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41화 (41/153)

귀환자 식당 41화.

“원장님. 선생님께서 지금 오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와주신다니 정말 다행이네.”

“선생님께서 몇 가지 지시 사항을 알려주신 게 있어서 저는 지휘통제실에 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다. 그럼 여기는 맡기고 가겠다. 난 아무래도 본원에 가봐야 할 것 같으니까.”

“네!”

-마력탄은 최대한 직접 공격을 자제하고,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견제만 하세요. 군인들은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오우거를 유인해야 합니다. 만약 그게 도시로 들어서기라도 하면 진짜 지옥이 펼쳐질 겁니다.

안정민 과장은 이진에게 군인들이 오우거를 어떻게 유인을 해야 하냐고 물었다.

-고기를 구하세요. 산속에 고기를 뿌려두면 아마 금세 쫓아올 겁니다. ···대신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저런 괴물이 자기를 쫓아온다고 생각해봐라.

당장이라도 손에 든 고기를 던져버리고 싶어질 거야 뻔한 일.

자칫 실수라도 했다간 고기와 함께 녀석의 식사거리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자살 미션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는 임무.

“이건 미친 작전이요! 아니, 작전이라고 할 수도 없어! 내 부하들에게 그런 짓을 시킬 순 없습니다!”

급한 대로 인근의 군부대를 출동시켰다.

하지만 이들은 특수 부대가 아니라, 그냥 일반 병사들로 이뤄진 부대.

그런 미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다급히 불려온 사단장 역시 안정민 과장의 말을 듣고선 노성을 터트렸다.

아무리 현재 작전권이 국정원에 있다고 해도 이건 들어줄 수 없었던 거다.

고기를 들고 가서 유인하라니.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는데도 움직임을 눈으로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빠른 괴물.

보는 눈이 워낙 많은 탓에 이미 출동한 부대에선 소문이 죄다 퍼진 상태다.

상대는 몬스터라고.

“저게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겁니까. 여기 있던 연구소 아닙니까?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지만, 댁들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엄한 내 부하들 목숨을 밀어 넣을 순 없단 말입니다!”

이 사람이 진정 부하를 생각하는 참 군인이라서 이런지도 모른다.

그의 말처럼 지금 이 상황은 게이트 관리국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던 연구 때문에 벌어진 참극이고.

이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군인들의 희생이 필요한 상황인 것은 틀림없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 저게 시내로 나가기라도 하면 도시 하나가 괴멸 수준까지 갈 겁니다. 가늠도 안 되는 재산 피해는 물론이고, 수천수만 단위의 인명피해가 발생한단 말입니다!”

“공군에 지원을 요청하시면 될 것 아닙니까. 아무리 몬스터라도 미사일 때려 부으면 못 죽일 것도···!”

“총알이나 미사일은 통하지 않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걸!”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어떤 곳에서 나온 것보다 신빙성이 있는 정보니 믿으셔도 됩니다.”

크읍!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위험하긴 하지만 재빨리 고기만 적당한 위치에 두고 물러나기만 하면 목숨을 잃을 일은 없다.

결국 부대에서 가장 산을 잘 타고 발이 빠르다는 인원 10명을 뽑았다.

이제 갓 20살이나 되었을 법한 앳된 얼굴들.

“위험하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빠르게 움직인다면 분명 무사할 수 있을 거다.”

목숨이 달린 일. 하지만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하나는 약속하지. 무사히 복귀한다면 여러분에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보장한다.”

“···저, 정말입니까?”

떨리는 목소리.

당연히 겁먹지 않을 리가 없다.

억지로 끌려온 군대에서 갑작스러운 전시 상황 발생에.

이제는 목숨을 걸고 괴물을 유인하라니.

지금 이 상황이 이들에게는 얼마나 거지 같고 지랄 맞게 느껴질까.

계급을 보니 모두 이등병, 일병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야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다.

상병이나 병장들은 이미 퍼진 소문을 주워들었을 테고, 위험한 일에 나설 마음은 없었을 테니까.

그중에서 딱 한 명, 병장이 하나 있었다.

