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35화 (35/153)

귀환자 식당 35화.

8시간의 비행.

그마저도 사우디 측에서 전용기를 내주어서 망정이지, 일반 항공이었다면 그 배는 걸린다고 했다.

갈 때도 텔레포트로 가면 좋았겠지만, 지금의 이 희미한 마력으로는 라미야의 마력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마력 농도가 점점 강해진다고 가정하더라도 일주일은 걸릴 텐데.

그때까지 마냥 멍하니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차라리 비행기를 타고 가는 편이 낫지.

후우-.

몸이 피곤하진 않은데, 정신이 지쳤다고 해야 할까.

우선 네스티의 문제가 가장 컸고, 다음은 가게 걱정이었다.

그나마 비행기가 왕족 전용기라서 그런가.

설마하니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침대에 누워서 잘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 못 해봤는데.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꿀잠을 자고 일어났다.

비행기 안의 침실 한쪽에 걸린 운행 화면을 보니 벌써 한반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착 예상까지 남은 시간도 이제 겨우 한 시간 남짓.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승무원이 가져다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생긴다.

이루 녀석은 잘하고 있으려나.

곰탕을 잔뜩 끓여뒀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만···.

뚜르르-.

안정민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선생님! 어디십니까?! 도착하신 겁니까?!

신호가 채 한 번도 다 울리기 전에 다급하게 받는다.

순간적으로 느꼈다.

아, 뭔가 터졌구나 하는걸.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나.

“혹시 가게에 무슨 문제 있습니까?”

-네? 아,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혹시 시연이나 시은이한테?”

-아뇨···. 그것도 아닌데요.

그럼 왜 그렇게 전화를 받아. 사람 놀라게.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뭘요.”

대뜸 모르냐고 물어보면 어찌 아나.

주어를 넣으라고, 주어를!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서 몇 시간 전에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난리가 났는데··· 정말 모르는 내용이세요?

“아······.”

내용은 모르겠지만, 왜 그런지는 알지.

그러니까 우선 내용부터 확인해보고 생각해야겠다.

“기자회견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놀라지 마세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번에 새로 발견된 유전 중 하나를 한국인에게 양도하겠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드디어 유전을 갖게 됐다는 말입니다!

유전이라···.

쪼잔하지 않을 걸 기대하긴 했지만, 이 양반···.

통이 너무 큰 거 아닌가?

하지만 순수하게 기뻐하는 안정민 과장과는 달리, 나는 조금 께름칙하다.

예상보다 보상이 너무 크다는 건 다른 의도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아는 나이니까.

* * *

비행기를 타고 올 땐 참 좋았다.

널찍한 실내는 물론이고, 침대까지 있는 비행기인데 좋지 않을 리가 있나.

한 번뿐이긴 했지만 맛있는 식사에 입에 착착 달라붙던 와인.

이름도 희한한 와인이었는데, 오브리옹인가 뭔가라고 했었지.

와인은 딱히 즐기지도 않고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거라면 간혹 마셔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쇼핑하는 취미는 없지만, 면세점에서 술이나 한 병 사갈까.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려섰는데.

촤라라라락-!

문이 열리기 무섭게 눈을 강렬하게 때리는 이 플래시 세례들과 카메라의 셔터 터지는 소리.

“···이게 무슨.”

황당하다 못해, 얼이 빠질 지경이었는데.

계단을 황급히 올라오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

그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우선 이것부터.”

“아, 감사합니다.”

다급하게 건네는 선글라스는 먼저 착용하고 나니 그나마 좀 낫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제가 전화로 말씀드렸잖습니까.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서 유전 하나를 한국인에 양도한다고 발표했다고요.”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알았데요?”

그런 발표가 있었다면 차라리 외교부나 청와대를 가서 난리를 쳐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관계되어있다는 걸 대체 어떻게 알고 이렇게 몰려왔냐는 말이다.

“···네? 아니, 이렇게 떡하니 광고하셔놓고···. 기자들이 다 바본 줄 아십니까?”

