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47화.
저녁 식사만 가능한 식당.
거기에 한적한 골목길에 있어서 유동 인구가 그리 많지도 않은 곳.
사실 손님이 그렇게 크게 올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상하게 손님이 늘었다.
그것도 상당히 이상한 옷차림의 사람들로.
“저렇게 입고 밥 먹으면 안 불편한가?”
“그러게요. 흰 와이셔츠에 국물 튀면 집에 가서 마누라한테 혼날 텐데.”
이루가 자기 말에 조금 엉뚱한 답변을 한 도진을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결혼도 안 한 녀석이 뭘 안다고.
[오늘의 메뉴]
[사골 우거지 국밥]
양지를 듬뿍 넣어서 푹 우려낸 국밥.
메뉴가 메뉴다 보니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맞긴 하다.
하지만 생판 처음 사내들이 이렇게 우르르 몰려올 정도는 아닌데···.
거기다 저런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라면.
연상되는 인물들이 있긴 하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내가 예상하는 인물들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
이상한 건 그들이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국밥만 먹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묘하게 테이블 간에 느껴지는 긴장감이랄까.
“삼초-···.”
시은이가 들어오다가 멈칫했다.
평소와 확연히 다른 가게 분위기가 전과는 묘하게 달라서 그렇겠지.
가게에 저런 검은 아저씨들이 잔뜩 있는데 여고생이 들어오기가 꺼려지긴 할 것 같다.
“왔어? 근데 어쩌지, 테이블이 없어서···.”
“힝. 배고픈데··· 언니도 집에 없고.”
아랫입술을 잔뜩 부풀리면서 날 봐도 방법이···.
아, 없진 않나.
“그럼 올라가서 먹을래?”
“네? 하지만 위층은···.”
거주 구역이다.
내가 이루와 도진이, 두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
남자 셋이서 사는 공간에 다른 사람이 온 적은 없지만, 뭐 어떤가.
“너만 괜찮으면.”
“좋죠! 삼촌 집 꼭 한 번 구경해 보고 싶었는데. 오늘이 그 날이네?”
“근데, 국밥도 좋아해?”
여고생이 국밥이라.
뭔가 매치가 안 되는데··· 내가 너무 꼰대스러운 건가.
“삼촌, 제가 뭐 못 먹는 거 봤어요?”
아, 그 한마디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럼··· 이루야, 국밥 한 그릇만 위로 올려줄래?”
“응? 아아. 도진아!”
이루 녀석도 도진이가 있어서 편해진 것 같네.
나는 시은이를 데리고 위층으로 향했다.
사실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으레 남자 셋이 사는 집이면 홀아비 냄새가 난다고 하지 않나.
조카가 처음 집에 찾아왔는데 그런 이미지를 주긴 싫었다.
그래서 조금 걱정이 없잖아 있긴 했는데···.
“와- 삼촌 집 좋네요.”
“···이게?”
“거실도 넓고, 티비 큰 것 봐! 몇 인치예요?”
이루 녀석이 게임을 한답시고 커다란 걸 사 오긴 했는데, 몇 인치짜리였더라.
“65인치?”
“대박. 이런 걸로 영화면 장난 아니겠다.”
뭔가···.
위화감이 드는데?
내 기억이긴 하지만, 지금 시은이와 시연이가 사는 집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물론 어릴 때 이후로는 거의 찾아가지 않았지만.
“지금 사는 집은 어떤데? 작아?”
“아뇨. 그렇진 않은데··· 아무래도 오래됐으니까요.”
그제야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챘다.
내가 어릴 때.
12살도 되기 전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던 작은 빌라 건물.
두 사람이 살기에 그리 작은 건 아니겠지만.
지어진 지 70년이 넘었다면···.
30년의 간극이 있었다는 걸 잊어버린 거다.
시은이가 국밥을 먹는 걸 잠시 지켜보다가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뒤졌다.
뚜르르르-.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이사장님?
“아, 김지연 대리. 아, 이제는 이사죠.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김지연 이사에게 직접 전화를 한 건 처음이라 조금 당황했으려나.
