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45화.
귀환자 재단.
최근 정재계 쪽에서 급속도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재단이었다.
대부분 청소년 계층의 학업이나 생활을 지원하는 곳임에도 주무관청이 교육부 같은 기관이 아닌 곳.
“애초에 주무관청이 국정원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심지어 하위 부서라는 게 가능한 건가?”
“예외라고 합니다.”
중년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어디나 예외는 있다는 건가? 이건 뭐 그냥 눈 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결국 다른 기관에서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거잖아.”
“이미 VIP께서 비공식적으로 승인을 한 것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 걸고넘어지기가 힘들어질 겁니다.”
“···게이트 관리국이 부활한다지?”
“국정원 쪽에서 흘러나온 정보이니 아마 확실할 겁니다.”
“게이트가 다시 생긴다는 건 확실한 거고?”
중년인에게 보고하던 남자가 보고서를 내밀었다.
“···이미 생겼다고?”
“이미 미국에서 몬스터로 추정되는 괴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고, 확인되진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에는 하밀 로넌이 있었으니 해결했을 테고, 한국에서는 역시 이진 이사장인가?”
“네. 당시 사건 현장에 정체불명의 남성이 잠시 나타났었다는 건 역시 이진 이사장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게이트라···.”
남자는 잠시 기억을 떠올려봤다.
자신이 아직 재벌 3세라 불리던 어린 시절에 멀리서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각성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신비한 느낌을 주던 빛의 장막.
간혹 오지에서 열린 게이트를 미처 체크하지 못했을 때,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낸 적도 있다곤 하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당시 게이트 관리국의 권한은 상상 이상이었고, 제아무리 막 나가는 언론이라도 관리국의 지시를 어겼다간 다음 날 문을 닫아야 할 정도였으니까.
간혹 일반인들이 찍은 영상이 업로드되긴 했지만 1분도 되지 않아 관련 모든 자료가 삭제되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금 와 생각해보니 아마도 관련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각성자가 있었던 건 아닐까, 추측해볼 뿐.
하지만 이제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재벌이 된 자신이다.
예전처럼 궁금증도 해결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아직도 연락이 안 되는 건가?”
“저희 측 인원이 접근을 시도하곤 있는데, 국정원의 경호가 생각보다 더 삼엄합니다. 섣불리 강행했다간 정부 측과 심각한 마찰이 발생할 것 같아서 잠시 지켜보는 중입니다.”
“대보 쪽은?”
“대보 그룹에서도 주변을 맴돌기만 하고 있습니다.”
유전의 주인.
규모가 측정 불가인 재단의 이사장.
귀환한 7인의 헌터중 1인.
개인이 가진 재산만 따져도 수천 억대의 자산가.
그래서 도무지 이해되질 않는다.
“···대체 왜 식당 같은 걸 하고 있는 거냐고.”
정유 관련 사업에 발가락 하나라도 담그고 있는 이들에게는 지금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른 인물.
개인의 무력이 나라 하나를 웃돈다고까지 평가를 받는 이가 왜 하필이면?
“그 조카라는 아이들도 계속 지켜보고, 작은 돌파구라도 없는지 계속 찾아봐. 뭐라도 좋으니까 찾으면 곧장 보고하고.”
“네. 회장님.”
비서가 문을 나서자, 컴퓨터 화면을 띄웠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한 남자의 얼굴이 찍힌 사진.
선명하지는 않지만, 윤곽을 확인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어떻게든 그와 연결 고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 자신의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인물의 사진을 띄워두고.
그는 계속해서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사진을 바라봤다.
* * *
벌써 두 번째 이사다.
정부에서 엄청난 금액을 기부한 덕이긴 하지만 재단에 3명뿐이던 시절부터 한 세 사람은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고 있다.
정확하게는 어떻게 그 돈이 생겼는지를 짐작하고 있었다.
“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렇게 못할 거예요.”
이제는 이사가 된 세 사람.
그중에서도 재단의 회계를 관리하는 강문희 이사.
“그건 누구라도 그럴걸요? 수십조 원이나 되는 돈을 다른 사람을 위해 다 쓴다는 게 쉽진 않잖아요.”
“저도 그런 삼촌 있었으면···.”
“쉿-! 괜한 소리 마세요. 자칫 이상한 소문 퍼지면 큰일입니다.”
김지연 이사의 부럽다는 말에 최우형 이사가 얼른 입단속을 시켰다.
