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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50화 (50/153)

귀환자 식당 50화. (무료 마지막)

생각해보니 도진이가 온 뒤로 제대로 환영회를 열어주지 못했다.

딱히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엔 강제로 끌고 오다시피 데리고 온 건데.

시은이를 겨우 달래서 시연이와 돌려보내고, 세 사람이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밤공기가 제법 차가워졌다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맨몸으로 눈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는 사람들인데 뭐.

쪼르륵-.

남아있던 복분자를 따라주고, 도진이를 가만히 쳐다봤다.

“기분이 어때?”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한바탕 꿈이라도 꾼 것 같기도 하고···.”

그 기분 나도 잘 안다.

너무 오래전이라 가물가물해지면 좋으련만, 첫 경험이라는 건 의외로 기억에 오래 남더라.

그것도 치가 떨릴 정도로 끔찍했던 기억이라면 더욱.

물론 오늘의 도진이는 그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위험하더라도 돕지 않겠다 으름장을 놓긴 했지만, 그저 뒤에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든든했을 테니까.

나도 그랬으면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갖지 못했던 것들.

그걸 굳이 대물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생각보다 잘 버텨줬다. 사실 두, 세 마리만 처리하면 그것도 장하다 싶었는데···.”

무려 5마리의 목을 베었다.

그것도 일반 리자드맨이 아닌 변종을.

첫 전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올린 셈이다.

우리 세대의 최강자라 불렸던 인물들도 처음에는 그에 한참도 미치지 못했었다.

끽해야 겨우 최하급 몬스터인 고블린이나 두어 마리 상대한 것도 대단하다고 치켜세웠으니까.

물론 지금의 도진이와는 조건이 상당히 다르긴 하지만.

“처음 헌팅에서 그 정도 성과를 보인 사람은 내가 알기론 단 한 명도 없어. 넌 대단한 일을 한 거야.”

“아무렴! 누구 제잔데.”

이제 그냥 아예 정식 제자가 된 건가?

죽을 고비는 이 녀석이 넘겼는데, 어째 이루 녀석이 더 자랑스러워하는 게 우습다.

“그건 그래. 아마 나였다면 이렇게까지 단기간에 제대로 키우진 못했을 거야.”

“···갑자기 왜 이래. 그냥 평소처럼 막대해 달라고!”

“그런데요.”

“응?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뭐든 물어봐.”

아마 오늘 있었던 전투에 관해서겠지.

내가 신체 강화를 잘 모르긴 해도 초보 헌터의 질문에 답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저, 이제 유명해질 수 있는 겁니까?”

“···뭐?”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했더니.

“오늘 방송, 전 세계에서 다 봤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긴 하지,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나온 게이트였으니까··· 모르긴 해도 아마 외국에서도 지금 난리가 나긴 했을 텐데···.”

쓸데없는 허영심?

젊은 사람들이 연예인을 동경하는 그런 것들.

처음엔 그런 종류인가 싶었는데, 표정을 보니 사뭇 심각하다.

“···왜? 유명해지고 싶어?”

“네···.”

“왜?”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너무 무심했던 자신이 조금 후회스럽다.

정작 데려온 건 난데, 훈련은 이루에게 맡겨두고 제대로 뭘 챙겨준 적이 없네.

“꼭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나 이렇게 유명해졌다고···!”

“···누군데?”

물어볼까, 말까. 조심스러웠다.

혹시 어릴 때 도진이를 버리고 나간 어머니? 보육원에 자신을 버린 아버지?

모르긴 하지만 그런 가정사가 있다면 묻는 게 상처가 될 수도···.

“저 일병 때 바람나서 고무신 거꾸로 신은 전 여친이요! 그것도 저보다 훨씬 못생긴 녀석이랑! 유명해지면 아주 땅을 치고 후회하게 해줄 겁니다!”

“······.”

뭐지, 이 허탈한 기분은.

괜히 울화가 치미네.

“···보쌈이나 먹자.”

크하하하하-!

우리 둘이 이야기를 주고받던 말에 이루가 옆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도진아, 걱정 마라. 내가 널 나 다음으로 세상에서 유명한 헌터로 만들어주마!”

“···그게 몇 번짼데요?”

“글쎄. 한··· 다섯 번째 정도 되지 않을까?”

애매모호한 위치처럼 들렸는지, 도진이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어, 엄청나잖아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유명한 헌터라니!”

“당연하지! 짜식, 넌 이 사부를 사부로 만난 걸 천운으로 여겨야 한다.”

“물론이죠. 사부님!”

음. 앞으로도 두 사람의 사이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겠다.

* * *

“언니··· 나 눈이 너무 부었어.”

“밤새도록 그렇게 울었으니, 멀쩡할 리가 없지.”

“힝.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걸 어떡해.”

“···그렇게 좋아?”

시은이가 밤새도록 운 이유는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였다.

언니니까 알 수 있는 감정.

“그럼 당연히 좋지! 삼촌이 진짜 우리 삼촌이었다니···. 히히-.”

