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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44화 (44/153)

귀환자 식당 44화.

위층에 자리를 마련해뒀는데도 굳이 잡아둔 숙소로 가시겠다고 해서 결국 잡지 못했다.

대신 내일 아침 강원도로 내려가시기 전에 해장은 꼭 와서 드시기로 약속하고.

대리 기사를 불러 두 사람을 배웅하고 가게로 돌아왔더니 이미 도진이 녀석이 상을 차려놨다.

이루와 함께 네 사람이 앉은 테이블.

뭔가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왕 말하기로 결정을 하긴 했는데, 좀처럼 타이밍을 잡지 못하겠다.

뭔가 극적인 걸 원하는 건 아니지만 갑자기 밥 먹다가 ‘사실 내가 진짜 너희들의 진짜 삼촌이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까는 정말 깜짝 놀랬어요.”

“으응?”

“아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으. 아무튼! 갑자기 그런 말 하는 거 반칙이거든요?”

시은이는 작은 입을 연신 오물거리면서도 끊임없이 말을 했다.

조금은 억지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

아무래도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아서 그런 거 같긴 한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근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떡갈비를 4인분이나 먹는 게 가능한 건가?

“근데, 삼촌. 저 군인은 또 누구예요?”

“아···. 오늘 전역한 앤데···.”

내가 너무 무심했나.

무작정 끌고 와서는 마법으로 피 냄새만 지운 상태라 옷차림이 그대로다.

아직 저 녀석을 어떻게 할지 결정한 건 아니긴 하지만···.

“이루야, 올라가서 네가 입던 트레이닝복 하나 줘라. 좀 씻으라고 하고.”

“···내가?”

그럼 내가 가리?

내가 다시 한번 눈짓을 주니 구시렁대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간다.

두 사람이 위층으로 조용히 올라간 뒤.

나는 가만히 복분자주 한 잔을 들이켰다.

제법 독한 술로 담가서 그런지, 향은 좋지만, 확실히 취기가 빨리 오르는 것 같다.

손짓 한 번이면 날아가 버릴 취기이긴 하지만 오늘은 그러기 싫었다.

그냥 이 기분을 좀 더 즐기고 싶달까.

시연이와 시은이에게 남은 떡갈비까지 손에 들려서 보내고 나니 가게가 또 휑해졌다.

하지만 위층은 아니다.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느껴지는 게 오히려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지는 느낌.

위층으로 향했더니, 두 사람이 옷 한 벌을 놓고 투닥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 글쎄, 이 녀석이 감히 내 옷을 노리잖아! 너 인마, 이게 얼마나 비싼 옷인 줄 알기나 해?!”

“그럼 나보고 저 군대 활동복보다 촌스러운 걸 입으라고?!”

뭐지?

조금 전까지는 갓 시집온 새댁마냥 얌전하더니, 겨우 씻고 나왔다고 저렇게 태도가 변할 수가 있는 건가?

“이거, 안정민 과장이 준 건데···.”

“그러니까. 이 녀석이 그건 죽어도 못 입겠데.”

“···왜? 이게 어때서?”

내 질문이 이상했나?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날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나도 이해는 가지. 솔직히 저런 걸 입고 밖에 나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긴 하니까.”

“잘됐네. 그러니까 이거 줘.”

애들도 아니고, 고작 트레이닝복 한 벌을 가지고 투닥거리냐.

내가 보기에도 제법 태가 고운 것 같기는 하다만.

그래봐야 겨우 옷 한 벌인데.

“이루야, 너도 이거 엄청나게 싫어했잖냐. 어른으로 양보하는 건···.”

“이놈 이거, 날 제 친구라고 생각한다니까?!”

“23살이라며! 나도 23이니까 친구 맞잖아!”

흐음, 여기서도 족보가 꼬이네.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알려줄 필요는 있겠다.

그게 하루가 되더라도.

* * *

“죄, 죄송합니다···. 제가 아까는 몰라서···.”

다시 새댁으로 변신한 녀석.

이게 군인이었던 시절의 버릇이 아직 남은 건지, 원래 성격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쁜 녀석이 아닌 것 같긴 한데.

이루의 나이를 들은 녀석도 놀라긴 했겠지만, 이루도 그에 못지않게 놀라버렸다.

