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42화.
안정민 과장이 군인들 몇몇과 금세 달려왔다.
하늘에서 연달아 터지던 소닉붐과 함께 지상으로 무언가가 내리 꽂히는 걸 봤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겠지.
혹시나 또 다른 몬스터가 나왔는지 걱정을 한 건지.
날 보자마자 한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서, 선생님. 와주셨군요···”
“당신들이 이뻐서 온 게 아니라, 애먼 사람들 떼로 죽을까 싶어서 온 거니 착각하지 마세요.”
“무, 물론입니다!”
섭섭할 법도 한 말이었는데.
안정민 과장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저들도 양심이 있다면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어 놨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지.
“그리고, 이 녀석은 뭡니까?”
아직도 앉은 자리에서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녀석.
복장을 봐선 군인인데, 평범한 군인은 아닌 것 같고.
“그··· 미, 미끼 역할을 한다고 나선 군인인데···.”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미끼라고?
“···지금 뭐라고···. 미끼요?”
“네? 아, 그게 극구 말려도 저 친구가 굳이 하겠다고 나서는 통에···.”
이게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인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쳤다.
아무리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을 미끼로 쓴다고?
“···제가 그동안 안정민 과장님을 잘못 본 건가요?”
“서, 선생님. 그런 게 아니라···!”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지금 연구원들은 어딨습니까.”
“연구원들은 모두 대피해서 지금 본원에···.”
오늘 여러 가지로 많은 사람에게 실망하는 날이네.
정작 일을 만든 것들은 모두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었다?
무책임해도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나.
“일은 마무리된 것 같으니 그만 가보겠습니다.”
“네? 그래도 이렇게 그냥 가시면···.”
“그리고 이 녀석은 제가 데리고 가죠.”
“···네?”
얼핏 봐선 군복을 입고 있는 게 아직 현역 군인인 모양인데, 상관없다.
아무래도 각성한 것 같은데 이대로 두고 가면 앞으로 더 큰 사고를 칠지도 모를 녀석.
제대로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어 보이니까.
“그리고 다시 경고하죠.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한국이 망하는 꼴을 보더라도 돕지 않을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멍하니 보던 사람 중에.
별을 두 개 달고 있는 사람이 나섰다.
“이봐요! 당신 뭔지 모르겠지만, 내 부하를 끌고 가겠다는 걸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아?!”
“당신이 사단장인가? 웃기는 소리군, 그런 부하가 죽으러 가겠다는 건 가만히 지켜보고서 이제 와서 무슨 자격으로?”
“그거야!”
슬슬 열이 뻗치려고 하는데, 안정민 과장이 다급히 그를 말렸다.
“사단장님, 우선 이 문제는 추후에 저희 쪽과 이야기하시는 게···.”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립니까?! 그리고 이자는 누군데 여기 와 있는 겁니까?! 제대로 설명을 좀 해보세요! 설명을!”
화가 많은 사람인가.
지금 이러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나치다고 할까?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연극을 하는 것 같은 과함이다.
슬쩍 주변을 보니, 카메라를 든 군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훈병인가?
왜 이러는지 알 것 같다.
모르면 모를까. 사진이 찍힌 걸 알고 그냥 둘 순 없지.
손가락을 까닥하자 카메라가 사라졌다.
일순간 없어진 게 아니라, 그 자체를 분해시켜 버렸다.
“으아악-!”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정훈병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사단장이 고개를 돌렸다.
“다, 당신 지금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겪으면 인간은 공포를 느낀다.
게이트가 그랬고, 몬스터가 그랬다.
그리고 그 공포가 지금 다시 지구상에 도래하려고 하는데, 그걸 가장 앞에서 막아야 하는 인간들의 행태가 지금 이 모양이라니.
“후우-. 이번엔 안정민 과장이 제 뒤처리를 좀 해주셔야겠네요.”
“···걱정 마십시오. 제가 아무 탈 없도록 반드시···!”
“그래야 할 겁니다.”
평소 보던 내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지.
안정민 과장의 표정에서 긴장감이 흐른다.
지금까지의 관계가 가장 밑바닥부터 흔들리는 느낌이겠지.
난 아직도 피칠갑을 한 채 바닥에서 벌벌 떠는 녀석의 가슴 어림을 쳐다봤다.
군복에 오버로크되어 박혀있는 계급과 이름.
“서도진 병장.”
“벼, 병장 서도진!”
내가 군인도 아니니 굳이 관등성명을 델 필요까진 없는데.
애써 정정해주진 않았다.
둥실.
난 마력을 이용해 녀석을 띄웠다.
온몸에 냄새나는 곱창들은 치워버렸지만, 냄새가 지독해서 건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려다가.
“아. 그리고.”
“네! 선생님!”
“다들 국정원에 있다고 했죠?”
“네···. 모두 그쪽으로 대피했습니다. 아무래도 기밀 자료들이 있어서···.”
변명아닌 변명을 해본다.
“거기 위치가 어떻게 됩니까?”
* * *
오우거를 잡을 때처럼 무식하게 착지하지는 않았다.
반원을 그리는 듯한 모양으로 지어진 건물 앞.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
잔디 위,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글이 보였다.
정작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사람들이 누군데.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국정원 요원들로 보이는 직원과 흰 가운을 입은 몇 사람.
그리고 장민국 원장이 다가왔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마련해뒀습니다.”
“충성과 헌신이라··· 참 앞뒤가 안 맞네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정작 문제의 원흉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안전한 곳으로 피신부터 한다니, 부끄러운 줄은 아니 다행이군요.”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했을지 상상도 되질···.”
