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48화 (48/153)

귀환자 식당 48화.

손수 꾸미려고 해볼까 하다가 하루 만에 포기했다.

난 확실히 손재주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고선, 강영훈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솔바람 인테리어의 직원들이 곧장 찾아왔고, 정말 뚝딱뚝딱하니 금세 가게 모습이 완전히 뒤바뀌는데 고작 하루면 충분했다.

역시 이런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겠다.

솔직히 고작 하루 파티하자고 이렇게까지 꾸며야 하나 싶었는데,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찾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겼달까.

추가에 추가를 하다 보니 마당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완전히 뒤바뀌었다.

조금 과한가 싶기도 했는데.

“할로윈은 원래 정신이 사나우면 사나울수록 더 좋은 거예요!”

그나마 여기서 가장 어린 도진이 녀석의 말을 믿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이라고 해도 충분하겠지.

“은지야! 친구들도 같이 왔네?”

“그럼요! 이루 오빠가 파티를 주최한다는데. 와- 근데 오빠, 가게 너무 잘 꾸며놨어요. 진짜 외국에 온 것 같아요.”

“고마워. 근데 은지 너··· 오늘 너무 섹시한 거 아냐?”

“네? 가, 갑자기 부끄럽게···. 이, 이루 오빠도 오늘 엄청 섹시해요.”

귀가 썩어버릴 것 같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예능 프로에서 나올 때는 서로 왜 저렇게 심한 말들을 하는 걸까 싶었는데.

이제야 그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간다.

딱히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어디서 알고 이렇게 온 건지.

마당에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간혹 식당을 찾는 손님도 보였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상관없다.

입장료는 3만 원.

인테리어 비용이야 그렇다 쳐도, 가게 안에 다양한 음식들과 술을 준비해뒀으니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시은이와 예령이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다.

대부분이 간단한 핑거푸드인데다 맥주와 탄산음료뿐이긴 하지만.

너무 비싼 게 아닌가 싶었는데, 오히려 굉장히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특히 이런 식당은 잘 즐겨 찾지 않던 학생들이 상당히 많았다.

“삼촌, 삼촌!”

“응?”

“이거, 이거. 뭐로 만든 거예요? 완전 맛있어!”

주문한 건데···.

솔직히 저렇게 다양한 서양과자류를 내가 어떻게 만드나.

간단하게는 비스킷에 치즈를 올린 것부터, 조각 케이크까지.

10종류도 넘는 음식을 내가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업체도 정말 다양하게 많았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가격과 주문한 사람들의 반응을 비교해서 적당한 곳을 골랐는데, 마음에 든다.

“와-. 사장님. 오늘 완전 대박이네요.”

“그러게요···. 음식 장사는 때려치워야겠어요.”

“그,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안정민 과장까지 분장을 하고 올 줄은 정말 예상 못했는데.

이런 것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나?

다만 조금 아쉬운 건 창의력이 좀 떨어진다는 정도?

배트맨이라니.

아니지, 어쩌면 연령대에 딱 맞는 선택일 수도 있겠다.

당장 나만 해도 지금 여기 온 사람들 절반 이상은 무슨 분장을 한 건지 모르겠으니.

“···신주희 박사님도 오실 줄은 몰랐네요.”

“저도 이런 행사는 나름 좋아하거든요.”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이 여자도 참 낯짝이 두꺼운 거 같다.

그래도 이왕 찾아온 김에 즐기고 가면 되겠지.

“지난번 선생님이 해주신 조언을 토대로 연구 방향을 조금 바꿨는데요. 시간 괜찮으시면···.”

“그런 이야기라면 다음에 하시죠. 오늘은 보다시피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적당하진 않을 것 같으니까요.”

“아··· 그렇죠. 알겠습니다. 그럼 시간 괜찮으실 때 다시 찾아봬도 될까요?”

“···그러시죠.”

귀찮긴 하지만, 게이트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하긴 한다.

이왕이면 나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곳에서 발견하는 편이 좋겠지.

나를 위해서도, 이 나라를 위해서도.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마당에 들어서는 익숙한 발걸음은 놓치지 않았다.

시연이다.

그렇게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정말 가게 앞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마저도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시연이?”

“부, 부끄럽네요. 이런 건 처음이라···.”

“언니, 완전 이뻐요! 자신감을 가지시라니까요?”

옆에서 함께 온 동생인 듯한 아이가 시연이에게 주먹을 흔들며 화이팅을 외쳤는데도, 좀처럼 시연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 쳐다봐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저 사람들 탓은 못 하겠다.

나도 시연이를 처음 본 순간 살짝 얼어붙었다고 해야 하려나?

순간이지만 내 눈을 의심했으니까.

평소 얌전하게만 생각했던 아이였는데, 이런 면도 있었나 싶었다.

무슨 복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과감한 옷차림이라는 건 확실하게 느껴진다.

“···안 추워?”

“네, 사실 저 요즘은 추위도 잘 안 타요.”

