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53화 (53/153)

귀환자 식당 53화.

도진이가 설거지하고, 이루와 난 가게를 정리했다.

바닥을 닦고 있는데, 이루가 마대를 쥐고선 내 뒤로 슬쩍 다가온다.

“어떻게 할 거야?”

“어쩌긴 뭘?”

“에이- 훈련 기관 형보고 맡아 달라는 거 말이야.”

단박에 거절하는 걸 보고선 뭘 또 묻는 거지?

“거절하는 거 못 봤어?”

“설마, 진짜로 이 가게때문에 그런 자릴 거절한다고?!”

“겨우라니. 나한테는 지금 이 가게가 제일 중요해.”

한 나라의 각성자들 훈련 양성 기관.

그 기관의 수장이 되면 얼마만 한 권력을 갖게 될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아마 게이트 사태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런 현상은 더 심해질 테고.

“그래도···!”

“됐어. 하고 싶으면 너나 하던가.”

“···정말?”

“응?”

뭐지. 이 반응은?

무심결에 던져 본 말인데, 설마 저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너, 설마 그 자리를 너한테 맡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안 되겠지?”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긴 하지만.

정부에서 이루에 대해 아직 그 정도로 확신이 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다.

“그건···.”

“나도 알아. 서류상으로야 귀화했다곤 하지만 그렇게 덥석 믿어주진 않는다는 것쯤은. ···거기다 난 일본 사람인데, 더 안 되겠지.”

이루가 씁쓸하게 웃는 걸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씁쓸해진다.

한동안 그런 건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가까이 지내다 보니 느꼈다.

알고 나서 나쁜 사람은 없다고 하는 말이 맞는다는 걸.

이루는 확실히 나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녀석이지.

하지만 그건 이루를 직접 겪어본 몇몇 사람들만 아는 사실이고, 대부분 국민은 아직 일본을 좋은 눈으로 보지 않는다.

특히나 지금 게이트 사태가 벌어지면서 예전의 일본이 저지른 만행이 다시금 재조명되는 시기에.

귀화했다곤 하지만 한국의 각성자 훈련 기관의 수장에 일본 사람을 앉힌다?

수백만 촛불이 또다시 광화문 사거리에 나타날 게 뻔하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루야, 정말 생각 있냐?”

“있으면 뭐··· 달라지나?”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힘없이 바닥을 밀던 마대 걸레가 멈추더니, 이루가 날 천천히 돌아본다.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은 표정이랄까.

“···정말로?”

“확실한 건 아니고, 네가 정말 하고 싶고, 자신이 있다고 한다면···.”

“자신 있어! 나 이번에 도진이 가르치는 거 봤지?”

하긴.

방법이 조금 무식하긴 했지만, 효과만은 확실했지.

단기간 내에 그 정도 성장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능력은 어느 정도 검증된 셈이다.

물론 1:1의 수업이 아니니 더 두고 봐야겠지만.

* * *

“어떻습니까? 그런 식으로 한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확실히···.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만, 가능하긴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그 제안을 받아들일까요?”

“아마 받아들일 겁니다. 그들이야말로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꼴 아닙니까.”

모르긴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아직 이루가 일본에 있는 줄 알 거다.

지난번에 와이번을 처리했을 때도, 언론에서는 ‘히로 무야시’라는 귀환자가 일본인이라는 것만 강조했다.

정부의 무리한 요구로 사이가 틀어졌고, 그런 그가 지금은 한국에 귀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아마 난리가 날 테니까.

저 상태에서 만약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에게 사람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면?

아마도 한국처럼 평화롭게 촛불 몇 개 켜는 걸로 끝나진 않을 거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이렇게 먼저 제안을 해주시니 마음이 한결 편합니다. 솔직히 선생님 외에는 마땅한 사람이 없거든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저 형식적인 직함만 가지는 것뿐입니다. 실질적인 기관 운영이나 훈련 방식은 모두 이루가 진행하는 겁니다.”

“네. 그 부분은 확실히 전달하겠습니다.”

내가 제안한 건 별거 없다.

이름이야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훈련 기관의 장은 내가 맡되.

실질적인 관리는 부기관장이 되는 이루가 한다는 것.

다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루의 부탁이긴 하지만 일본에서 원한다면 일본 각성자들의 위탁 훈련도 맡을 예정이다.

물론 그에 대한 엄청난 비용도 그렇지만, 이루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

하지만 아마도 지금 일본의 처지에서는 거절할 수 없을거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이루 말입니까?”

“···네. 물론 저도 지금은 이루 씨를 믿고, 또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이 있긴 하지만···.”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로, 아니면 배신의 우려?

뭐가 되었든 정부로서는 이루를 백 퍼센트 확신하기 힘들겠지.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이루가 미치지 않고서야 내 뒤통수를 치고 도망칠 생각은 안 할 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녀석이니까.

