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46화.
미지에 대한 공포.
시연은 얼마 전 그렸던 그림을 다시 한번 꺼내 봤다.
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어딜 봐도 정상적인 지구의 생명체로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
그리고 그 앞을 막아선 익숙한 인형人形.
“···삼촌?”
자신이 그린 그림에 나와 있는 사람은 분명 삼촌이었다.
얼굴까지 자세히 그리진 못했지만, 실루엣만 보더라도 확연히 느껴지는 익숙함.
몬스터를 막아선 삼촌의 바로 뒤에 있는 남자.
군복을 입은 채로 주저앉은 듯한 모습이었는데···.
-아, 저 녀석? 얼마 전에 제대하고 온··· 아는 동생.
만약 이게 정말이었다면···.
삼촌은 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저런 괴물들과 싸워왔던 걸까? ···두렵지는 않았을까?
제발 그러지 말라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삼촌은 혹시 세상을 구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인 걸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헝클었다.
“···직접 물어볼까?”
직접 묻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다.
다만 되려 삼촌에게 괜한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뿐.
* * *
[일본이 대마도의 한국 반환을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습니다. 신당과 유물의 대대적인 이전이 진행됨에 따라 일본 극우단체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단호한 태도로···.]
뉴스를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까지 살짝 격앙되어 있을 정도인가.
그간에도 정말 한국 땅이 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고 소리 높였던 여론도 갈수록 잠잠해졌다.
“저게 사부님 작품이었어요?! 와-! 대박! 진짜 대박···.”
도진이 녀석이 마늘을 까다 말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는 완전히 마음을 굳혔는지, 결정을 한 뒤로는 이루를 사부님이라고 불렀는데.
이루도 그게 싫지는 않은 모양인지, 별소리는 하지 않았다.
하루의 절반은 훈련하고 나머지 절반은 식당 일을 돕는 것.
그게 요즘 이루와 도진의 하루 일과다.
이루의 정체를 알고선 무용담을 좀 들려달라고 조르더니, 결국 들은 모양이다.
마침 그 타이밍에 뉴스가 나온 건지, 뉴스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해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사장님은요? 뭐 없었어요?”
나야 이루처럼 자랑스레 떠벌리는 성격도 아니긴 하지만, 딱히 말해 줄 만 한 게 있으려나···.
“저 형 이야기는 듣지 않는 게 좋을걸?”
이루의 말에 도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왜요?”
“내 말 믿어라. 이게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왠지 이루의 생각을 알 것 같아서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이야기에 살을 붙이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도진이의 자존감 보호를 위해 자신 스스로를 과소평가할 나도 아니니까.
건장한 남자 세 명이 가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마늘을 까고 있는데, 시연이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요 며칠은 그저 인사만 하고 지나가서 살짝 서운해지려고 했는데.
“시연아, 학교 가는구나. 커피 한 잔 줄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근데 오늘은 좀 늦었네?”
이루와 도진이 새벽 훈련을 마치고 아침 식사까지 마치고도 깔끔하게 씻고 나온 시간.
평소 9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서던 것에 비하면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
“네. 오늘 첫 수업이 갑자기 공강이 됐거든요. 그래서 같이 수업 듣는 동생이랑 학교 앞에서 잠깐 수다나 좀 떨다가 들어가려고요.”
내색은 안 했지만 혹시나 복학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외톨이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가게에 찾아와 준 건 고마운데.
뭔가 평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혹시 무슨 하고 싶은 말 있어서 온 거야?”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게 영락없이 잘못하다 들킨 어린아이다.
물론 시연이가 나에게 잘못할 일은 없지만···.
그게 아니니 다른 뭔가로 할 말이 있어서 온 거다.
“저···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는···.”
“사장님! 지, 지금 뉴스! 뉴스요!”
도진이 저 자식.
이루한테 훈련받더니 눈치도 덩달아 사라진 건가.
“···너 별거 아니면 죽는다.”
“진짠데···. 진짜 큰일인데···.”
시연이도 궁금했는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 보던 뉴스 채널이 그대로였는데 나오는 건 정말 도진이 말대로 큰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오래전 사라졌던 게이트라는 게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워싱턴에 나가 있는 오대기 특파원을 연결해보겠습니다. 오대기 기자?]
화면이 바뀌며 익숙한 국기가 있는 커다란 기자 회견장이 나타났다.
성조기.
저기까지 쫓아가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참 쓸데없이 돈 쓰는 건 잘한다.
그나저나 실시간 기자회견장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는 건 이미 언론사에 연락이 왔다는 이야긴데.
게다가 이 시간이면 저곳은 이미 저녁때가 아닌가?
이건 마치 일부러 시간을 맞춘 것 같은 느낌인 것도 같고.
[저는 지금 얼마 전 괴생명체를 막아낸 것으로 알려진 하밀 로넌씨의 워싱턴 기자회견장에 나와 있습니다. 잠시 후면 그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 현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다고 하는데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하밀 로넌씨가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여전하구나 저 녀석은.
깔끔하게 빗어 넘긴 금발 머리에 무테안경을 쓰고선 회견장에 앉은 하밀이 곧장 발표를 시작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서···.]
잡소리로 시작되는 걸 보고 바로 느꼈다.
저건 미국 정부에서 시킨 거라는 걸.
저 녀석이 말주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이의 양해를 얻기 위해 저런 노력을 기울일 녀석이라는 것쯤은 익히 잘 알고 있으니까.
“하밀 저거 완전 꼭두각시 다 됐네.”
이루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지, 비아냥거렸다.
다행히 여기서 이루와 나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참을 의례적인 단어를 나열하던 하밀이 드디어 보도 자료를 손에서 내려놨다.
