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43화.
가게에 돌아왔더니 무척이나 오랜만에 찾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고작 하루였는데 말이다.
“···문도 안 닫고 갔었나.”
뭐가 그리 급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오우거가 시내로 갈까 봐 무서웠던 건가?
그 녀석에게 누군가 당할까 봐, 누군가가 나와 똑같은 상처를 받게 될까 봐서.
“들어와.”
아까 현장에서 데리고 온 애송이 녀석은 아직도 얼이 빠진 상태다.
군인인데 무작정 데리고 왔지만 설마하니 탈영으로 처리하진 않았을 테고, 뒤처리는 국정원에서 알아서 하겠지.
“여, 여기가···.”
“내 가게야. 뭘 그리 멍하니 있어, 들어오라니까.”
그제야 어정쩡하게 걸어오더니.
“···비, 비밀 기지 같은 겁니까?”
“비밀 기지?”
조심스럽게 가게를 둘러보더니.
“그렇잖아요···. 아, 아저씨 같은 사람이 평범한 가게를 할 리는 없고···. 숨겨진 영웅이나 비밀 병기, 그런 거죠?”
무슨 기대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눈빛에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인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거 아니야. 진짜 그냥 가게라고.”
눈을 보니 알겠다.
전혀 믿질 않는 눈치라는 것쯤은.
그냥 두면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일단 데리고 온 건데, 혹시 실수한 건가, 나?
“서도진이라고 했지?”
“병장-! 서도진!”
조건 반사적인 관등성명.
뭐, 조금 전까지 군인이었으니 이 정도 군기도 없으면 안 되겠지.
차라리 저런 상태가 더 나을 수도 있겠고.
“여기 앉아. 부대에서 무슨 일을 주로 했었지?”
“자, 작업병이었습니다.”
군인으로 생활을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주워들은 풍문은 있다.
작업병이라면 정식 보직은 아니지만, 군부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일꾼.
행정관의 손이라 불리기도 하는 일종의 잡일꾼에 가깝다.
하지만 그만큼 일머리는 있다는 거겠지.
“그럼 취사 지원도 나가봤겠네?”
“네? 네! 자랑은 아니지만, 취사반에서도 일손이 부족하면 늘 저를 보내달라고···!”
충분히 자랑이 맞는데.
아마 이것저것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테니 이 정도도 할 수 있겠다.
“떡갈비 만들어 본 적은?”
“도, 동그랑땡이라면···.”
만드는 방법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요리지만.
“여기 앉아서 고기 반죽에 찰기가 생길 때까지 치대면 된다. 할 수 있지?”
“···네?”
가만히 고깃덩어리들을 내려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거 혹시··· 폭탄같은 겁니까?”
“···그냥 고기 반죽이다.”
왜 사람이 말하면 곧이곧대로 믿질 않는 건지.
내가 테러 단체의 수장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언제쯤 믿으려나.
* * *
해가 뉘엿뉘엿 져갈 때쯤에야 이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간 일은 잘 해결했고?”
-응. 근데··· 좀 이상했어. 형은 혹시 이상한 거 못 느꼈어?
감이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이루 역시 몬스터 사냥으로 평생을 보낸 녀석이다.
그 정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더 문제지.
“아마 마석을 먹고 성장해서 기존 개체들보다 더 강했을 거야.”
-그래, 맞아! 혹시 내가 오래 쉬어서 감을 잃은 건가 싶었는데···.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일본에서는 뭐래?”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일본에서 이루를 잡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하려 들었을 건데.
당장 오늘만 해도 이루가 끝까지 무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저들도 알 테니까.
뉴스에서 일본의 한 작은 도시에서 강진이 일어나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저들이 몬스터를 사육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고는 아마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겠지.
한국처럼.
-···돌아와 달라고 하더라. 자기들이 다 잘못했다고.
일본에서도 비슷한 속담이 있으려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같은.
지금이 딱 그 꼴이다.