하긴···.

이능력 계열이라곤 해도 각성했으니 일반인의 신체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

도진이 녀석이 마력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그런 기예를 부릴 수 있는 건 단순히 조련사의 능력이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근데 정말 사람 많네요. 다들 어떻게 알고 왔을까요?”

“그러게나 말이야. 참, 시은이랑 예령이도 왔는데··· 아, 저기 있네.”

“자기는 오늘 요정 세상에서 처음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온 거니까 저보고 절대 아는 척하지 말래요.”

아까 나한테는 말 걸던데.

아무래도 컨셉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다.

“가게 안에 음식 있어, 좀 가져다 먹어. 맥주도 있고, 근데 맥주는 한 사람당 3병뿐이야.”

“알아서 조절하라는 거죠?”

따로 표 같은 걸 만들진 않았지만, 아마 대부분은 알아서 조절할 거다.

이런 날은 만취하면 오히려 손해지 않은가.

가게 입구에는 아이들도 제법 많이 몰려들었다.

시은이의 의견대로 바구니에 사탕을 가득 담아둬서 그렇겠지만.

정신이 없었지만, 참 즐거운 시간.

그리고 이런 시간들은 늘 그렇듯 속절없이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 * *

아침이 밝고 나니, 정말 가관이 따로 없었다.

특별히 난장을 부린 사람이 없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정도로.

그래도 가게 안이 지저분해진 건 어쩔 수가 없다.

늦게까지 떠나길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게 고맙기도 하지만 막판에는 사실 좀 귀찮기도 했고.

그렇다고 강제로 쫓아내지도 못하겠기에 결국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문을 닫았다.

나야 사실 분장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약간의 소품만 이용했을 뿐이었지만 이루 녀석은 분장을 지우는 데만도 상당히 걸렸다.

도진이도 마찬가지였고.

뭐, 모두들 즐거웠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이지만.

“삼초온-!”

시은이다. 근데 오늘은 일요일인데도 학교에 가나?

2층에서 내려와 문을 열어보니 세 사람이 같이 서 있었다.

시연이, 시은이, 예령이까지.

“오늘은 일요일인데, 웬일이야?”

“그야 당연히 정리하는 거 도와주러 왔죠! 우리가 졸라서 한 거잖아요. 그 정도 책임감은 있다구요!”

시연이가 뒤에서 ‘나는 왜···.’ 라며 중얼거렸는데, 시은이는 듣지 못했다는 듯이.

“어디부터 치울까요? 와··· 장난 아니다. 일단 빗자루로 바닥부터 좀 쓸까?”

“그래! 그럼 난 안쪽부터 하고 나올게.”

“그러니까 나는 왜···.”

“그럼 언니는 마당 정리할래?”

“···응.”

저들끼리 이야기하더니, 빗자루를 하나씩 집어 든다.

빗자루가 있는 곳은 또 언제 봐둔 건지.

세 사람이 흩어지더니 여기저기서 쓱싹쓱싹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문이라도 활짝 열고 하지.

일요일 아침부터 북적거리는 가게라.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세 사람이 바닥을 쓰는 동안, 나는 주방에 들어가 정리를 시작했다.

대행업체에서 가져다준 것들은 대부분 일회용이었지만 그래도 주방 도구를 아예 사용 안 한 것도 아니라, 제법 양이 됐다.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할까?”

“좋죠! 청소할 땐 역시 댄스곡?”

음. 도진이 녀석이 운동할 때 쓴다고 만들어둔 폴더가 있었지.

제법 신나는 노래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컴퓨터로 실행하니 곧장 스피커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와- 삼촌 이거 요즘 유명한 걸 그룹인데, 알고 있었네요? 역시, 삼촌도 남자였구나.”

당연한 말이긴 한데, 아마 그런 사전적 의미로 쓴 것 같진 않고.

“아··· 이건 도진이가···.”

우다다다닥-.

변명아닌 변명을 하려는데, 2층에서 누군가가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오더니 대뜸 소리를 질렀다.

“사, 사장님! 뉴뉴, 뉴스! 뉴스요!”

저 녀석, 지난주부터 자꾸만 타이밍이 영.

후우-.

“이번엔 또 뭔데. 몬스터라도 튀어나왔데?”

“어? ···아, 알고 계셨어요?! 아무튼 지금 난리 났데요! 얼른 뉴스요. 뉴스!”

그럴 리가.

만약 정말 그렇다면 안정민 과장이 진즉에 연락을 했을 텐데?

“언제 나타났다는데? 위치는?”

“그건 저도 아직···. 이, 일단 뉴스부터 좀 보세요.”

2층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가게 안에 있는 티비의 전원을 켰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빗자루질하던 세 사람도 어느새 내 옆으로 모여들었다.

“···삼촌.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니까.”

“그, 그래도··· 정말 몬스터가 나타난 거면···.”