“그럼 저는 선생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건물이라면 이미 대마도에 적당한 건물이 몇 개 있습니다. 예전에 관광지였던 덕에 호텔 건물로 쓰이던 곳들이 있으니까요. 몇 개를 선정해서 개보수할 예정이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겁니다.”

흠.

오히려 그건 잘 되었다 싶다.

“그럼 한국인과 일본인의 숙소를 구분할 생각입니까?”

“그 부분은 오늘 사안을 보고한 뒤에 정하겠지만···. 아무래도 서로 간에 마찰이 생길지도 모르니 그편이 좋지 않을까요? 물론 일본에서 요청을 해오면 받아 들이긴 하겠지만···.”

“뭐, 그 부분은 이루에게 맡기겠습니다.”

일본 태생의 한국인 각성자.

한국 땅에서 일본 땅이 되었다가 다시 한국으로 반환된 대마도.

어떻게 보면 이루만 한 적격자도 또 없다.

당분간은 신체 강화 계열 각성자의 훈련이 주를 이루겠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비상시국이니까.

몬스터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하나라도 더 준비해야 한다.

느긋하게 기다릴 시간은 없다.

* * *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수능 한파.

유난히 수능 시험을 보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한파는 이제는 없으면 섭섭할 정도.

“삼촌, 저 가요.”

“잠깐만. 여기 따듯한 오미자차야. 가져가서 마셔.”

얼마 전 석웅 형님에게 부탁해서 받은 건 오미자로 정성껏 우려낸 오미자차다.

“여기에 든 무슨 성분이 두뇌활동을 촉진시켜 준다더라. 거기다 마음에 안정도 줘서 집중력 향상에도 좋고···. 아무튼, 수험생한테 좋은 거래.”

“풉- 왜 삼촌이 나보다 더 긴장해요.”

“내가? 내가 무슨···.”

정말 그런가?

나도 왜 이런지 모르겠네.

시은이야 이미 합격한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시험 날이 오니 긴장이 되기는 한다.

“떨지 말고! 평소 하던 데로!”

“네! 아자아자!”

“아니, 아니다. 삼촌이 데려다줄게.”

“아니에요. 버스 타고 가면 한 번에 가는데요. 뭘.”

“아냐. 기다려, 얼른 차 키 가지고 내려올 테니까.”

“괜찮은데···.”

위층으로 달리듯 올라가서 차 키를 가지고 내려왔더니, 시연이도 와있었다.

“언니는 또 왜 왔어. 그냥 혼자 가도 된다니까.”

“그래도 불안한 걸···. 시험장에 무사히 들어가는 걸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아.”

“참 나. 정말 유난들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싫지는 않은 눈치다.

세 사람이 차에 올랐다.

[선배님들 모두 힘내세요!]

커다란 현수막이 걸린 교문 앞.

거기엔 이미 많은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같은 학교 선배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아이들부터, 수험생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잔뜩.

다들 손에는 염주나 십자가를 든 채로 기도하듯 눈을 감고 있었다.

12년의 공부.

그 길고 긴 노력이 평가받는 날이다.

긴장되지 않으면 거짓말이겠지, 그렇게 당차 보이던 시은이도 차에서 오는 동안 가만히 눈을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는 게 보일 정도였으니.

고3의 엄마는 그 엄마도 수험생이란 소리가 괜한 게 아니다.

시은이는 교문에 들어가기 전, 다시 뒤를 돌아 시연이를 쳐다봤다.

“언니, 그럼 나 들어간다?”

“시은아.”

“걱정하지 마. 컨디션도 좋고, 머리도 맑아.”

“···걱정 안 할게. 다녀와.”

“응!”

그리고, 이번에는 날 바라본다.

뭐라고 응원의 말을 해줘야 하나 싶었지만, 여기서 더 하면 혹시나 더 부담될까 싶어서.

살짝 웃으며 고개만 끄덕여줬다.

히-.

보온병에 담아 둔 오미자차를 들고, 시은이가 교문으로 들어간 뒤로도 한참이나 서서 보고 있었다.

마음이 조금 뭉클했다.

“삼촌, 인제 그만 가요.”

“···그럴까?”

무사히 시험장에 들어갔으니, 이제는 결과만 기다리면 될 일이다.

시연이를 태우고, 가게로 돌아오는 길.

“어? 삼촌, 눈와요. 올해 첫눈이네요.”

“···그러네. 소원이라도 빌까?”

11월 중순.

서울에는 첫눈이 내렸다.

수능 시험을 본 결과도 채 나오지 않은 시기에.

한국에서 엄청난 뉴스가 터져 나왔다.

[각성자 양성 전문 기관 공식 발족]

[게이트 관리국 부활]

그리고 그와 동시라고 할 정도의 타이밍에 맞춰, 가게 안으로 몇 사람이 들어섰다.

뒤에 서 있는 검은 양복은 얼마 전부터 간혹 가게에 들리던 이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밥만 먹고 떠나던 사람들이었지.