“광고라니, 제가 무슨···!”

아.

뒤를 돌아보고 그제야 알았다.

나는 안에 타고 있어서 몰랐던 거지만, 내가 타고 온 비행기가 100미터 밖에서 보더라도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전용기라고 광고를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설마 노린 건가?

내가 오는 사이에 그런 발표를 한 것도 그렇고, 굳이 전세기가 아닌 왕실 전용기를 타고 가라고 한 것도 그렇고···.

설마, 그렇게까지 여우짓을 했을까.

“이제 아시겠죠? 일단 여길 벗어나시죠. 사진 유출은 국정원에서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이미 찍힌 것 같은데요.”

“걱정 마십시오. 저희, 대한민국 국정원입니다.”

그 말을 하면서 씨익 웃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믿음직스러운지.

간헐적으로 멋져 보인단 말이지.

* * *

여권 심사 같은 건 처음부터 생각도 못 했다.

텔레포트로 가면서 여권을 챙겨가지도 않았으니 어쩔 수 없고.

활주로까지 들어온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몇몇 기자들의 차량으로 보이는 게 끈질길 정도로 따라붙었다.

결국 국정원에서 경찰을 동원해 기자들의 차량을 막아섰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차 안에서 안정민 과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청와대에서 선생님을 좀 뵙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청와대면, 대통령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이건 그만큼 엄청난 사건이니까요.”

수십 개나 되는 유전 중에 겨우 하나인데···.

물론 그게 가벼운 일은 절대 아닌데다 유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게다가 어째서 주는 지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러니 더 난리가 난 거다.

한국에서 무슨 협박을 한 게 아니냐고 하는 나라들도 있었고.

“다 좋은데, 만나서 제가 무슨 얘길 합니까. 그냥 국정원에서··· 장민국 원장님은 이럴 때 뭐 하고 계신답니까?”

나한테 기름이야 그냥 자동차에 넣을 때나 필요한 것이다.

물론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나 기타 화학 물질 제조 같은 여러 분야에서 석유가 사용된다는 건 안다.

하지만 딱 석유라고 하면 생각나는 건 그냥 주유할 때뿐이다.

이런 내가 대통령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그런 건 그냥 시간 낭비일 뿐이지.

“그냥 실무자들끼리 이야기하라고 하세요. 제가 뭘 안다고. 아무튼 전 그런 자리는 좀 불편합니다.”

정치는 알지도 못하고 별 관심도 없다.

뉴스야 간혹 챙겨보긴 하지만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같지도 않고.

그래서 더 모르는 사람에 가깝다.

나는 투표를 한 적도 없고, 심지어 지금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네? 그, 그래도 유전의 주인이신데···.”

아무튼, 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던 건데.

지금 뭐라고?

“잠깐만요. 유전의 주인이요? 제가?”

“네? 네··· 그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전을 선생님께 넘겨드린다고 했으니까요. ···모르셨어요?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대한민국이 아니라, 나한테 준다고?

아니 그보다. 유전이라는 걸 개인이 소유하는 게 가능하긴 해?

“그야 가능하죠. 보통은 지분을 가지고 회사가 운영하긴 하지만, 오래전에는 개인 채굴허가권을 가지고 평생을 사막에서 땅만 파던 사람들이 수두룩한데요.”

난 이런 거 어떻게 개발하는지도 모르는데?

* * *

가게에 내려서고 마당에 들어서서야 와닿는다.

집에 왔다는 걸.

“···벌써 왔어?”

“어째 반갑지 않은 눈치다?”

“그럴 리가!”

사우디에서는 밤늦게 출발해서 인천 공항에는 이름 아침에야 도착했다.

이런 이른 시간에 일어나 있다니, 왠지 기특한데.

“어제는, 별일 없었지?”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지. 나도 이제 경력이 있는데 그 정도도 못할까 봐?”

“경력은 무슨···.”