표정 역시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잔뜩 상기된 것은 두려움인지, 아니면 다른 뭔지.

안정민 과장은 잠시 그를 쳐다보곤, 구해온 고기를 나눠줬다.

커다란 소 반 마리 통째로 10등분 했다.

마침 정육점에 고기가 들어온 날이라 내장까지 구해왔다.

“이게 냄새는 제일 잘 퍼지겠네요.”

그 병장이었는데, 누린내가 풀풀 풍기는 길다란 내장을 꺼내 들더니.

온몸에 감았다.

“지, 지금 뭐 하는 건가!”

“어차피 미끼가 되는 게 목적아닙니까? 제가 몬스터 덕후라 잘 아는데, 몬스터들 그렇게 멍청하지 않습니다. 정말 살아 움직이지도 않는 고깃덩어리를 바보처럼 쫓아다닐 거로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몸에 냄새가 배면···.”

안정민 과장은 그제야 눈치챘다.

이 군인은 지금 내장을 어딘가에 두고 도망칠 생각이 아니라는 걸.

젊은 혈기?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보내면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건 단순한 느낌은 아니겠지.

“자네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저건 지금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아직 이쪽은 눈치 못 챈 것 같으니 얼른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어!”

“괜찮습니다.”

대체 이건 무슨 자신감이지?

몬스터 덕후라고 했지.

설마 거기서 나오는 자신감인가?

아니지, 만약 몬스터에 대해 잘 안다면 지금 이 상황이 더 말이 안 되는 건데.

“제가 요즘··· 좀 달려졌거든요.”

안정민 과장은 그 말에, 얼마 전 사우디에 다녀왔던 이진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게이트가 다시 열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마 각성자도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겠네요.

* * *

온몸을 칭칭 휘감은 내장 냄새.

살면서 곱창구이는 종종 먹어봤지만 원래 이렇게 냄새가 심한 건지는 몰랐는데.

앞으로 곱창구이를 또 먹을 수 있을까?

두려움이 없진 않다.

하지만 묘한 기대감이 전신을 가득 채웠다.

어려서부터 봐왔던 판타지 소설들.

어쩌면 자신은 몬스터 덕후가 아니라, 판타지 소설 덕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이 가득했다.

‘소설 속 주인공···.’

어쩌면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소설을 읽다 보니 자연히 몬스터와 게이트에 대해 알게 됐고, 군에 오기 전까진 어린 나이긴 하지만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둔 동호회의 회장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비록 주변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보며 참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하기도 했지만.

‘느껴져.’

공기 중에 떠도는 무언가가.

그리고 그게 자신에게 이 특별한 힘을 주고 있었다.

사실 이런 힘을 느낀 건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평소와 달리 너무 상쾌한 몸 상태.

처음엔 단순히 바이오리듬 같은 게 좋아져서 그런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직 드러내진 않았지만 몰래 체력단련장에서 시험을 해봤었다.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40kg짜리 덤벨을 전혀 무리 없이 들어 올리는 건 물론이고, 힘껏 휘두른 발차기에서 소닉붐이 일어날 때의 감동이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각성한 거야.’

그것 외에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점차 짙어지는 공기 중의 무언가.

‘이건 아마도 마력이겠지?’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왜 하필 지금 여기서 몬스터가 튀어나왔을까.

이건 클리셰다.

뻔한 전개이긴 하지만, 아마 자신에게 저걸 잡으라고 하는 듯한 계시.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그래서 나섰다.

모두가 나서기를 꺼리는 임무에 솔선수범 나서는 병장이라.

후임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존경심을 엿봤다.

아마 저걸 때려잡는다면 어떨까?

대통령 표창? 조기 전역?

자신은 볼 기회도 없었던 사단장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던 남자.

검은 정장을 입고 있던 사람은 아마도 국정원 소속의 높은 사람일 거다.

영웅 대접과 더불어, 국정원 소속의 각성자가 되는 거다.

당연하게도 부귀영화는 저절로 따라오겠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그는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서 국민을 구한 영웅이었다.

모두 자신을 뜯어말릴 때.

