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49화.
우우웅-.
[안정민 과장]
“네.”
-···혹시 보고 계십니까?
“네, 봤습니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 꼴을 말이지.
30여 마리의 무리 중에서 마력탄에 맞아 죽은 녀석은 없었다.
단 한 마리도.
-선생님···.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할지야 뻔하지 않은가.
미우니 고우니 해도, 저 녀석들이 육지에 들어서면 아비규환이 펼쳐질 거다.
게다가 아직은 30마리뿐이긴 하지만, 게이트 안에는 아마 더 많은 수가 있을 테고. 곧 튀어나올 거다.
이래저래 결국 나서서 게이트를 처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뭐, 제가 조금 늦장을 부린 것도 있으니까요.”
-그, 그럼···!
귀찮긴 하지만, 내가 처리하겠다고 하고선 할로윈 파티니 뭐니 하면서 미룬 것도 사실이고.
내 잘못이 없다고 우긴다면 우길 수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서쪽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
“형이 가려고?”
“그래야지. 내 섬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응? 저 섬이?!”
“뭐··· 얼마 전에 마석 하나 주고 샀어.”
이루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날 바라보는데.
“블랙 때문에 산 거야. 내가 저기 들어가서 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아아. 블랙.”
은둔형 외톨이의 최강자.
혼자서 전 세계를 왕따 시키는 녀석.
그 녀석을 위해서 이미 섬 주변 해역에 일반인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법적 조치까지 준비 중이다.
상급 마석을 3개나 줬는데, 그 정도는 당연하지.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해주긴 하겠지만.
내가 또 공짜로 뭘 받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금방 다녀올 거야. 그동안 가게 정리나 좀 해놔라.”
“혼자 가려고?”
“혼자가 편해.”
“···하긴.”
이루가 아무리 신체 능력이 강하다고 해도 하늘을 날진 못한다.
데려가려면 데려갈 수야 있긴 하겠지만, 귀찮게 뭐 하러.
“저, 저요!”
손을 번쩍 드는 서도진.
“마음은 알겠는데, 아직 너한테 실전은 너무 일러.”
“시, 실전이라면 이미 치렀는데요!”
오우거 앞에서 주저앉아서 벌벌 떨고 있었던 것도 실전을 경험한 거라고 말할 수 있나?
이 녀석, 은근히 뻔뻔하네.
···근데 나쁘지 않다.
헌터가 되려면 이 정도 깡은 있어야지.
“죽을지도 몰라.”
“이미 여기서 훈련받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각오한 일입니다!”
“너 위험해도 내가 못 도와줄 수도 있어.”
“제 몸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며칠 사이에 군기가 완전히 빠진 줄 알았는데.
이런 모습은 또 살짝 의외네.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가, 감사합니다!”
“이루야. 네 제자 내가 데려가도 되겠냐?”
“난 원래 강하게 키우자는 주의야. 당연히 괜찮지. 도진이 너, 고작 저런 것들한테 다치고 오면 어디가서 나한테 배웠다는 소리 못 하게 할 거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허공에 손을 쑥 집어넣더니 뒤적거린다.
피식-.
마음과 입이 따로 노는 녀석.
“···자, 이거라도 가져가.”
허공에서 뭔가가 쑥 뽑아내더니 이내 도진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내가 오래 전에 사용하던 장비야. 지금이야 나는 필요 없기도 하고··· 지금 네 마력으로도 그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거다.”
“사부님······.”
어디 죽으러 가냐.
신파극은 왜 찍어.
둥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떠올랐는데도 나름 두 번째 겪는 일이라고 제법 의젓하다.
도진이를 띄워 올린 나는 이루를 향해 말했다.
“청소 깨끗이 해놔. 애들 시키지 말고.”
“···아, 진짜.”
이루 녀석이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건지, 살짝 울상을 지었다.
* * *
“언니···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불안한 표정에 눈물이 가득 고인 동생을 보며 시연이는 정말 무슨 말이든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무심결에 튀어나와 버렸다.
“괜찮아. 우리한텐 삼촌이 있잖아.”