모두 젊은 나이에 이사라는 직함을 가지게 되어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지만, 그건 또 결이 다른 부러움이니까.
“재단이 커진 만큼 우리 역할도 막중해진 겁니다. 이번에 모두 이사가 됐어도 실무에서 제외되는 건 아니니까 두 분은 더 각별히 조심하셔야 해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저 재단의 초창기에 들어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사라는 직함을 단 게 아니란 걸 증명하려면.
“걱정마세요! 시연, 시은 자매는 앞으로도 제가 전속으로 맡아서 지원할 거니까요.”
이 재단의 설립 이유가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곳에 있는 세 사람만은 안다.
“그보다 최우형 실장···. 아니, 최우형 이사님. 후보 선정이 최근 급격히 늘어난 것 같던데요?”
“네. 사실 전에도 이사장님께서 재단 자금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긴 했지만, 조심스러운 게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정말 힘이 닿는 데로 찾고 있습니다. 아래 직원들도 열심히 해주고 있고.”
“그럼 이제 얼마나 되는 거예요?”
최우형 실장은 강문희 이사의 물음에 대답 대신 김지연 이사를 돌아봤다.
자신이야 후보를 선정해서 올릴 뿐이지, 선정은 이진 이사장이 직접 하는 데다 그 아이들을 지원하는 건 오히려 김지연 이사의 담당 업무이니까.
“어제 이사장님이 새로 선정해주신 5명을 포함하면 벌써 324명이나 되요.”
“와···. 벌써 그렇게 됐네요.”
“생긴 지 이제 겨우 3달인데,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커지네요.”
재단 직원만 어느새 40명이 넘어서고 있다.
아무리 돈이 많다곤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사실상 이런 규모까지 성장하려면 몇 년은 걸렸을 일.
“해외 지부도 만든다면서요?”
“네. 일단 계획 중이긴 한데, 이사장님께서 일단 외국에 있는 한 아이를 지정해 주셔서 천천히 시작해볼 계획이에요.”
“벌써 외국까지요? 근데, 그 첫 번째 행운아는 누구예요?”
최우형 이사가 턱 살짝 긁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제 3세계 국가나 극빈층 국가에 있는 아이가 아닐까 했는데, 너무 의외의 나라에 있는 아이라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네스티라는 아이예요.”
분명 서류상으로는 고아이긴 했다.
하지만 동거인이 무려 그 나라의 공주다.
세계 최대 산유국의 공주가 데리고 있는 아이를 굳이 지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혹시 이번에 유전을 받으신 거랑 관계가 있으려나?’
하지만 그 말은 굳이 내뱉지 않았다.
이사장의 숨겨진 아들이 아닐까 하는 가정은 애초에 의미가 없다.
30년 만에 돌아온 사람이 몇 개월 사이에 5살짜리 아이의 아빠가 되는 건 불가능하니까.
게다가 이번엔 금전적인 지원이 아니었다.
그보단 육아 지원에 가깝다고 봐야 할까?
아무튼 그래서 지금 해외 지원팀을 구성하는 중이다.
* * *
개미 오줌만큼 남겨둔 마력.
서도진이 그 마력을 이용해서 드디어 한 손가락만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도 균형을 잡게 되기 시작했을 즈음.
드디어 안정민 과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찾았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주어는 생략됐지만 알아듣기엔 충분했다.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긴 한데, 솔직히 너무 늦었다.
게이트 탐색기가 고작 반경 20km라는 제한이 있긴 하지만 한두 대로 탐색을 하는 것도 아니었을 테고, 국가 기관에서 나서서 찾는 데 이리 오래 걸리다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디 열렸던 겁니까.”
혹시나 아예 한국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사우디에서 열렸던 게이트의 영향을 뒤늦게 받았을 수도 있다.
이건 나도 뭐라고 확답을 못 하는 문제니까 맡겼다.
그런데 찾았다는 건 정말 한국 어딘가에서 열렸다는 말인데, 왜 이렇게 늦었나 했더니.
-서해의 한 무인도에 열린 걸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용케 거기까지 갈 생각을 했네요.”
-아, 모르실 수도 있는데···. 선생님이 게이트에 들어가 계신 동안에 마력 탐지 기술도 상당히 발전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치악산과 덕유산, 한라산에 정상에 3개만 설치하면 국내 전체의 게이트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건 참 다행이네 싶다만.