가장 화를 내던 그 국정원 요원이 무언가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신을 알아본 건가.

산길을 빠르게 달렸다.

연구소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출발했지만, 진심으로 속력을 내니 금방이었다.

일반인이라면 눈이 튀어나올 속도.

점차 확신이 든다.

쿠어어어어-!

과연 이게 지구상의 생명체가 낼 수 있는 포효소리인가?

듣는 순간 전신에서 느껴지는 짜릿함.

정신이 한순간 날아갈 듯 아찔함까지.

“···여기다!”

난 두려운 게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되뇌며 억지로 소리를 짜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뿌지직-.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는 소리가 이렇게 끔찍한 거였나?

곧장 뒤를 돌아 땅을 박차고 달리는데.

콰지직! 뿌직-!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느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 * *

뻐억-!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긴 한데, 자꾸 마음이 불안하다.

안정민 과장에게 전화를 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지금은 우선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우선이지.

이 속도로 움직이면서 전화를 해봐야 바람 소리 때문에 통화가 제대로 될 것 같지도 않고.

계속해서 이동하는데, 갑자기 오우거의 마력이 변했다.

조금 전까지는 흉포하긴 했지만, 분노의 단계는 아니었는데.

뭐지?

뭔가가 오우거를 자극한 건지, 갑자기 오우거의 마력이 들끓기 시작한다.

주변에서 벗어나지만 못하게 막아두고라고 했는데.

만약 벗어나려고 해도 피 냄새가 나는 곳으로 먼저 향할 가능성이 커서 주변 야산에 고기도 놓아두라고 했다.

그렇게만 하면 적어도 내가 도착할 때까지 큰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어긋났다? 갑자기 어째서··· 이렇게 화가 난 거지?

오우거도 생물이니 공격받으면 당연히 화가 난다.

하지만 기껏해야 하급 마석을 이용한 마력탄으로 하는 공격이 성체가 된 녀석에게 타격을 주긴 힘들었을 텐데.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또 하나의 마력이 느껴졌다.

아직 미약하긴 하지만, 분명 각성자의 마력.

우리 동료들을 제외하고도 세상에 아직도 각성자가 남아있었던 건가?

이 정도 마력이라면 고작해야 E급.

아무리 높게 잡아도 D급 수준인데, 각성자라면 알고 있을 거다.

자신 정도의 마력으로는 오우거를 상대할 수 없다는 걸.

답은 둘 중 하나.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마력을 대부분 잃어버린 예전의 각성자이거나.

아니면 이제 갓 각성해서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하는 햇병아리 각성자이거나.

그리고 지금 상황을 보니, 후자에 가깝다.

경험이 있는 각성자라면 자기가 상대하지도 못할 몬스터를 괜스레 자극하기만 하는 멍청한 짓은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

크오오오-!

포효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드디어 저 멀리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정신없이 도망가고 있는 군인 하나가.

그리고 그 뒤로 이미 이성을 잃은 듯한 오우거 한 마리가 날뛰는 것도.

그런데 문제는 저 멍청한 녀석이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거다.

몸을 숙여 지상을 향해 발을 굴렀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들렸는지, 오우거의 고개가 날 향한다.

눈이 잠시 마주친 순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성체 오우거라곤 해도, 너무 강하다.

생각해보니 아무리 마력을 개방시켰다고 해도, 어떻게 그 먼 거리에서 녀석의 기운을 느꼈는지 생각해보질 않았네.

강하든 말든, 어차피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콰앙!

정확하게 오우거와 피칠갑을 한 햇병아리의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1분만 늦었어도, 저 앞쪽에서 대기하던 군 병력 절반은 목숨을 잃을 뻔했다.

내려섬과 동시에 오우거의 목을 날려버렸다.

중요한 연구 자료고 나발이고, 나랑은 상관도 없는 일이지.

그런 것보다 지금은 그저 눈앞에 이 애송이 녀석이 기가 막힐 따름이다.

“···넌 뭐 하는 녀석이야.”

“저, 저는···.”

딸꾹-.

대답 대신 들려온 건 그저 딸꾹질 소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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