“각성자라고?! 이 녀석이?”

“진정하고 마력을 좀 살펴봐라.”

백번 설명해봐야 직접 확인하는 게 빠르겠지.

신체 강화 계열은 다 좋은데, 마력 감지에 대해서는 답답할 수준이다.

왜 그렇게들 둔감한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둔감한 사람들이 각성하면 신체 강화 능력을 얻는 건지도 모르지.

유리나 메를린을 보면 이것도 진짜 그럴지도···.

“그, 그러네···. 뭐, 아직 바퀴벌레 수준이긴 하지만, 마력이 있긴 있어.”

“바, 바퀴벌레라뇨! 아무리 그래도···!”

“넌 조용히 좀 해. 어른들 이야기하는 거 안보이냐? 아까 들어보니까, 너 때문에 적어도 수십 명은 골로 갈뻔했다며?”

지난 일을 들추자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서도진.

이건 도무지 성격을 알아차리기 힘든 녀석이네.

“이루야.”

“알았어. 알았어. 그 이야기는 그만할게. 그런데, 정말 이 녀석은 왜 데리고 온 거야?”

“···훈련을 좀 시켜볼까 해서.”

“아, 그래?”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네? 펄쩍 뛸 줄 알았는데.

“괜찮아?”

“뭐, 형이 그런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나도 이제 곧 나갈 텐데 이 녀석이라도 있으면 좀 낫지 않겠어?”

“다행이네. 그럼 잘 해봐라.”

“응. ···응? 자, 잠깐만. 뭘 잘 해보라는···.”

눈을 보니 이미 알아챈 건데.

굳이 확인 사살까지 받고 싶다면야.

“저 녀석 말이야. 훈련 잘 시켜보라고. 쓸만하게 만들어봐.”

“내, 내가? 왜 내가?!”

“그야 저 녀석, 신체 강화 계열이거든. 그러니 나보단 네가 낫지 않겠냐?”

이루가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난 절대 못 해. 아니?! 안해애애!”

* * *

아침이 되고 석웅 형님이 손자와 함께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제 약속한 대로 해장국을 먹기 위해 찾아온 길.

“그 구멍은 하룻밤 사이에 덮어버렸군.”

“네. 아무래도 흉측해서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당이 신기했던지, 어제는 어둑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아서 그랬는지.

새삼스러운 눈길로 가게를 둘러보신다.

“그런데··· 진이 아우, 아침 댓바람부터 저게 뭐 하는 건가?”

마당 한편에 서도진이 낡은 트레이닝복을 입고선 한 손으로 휘청거리며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는데, 눈에 안대를 씌워놔서 그런지 꼴이 영 우스웠다.

“일종의 아침 운동이죠.”

“···인간이 저런 것도 가능하구먼 그래.”

확실히 일반적으로 가능한 자세는 아니지.

“똑바로 못 서냐. 넌 일단 기본기가 너무 부족해. 온몸의 근육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건 물론이고, 바늘 끝에 서서도 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익! 이, 이게 무슨 기본입니끄아!”

거의 악에 받친 목소리.

오전 6시부터 일어나서 강제로 훈련을 시키는 걸 보면서 난 생각했다.

이루보다 동생이 아니라서 너무 다행이라고.

손을 바꿔가며 물구나무를 선지 얼마나 됐지?

한 시간은 넘은 것 같고···.

더군다나 이루는 서도진의 마력 사용을 극도로 제한시켰다.

물론 그 부분에서는 내가 도와주긴 했지만, 정말 쥐꼬리만 한 마력만 남겼으니 거의 한계에 가까워졌을 것 같은데.

슬슬 말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고민하는 찰나.

“자, 10분간 휴식.”

···독한 놈.

정말 한계로 몰아붙이고 있다.

-좋아. 그럼 이거 하나만 약속해. 내가 맡으면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지도 방식에 관여하지 않기.

이루가 건 조건이었고, 난 흔쾌히 수락했다.

-죽거나 병신만 만들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그 과정에서 아주 작은 의견 충돌이 있을 뻔했지만.

-저기, 선배님들. 제··· 의견은요?

-너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이루는 가볍게 무시하는 걸로 일단락.

그리고 당장 오늘 아침부터 시작된 훈련이 바로 지금 저 상황이었다.