“···삼촌? 삼촌이 왜?”
“응? 그야···. 삼촌이 있으니까···. 우릴 지켜주실 거야.”
“그래도 어차피 우린 따지고 보면 그냥 남이잖아. 정말 위급한 상황이 되면 믿을 건 가족뿐이라고··· 할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씀했었잖아.”
“···그래도 삼촌은 달라.”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아무리 희망적으로 보려고 해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새, 새로운 소식입니다. 게이트 방지 대책팀은 서해안의 한 무인도에서 게이트가 열렸으며, 몬스터가···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오래전, 사라졌다고 믿었던 게이트와 몬스터가 그, 금일을 기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현재 각성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인데요. 아아-! 말씀드리는 순간 지금 현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다시 현장 화면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희망의 불씨.
그것을 다시 잃어버리면 절망은 더욱 커지고 만다.
조금 전 자신 있게 모습을 드러냈던 신무기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을 때, 대한민국은 다시금 절망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다시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하늘을 날아서 섬에 내려선 두 사람.
한 명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기사처럼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진 드론으로 촬영을 하는 통에 선명하진 않지만 두 사람은 분명 일반인과는 달랐다.
지금 과연 몇 명이 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을까.
[가, 각성자입니다! 여러분 각성자가 왔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각성자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만, 지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두 사람입니다!]
앵커라는 본분도 잊은 건지, 침까지 튀겨가며 흥분을 하는 사람은 화면을 절반이나 차지하면서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화면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목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화면은 잔인한 장면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면서도 여과 없이 보내주고 있었다.
[새로운 소식이 또다시 들어왔습니다! 국정원의 발표에 따르면, 지금 현장에 가 있는 사람 중 한 명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귀환자인 이진씨라고 합니다. 기억하십니까?! 30년 전, 세계 최강의 결사대에서도 단 7인만이 살아남아 돌아왔던 한국의 자랑,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였던 이진씨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진?”
알고 있었다.
이진이라는 사람이 귀환자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지금 자신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도 그와 같다는 걸.
잠깐이긴 하지만 의심은 했었다.
실종되었다가 얼마 전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 된 오촌 숙부도 이름이 이진이어서.
이곳 식당 이름도 귀환자인데다, 사장님의 성함도 이진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잊고 지냈었다.
자신의 숙부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삼촌이 생겼다는 것이, 그 삼촌이 자신을 너무 아껴준다는 그 사실만으로 충분했었으니까.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같다.
아니면 그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삼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그런지도.
사실 정확하게 이게 무슨 감정인지는 시은이 자신도 모르겠다.
[기, 기사 복장을 한 이가 돌진하고 있습니다! 어, 엄청난 속도로— 부딪혔습니다!]
화면에서는 이미 기사 복장을 한 이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수백 발의 미사일을 마치 장난처럼 피하던 몬스터들을 인간의 발로 뛰어 따라잡으며 도륙하는 장면은 현실감이 날아가 버리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세, 세 마리. 아니! 네 마리째의 몬스터가 쓰러졌습니다.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 장면입니다. 저 기사 복장을 한 이가 이진씨일까요? 함께 온 남자는 아직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앵커는 확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렸다.
마치 스포츠 중계를 하는 캐스터처럼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제재를 했을 게 당연한 상황인데도 지금은 오히려 그의 해설 덕분에 지켜보는 이들의 긴장감이 한층 더해졌다.
“뒤에 있는 사람은 뭐 하는 거야! 도와줘야지, 왜 구경만 하고 있어!”
예령이도 울먹이면서 화면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분명 뒤에 있는 사람은 삼촌인 것 같은데··· 대체 언제 저기까지 간거야?’
시연이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몬스터와 전투를 하는 것은 처음 봤다.
이루 오빠도 대단한 사람이라고만 들었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으니까.
그리고 지금 화면에 나오는 것만 보더라도 이미 기사 복장을 한 사람은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서 보였다.
[기, 기사 복장의 헌터가 조금씩 지쳐가는 것 같습니다.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지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하, 합세를 해주면 좋지 않을까요?]
