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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34화 (34/153)

귀환자 식당 34화.

우웁- 우우우!

옆에서 버둥거리는 아이를 두고 난 고민에 빠졌다.

이 꼬마 녀석이 가진 마력을 봤을 땐 분명 마왕이 맞는데.

지금 저 모습의 어디를 봐도 위협적이질 않다.

그냥 죽여?

죽이자니 왠지 내가 잔인한 아동 살해범이 되는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안 죽이면? 게이트에서 나갈 수가 없다.

이런 게 바로 딜레마겠지.

우선 급한 대로 손발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려뒀는데, 솔직히 이것만으로도 이미 아동 납치범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인데.

그리 유쾌하진 않다.

한없이 고민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데.

괜스레 지난번처럼 게이트와 바깥의 시간 축에 차이라도 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으니까.

일단 대화라도 나눠볼 생각으로 재갈을 풀었다.

“아저씨···. 날 죽일 거예요?”

“···너 마왕이라며.”

“아, 그렇지! ···나, 난 마왕이닷!”

“근데 어쩌지. 마왕이면 죽여야 하는데?”

“···.”

히끅-.

자기가 마왕이라는 건 확실히 자각은 하고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코어가 반응하는 걸 보면 확실히 마왕과 연관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꼬마야. 이 게이트, 네가 연 거야?”

“게이트···?”

“···음.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

“여기는 내 집이야.”

나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마치 저 아이랑 스무고개라고 하듯이 하나하나씩.

그리고 내린 결론.

저 아이는 마왕의 후신後身이라는 것.

다시 태어났지만, 이전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본능만 남은 순수한 상태다.

라미야가 가지고 있던 코어의 작은 파편에서 나와서 그런지.

마력의 수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지만, 그래도 마왕은 마왕.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존재다.

어쩌면 죽이는 게 최선을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겉모습이야 이래도, 결국 본질은 바뀌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고.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밀같은 녀석이 들어왔다면 이런 걱정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고통은 없이 보내주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면 그 정도.

* * *

게이트에서 나오니 사막의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오래 있었던 건가, 나?

그렇게 고민이 길었다니···.

“지이이이인!”

밤새 게이트 주변에서 기다린 모양인지, 나오자마자 라미야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온다.

주변에 군대는 보이지 않아서 가볍게 포옹하는 정도는 괜찮겠지, 싶었는데.

라미야가 달려오다가 급하게 멈춰 섰다.

그리곤 떨리는 눈동자로 내 뒤를 가리켰다.

“진···. 그, 그 아이는···.”

“잠깐, 진정하고. 이 녀석의 마력을 자세히 느껴봐. ···어딘가 익숙하지 않아?”

아이에게선 분명 마왕의 마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다른 이의 마력도 느껴졌다.

바로 라미야의 마력.

이 아이는 아직 온전한 마왕의 후신이 아닌 셈이다.

분명 기본이 되는 것은 마왕의 코어일지 모르지만 되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라미야의 마력이었다.

하지만 내가 굳이 아이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것뿐이 아니다.

“이 녀석, 게이트를 닫을 수 있더라고.”

겁에 잔뜩 질린 조그만 아이, 그리고 마찬가지로 겁에 잔뜩 질린 라미야.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위험해!”

“알아. 하지만··· 라미야, 너라면 어때? 이 아이가 가진 마력의 절반 이상은 원래 네 마력이었잖아.”

“어떻다니? 그게 무슨 의미야?”

“너라면 이 아이의 마력을 억누를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야.”

불가능할 수도 있다.

···정말 그렇다면 처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 각오도 없진 않다.

이 녀석이 마왕의 후신이긴 하지만 정작 아직은 아무런 죄도 없지 않은가.

몬스터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

“이 녀석···. 네스티라는 이름도 있더라.”

허리춤에도 오지 않는 작은 꼬마의 머리에 슬쩍 손을 얹자 불안한 눈빛으로 날 올려다본다.