이제부터가 진짜 하밀이 하는 말인 셈이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세계 각성자 연합을 만들고자 합니다.]
어째 외국의 언론사까지 죄다 불러 모아서 기자 회견을 하나 했더니.
이거였나?
예전에는 없었던 국제기구다.
물론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나왔었다.
문제는 맹주를 어디서 맡느냐 하는 것.
당시 중국은 당연히 자기들이 가장 많은 각성자를 보유하고 있으니 맡아야 한다고 했고, 반발이야 당연했다.
미국은 아무도 시키지 않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주장했고, 러시아가 그에 반대한 건 당연하다.
결국 만들자는 이야기만 오갈 뿐이었고, 일본은 동아시아 헌터 연합이라는 걸 자기들 맘대로 만들고선 주변 국가들에 가입을 강요했다.
그렇게 결국 각자의 길을 걸었으니 당연히 연계가 제대로 될 리도 없었지.
그걸 이제 와 다시 꺼내 든 이유야 뻔하다.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미친 듯이 이어졌다.
당연히 그중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었고.
[연합 의장국은 투표를 통해 선출할 예정입니다.]
투표라.
그렇다면 만약 가입하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될까?
[가입을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반대로 비가입국은 위급 시에도 연합의 지원은 결코 없다는 점은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그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연합이라는 건 말 그대로 서로 간의 협력을 목적으로 만드는 단체니까.
도움은 주지 않고,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고 들어준다면 단체의 설립 목적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테니.
[연합의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는 기존 가입국 반수 이상의 찬성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처음은?
[미국, 러시아, 독일. 이상 3개국은 이미 사전 협의를 통해 세계 각성자 연합의 발족에 찬성한 상태입니다.]
하밀, 유리코프, 메를린.
세 사람이 있는 국가다.
“이루야. 몰랐어?”
“···몰랐어.”
헤어졌다곤 하지만 그런 말 정도는 해줘도 됐을 것 같은데.
기밀 유지를 해야 했겠지만, 메를린도 참 냉정하네.
“근데, 일본이야 이제 내가 없으니까 빠졌어도 그렇다 치고. 라미야가 있는 사우디랑 형이 있는 한국은 왜 제외한 거지?”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알았던 거겠지.
라미야의 마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하밀, 하여튼 이 인정머리 없는 자식.”
원래 냉정한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긴 한데.
그래도 이번엔 조금 충격이다.
라미야의 마력이야 시간이 걸리면 회복될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제외하다니.
“그럼 사우디도 그렇다고 쳐. 근데 한국은? 심지어 이젠 나까지 둘이나 있는데?”
“사부님, 잠시만요. 아직 끝난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이상 3개국은 세계 각성자 연합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찬성함과 동시에, 한국이 세계 각성자 연합 초대 의장국을 맡아주길 요청하는 바입니다.]
와, 설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와우.”
도진이 녀석이 새삼스러운 눈길로 나와 이루를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이제야 실감하는 건가?
자기가 지금 어떤 사람들에게 훈련을 받고 있는 건지?
“···삼촌. 혹시 저 오빠도···.”
사부님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으니 머리 좋은 시연이라면 금세 알아들었겠지.
그게 뭘 뜻하는 건지.
“응, 맞아. 저 녀석도 각성자야.”
전에 찾아와서 각성자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볼 때 눈치챘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면 된 거겠지.
시연이의 명치 부근에서 강렬하게 회전하고 있는 마력.
아직 마력 수치는 그리 높지 않겠지만, 느낌이 온다.
범상치 않은 능력을 가졌을 거라는 내 특유의 직감.
“그리고···. 아무래도 우리 시연이도 각성자인 것 같네.”
아마 어깨에 메고 있는 저 통 안에 그 해답이 있을 것 같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온 거야?”
작게 끄덕여지는 고개.
고민도 많았을 테고, 무섭기도 했을 거다.
도진이나 이루 같은 신체 강화 능력자야 그나마 낫겠지만, 이능력 각성자의 경우 많은 수가 처음에는 자신의 능력을 조절하지 못하니까.
나도 그랬고.
아마 시연이 역시 그랬을 거다.
마력이 몸 전체에 흩어지는 신체 강화 능력자와 달리, 이능력 각성자는 심장 부근의 마력을 자신의 의지로 조절하기 위해서는 꽤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난 시연이가 헌터가 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게이트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죽인다는 건 목숨의 위협이 없다고 하더라도 생명체를 죽이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끔찍한 일이니까.
그리고 그건 나 하나로 족하다.
시연이나 시은이가 그런 일을 겪게 하지 않기 위해서 곁을 지키고 있는 건데.
“편하게 이야기해 봐. ···어떤 능력이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시연이가 화구통에서 그림을 꺼내기 전에도 이미.
그리고 그림을 보고서 확신이 들었다.
리안 녀석의 후계자가 나타난 거구나 하고.
“어···? 이거 혹시···.”
커피를 타서 가지고 나오던 도진이가 그림을 보고선 즉각 반응했다.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치욕적인 순간으로 남았던 기억일 테니 몰라보는 것도 이상하지.
“이걸 어떻게···. 사, 사장님? ···진짜 너무 하세요.”
“···응?”
부끄러운 기억인 건 알겠지만, 내가 알려준 건 아닌데.
아니. 저 녀석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되려나?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길 놀려먹으려고 바쁜 시연이한테 이런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을 리가 없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텐데?
“와··· 형, 잔인하네. 그걸 또 그렇게 박제를 한 거야? 쟤한테는 완전 흑역사일 텐데.”
“아니, 그러니까 이건···.”
미치겠네.
시연이의 능력은 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거라.
비밀은 지켜야 하니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나···.
“···그래. 내가 나쁜 놈이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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