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40화.
예상이 아니라 이미 이렇게 될 일이었다.
사실 나야 큰 감흥도 없지만, 연구소 사람들은 혼비백산했겠다.
“연구소는 괜찮습니까?”
“움직이는 기미가 보이자마자 모두 대피했습니다.”
“그게 지상으로 나올 확률은요?”
“지하 연구소로 향하는 통로는 엘리베이터가 이동하는 곳 하나뿐인데, 그곳은 이미 차단벽으로 겹겹이 막아뒀습니다. 핵폭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라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안일해도 이렇게 안일할 수가 있나.
이들은 정작 몬스터와 게이트를 연구한다는 사람들이면서 그 대상이 되는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자료는 남아있을 테지만, 서류상에 쓰인 글로 읽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공포는 감히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몬스터라는 것들이 얼마나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지도.
“차단벽이라···.”
솔직히 우습다.
고작해야 강철 합금으로 만들어진 것이겠지, 혹시 또 모르겠다.
30년 전에 차단벽까지 함께 만들었고, 그걸 설계한 이가 제조계열의 각성자였다면 약간은 기대해 볼 수도.
“네. 무려 30센티 두께로 만들어진 강철 벽이 20미터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총 8단계로 이뤄져 있죠. 절대 뚫지 못합니다.”
이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안에 있던 몬스터가 오우거라는 건 제가 말씀드렸죠?”
“네? 네, 전에 오셨을 때 알려주셨죠. 그래서 여차하면 지하 연구소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뒀습니다.”
“오우거의 괴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아무리 새끼라도 그런 차단벽 정도는 5분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 그럴 리가요. 미사일의 직격도 버티는 합금입니다.”
“미사일로 몬스터를 때려잡을 수 있었으면 ‘그날’ 그런 일이 왜 벌어졌겠습니까.”
경험해보고서도 그새 잊어버린 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세대라 그때의 공포를 모르는 건가.
미사일 같은 걸로 상위 개체의 몬스터를 잡을 수 있었다면 그 많은 사람이 죽었을 리가 없다는 걸.
왜 생각하지 않는 걸까.
“게이트 관리국에···. 아니, 국정원에 마석으로 충전하는 무기가 아직 있습니까?”
각성자가 아닌, 군인들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있었다.
마석을 에너지로 하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진 못했지만, 그거라면 어느 정도는 통하겠지.
“네. 있긴 있지만··· 중요한 건, 지금 마석이 없습니다.”
“몬스터 시체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게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 마석들은 지금 전부 지하 연구소에 있어서···.”
“당장 구할 방법은요?”
“그건···.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답답한 사람아.
“그럼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한테 전화하세요.”
* * *
“원장님께서 하급 마석 3개 정도라면 지원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급 마석이라···.
살짝 불안한 감이 있긴 하지만 새끼라면 충분히 가능할거다.
“특수 부대원들 있죠?”
“특수 부대라면 어떤···.”
“왜 영화 같은데 보면 무슨 대테러 팀이라면서 707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UDT나 그런 부대.”
딱히 어떤 부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냥 엄청나게 지독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
죽음의 공포에서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강한 정신력과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면 된다.
“네! 있습니다. 당연히 있죠!”
아마 그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을 데리고 가는 곳이 국정원일 테니까.
“세 명 뽑아서 투입하세요. 마력탄 무기 쥐여주고. 혹시 근처에 군부대 있으면 원거리에서 지원만 하라고 하세요. 괜히 다가갔다가 몰살당하지 말고. 특등사수가 눈알을 정확하게 쏘는 정도가 아니면 의미도 없고 괜히 화만 돋우니까 조심하시고.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근처 주민은 모두 대피시키세요. 괜히 어설픈 자신감 가지고 인명 피해 늘리지 않으려면요.”
“···네? 저어···.”
“또 필요한 거 있습니까?”
“서, 선생님께서 도와주시는 거 아닙니까?”
어쩐지,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 도와줄 생각은 별로 없다.