이런 아이가 마왕이라니, 어쩌면 그냥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분명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게이트를 여는 게 마왕의 능력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닫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분명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엄마?”

네스티의 입에서 뜬금없는 단어가 튀어나왔는데.

아직 눈빛은 두려움으로 가득하지만, 분명히 라미야를 보고 있었다.

“얘,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 엄마라니!”

결혼도 안 한 처녀에게 엄마라니.

라미야가 당황할 법도 하지.

“···아무래도 마력 때문인 것 같은데.”

라미야에게 물려받은(?) 마력 때문에 저런 식으로 느끼는 건가?

네스티가 하는 말은 분명 지구상의 언어는 아니었다.

통역 마법 덕분에 그렇게 들린 것이지.

네스티는 지금 라미야가 자신을 있게 한 모태에 가깝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셈이다.

“···어떡할래? 난 네 의견을 따를게.”

무척이나 잔인한 결정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걸 피하자고 데리고 나온 것은 분명 아니었다.

“···너도 느껴지지? 분명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과는 달라졌어.”

“그래. 아직 너무 흐릿하긴 하지만···. 느껴져.”

마력이 완전히 메말랐던 세상에,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마력이 채워지고 있었다.

그 말은 즉, 게이트가 다시 생성되기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이 아이··· 네스티는 분명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만약 마왕의 본성이 나올 기미라도 보이기 시작한다면, 죽이거나 실험체로라도 사용하면 된다.

그때는 나 역시 고민없이 처리할 수 있다.

당연히 그럴 필요도 없고.

“라미야. 이 꼬마, 네스티··· 네가 맡아줄래?”

* * *

순백까진 아니더라도 하얗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궁전.

와- 세상에 이런 건물이 정말 있구나.

한눈에 보기에도 아랍풍의 양식이라는 게 느껴지는 독특한 지붕과 기둥을 보니 새삼 실감이 난다.

내가 지금 궁전에 왔구나 하는걸.

라미야가 공주라 그런지, 차도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걸 보내왔다.

문을 닫는데 묵직함이 느껴지는 게 아마도 방탄이겠지 싶다.

중동 지역에서는 미사일 위협도 있어서 어지간한 폭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차도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내가 타오고 온 게 그런 종류일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나도 나름 귀빈이니까.

안내인을 따라 궁전을 가로지르니 거대한 홀이 나왔다.

알현실, 뭐 그런 공간인가?

그 가운데에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가운데 제일 번쩍거리는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아마 국왕이겠지?

“폐하. 한국에서 온 이진입니다.”

내가 직접 소개해도 되긴 하는데, 굳이 다른 이가 나서서 내 소개를 대신한다.

“반갑네. 투르키 알 사우드라고 하네.”

이런 게 왕의 기품이라는 건가.

단순히 제일 멋진 의자에 앉아있어서 나오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고.

“이번에 우리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해 큰일을 해주었다고 들었는데, 국왕 된 자로서 그냥 보내는 것은 예우가 아니지. 해서 억지로 자리를 만들었는데, 그대에게 실례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괜찮습니다. 왕궁 구경도 하고.”

뭐, 분위기에 휩쓸려 오긴 했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국왕이 보자는데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고.

가게가 걱정되기도 하니 오랜 시간을 머물 순 없겠지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

“우리 라미야 공주의 동료라고 들었는데. 위험한 일에 이렇게 곧장 달려와 주다니, 라미야 공주가 인복이 있는 모양이야.”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라미야의 부탁이 아니었더라도 알게 됐다면 왔을 겁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노쇠한 국왕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90세가 넘은 나이에 아직도 국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사뭇 대단하다.

아마 그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다음 왕위에 오를 왕세자겠지.

의자만 봐도 알것 같다. 지금 이 방에 있는 이들의 서열을.

슬쩍 바라보니 왕세자 역시 50은 넘어 보인다.

평소 내가 상상하던 왕세자의 이미지랑은 조금 다르긴 하네.