[지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미국 텍사스 부근에서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들이 나타나 나사(NASA)의 연구 시설 일부가 파괴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미국방부는 현재 이에 대해 어떠한 의견도 발표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한편···.]
뉴스에서 나오는 내용을 보니, 미국조차도 별다른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일본과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생명체들’이라는 점인데.
미국이라면 정말 한두 마리가 아니었을 것도 같고.
저기도 아마 해결한 사람은 뻔하겠지.
하밀이다.
뉴스에서 시선을 돌리고, 다시 이루에게 물었다.
“그래서 넌, 언제쯤 돌아오려고?”
오지 않는다는 건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바로 돌아갈 거야. 이번엔 자위대의 전투기를 타고서.
“기왕 간 김에 좀 쉬다 오지 그래? 아는 사람들도 좀 만나고.”
-···이제 내가 아는 사람은 전부 한국에 있는걸.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목소리.
“그래··· 얼른 집으로 와.”
-···응!
* * *
휴대 전화를 들고, 한참을 이리저리 굴려봤다.
전화할까? 말까?
뭐라고 하지?
“그냥 하시지 말입니다.”
“···넌 고기나 치대.”
뭘 안다고 나서.
“다 끝냈습니다.”
“···벌써?”
제대로 안 했으면 혼쭐을 내려고 했는데.
가운데 부분까지 살짝 눌러서 가지런히 정렬까지 시켜놨다.
“떡갈비는 처음이라며?”
“함박스테이크 만드는 것 영상 찾아봤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이제 뭘 하면 됩니까?”
일을 못 해서 안달 난 사람도 아니고 무슨 일을 끊임없이 하려고 저러나.
일단 여긴 군대가 아니다.
“그냥 쉬고 있으면 된다.”
“네! 알겠습니다!”
피식-.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해가 저물기 시작할 즈음, 마당에서 자동차 배기음이 들려왔다.
지나가는 차가 아니라 가게 앞 마당으로 들어서는 자동차의.
마당으로 나가니, 제법 근사한 세단 한 대가 들어서고.
뒷좌석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가 내려섰다.
“형님, 오셨습니까.”
“···마당 꼴이 왜 이러나?”
차에서 내려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작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크레이터가 생겨 있는 마당은 누가 보더라도 이상했으니까.
“그게··· 공사를 좀 하려다 보니. 하하- 안으로 들어가시죠.”
“여기가 아우 가게인가?”
“초라합니다.”
“좋은 가게겠어. 정이 느껴지는구먼.”
가게를 슥 둘러보고선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린 걸 보면 단순히 입바른 칭찬이 아닐 거다.
“밥 먹는 곳은 아무렴 이래야지.”
“알아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 우혁아.”
운전을 하고 온 손자인 모양이다.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데, 피부가 전체적으로 그을린 것을 보니 아마 후계자라도 되는 것 같고.
“가져온 것 좀 가지고 들어오거라.”
“네. 할아버지.”
힘차게 대답하고선 트렁크에서 제법 묵직한 상자를 꺼내왔다.
“부탁했던 버섯이야. 먹는 법이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감사합니다.”
얼핏 나무터기를 통째로 뽑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커다란 상황버섯이 상자 안에 잘 놓여 있었다.
어지간한 산삼보다 귀해 보이는 자태.
미리 준비한 돈 봉투를 꺼내 들었다가 잔뜩 혼만 나고선 도로 집어넣었다.
뭐, 예상하긴 했지만···.
“형님, 잠시만 앉아 계세요. 제가 얼른 상을 준비하겠습니다.”
“내 가기 전에 그래도 아우가 차린 상을 한 번 받아보겠군.”
90세가 넘어서도 삼을 찾아다니시는 양반이 약한 소리는.
주방으로 들어갔더니 서도진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냐?”
“네! 휴식 중이었습니다.”
무슨 휴식을 주방에서 서성거리면서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기 반찬 접시들···.”
“알겠습니다!”