그래도 이 일은 최대한 빨리 처리해주고 싶었다.
“시연이와 시은이 사는 집 말인데요. 지금 상태가 어떤지 혹시 알고 있습니까?”
-물론이죠. 몇 번이나 찾아갔었는데요.
“그런데 여태껏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겁니까?”
절대 화가 난 건 아니다.
정작 나조차도 모르고 있었으면서 다른 이에게 화를 낼 자격이나 있을까.
물론 그러라고 뽑은 사람들이긴 하지만···.
-물론 갈 때마다 말을 했는데, 시연 양이 극구 거절해서요.
이제 내가 돌아올 걸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그럼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의 추억 때문에?
추억도 좋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오래된 건물에 사는 건 좋지 않다.
낡았으니 벌레도 나올 텐데···.
거기다 보안이며 안전도 문제고.
“알겠어요. 그 부분은 제가 처리할 테니, 근처에 두 사람이 이사 갈 만한 집을 하나 찾아두세요.”
-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 건데···.
아마 시연이가 싫다고 하니 그쪽을 설득해볼 생각이었겠지.
김지연 이사가 일을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안다.
“여기 자주 오셨다면서요. 가게에 한 번 들르지 그랬어요.”
-아, 아니에요.
불편하려나?
···뭐, 재단의 직원이니 이사장이 직접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게 불편할 수 는 있겠다.
“그래도 한 번 오세요. 혼자가 그러면 강 이사나 최 이사와 함께 오면 되죠.”
-네. 꼭 찾아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헛헛한 마음이 든다.
다시 시은이가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가게 앞을 지나던 한미희 통장이 날 보더니 웃으며 다가왔다.
“어머, 사장님. 갈수록 장사 잘되네요. 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싶었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냥 하는 소리 아니라, 진짜예요. 근데, 어째 오늘은 시커먼 아저씨들만 있네? 메뉴가 국밥이라 그런가?”
단순히 그 이유면 차라리 낫겠는데.
전생에 국밥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붙어도 저렇게까지 국밥에만 열중하진 않을 것 같다.
식사하면서도 아무런 대화 없이 그저 국밥만 파고드는 건 확실히 정상은 아니지 않나?
아저씨들이 국밥에 소주 한잔을 하는 테이블이 없고.
서로 간에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과 견제.
“후우-. 그러게요. 이러려고 만든 식당이 아닌데.”
아무래도 조만간 제대로 된 자리를 마련해야겠다.
우선 입장 표명을 분명히 해주고.
그 뒤에도 이러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겠지.
* * *
최우형 이사가 가게로 찾아왔다.
여느 날처럼 손에는 지원 대상 후보들의 명단을 손에 들고서.
“음. 이번엔 이렇게 4명으로 하죠.”
세상에 왜 이리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지, 찾아도 찾아도 끝도 없이 나온다.
처음의 취지와는 달리, 헌터의 후손이 아닌 이들 중에서도 게이트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된 일도 있었다.
“아, 이사장님. 그리고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정민욱 학생. 혹시 기억하십니까?”
“정민욱이라면···. 그 태권도 한다던 학생이죠? 기억합니다.”
재단에서 지원하는 아이들이 상당히 늘어나긴 했지만,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기억한다.
난 학교에 다니지 않은 것뿐이지, 머리는 좋다고 자부한다.
물론 그것도 마력 덕분이겠지만.
게다가 정민욱이라면 거의 재단 설립 초기에 최우형 실장이 혼자 발로 뛰며 찾아낸 아이라 더욱 기억이 남는다.
“아버지는 병원으로 옮겼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젠 좀 괜찮습니까?”
“아직 혼자 걷지는 못하지만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재활 열심히 받으면 일상생활에는 문제없을 정도로 회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잘됐네요. 그런데 갑자기 그 학생은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시은이와 동갑이었던 아이.
태권도 중학 청소년 대회에서 우승까지 할 정도의 실력이었는데 가정 형편으로 운동을 못하게 됐던 아이였지.
“그런 건 아닙니다. 그 학생 어머니의 소재가 파악됐습니다.”