“시연아, 시은이 데리고 집으로 가 있을래? 예령이도 통장님 걱정하실 테니까 얼른 집으로 들어가고.”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집이 더 무서운데···. 삼촌이랑 있을래요. 네?”

어떻게 할까.

당장 안정민 과장이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긴 한데.

그렇다고 집에 가기가 더 무섭다는데, 내 옆이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하는 시은이를 억지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지금은 정말 내 옆에 있는 게 세상 그 어디보다 안전한 것도 맞는 말이고.

“그럼 잠깐 위층으로 올라가 있을래?”

“···네.”

“예령이는 꼭 통장님한테 전화하고.”

시연이가 시은이와 예령이를 다독이며 위층으로 향했다.

어차피 올라가서도 뉴스를 보기야 할 테지만 그래도 심적으로 안정적인 공간에 있으면 불안이 조금 사그라들겠지.

그런데 왜지? 이건 너무 이르다.

각성자가 나타나곤 있다지만, 아직 제대로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텐데.

아니, 어쩌면 아직은 아예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등장이라니.

게이트가 열리고 이렇게 빨리 개방형으로 된 적이 있었나 싶다.

아니, 어쩌면 이미 한참 전에 열렸었던 걸 너무 늦게 발견한 건가?

[다시 들어온 속보입니다. 군 당국은 조금 전 서해 부근에서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을 상대로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오전 6시 반경 조업을 하던 어부에 의해 발견된 이 생명체들은 마치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이 움직였다고 전했습니다.]

어째서 안정민 과장에게 연락이 없나 했더니.

[지금 현장 상황 연결해보겠습니다. 오대기 기자?]

[네. 서해에 나와 있는 오대기 기자입니다. 지금 제 뒤로는 처음 보는 형태의 무기가 배치되고 있는데요. 군 당국은 이례적으로 신무기의 촬영을 허가해주고 있습니다. 저 무기는 현재는 구하기 지극히 어려운 마석이라는 물질을 에너지원으로 탄을 발사하는 대 몬스터용 무기로, 지금은 국정원의 게이트 방지 및 대책팀으로 명칭이 변경된 이전의 게이트 관리국 연구소에서 극비리에 개발된 것이라고 합니다.]

위험한 상황이 분명한데, 슬며시 미소가 나온다.

이 양반, 나한테 전화 안 한 이유가 있었구만?

아마 보란 듯이 자랑하고 싶어서 촬영도 허가해준 것이겠지.

개발의 주체는 아마도 신주희 박사려나?

하지만 게이트 연구와 무기 개발은 엄연히 다른 분야일 텐데.

나중에 기밀 자료를 좀 뒤져봐야겠네.

“한국도 좀 하는데? 저런 건 언제 개발했데?”

“모르지.”

“형은 기밀 자료 접근할 수 있지 않아?”

그렇긴 한데, 굳이 시간을 내서 찾아볼 필요성을 느낀 적은 없었을뿐이다.

“다음에 찾아보지 뭐.”

누가 개발한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저··· 사장님이랑 사부님이라면 저 정도는 문제없죠?”

아무래도 수가 많아 보여서 그런지, 도진이도 불안한 모양이다.

“흥! 저런 것들 100마리가 몰려와 봐라, 내가 숨이라도 헐떡이나.”

허세가 가득한 말인데, 저게 사실이라 뭐라고 하진 못하겠네.

도진의 눈빛이 갈수록 존경의 빛이 어린다.

“그럼 저는요? 저도 상대할 수 있어요?”

“음··· 진이 형이 봉인해둔 마력을 해제하면 한 마리 정도는 어찌어찌 상대해 볼 수 있으려나?”

“···그렇게 열심히 훈련했는데, 겨우 한 마리요?”

몬스터를 직접 경험한 사람의 거의 없는 세대다.

간혹 있다고 한들, 이미 노쇠할 데로 노쇠해서 기억도 가물가물한 사람들이 태반.

그래서 그런지, 현세대들은 몬스터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얼마 전 일이 있었으니 조금은 경각심을 느꼈겠지만, 과연?

저 무기가 얼마나 통할지를 지켜보면 나도 조금은 마음이 놓이겠지.

[말씀드리는 순간, 발사대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준비가 끝난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그 위력이 어떨지···!]

푸슈슈슉-!

어떤 방식의 무기인지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다.

마력탄을 날리는 것 같긴 한데, 발사되는 모습은 마치 다연장 로켓포 같은 느낌이 들고.

“물 위를 걷는 녀석이라면 아마도 그거겠지?”

“그렇겠지. ···리자드맨 변종.”

전체적으로는 도마뱀처럼 생긴 녀석.

물 위를 걷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게 아니라, 그 빠른 속도 때문에 물에 가라앉기 전에 계속 이동하는 것뿐이다.

한 마디로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말.

오우거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몬스터와 비교한다면 강력한 편에 속하는 녀석들이다.

그리고 특히나 물 위에서는 더욱더.

과연 그 녀석들이 저 마력탄을 가만히 눈뜨고 맞아 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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