저들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텐데도 조심스러운 말투.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 방송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고 있을 거다.
아마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몬스터 대처 능력이 가늠되겠지.
세계 각성자 연합의 의장국이 되어 달라는 요청까지 받은 국가는 과연 얼마나 대단할지, 어쩌면 이 방송으로 인해 조롱거리로 전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위, 위험한 것 같습니다! 기, 기사 복장의 헌터가 쓰러졌습니다! 제발 누군가가 나서서······.]
흥분과 분노의 최고조를 향해 달리던 앵커의 목소리가 일순 잦아들었다.
그리고 화면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볼 수밖에.
[···지, 지, 지금···. 무슨 일이······.]
“···시은아. 지금 방금 뭐였어?”
“···나도 모르겠어···.”
해안가에 새까맣게 몰려들던 몬스터들이 일순 증발해 버렸다.
마치 지금까지 봤던 모든 것들은 그저 눈속임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한순간에.
바람에 흩날려 버린 재처럼 사라졌다.
앵커조차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는 사이, 두 사람의 모습은 처음 온 것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며 사라져 버렸다.
[우, 우선 상황이 정리되는 데로 다시 소식을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앵커가 황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뉴스를 끝냈다.
그리고 그제서야 티비를 보던 사람들도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뭐야, 방금···. 각성자라는 게 저런 일도 가능한 사람이야? 아니면··· 저 사람만 특별한 거야?”
분명 좋은 일이다.
몬스터가 인간을 적대시한다는 건 입 아프게 두말할 필요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고, 그걸 가볍게 이길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건.
분명히 좋아해야 하는 일인데도, 사람들은 일순 공포를 느껴야 했다.
손짓 한 번에 수백은 되어 보이던 몬스터들을 먼지로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니.
그게 과연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을까?
총은커녕 미사일, 심지어 마력으로 만든 탄환조차 피하는 괴물에게도 통하는 능력.
만약 그런 이가 인간을 적대시한다면?
몬스터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방금··· 그 사람은 우리 편이겠지?”
완전히 공포에 잠식당한 듯한 예령이의 목소리.
시은이는 어째서인지 화면이 꺼진 뒤에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
저 사람이 바로 우리 삼촌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면서도 시은이는 선뜻 그 말을 해주지 못했다.
쿵-쿵-.
그리고 무언가 묵직한 게 연달아 떨어지는 소리가 마당에서 들려왔다.
세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시은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선 곧장 아래층으로 달려 나갔다.
“삼초온-!”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화면을 보면서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 삼촌이 저 사람이구나.
삼촌은 실종되고 죽은 게 아니라, 계속 우리 옆에 있었다고.
그걸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다.
그저 억지로 사실을 외면했을 뿐.
그리고 삼촌이 지금 바로 저기에 서 있었다.
으아아앙-!
달려들듯 안겨 무작정 우는 시은의 머리를, 이진은 살며시 쓰다듬었다.
언젠가는 말해줘야지. 언젠가는 내가 직접 알려줘야지.
감추면서도 내내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인제 보니 알겠다.
이 녀석도, 나도.
서로가 알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애서 모른 척했었구나 하는걸.
삼촌! 삼초온-!
“···그래. 삼촌 여기 있어.”
“그, 그동안···. 전부 다 삼촌이었죠. 나, 다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는데···!”
“삼촌이 미안해.”
정확하겐 숙부라고 해야겠지만, 이제 와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삼촌이라고 불리는 울림이 좋아서 그렇게 시작된 관계인데.
스윽-.
시은이의 어깨를 붙잡고 살짝 밀어서 얼굴을 내려다보니 완전 엉망이었다.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이 참으로도···.
“귀엽네. 우리 시은이.”
“흐이잉-! 노, 놀리지 마요!”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 걸까.
처음으로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으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그간 거울을 보며 여러 가지 버전으로 연습했던 것들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그냥.
“···오래 기다렸지? 삼촌이 너무 늦어서 미안해.”
나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에 당장 떠오른 말만 겨우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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