“그럼 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겁니까?”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수리가 좀 필요했습니다. 거기다 마석을 구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아무래도 탐지 범위가 넓다 보니 상급 이상의 마석이 필요하거든요. 지금은 마석을 구하는 게 워낙 어려워서 말입니다.
“마석이 그렇게 귀합니까?”
-네. 아무래도 그렇죠. 마석은 대부분 국가에서 전략 물자로 취급하니까요. 지금은 암시장에서 간간이 돌아다니는 걸 비싸게 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공간에 마석이 얼마나 있더라?
어차피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하면 금세 구할 수도 있으니까.
“상급 마석은 얼마나 합니까?”
-지금이야 거의 부르는 게 값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램당 1억을 넘은 지 벌써 오래니까요. ···혹시 가지고 계신 게 있습니까?
1g에 1억이라.
마석은 크기보단 농도에 따라 품질이 정해지고, 크기는 겨우 엄지손가락 정도일 뿐이니까.
무게로 따지면 아마 100g도 채 되지 않을 거다.
“네. 아공간에 제법 있죠.”
돈이 딱히 필요하진 않다.
그래서 대신, 다른 걸 받고 싶었다.
“그 게이트가 열렸다는 무인도, 혹시 크기가 어떻게 됩니까?”
상급 마석 하나 던져주고, 섬을 얻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게이트가 열린 이력이 생겼으니 어지간한 사람은 살 엄두도 안 날 테고.
-크기요? 무인도라 그리 큰 섬은 아닙니다. 크기가··· 4헥타르 정도 되네요. 정확하게는 4.2헥타르입니다.
“그게 평수로 하면 얼마나 되는 겁니까?”
-1헥타르가 1만 제곱미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럼 4만 제곱미터가 넘는다는 건데, 그게 작은 크기인가?
아무튼 크기는 충분하겠다.
-혹시 섬이 필요하시면··· 제가 조금 더 괜찮은 곳을 알아볼까요?
딱히 내가 섬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런 외딴곳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싶어 하는 녀석에게 필요해서지.
만약 정말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다면, 타인의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힐러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유일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귀한 능력인 것은 사실이고 블랙은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녀석이니까.
어쩌면 다른 녀석들 역시 이미 블랙을 찾아 나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녀석들과 나의 차이라면 나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 없다는 점.
은둔 생활을 즐기는 녀석에게 정부의 간섭이 얼마나 끔찍하게 느껴질까.
게다가 마력 탐지는 내 주특기 중 하나고.
* * *
홍익 대학교 강의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이시연.
누군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톡하고 쳤다.
멍하니 있다가 깨어나 고개를 돌리니, 함께 수업을 듣는 동생.
군대에 가는 남자와 달리, 여자의 경우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복학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사실 복학을 한 뒤로 한동안은 외톨이처럼 지냈는데, 먼저 다가와 준 게 바로 나연희다.
“언니, 뭐해요? 점심 먹으러 안 가요?”
“···응? 아, 가야지.”
“역시, 언니도 고민되시는 거죠?”
고민이 되는 건 맞지만, 그걸 연희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는데.
심지어 시은이나 그 누구에게도.
“언니도 미자전(미술자율전공)으로 들어와서 2학년 올라가면서 전공 정하려는 거 아니에요?”
“응? 아아. 맞아! 그거···.”
그 부분은 이미 회화과를 가기로 반쯤 결정한 상태.
지금 시연의 고민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참, 언니도 그 이야기 들었죠?”
“무슨 이야기?”
“왜 미국에서 난리 났던 괴물 사건이요. 그거 지금 인터넷에서 난린데···.”
“보긴 봤어. 근데 갑자기 그건 왜?”
“게이트가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던데요? 그리고 이건 소문이긴 한데, 벌써 각성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데요.”
“···그, 그래?”
“언니도 맨날 그림만 그리지 말고, 뉴스 같은 것 좀 봐요. 게이트 다시 열리고 그러면 어떻게 되려나?”
“···안 무서워?”
“할아버지한테 들었는데 각성자들 있으면 괜찮데요. 옛날에도 처음에만 좀 난리였고. 그 뒤로는 몬스터가 게이트를 나오는 건 해외 토픽감 수준이었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난 무서울 것 같은데.”
삼촌은 각성자.
그것도 지금 세상에서는 아마 가장 강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만약 그런 일이 또 생긴다면···.
‘삼촌은 괜찮을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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