“전 분명 경고했습니다. 위험하다고. 그 말을 제대로 새겨들었다면 그게 지금까지 남아있진 않았겠죠. 위험은 본인들이 자초하고서 왜 저한테 뒤처리를 부탁합니까? 당신들이 부렸던 욕심에 대한 대가는 본인들이 직접 책임져야죠.”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도와줄 거로 생각했겠지.
하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그냥 호구다.
이쯤에서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겠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저는 평범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도움을 받은 게 있으니,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강하다고 해도, 그깟 오우거 한 마리쯤이야 손가락 하나로 죽일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당신들 부하 노릇은 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이다.
재수가 없으면 S급 헌터가 고블린의 독침에 맞아 죽기도 하는 게 바로 헌터라는 직업이다.
사마귀가 마차를 세울 정도로 아주 희박한 확률이라고 해도.
위험을 무릅쓸 생각은 없다.
“그리고, 저 오늘 예약 손님 있거든요.”
* * *
솔직히 마음이 좋진 않다.
굳이 축 처진 어깨로 차를 타기 전까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던 안정민 과장이 아니더라도.
아마 인명 피해는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연구원이 되었든, 군인이 되었든.
누군가는 나보고 잔인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누군가에게 말해주겠다.
잔인하다고 하더라도 난 내가 먼저라고.
안정민 과장이 돌아간 뒤, 숙성 시킨 고기를 가지고 와 테이블에 앉았다.
앉아서 뭔가를 할 때는 그나마 티비라도 보면서 하는 게 낫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
치덕- 치덕-.
양 손바닥을 오가며 찰진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고기들.
무려 40덩이나 준비해뒀다.
석웅 형님과 손자도 있지만, 시연이와 시은이도 오라고 했으니까.
오늘은 일요일은 아니지만, 하루는 임시 휴업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석웅 형님을 모셔놓고 일을 하면서 대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한참을 치덕거리며 티비를 보고 있는데, 재방송으로 보여주던 예능 프로 아래로 속도가 한 줄 떠올랐다.
[하남 인근에서 50여년 만에 주민 대피령 내려져]
다행히 마지막 충고는 들었던 건지.
그 뒤로 몇 번이나 화면을 가리며 속보가 떠올랐지만,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이 정도는 알아서 해결해야지.
내가 무슨 대한민국 보모도 아니고.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울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결정적으로 내가 언제까지 살아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말이지.
우우우웅-. 우우웅-.
[김이루]
혹시나 또 정부 측에서 도움 요청 전화인가 하고 싶어서 봤더니 이루다.
이 녀석은 왜 안 오고 전화지?
별달리 사 올 것도 없는데.
“응. 뭐 사 올 것 없다. 그냥 와.”
-···형. 나 일본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
하긴.
그건 미처 생각을 못 했네.
일본에서도 연구 중이라면 지금 비슷한 상황이거나···.
“거긴 얼마나 심각하데?”
-···와이번.
허어.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한순간 말문이 턱 막힌다.
“와이번? ···진짜 그냥 미친놈들이군.”
-참, 내가 생각해도 그러네···. 한국 연구소를 보고 일본에도 혹시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와이번을!
“그래서, 도와주러 가려고?”
-맘 같아서야 무시해버리고 싶은데···. 그렇다고 그냥 두고만 볼 수도 없잖아? 와이번이면 오우거랑은 차원이 달라··· 일반 군대로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긴.
오우거야 끽해야 힘 좀 세고, 피부도 좀 질기고, 재빠른 편이긴 하지만.
와이번처럼 입에서 불을 뿜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결정적으로 와이번은 날아다니지 않나.
오우거가 몬스터 중에서 중상급의 개체라면 와이번은 명실상부한 상위 개체다.
마음먹고 날뛰면 도시 하나가 박살 나는 것도 그저 단순한 하룻 밤 악몽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 이번엔 어쩔 수 없겠네.”
이건 도와줄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이루에게도 분명히 말해두는 편이 좋으려나.
“그래도 이번에 가면···.”
-알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못 박고 올 테니까.
뭐, 알아서 잘 하고 올 녀석이긴 하지.
“조심히 다녀와. 바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려고?”
때마침 출발하는 편이 있으면 좋겠지만, 만약 기다려야 하면 그사이에 일본은 실시간으로 인구수가 줄어들고 있을 텐데.