이제 겨우 두 달째인 녀석이.

혹시나 해서 가게 안을 휘- 둘러봤지만,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정말 아무 일 없었겠지.

하긴, 따지고 보면 겨우 하루였는데.

그사이에 사고를 쳤으면 그게 더 문제지.

“아침 뉴스 봤어.”

"그냥 알아서 한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흠. 그럼 그건 라미야 작품인 건가?”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아무리 국왕이라도 유전으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그걸 내어준다고 했으면 엄청난 반발이 있었을 텐데.

정말, 어떻게 그걸 밀어붙인 거지?

띠딕-.

이루가 뉴스를 보다 껐는지, 티비를 켜니 곧바로 뉴스 채널이 나왔다.

[유전 특집 방송]

고작 몇 시간 만에 특집까지 꾸며서 방송을 하다니, 정말 빠르긴 하다.

-···이로써 한국도 유전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따로 있지 않겠습니까?

-네. 바로 오늘 아침에 인천 공항에 도착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전용기에 누가 타고 있었냐 하는 겁니다. 아마도 거기에 탑승했던 사람이 바로 그 유전의 주인이겠죠.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더라도 유전을 개인이 소유하는 게 가능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유전의 개인 소유를 허가하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로···.

그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경제와 향후 한국에 미칠 영향이나 유전을 소유함으로써 한국에 어느 정도의 간접적인 이득에 대해서 줄줄이 나열을 시작했다.

“이제 세계 부호 순위에 올라가는 거 아냐? 유전이라니. 진짜···.”

그래. 나도 상상도 못 했다.

근데 이참에 확인은 해봐야겠다.

나는 마당으로 나가서 곧바로 라미야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잘 도착했어?

도착은 했는데, 이걸 무사히 도착했냐고 물으면 글쎄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유전이라니?”

-아, 그거···. 별거 아닌데.

도대체 이 집안 식구들의 마인드는 어떻게 되먹은 건지.

가지고 있느냐 마냐하는 것만으로도 나라 하나의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의 문제인데.

뭐, 별거 아니라고?

“좋아. 그거야 그렇다 치고, 왜 유전인 거야?”

부자든 뭐든, 그냥 돈이나 왕창 줬으면 이렇게 황당하진 않을 거 같다.

-오빠가 그러더라고. 돈이라는 건 개인이나 나라의 상황에 따라서 그 가치가 변한다고. 하지만 유전은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했어. 그래서 유전을 주기로 했다고.

“···10년?”

기간이 애매한데.

수십 년을 유전 덕분에 호의호식하며 살던 나라가 왜 하필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언급했을까.

“마석이구나···. 투르키 국왕은 게이트가 다시 열릴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그렇지?”

-···부정은 하지 않을게. 게이트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하면 어차피 유전의 가치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봐야 가치가 떨어지는 건 뻔하니까.

내 환심이라도 사겠다. 이건가.

게이트가 나타날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이거 정말 국왕의 생각이었어? 아니면 너야?”

-미안하지만, 이번엔 둘 다 아니야.

지금의 가치보다 미래의 투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사람이 누굴까.

10년 후에 그 자리에 있을 사람.

궁전에서 봤던 그 사람이다.

“왕세자구나.”

-맞아. 나예프 알 사우드 왕세자야.

“혹시라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거면···.”

-아냐! ···그건 절대 아니야. 나예프는 오히려 어떻게든 너와 친해지기 위해서 안달인 사람이지. 유전을 양도하는 일은 거의 그가 독단적으로 밀어붙였다고 봐도 될 정도였어. 어쨌든 우리나라가 큰 잘못을 한 건 맞으니까···.

“그건 됐어. 이미 지난 일이고, 또 너도 그만한 짐을 맡았으니까.”

-···고마워. 그리고 약속을 깨버린 거··· 다시 한번 사과할게.

통화를 끝내고 들어왔는데, 이루의 표정이 별로다.

그리고 왜인지도 충분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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