“그래요?”
연기처럼 사라져서 최우형 이사도 못 찾았다고 했었는데, 지금까지 알아보고 있었던 건가.
확실히 이 사람의 끈기도 대단하네.
“네. 그런데 이게 너무 의외라서요.”
“어디 있는데요?”
“정신병원입니다. 환자 등록도 되질 않아서 찾질 못했었던 거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참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이네.
“정신병원이면··· 미쳤다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스스로 병원에 와서 감금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10년 치 병원비를 한 번에 결제하고서요.”
“스스로 감금해요? 이유는요?”
그게 미친 거랑 크게 다른가 싶은데.
이유는 궁금해진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건지, 그것도 자기 자식을 버리면서까지 말이다.
“아들이 무서워서 그랬답니다.”
“···아들이면 정민욱 학생 말하는 겁니까?”
“네. ···자기 아들이 괴물로 보였다고. 자기가 괴물을 낳았다면서요.”
뭔가 이해할 듯하면서도 하지 못하겠는데.
만약 헛것을 본 거라면 정말 미친 게 맞다.
“그거··· 자세히 좀 알아봐 주세요.”
예전에 아주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미친 게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확인은 해봐야지.
* * *
10월 말이 되어가면서 나는 경험해 보지 못한 분위기를 만났다.
예전에는 그저 살아가기 바빴던 세상이었는데, 요즘은 참 여러 가지로 즐거운 세상이구나 싶은 느낌이랄까.
“삼촌, 우리도 할로윈에 파티하면 안돼요?”
“할로윈?”
들어본 적은 있는데.
그거 우리나라에서도 챙기는 기념일 이었나?
아니, 애초에 기념일은 맞는 거야?
혼란스럽네.
“맞아요! 우리도 해요. 네?!”
일요일 오전부터 찾아온 시은이와 예령이.
커피 있겠다, 의자 있겠다.
여기가 둘만의 스터디 카페라나 뭐라나.
마당에는 시연이까지 와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가게를 바라보고 있는 채다.
가게를 그려보고 싶다나···.
이루는 도진이를 데리고 옷을 사러 간다며 나간 참이라 북적거리는 느낌이 나쁘진 않은데.
“···우리?”
내 가게이지만 이 아이들이 우리라고 불러준다는 게 왠지 뭉클하다.
하지만 할로윈이 뭔질 알고 하겠다고 하나.
난 외국 음식은 해본 적도 별로 없는데···.
슬쩍 시연이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내보는데··· 닿질 않는 건가?
아닌데, 조금 전에 분명히 눈 마주쳤는데.
입꼬리가 조금씩 씰룩이는 걸 보면 그냥 이 상황을 지켜보며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할로윈이라···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하는 거예요?! 진짜?!”
신이 난 녀석 둘이서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찾아서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뭔 희한한 옷을 입고 나와서 춤추는 사람들도 있고, 호박 가면이나 사탕 같은 것들도 보이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그리고 이 녀석들은 여기 공부하러 온 거 아냐?
심지어 얼마 뒤면 수능 시험을 치른다고 들었는데.
“삼촌은 뭘 몰라서 그래요! 가끔 이렇게 기분 전환을 해줘야 공부도 더 잘 되는 거라고요!”
그런 것치곤 너무 기분 전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건 아닌가 싶은데.
뭐, 두 사람이야 공부만은 알아서 척척 해내는 아이들이라고 하니까.
내가 참견할 필요는 없으려나.
“와, 이거 이쁘다! 그죠?!”
꼭 이런 옷을 입어야 하나?
두 사람은 이미 가게에서 할로윈 파티하기로 마음 먹은 것 같고.
시연이를 슬쩍 돌아보니, 어느새 스마트폰으로 뭔갈 검색하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즐거운 날인가 싶기도 하고.
사실 외국 명절은 크리스마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아이들의 감성은 또 다른 모양이네.
크흠.
그럼 난 뭘 입어야 하나.
슬쩍 건너편에 앉아서 나도 조심스럽게 검색을 시작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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