먹으려면 그 전에 일단 성능을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게이트를 열고 그 안에 들어가서 직접 사냥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아마 세계 각국이나 기업들이 사고 싶어서 안달이 나겠지?

최우혁은 벌써부터 즐거운 상상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 *

“선생님, 아무래도 이건···.”

“위험하겠네요.”

안정민 과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와··· 진짜 미친놈들 많네. 뒤지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 뭐야? 게이트를 만들겠다고?”

이루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후원자가 된다는 게 결국 이 장비들을 먼저 사용해보게 하고 그걸로 홍보하겠다는 거네요.”

“아무래도 그들은 사업가니까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만 생각하겠죠.”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든 건지 모르겠군요. 게이트에 들어간다는 게 어디 뒷산에 산책 가는 거라고 생각한 건지.”

안정민 과장도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자기도 처음에는 비슷하게 생각을 했었던 모양이지.

“그래도 만약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면 마석 수급이 조금 쉬워질 수도 있진 않을까요?”

“야, 안정민!”

“이루야, 잠깐만.”

이루가 답답한지, 한숨을 내쉬며 마당으로 나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겠네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해녀가 전복을 따러 바닷속에 들어가긴 하지만, 굳이 전복 캐러 태평양에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굳이 만들지 않아도 게이트라는 건 지겹게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중국에서 왜 강제로 각성자들을 헌터로 만들었을까요? 그만큼 게이트를 처리하는 게 버거웠다는 겁니다. 이건 그냥 전쟁에서 적군을 더 늘리겠다는 거랑 다를 바가 없어요.”

“아······.”

그제야 이해가 되는 건가.

애초에 이런 병신같은 생각을 한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다.

심지어 게이트라는 건 주변의 마력 수치에 따라 등급에 차이가 발생한다.

재수 없게 어디 마력 수치가 높은 곳에서 열었다가 S등급 게이트라도 열리면 그야말로 재앙이 도래하는 거다.

게다가 혹여라도 그런 게이트가 개방형이 된다면?

도시가 날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나라가 사라질 정도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나마 이런 건 좀 쓸만하네요. 수중형 몬스터가 나타날 때는 제법 용이하겠어요.”

“하긴,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물속에서는 숨을 못 쉬실 테니까요. 하하하-.”

“제가 쓸 건 아닙니다.”

“···아, 네.”

삼영 그룹에서 지원하고자 하는 물건들의 리스트를 보내왔다.

미리 살짝 훑어본 뒤에 안정민 과장을 불러서 가불가를 결정해줬다.

“그 외에도 몇 가지는 제법 쓸만할 것 같아서 표시해뒀습니다. 그 외의 물건은 만약에라도 생산할 경우, 뒷일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대마도는 어떻게 되갑니까?”

“300명의 훈련생을 먼저 시범적으로 운영해볼 계획입니다. 숙소나 훈련장은 마련됐고, 지금은 각종 편의시설을 만드는 중입니다.”

무슨 소리지? 순간 의문이 스친다.

“편의시설이라뇨?”

“아무래도 대부분 젊은 사람들인데다 상당 기간을 거기서 보내야 하니까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나 극장같은 것들을···.”

“안정민 과장님. 지금 우리가 무슨 군대 체험 캠프라도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군대에도 카페나 극장 만들어 줍니까?”

“아아···.”

기가 막힌다.

군대에서도 그런 건 만들어 주지 않는다.

심지어 각성자들은 훈련이 완료되면 당장 목숨을 걸고 게이트에 들어가 어디서 온 줄도 모르는 괴생명체,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여야 한다.

휴식이 필요하겠지만, 결코 그런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게 두진 않는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명심하세요. 이건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미 시작됐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너무 안이하다.

게이트가 나타났다는 걸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건가?

심지어 안정민 과장은 오우거라는 것을 직접 겪어본 사람인데도?

훈련생들이 어떻게 나올지, 앞날이 캄캄하다.

물론 내가 아니라 이루의 앞날이.

* * *

넓은 거실에 달린 커다란 쇼파.

그곳에 세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두근두근-.

살짝 콩닥거리는 울림이 주는 이 순간이 묘하게 즐거웠다.

“후우-. 자, 그럼 전화한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도 되는 일이고, 사실 그게 더 빠르고 간편하지만.

왠지 이런 장면에 있는 내가 되어보고 싶었달까.

그래서 굳이 이렇게 하자고 했다.

-한국 대학교 합격자 확인을 원하시면 1번을···.

삑-.

-수험 번호를 입력···.

삑삑삑···.

-이시은님은 한국 대학교 의과대학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하, 합격이다!

꺄아아아아-!

시은아, 합격이래!

“치- 언니는 나 못 믿었던 거야?”

“미, 믿고 있었거든?! 내 동생이야 당연히 합격이지!”

“근데 왜 우냐?”

“우, 울긴 누가···.”

믿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고 해야겠지.

그래도 막상 이렇게 직접 확인하고 나니 그제야 실감이 난다.

후우-.

한시름 놓인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연말이 다가오는 시기에 정말 큰 선물 같은 소식이다.

“참, 예령이는 어디로 간다고 했지?”

“저랑 같은 한국대긴 한데, 과가 달라요. 예령이는 이번에 신설된 과로 들어갔거든요.”

“신설된 과?”

“게이트 연구학과인가? 아무튼 거기요. 앞으로는 다시 게이트의 시대가 온다나 뭐라나.”

진로를 그렇게 갑자기 변경해도 되는 건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게 있었을 텐데.

“예령이가 원래 미스터리, 오컬트··· 아무튼 그런 거 광이거든요. 그래도 설마 인생을 걸 줄은 몰랐는데.”

“게이트 연구는 미스터리가 아닌데···. 너, 그거 엄연한 과학 분야다?”

“그런가? 그래도 게이트 연구학과면 몬스터라는 것도 연구할텐데···. 으으! 난 딱 질색이야.”

시연이의 말로는 시은이도 뭔가 각성을 했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신주희 박사의 말대로 정말 각성하는데 유전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면 가능성이 크다.

혹시나 해서 마력을 살펴보긴 했는데, 딱히 마력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럼 각성한 게 아니라고 해야 하는 건데···.

이 망할 놈의 직감이 또 이상한 쪽으로 작동을 하는 게 문제다.

뭐, 조금 더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좋은 것만 생각해야지.

“그럼, 삼촌이 우리 조카들한테 선물 줄까?”

“선물이욧?!”

“시연이는 2학년 되는 기념으로, 시은이는 합격 기념으로. 삼촌이 직접 고른 거야.”

벌써부터 기대가 가득한 눈빛.

원래부터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긴 하지만.

시은이에게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 않나 걱정도 되고.

그렇다고 시연이만 주자니 삐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두 사람 걸 모두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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