“삼초온-! 어? 아, 안녕하세요?”

시은이가 밝은 모습으로 마당을 들어서다가 이루와 도진을 보고 멈춰 섰다.

어떻게 보더라도 가벼운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의 몰골로 볼 수는 없는 상태였으니까.

“시은아, 자. 여기.”

“헤헤- 감사합니다!”

“언니한테는 비밀?”

“당연하죠! 히히-.”

시연이가 복학하고, 두 사람이 집을 나서는 시간이 달라졌다.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 가는 고3과 예술대학생의 간극 차이랄까.

그 뒤로 시은이가 매일 아침 들르는 곳이 바로 이곳.

“언니가 알면 또 한 바탕 잔소리할 걸요? 삼촌한테 민폐 끼친다고.”

“민폐는 무슨.”

매일 아침 생과일을 갈아서 만든 주스를 테이크 아웃 잔에 담아주는데.

처음에는 어찌나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던지.

어린 나이부터 카페인 섭취가 좋을 것 같진 않아서 결국 타협한 게 바로 과일 주스다.

“와! 이건 뭐예요? 되게 상큼해요!”

“케일에 사과랑 레몬을 갈아서 만든 주스야.”

“케일? 그거 쌈싸먹는 채소 아니에요? 와··· 그게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요?”

단맛이야 사과와 레몬에서 나는 거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몸에 좋다는 거.

맛이 좋았는지, 고개를 양옆으로 까딱거리면서 빨대를 빠는데.

그게 어찌나 귀여운지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근데, 저 오빠들은 아침부터 왜 저래요?”

온몸이 땀에 젖은 건 물론이고, 흙먼지까지 잔뜩 뒤집어 써서 얼굴이 그야말로 만신창이인 서도진.

뭐 이제 들어가서 씻으면 되긴 하겠지만, 아침부터 저렇게 격하게 움직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물론 그건 내 기우였다.

오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4번이었나?

서도진 병장이 탈출을 감행한 횟수다.

당연히··· 이루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이, 이거 납치, 감금! 범죄라고요!”

“과연 그럴까?”

“나가면 바로 신고할 거예요! 진짜라고요!”

뭐 나름 억울하기는 하겠다만.

신고한다고 그게 먹힐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 싫다고 한다면 억지로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안정민 과장님?”

-네! 선생님.

“어제 제가 데려온 녀석 있잖습니까.”

-서도진 병장 말씀입니까?

“네. 어떻게 처리됐습니까?”

-우선 두 가지 방법을 두고 선생님께 여쭤보려던 참이었습니다.

“두 가지요?”

-우선 하나는 남은 군 생활 기간을 국정원에 파견 형식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있고, 하나는 특별 명령 임무 수행으로 곧장 전역 시키는 게 가능합니다.

“둘 중에 뭐가 좋을까요?”

-음, 둘 다 서도진 병장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겁니다. 하지만 저라면 국정원의 파견을 선택하겠습니다. 만약 헌터의 길을 걷지 않더라도 국정원 파견 경력은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만약에 서도진 병장이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네?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런 선택을 하겠습니까? 세계 최강의 헌터 두 사람의 바로 옆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인데···. 정말 그런 선택을 할 정도로 멍청하다면 어쩔 수 없죠. 그냥 원래 부대로 복귀시키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서도진을 다시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스피커 폰이었으니 내용은 모두 들었을 테고.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선택권을 그에게 줄 생각이니까.

“자, 이제 어쩔래? 그냥 부대로 돌려보내 줄까? 선택은 네 자유다.”

서도진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입을 벌리려는 순간.

나는 한 마디를 더 보탰다.

“한 번 선택하면,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돌아간다면 두말없이 보내줄 거고, 남는 걸 선택한다면 너도 앞으로 어리광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라.”

입술이 달싹거리는 게, 고민을 하는 것 같지만.

안정민 과장의 말대로다.

이런 기회가 눈앞에 왔는데도 그걸 몰라보고 놓칠 정도라면 더 이상의 훈련도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서도진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흐흐-. 그럼, 오후 밥 먹고 오후 훈련을 시작해 볼까?”

이루가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저 녀석 정말 어제 그렇게 싫다고 난리를 피웠던 사람이 맞나?

아니면 설마··· 사디스트 같은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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