-아, 정민이가 대한민국 공군에 연락해줬어. 일본에도 이미 이야기가 됐다니까 오산까지 헬기로 이동한 다음에 바로 타고 갈 거야.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서 고맙다고도 못했네. 형이 대신 좀 전해줘.
“···그래 알겠다. 조심하고.”
-와이번 한 마리쯤이야! 걱정 마.
하긴.
이루에게 와이번 한 마리쯤이야 일도 아닐거다.
수십 마리가 모여있는 둥지도 단신으로 돌격하던 녀석인데, 괜한 걱정이겠지.
이루에게 도움을 준 건지, 일본에 도움을 준 건지.
어쨌든 부탁한 사람은 이루니까.
뚜르르-.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전화하는 거다.
절대 거기 상황이 걱정되어서 하는 게 아니라.
-서, 선생님!
“크흠. 이루가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하네요. ···거긴 좀 어때요?”
이왕 전화한 김에.
막상 티비에서 속보가 나온 걸 보니 조금은 궁금하기도 하고.
-전투 중입니다! 세 명을 제외하곤 모두 200미터 외곽에서 지켜보는 중인데···. 사,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공간에 있던 중급 마석이라도 몇 개 들려서 보낼 걸 그랬나.
하지만 하급 마석의 에너지라도 3개 정도라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우거이긴 하지만, 그래봐야 겨우 새끼였으니까.
“아직 새끼라 배 쪽의 가죽은 약할 겁니다. 굳이 머리같은 약점 노리지 말고, 배 쪽에 가격을 하라고 하세요. 맞추기도 쉽고···.”
-아닙니다! 유리관에 있을 때랑은 전혀 달라요! 엄청나게 큽니다!
한 두어 달 됐나?
이루와 함께 연구소를 다녀온 지가.
정확하진 않아도 그리 차이가 크게 나진 않을 건데.
그런데, 겨우 오크만 했던 녀석이 성체가 되었다?
난 몬스터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아니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게이트 안쪽의 생태에 대해서는 안다.
몬스터도 교배를 하고, 새끼나 알을 낳는다.
저들끼리 사냥을 하고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이 존재하는, 그야말로 하나의 세계다.
새끼는 먹이를 먹고 자라고, 성체가 되고.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게이트가 공략될 때까지 아마 무한히 반복되겠지.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에···.”
-잠, 잠시만요···. 지금 막 한 명이 쓰러졌는데···.
세 명이서도 버겁던 상황에서 한 명이 쓰러졌다?
나머지 두 명도 나가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일어났습니까?”
-···모니터상으로 봐서는 아직 심장이 뛰는 걸로 확인됩니다. 아마 기절한 것처럼 보입니다.
실수다.
만약 정말 오우거가 성체라면 하급 마석을 넣은 무기 세 자루로 잡는 건 어불성설이다.
적어도 일개 소대가, 그것도 전 대원이 중급 마석 이상을 장착했을 때나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까 말까 한데.
잘못 판단했다.
몬스터에 대해 속단하고 안일하게 대처한 건 어쩌면 나일지도.
만약 오우거 성체가 도시에 진입이라도 하면 인명 피해가 수천 단위를 우습게 뛰어넘게 된다.
주먹질 한 방에 건물이 쓰러지고, 내지르는 포효만 들어도 정신을 잃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된다.
그야말로 지옥···.
그 동안 내가 그토록 막고자 했던 게 뭐였는지.
그걸 이제야 떠올렸다.
지금의 이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는 두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안정민 과장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말을 하면서 이미 내 발걸음은 가게 문을 나섰다.
그리고 마력을 개방시켰다.
콰앙-!
발을 박차고 뛰어오르자, 뒤이어 파공성이 따라 들렸다.
마당에 크레이터가 조금 생기겠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지.
순식간에 구름 가까이 오른 나는 곧장 오우거의 마력을 감지했다.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마력을 개방하니 확연히 느껴진다.
안정민 과장의 말대로다.
이건··· 성체의 마력이다.
뻐엉-!
허공에 공기의 벽을 만들어 다시 한번 발을 박찼다.
누군가는 하늘을 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걸 우려할 때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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