아직도 저렇게 바보 같은 웃음이 날 정도로 좋아하다니.

진작 말해줄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근데 언니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나한테도 말해주지. 치사하게 혼자만 알고 있고.”

“삼촌이 너 걱정된다면서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

“피, 내가 앤가 뭐···.”

지금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라는 걸 본인만 모르는 시은.

“근데, 그럼··· 삼촌 엄청 부자겠네?”

“응? 왜 갑자기 그렇게 되는 거야?”

“그야 예전에 엄청 강했던 헌터였다며, 미국에 그 사람은 개인 비행기까지 있다던데? 활주로가 집에 있데!”

“···글쎄? 삼촌이 그렇게 부자려나?”

시연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재단을 설립한다는 게 확실히 일반인이 생각하기엔 조금 어려운 일이니까.

“우리 벌써 삼촌한테 엄청 많은 걸 받고 있어. 그건 알지?”

“당연하지! 나 애 아니다. 진짜?!”

시연이는 시은이의 손을 포개듯 잡았다.

“앞으로 삼촌한테 잘해드리자.”

“걱정 마. 내가 삼촌 심심할까 봐 자주 가서 놀아드리고 있어.”

“너 설마, 아직도 매일 아침마다 가게 들리는 거야?”

“사, 삼촌이 엄청 좋아한다고!”

부담될까 걱정이 됐었는데, 확실히 오히려 시은이처럼 살갑게 구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얼른 씻고, 학교 갈 준비해야지. 가는 길에··· 가게도 들리고.”

“응!”

아악! 내 눈!

욕실에서 시은이의 비명이 들려온다.

* * *

11월에 들어서니 확실히 바람이 차가워졌다.

그래서 더 걱정된다.

그 낡은 집에 보온은 잘 되는 건가?

혹시라도 벌어진 틈새로 웃풍이라도 드는 건 아닌지.

시은이 이제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인데.

집을 빨리 알아봐야겠는데.

어제 그 난리를 피우긴 했지만, 차라리 이제 속이 시원하긴 하다.

괜히 아이들이 부담스럽기라도 할까 걱정했었는데, 그런 모습도 없었고.

도도도도-.

가게가 있는 골목을 들어서는 발걸음 소리.

평소와 달리 오늘은 유달리 흥에 겹네.

“사-암초온-!”

눈가가 살짝 부은 듯한 시은이가 해맑은 얼굴로 들어섰다.

“왔어?”

“오늘은 저기 언니도 와요.”

두 사람이 아침에 함께 오는 건 오랜만이네.

“시연이도 오늘은 일찍 나가네?”

“네. 가는 길에 시은이 학교 들러서 진로 상담 있어서요.”

“응? 그런 거였어? 근데 왜 나한테 말 안 해줘!”

“네가 그건 알아서 뭐 하게. 담임 선생님만 잠깐 만나고 바로 갈 거야.”

“치···.”

어차피 갈 학교도, 과도 모두 확고히 정한 상태.

딱히 진학을 위한 상담이 아니라, 의례적인 보호자와의 만남 정도 되겠지.

아마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님이 오실 테고.

“삼촌도 같이 갈까?”

“···네?”

“아니, 난 그냥··· 역시 삼촌이 가는 건 이상하려나?”

“아뇨? 난 찬성! 삼촌한테 우리 학교 구경시켜 줘야지!”

하지만 결정하는 건 아마도 시연이.

“저도 좋아요.”

“그, 그래?”

잠깐이지만 이렇게 긴장한 적이 언제 있었나 싶네.

“그럼 커피 한잔하고 있을래? 나 얼른 준비 좀 해서 내려올게.”

“네.”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와 옷장 문을 열었는데.

···없다.

정장이라곤 입을 일이 없어서 사둔 게 없다.

어쩌지? 그냥 캐주얼하게 입고 가도 되려나?

그래도 삼촌이랍시고 학교에 보호자 상담하러 가는데 너무 가벼운 옷차림은 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밑에 층에서 이루가 올라왔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내 옷 빌려줄 게 입고 가.”

“···네 옷을?”

어차피 둘 다 체형이 비슷하긴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 녀석 옷은 되려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은데.

“나도 멀쩡한 거 있거든?”

그러더니 방에서 제법 멀끔한 정장 한 벌을 들고나왔다.

짙은 푸른 빛의.

“아마 이 정도면 될 거야.”

“이런 것도 있었어?”

“뭐, 나라고 전부 화려한 것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거든?”

“아무튼··· 고맙다. 잘 입고 돌려줄게.”

“그러게, 형도 옷도 좀 사고 그러라니까.”

“진짜··· 그래야겠다.”

예전과는 달라진 삶이다.

고독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외톨이처럼 사는 게 아니라.

이제는 가족이 생기고, 친구가 생겼다.

날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지켜줘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이젠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 셋은 함께 차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진로 상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니야?”