“당신들을 도운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재산이며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을 선량한 사람들을 구한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온 건 단순히 그런 점을 질책하려고 한 게 아니다.
이미 몬스터가 날뛰기 시작했다는 건, 어디선가 게이트가 열렸다는 말이다.
“국정원에 있죠? 게이트 탐지기.”
“네? 아···. 있을 겁니다. 아니, 분명히 있습니다.”
“당장 가동하세요.”
“그 말씀은···. 게이트가 열렸다는 말씀입니까?”
“몬스터가 움직였다는 게 그 증거니까요.”
“역시···.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동을 시작하겠습니다.”
대강 눈치는 채고 있었던가?
장민국 원장은 뒤편에 기립해 있던 요원 하나를 손짓으로 불러 뭔가를 빠르게 지시했다.
“그리고. 신주희 박사.”
“···네. 선생님.”
“당신은 게이트 연구를 할 자격이 없어. 사고가 터지자마자 나 몰라라 하고 도망치면 그만인가? 적어도 당신은 그곳에 끝까지 남아서 자리를 지켰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안정민 과장이 아니라, 그녀가 직접 와서 무릎을 꿇어서라도 내게 도움을 청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느라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다.
과실에 욕심이 났다면 냄새나고 더러운 비료가 몸에 묻는 것은 감수했어야지.
“하, 하지만 선생님. 신 박사는 게이트 연구의 핵심입니다···. 신 박사가 연구에서 빠지게 되면···.”
“제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연구원을 정하겠습니까. 그저 제 생각을 말한 것뿐입니다.”
선택은 언제나 당신들의 몫인 거고.
질책을 하는 것은 여기까지.
이제 내가 여기 온 본론을 꺼낼 차례다.
“오우거가 왜 갑자기 성장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가설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그 가설이 단순히 내 상상이 아니라는 것이 어쩌면 입증될지도 모른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던 신주희 박사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자격은 없을지 몰라도,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제일 먼저 파악한 거다.
신주희 박사와 장민국 원장.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일정 이상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음성 차단막을 펼쳤다.
“저는 돌아온 이후로 계속 생각해봤습니다. 어째서 3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벌어진 걸까 하고. 그리고 한 가지 가설을 세워봤습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른 게 아니라, 게이트 내부에 있던 우리가 단순히 그렇게 ‘체감’을 한 건 아닐까 하고 말이죠.”
“그 말씀은··· 그 안에서도 결국 30년이라는 시간이 동일하게 흘렀다는 겁니까?”
다르지만 맞기도 하다.
이걸 뭐라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선생님. 설마 지금 상대성 이론의 사건의 지평선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예요?”
상대성 이론이라.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런 고등 물리학을 내가 알 턱이 없지.
“그런 건 모르겠네요.”
“사건의 지평선이란 건 상대성 이론에서 말하는 일종의 시공간의 경계면을 말합니다. 중력이 강하거나 등가 가속에 의해 가속운동을 하는 경우 관찰자가 느끼는 시간이 지연되는 현상을 말하는 현상입니다.”
시간의 지연이라.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30년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면 다시는 넘어올 수 없어요.”
“인간의 과학력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게 있기도 한 거죠.”
당장 게이트만 하더라도 인간은 아직 원리나 본질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수십 년을 연구하고도.
그런데 이제 와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믿을 수 없다니.
그것만큼 아이러니한 게 있을까?
“이번 일을 보고 생각한 거지만,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현재의 시간 흐름에 적응하는 건 아닌가 싶네요.”
그거라면 몬스터가 한순간 자란 게 설명이 된다.
신체의 흐름이 순식간에 30년을 건너뛴 셈이 되는 거다.
“하지만 아무런 것도 먹질 않았는데, 몬스터라는 건 그래도 성장할 수도 있는 건가요?”
“먹이는 그동안 꾸준히 주지 않았습니까?”
“먹이라뇨. 저희는 아무···. 아아······.”
신주희 박사가 주저앉아버리며 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이번엔 아주 목놓아 울어버리는 그녀.
“시, 신 박사. 갑자기 왜···. 선생님, 도대체 그 먹이라는 게 뭡니까?”
“뭐겠습니까. 마석이죠.”
시체를 보존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녀석에게 먹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30년이나 마석을 끝없이 먹이며 키웠으니 다른 오우거들에 비해 엄청난 마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던 거다.
만약 내가 가지 않았다면 도시 하나쯤으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피령이고 뭐고, 그 일대가 모두 쑥대밭이 되었을 테니까.
“이제 알겠습니까?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정말··· 죄, 죄송해요. 흐으으으윽!”
“사과는 나에게 할 게 아니라, 당신들이 위험에 몰아넣었던 사람들에게 해야 맞겠지.”
어딘가에서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곧 각성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거다.
70년 전, 그때처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제대로 알게 하세요.”
“누, 누구에게 말입니까?”
누구긴 누구야.
“국민에게 말입니다.”
사람들도 알 권리가 있다.
자신들이 앞으로 어떤 세상에서 살아갈지, 그리고 어떤 위험이 닥쳐올지 정도는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순식간에 수백만이 죽어 나갔던 그 날의 악몽을 굳이 이제 와 다시 알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제, 제 선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안정민 과장 상관 아니랄까 봐.
똑같이 답답하네.
“그럼 그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가서 전하세요.”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뻔하지.
나는 그에게 경고하는 거다.
“말로 하는 경고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로 해서 듣지 않는다면, 실력 행사를 할 수밖에.
대통령이고 뭐고 간에.
사람들 역시 알 권리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누가 뭐라든 내 생각을 밀어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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