새하얀 이를 드러내는 금발의 미남자라는 건 역시 소설에나 등장하는 거였어.

“나 역시 대격변의 시대를 경험한 이로써, 게이트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잘 알지. ···만약 그게 개방되었다면 수많은 국민이 험한 꼴을 당했을 거야.”

총이나 미사일 따위의 위협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

그건 겪어본 자들만 알고 있지.

“자네 덕분에 그 일을 미연에 방지했으니 상을 내리고 싶은데···. 사실 돈을 내릴까 했는데, 이미 부자라고 하더군.”

누가 알려줬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 나라에도 정보기관이 있겠지.

내 재산 정도야 알려고 들면 몇 초도 걸리지 않아 알아낼 수 있었을 거다.

“부자라뇨. 그렇지 않습니다.”

나도 나름 부자인 건 맞지만. 그거야 일반인 중에서고.

재산이 실시간으로 늘어나서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못 한다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그래서 생각을 해봤네. 자네에게 어떤 보답을 하면 좋을지 말이야.”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그럴 수야 있나. 만약 그냥 돌려보낸다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뭐라 생각하겠나. 그러니 한 가지만 말해보게. 그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거, 혹시 백지수표 같은 그런 건가?

정말 아무거나 다 말해도 다 들어주는 그런 요술램프 같은 거야?

“원하는 건 무엇이든 말해보게.”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으음. 여기서 뭘 달라고 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나려나.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돈이나 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돈은 더 있어 봐야 딱히 쓸 곳도 모르겠고.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원하는 게 딱히 없어서.”

잠시 고민을 끝낸 결과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 사람한테 달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소탈하기까지 하다니, 정말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군.”

“···하하.”

뭐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긴 한데.

“그럼 내가 임의대로 고마움을 표시해도 되겠나?”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뭘 주려나.

내가 딱히 욕심이 없긴 하지만, 막상 선물을 준다고 하니 기대가 되긴 한다.

그래도 명색이 세계 최대 산유국의 국왕인데, 쪼잔하게 나오진 않겠지.

* * *

저녁 만찬까지 준비한다는 걸 겨우 만류했다.

나라의 정재계 인사들이 죄다 찾아온다는 소리에 일단 줄행랑부터 치고 봤다.

“나 참, 사우디 왕족과의 만찬을 거부하다니. 제정신이야?”

“그런 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하라고 해. 난 그런 격식 차리는 자리 딱 질색이니까.”

“알아두면 다 도움이 될 사람들인데. 어휴-.”

아무리 말해도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니 라미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보다 우리 두 사람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으니까.

“걘 어때? 괜찮아?”

“그래. 아까 잠깐 시도해봤는데, 네스티가 가진 마력 중의 대부분은 아직 내가 조절할 수 있더라.”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다른 사람이 가진 마력을 조절한다니.

나도 반신반의하긴 했는데, 정말 된다니 놀랍네.

“넌 네가 될 거라고 해놓고, 정작 네가 놀라면 어떻게 해.”

“그야··· 아무튼, 된다니 정말 다행이네. 그래서 네스티는 지금 어디 있어?”

“일단 재워놨어.”

“···강제로?”

“아니. 그건 아니고, 애가··· 좀 생각보다 순하더라고.”

라미야는 그 말을 하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정작 본인은 느끼지 못한 것 같기도 한데.

“그리고 꼬맹이··· 네스티의 마력을 강제로 봉인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마력을 강제로 봉인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실제로 해본 적이 없으니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거기까진 어쩔 수 없어. 나한테도 이건 엄청난 모험이라고.”

하긴.

이 모든 걸 라미야한테 떠넘긴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

“미안. 너무 큰 짐을 맡겨버리게 됐네.”

“하지만, 알지? 만약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어쩔 수 없다는 거.”

“물론이지. 그건 전적으로 네 판단을 믿어.”

서서히 마력이 돌아오기 시작한 세상.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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