내가 잘 모르긴 해도 수능을 목전에 두고서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 시은이는 어차피 가고 싶은 학교와 과도 모두 정했으니까요. 방심은 하면 안 되겠지만 사실 학교나 학원에서도 큰 걱정은 하지 않거든요.”

“히히-. 나 공부 되게 잘한다. 삼촌?”

“삼촌도 잘 알지. 시은이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착하기까지 정말 못 하는 게 없네?”

그 말에 얼굴이 조금 빨개진다.

“또 너무 그러니까 민망해요!”

“하하-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후회는 없도록 해.”

“당연하죠! 전 무조건 의대에 가서 꼭 대학병원 교수까지 될 거예요!”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지.

그냥 멋있다고 했었나?

생각해보니 그렇다.

뭔가를 하고자 하는데 꼭 대단한 사연이나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마포 여자 고등학교.

근처에 주차를하고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들.

여고에 다니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정말 온통 여자뿐일 줄이야.

아니지, 너무 당연한 건데.

저기 3학년 이시은 선배 아냐? 전교 1등이라는?

근데 옆에는 누구야? 완전··· 미쳤다.

세상에··· 진짜 누구지? 연예인같아.

수군거리는 사람들.

아예 가는 길을 멈춰선 채로 뭉쳐서 우릴 쳐다보고 있는데.

그 아이들 사이로 누군가가 나섰다.

“어떻게 오셨나요? 어, 시연이···?”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아아. 그렇지. 시은이가 시연이 동생이었지? 참. 그런데 옆에 분은···.”

“아, 저희 삼촌이에요.”

삼촌이라는 말에 선생님이 살짝 당황했다.

“사, 삼촌?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사정이 좀 있지만, 진짜 삼촌 맞습니다. 나이도 보시는 것보다 더 많기도 하고요.”

“그, 그러셨군요. 참, 오늘 상담 때문에 오신 거죠? 어서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시은이한테 이렇게 멋진 삼촌분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오호호홍.”

들었어? 시은이네 삼촌이래.

무슨 삼촌이 저래? 우리 삼촌이랑··· 너무 다르잖아.

시은이 불쌍하다.

무슨 소리야? 저렇게 멋진 삼촌이 있는데.

그러니까 불쌍하지,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내 삼촌이라니. 나 같으면 내 운명을 저주하고 싶을 거야.

···얘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재밌는 아이들이네.

시은이는 교실로 향하고, 나와 시연이는 상담실로 향했다.

슬쩍 돌아보니 벌써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는데, 아마 엄청난 질문 공세를 받는 모양이다.

알아서 잘 처신하겠지.

“시은이야 워낙에 모범생이라서 걱정은 안 돼요. 교우 관계도 원만하고 인기도 많아요. 여자애들만 있는 곳이라 튀는 아이들한테 질투가 심하기도 한데, 시은이는 그런 것도 없거든요.”

본디 조금 뛰어나면 질투하지만, 너무 차이가 나면 질투도 못하게 된다.

그보단 오히려 그 사람의 옆에 서는 걸 원하게 되는 법이지.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빛나듯이 말이다.

상담이랄 건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 여선생이 나한테 은근히 던지는 질문이 더 많았지.

내 이름을 듣고선 잠시 놀라는 듯하긴 했지만.

식당을 한다는 말에 약간 안도의 한숨? 같은 것이 느껴졌지.

“시연이도 저 선생님이었나 봐?”

“네, 제가 고3일 때 담임이셨어요. 원래는 저런 분이 아니신데···. 많이 당황하셨죠?”

“아니. 저 정도야 뭐.”

“삼촌은 예전에도 인기 많았나봐요.”

뭐, 사실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각성자라는 건 돈도 잘 벌고, 모두 외모가 워낙에 출중하기도 하니까.

도진이 녀석도 처음에 왔을 때랑 지금의 모습은 차이가 제법 난다.

마력이 높아질수록 피부도 맑아지는 건 물론이고, 치열조차도 가지런하게 변한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최상의 상태로 돌아가는 셈이다.

각성자들이 모두 멋있고 잘생긴 건 그런 이유다.

“아마 저도 그렇게 되겠죠?”

“시연이 너는··· 지금도 이미 너무 예뻐서 사실 별로 변할 것 같진 않은데.”

“사, 삼촌도 참···.”

오히려 문제는 시은이다.

삼촌에 이어 언니까지 각성자가 되었다는 걸 알면 조금 소외된 기분을 받지는 않을까 싶어서.

“시은이한테는 말 했어?”

“네, 삼촌한테 가기 전날 저녁에 미리 말했어요.”

“그래? 의외네···. 그래서, 시은이는 뭐라고 해?”

“별 반응이 없었어요.”

“그래?”

잠시 머뭇거리던 시연이가.

“그리고 제 생각엔··· 아마 시은이도 뭔가 있는 것 같아요. 본인도 조금 느끼고 있는 것 같고.”

“···시은이도?”

그게 그렇게 막 잘 나타나고 그런 게 아닌데.

삼촌인 내가 각성자인데, 조카 둘 모두가 각성한다니.

확률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어떤 이유라도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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