말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알아서 접시에 반찬들을 담고선 트레이에 올려서 홀로 나가버린다.
어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했던 건가 싶을 정도로 눈치가 빠르다.
팬을 불 위에 올리고 떡갈비를 올렸다.
간간이 뒤집으면서 제주도 선장님께서 보내주신 재료도 손질을 시작했다.
크다고 하기엔 부족할 정도로 거대한 닭새우(크레이피쉬).
목과 몸통의 사이로 칼을 넣어 분리한 뒤, 몸통은 가위와 수저를 이용해서 살을 파냈다.
탱글탱글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이 좋은 몸통은 회로.
머리는 반으로 갈라 버터를 녹인 뒤 다진 마늘을 넣어 만든 소스를 뿌려 오븐에 넣었다.
“이건 제가 하겠습니다.”
밑반찬을 모두 내갔는지, 들어온 서도진이 얼른 뒤집개를 집어들었다.
그리곤 익숙하게 팬 위의 떡갈비를 뒤집는데···.
이거 이루보다 나은데?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새우살은 깔끔하게 정리한 껍질 위에 보기 좋게 담았다.
그리고 오늘의 목적인 복분자주를 주전자에 따라서 내어갔다.
“음-. 향이 아주 좋게 잘 익었어.”
“형님이 보내주신 복분자가 워낙에 좋았습니다.”
흘흘 웃어버린 석웅 형님이 가장 먼저 회 한 점을 집어 들었다.
“나도 살면서 이렇게 큰 닭새우는 처음 보는군.”
“오늘 새벽에 잡힌 녀석이라 맛도 좋을 겁니다. 어서 드셔보시죠.”
회 한 점이 입안으로 들어가자 주름 가득한 눈꺼풀이 살며시 닫혔다.
한참을 음미하던 석웅 형님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맛이 어떻습니까.”
“말해 뭐하나, 어서 들게.”
쪼르륵-.
석웅 형님의 잔에 진한 보랏빛의 복분자주를 따라드렸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손자에게.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별말씀을요.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함우혁이라고 합니다.”
자기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이가 할아버지와 호형호제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법도 한데.
이 친구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약초 가게 사장 말처럼 족보가 꼬인 것과 다름없는 상황.
“할아버지 아우분이시면 제게는 작은할아버지 되시는 건데요. 나이가 중요하겠습니까?”
요즘 보기 드문 마음가짐이네.
아니면 석웅 형님이 오기 전에 단단히 교육을 시키고 왔던가.
도진이도 부를까 하다가 이내 관뒀다.
아직 나랑도 어색한 사이인데, 이런 자리가 절대 편하지는 않을 테고.
저 혼자 주방 안에서 뭔가를 꼼지락거리긴 하는데,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술잔이 오가자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마당을 넘어오는 익숙한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
···거기에 한 명이 추가되어 있다.
“아무래도 오늘 형님께 소개시켜 드릴 사람이 온 모양입니다.”
“내게 말인가?”
“한 명은 전에 보셨을 겁니다. 함께 삼을 받으러 갔을 때 제 옆에 있던 녀석인데, 기억하십니까?”
“알다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엇! 형님, 오셨습니까?”
석웅 형님과는 이미 안면이 있던 이루가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넸고.
“삼촌!”
“안녕하세요.”
뭐라고 소개를 하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이 됐다.
그리고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난 도대체 뭘 고민하는 거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스쳤다.
고민할 필요도 없던 것을.
“형님, 여긴 제 조카들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시연이라고 합니다.”
이미 알고 있던 시연이는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고.
“이, 이시은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인사를 하게 되어서 당황한 시은이도 얼결에 고개를 숙였다.
왜 하필 이 순간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아마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이겠지만, 마음이 조금 후련해진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두 사람이죠.”
어차피 알려질 일이라면, 적어도 내가 먼저 말해주고 싶어졌다.
내가 너희들의 진짜 삼촌이라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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