“죄송합니다. 더는 기다릴 수가 없게 되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대보 그룹 김철민 회장님께서 뵈었으면 하십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쯔쯔-. 김철민이도 감이 떨어졌어.”

대답은 내가 한 게 아니다.

뒤에서 등장한 다른 이의 말이었다.

“볼 일이 있으면 본인이 직접 와야지. 감히 선생님을 오라가라 하나? 기본이 안 되었어, 기본이. 선생님, 그렇지 않습니까?”

“···영업 전에 들어오는 걸로 봐선 그쪽도 다른 사람을 흉볼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조금 무안하라고 한 말인데, 그런 기색조차 비치지 않는다.

“하하,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씀이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삼영 그룹의 최진우라고 합니다.”

“···이진이오.”

“잘 알고 있습니다. 유전의 주인이시자, 귀환자 재단의 이사장님이시죠.”

삼영과 대보.

들어본 적이 있다.

당장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대보 자동차 아닌가.

매일 같이 보는 티비는 삼영전자이고.

둘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 굴지의 기업이다.

그리고 삼영 그룹은 회장이 직접 날 찾아왔다.

이유야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하나겠지.

“유전에 관해서는 정부에 모두 일임했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3년 뒤에 정부와의 계약이 해지되면 그때 다시 오시죠.”

개발부터 판매까지.

모든 건 정부에서 알아서 하기로 한 계약이다.

나야 그저 20%의 수수료만 받으면 그만.

그러니 아무리 날 찾아와 아양을 떨어봐야 소용없다는 말이었는데, 이 양반 표정에 변화가 없다.

되려 슬쩍 웃고 있기까지 하네?

“물론 고작 유전 하나 때문에 온 것은 아닙니다.”

하긴, 한국 굴지의 기업이자 세계에서도 순위 경쟁하는 기업의 회장이.

고작 유전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직접 찾아올 필요는 없겠지.

여차하면 정말 살 수 있는 능력도 있을 테니까.

“자네는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지? 지금 당장 김철민보고 직접 오라고 하든가, 아니면 자리를 좀 비켜주겠나?”

“네? 아, 저는···.”

회장이 직접 찾아온 삼영과 비서를 보내온 대보.

그 둘의 차이는 비교할 대상도 되지 못했다.

최진우 회장의 카리스마에 눌린 그는 거의 도망치듯 가게를 벗어났다.

“잠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대뜸 찾아와서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니.

기가 막힌 데도 딱히 거절을 못 하겠다.

난 특별히 사람의 지위에 따라 대우를 다르게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릴 때, 멀리서 게이트라는 걸 본 적이 있었습니다. 신기했죠. 마치 빛의 장막이 일렁거리는 모습은 제 어린 눈에는 아름답기까지 했었죠.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안은 어떤지, 전혀 다른 세계와 연결된다는 말을 듣고선 밤잠을 설친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듣겠다 한 적도 없었는데.

마음대로 이야기를 시작해 버렸다.

···무슨 말을 꺼낼지 궁금하니까 조금만 더 들어볼까.

“아직도 명확하게 기억이 납니다. 제가 서른을 눈앞에 두고, 형제들과의 전쟁에 이겨 그룹 승계를 확정 지었던 날이었죠. 그날이 바로 선생님께서 최후의 게이트에 들어가신 날이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미 30년 전의 이야기다.

이제 와 날 보며 그날의 추억이나 나누자 찾아온 것을 아닐 텐데.

“그 뒤로는 잊었습니다. 게이트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헌터들도 세상에서 차츰 모습을 감췄으니까요. 저도 그저 어린 시절에 잠시 꾸었던 꿈이었다고 치부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나타났죠. 그리고 전 이제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어린 소년이 아닙니다.”

“설마, 게이트에 들어가고 싶다는 겁니까?”

“하하하-. 사실 궁금하긴 합니다. 하지만 전 이제 저 혼자만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쓸 위치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게이트는 각성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게이트의 장막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각성자가 가진 마력이 필수다.

마력이 낮은 헌터들은 높은 등급의 게이트에도 들어갈 수 없건만.

“삼영 그룹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개발부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개발한 마력 슈트를 입으면 각성자가 아니라도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간 잊고 살아왔다고 했었다.

그렇단 말은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졌다는 건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슬슬 장사 준비해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처음엔 호기심에 들었는데, 갈수록 쓸데없는 이야기가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이번에 발족하는 각성자 양성 기관을 맡으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간 저희가 개발한 건 슈트 하나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기술들이 이제야 빛을 볼 날이 온 거겠죠. 저희는 각성자 양성 기관의 정식 후원자가 되고 싶습니다.”

획기적이긴 했지만 오래 전 사장될 뻔했던 기술, 그게 다시 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은 건 알겠다.

하지만 그걸 왜 나한테 와서 이러냐고.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라면 정부와 하셔야죠.”

“이미 다녀왔습니다. 청와대에서는 이진 선생님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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